은혜로 만족케 되리라 (렘 31:10-14)
제가 처음 현풍에 내려와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닐 때, 하천이 상당히 넓은 것을 보고 조금 놀랐으며, 하천을 왜 이리 크게 지었는지 궁금히 여겼습니다. 더욱이 제가 겨울에 내려왔기 때문에 물의 양이 아주 적었고, 그래서 악취가 풍기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넓은 하천에 낙동강 물을 끌어들여,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한 후에 온갖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게 한다면, 그리고 하천 좌우에 놀이터와 휴식처를 만든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될 텐데, 왜 이렇게 큰 하천을 덩그렇게 내버려두고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는 작년의 수해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 큰 하천도 상류에서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을 담을 수 없어서, 많은 물을 마을로 토해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상당히 넓은 하천이 넘친 것은 엄청난 폭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을 깎아서 길을 내고 집을 짓는 바람에 무거운 바윗돌과 토사가 무너져 내렸으며, 삼림을 벌채하고 길을 넓히기 위해 베어낸 나무들이 떠내려와 하천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므로 작년의 수해는 자연재해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재해였습니다. 자연을 마구 파괴하면서 자연을 우습게 본 대가로 자연한테 큰 복수를 당한 셈입니다.
제가 작년의 끔직한 추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새삼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자는 뜻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연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에 관한 교훈 말고도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바위와 우람한 나무라도 물에 하염없이 물에 떠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속에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송사리와 같이 작은 물고기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물고기들은 나이아가라와 같이 엄청난 폭포수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생명의 힘은 대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영적으로는 생명력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사데 교회를 책망하며 말씀하신 대로,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계 3:1)와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며 말씀하신 대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되었으며, 부자가 되어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계 4:15-16). 왜 한국 교회가 생명력을 잃었습니까? 자만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은혜를 받을 것이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한국 교회는 어느덧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회 부흥을 마치 자신의 공로로 이룬 줄로 착각하고, 어느새 배를 두드리고 느긋하게 놀고 즐기는 부자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 가는 사이에 세상의 우상들과 향락 문화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세상의 탁류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하나님께서 촛대를 다른 나라로 옮기시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아니 벌써 옮기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흔히 작은 교회는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지, 교회의 생명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보다 오히려 더 왕성할 수 있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이 움직이기 어렵듯이, 큰 교회도 타성과 전통에 젖어 거동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와 달리 몸집이 작은 사람은 재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그러므로 덩치가 작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작은 데 있지 않고,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왕성하게 먹고 뛰놀고 자라야 할 어린이가 제대로 먹지도 않고 힘차게 놀지도 않고 잘 자라지 않는다면, 부모의 걱정이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 교회가 작은 것을 걱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활동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 것을 걱정하실 것입니다.
왜 어린이가 왕성하게 자라지 않으며, 왜 힘있게 놀지 못합니까?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점점 더 나약해지고 병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더 이상 왕성하게 자라지 못하고 힘있게 일하지 못하는 것도 다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몸집이 작은 주제에 말씀을 열심히 먹으려고 않습니다. 잘 모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자만해지고 교만해졌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교회는 점점 더 생명력을 잃어갑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근본을 돌아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월드컵 축구의 감독으로 수고했던 네델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이 우리 나라의 축구 선수의 실력을 세계 4강으로 올려놓은 것은 잔재주를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 즉 체력을 보강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오직 말씀입니다. 교회의 모든 부흥은 말씀을 열렬히 사모하고 말씀을 왕성하게 먹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샤로테라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홀로 고독하게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원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가 너무 귀엽고 아름다워 가까이 가서 보게 되었습니다. 나뭇잎들과 작은 가지들, 그리고 풀로 엮어져 있는 그 둥지에는 새가 어디에서 물어왔는지 퇴색한 1불 짜리 지폐와 다른 종이가 있었고, 새는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새의 솜씨에 감탄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집으로 만든 그 종이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5-36). 이 여인은 이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그녀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올바른 삶을 살아야겠구나. 삶을 헛되어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그리고 그녀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어 가는 심령을 일깨우고, 잠자는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쓸모 없는 사람을 귀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새롭게 할 수 있고, 한 사람의 심령을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 밖에 우리에게 귀한 말씀 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3일 동안 갖는 심령 부흥회에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오셔서,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무슨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무슨 구실이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일년에 단 한번 오는, 아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를 이번 부흥회에 모두 열심히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처럼 여러분의 심령이 물댄 동산과 같이 되고, 다시는 근심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케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물댄 동산처럼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물댄 동산에는 각종 식물들이 싱싱하고 활기차게 자라납니다. 생명의 활기가 가득 넘치게 됩니다. 온갖 새들과 나비들과 동물들이 와서 뛰어 놀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꿈도 바로 이런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메마른 심령을 촉촉이 적셔줌으로써,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우리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고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되는 비결은 오직 말씀 밖에 없습니다. 순전한 마음과 온 정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먹을 때,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령의 부흥만이 아니라 생활의 부흥도 말씀의 감동과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깊은 깨달음을 줄 때, 비로소 풍성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17년 동안이나 마약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한 여자 의사가 있었습니다. 마약을 다루는 의사는 일반인보다 마약에 손대기가 쉽다고 합니다. 중독에 빠져도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합니다.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약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도무지 마약의 마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느 날, 이 여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옵소서. 마약에서 손을 떼야 하는데, 제 힘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빗물 같은 은혜를 제게도 부어주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간절히 기도하던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거운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이 여인은 기적과 같이 마약을 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망의 삶에 새로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중독에 걸려 있습니까? 혹시 돈에 중독되어 있지 않습니까? 혹시 게으름에 중독되어 있지 않습니까? 혹시 생활의 권태와 무력감에 중독되어 있지 않습니까? 세상 재미에 중독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도 이런저런 중독에서 벗어납시다.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얻읍시다.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나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이웃도 사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시다. 이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웃의 부러움을 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아니 그렇게 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굳게 붙들고 의지한다면, 아니 말씀을 열렬히 사모하고 배불리 먹는다면, 반드시 놀라운 은혜가 임할 줄을 믿습니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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