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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롬 8:26-28)

by 【고동엽】 2022. 9. 9.

인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롬 8:26-28)


성경에 구절들이 참 많습니다. 성경에 구절이 모두 31,173구절이나 됩니다. 성경의 말씀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그 많은 구절들 가운데서도 더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구절들을 외우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이나 시편 23편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구절들을 외우고 애송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의 말씀 중에도 마음에 와 닿는 그런 구절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오늘 읽은 이 구절이 참 좋습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그대로 와 닿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 얼마나 마음에 그대로 와 닿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합동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선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고전 13:5절을 보면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남을 손상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은 자기를 깨끗하게 함과 동시에 모두의 행복과 사회의 정화를 꾀하는 정신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유익을 구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는 이 선이 없습니다.  

마 19:1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엇인 선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정색을 하시면서 “어찌하여 내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선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선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에게서 선을 배우고 선을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선인이 되고 하나님을 떠나면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은 오늘 여기서만 역사하고 섭리하시는 분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역사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꾸만 여기서 나에게만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으로 알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오늘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집착하고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링컨대통령에게 참모 하나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어려울 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라,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를 원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기를 힘쓰라”고. 너무나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늘 내 편이시면 그 하나님도 선한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선하신 기준에 의해서 지금도 여기서도 역사하시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섭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지난 주간에 보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인도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합동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절절히 보고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재난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섭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재난을 통해서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인도 동남쪽에 있는 마드라스라는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인도 마드라스

이 마드라스(첸나이)는 인도에서 칼카타, 봄베이, 델리 등 4대도시 가운데 하나의 도시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2004년에 쓰나미로 바닷물이 넘쳐서 모두를 쓸어간 곳이라고 해야 더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2004. 12. 26날 아침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근방에서 강도 9도의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지진으로 10m가 넘는 해일이 발생하면서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11만 5천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인도에서만도 2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결교회가 집중적으로 선교하고 있는 마드라스(첸나이) 지역에서 7천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엄청난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재산과 집을 잃었습니다. 자연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조용하던 바닷물이 갑자기 성나서 육지 높은 곳까지 몰려와서 순식간에 다 쓸어가 버렸습니다. 그때 인간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결교회의 모금운동

그 소식을 듣고 교단에서는 전국에 호소하였고 수재헌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을 현지에 보내서 수재민들을 위한 집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보내준 성금으로 그동안 집을 잘 지어 엊그제 제가 인도 현지에 가서 준공식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인근에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주관하는 해비타트라는 단체에서 간이식으로 150채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결교회가 50채를 지었습니다. 50채면 수재민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분량의 집입니다. 그 준공식에 인도에서 장관이 나오고 고위 인사들이 참석하고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서 잔치하며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지은 집 한 채 값이 300만원씩 들었는데 그 집이 그 일대에서 가장 좋은 벽돌과 스랍으로 지은 고급 맨션이라는 사실입니다.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에 살던 집 보다 훨씬 더 좋은 집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하니까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서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꽃마차를 준비했다가 태우고 마차 앞에서는 꽃가루를 뿌리고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습니다. 저는 그날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처럼 그렇게 지극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도 합동해서 더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재난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불행을 통해서 더 좋은 환경으로, 더 분명한 섭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도 지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우리민족과는 상관도 없는 민족을 사건을 통해서, 불행을 통해서 서로 돕게 하시고 관심을 나누게 하셔서 그들과 연결시켜 주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참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선교 지역으로 떠오름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인도에서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민들입니다. 그곳은 그 사회에서 밀려난 천민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를테면 그 사람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난하고 외면당하며 살던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선교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관심도 없던 신약시대로 말하면 갈릴리지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쓰나미로 인해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복음의 손길이 밀려들어 어느 날 갑자기 햇빛이 쨍하고 빛난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 새로운 집이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갑자기 선교사들이 파송되는 양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순간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참으로 신비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도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까 재난을 통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열정이 참 대단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다 구원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좀 못살고 피부색이 다르면 금방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그것이 사람의 속성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편견이 더 심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그렇게 인종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즘 택시 영업이 잘 안되니까 기사들끼리 핸드폰으로 영업 잘 되느냐고 서로 안부를 묻곤 한다고 합니다. 한 기사가 동남아에서 온 피부가 검은 노동자 둘을 태우고 갔습니다. 마침 그때 동료기사로부터 잘 되느냐고 안부 전화가 왔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말하기를 손님이 없어 야단이라고, 겨우 지금 연탄 두 장 배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피부색이 검은 동남아 노동자들을 태우고 가다가 그들을 연탄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얼마나 모욕적인 언사입니까.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손님이 택시요금을 내지 않더라고 합니다. 연탄이 무슨 요금을 내느냐고 그냥 가버리더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인종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편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피부색이나 문화의 낮고 높음을 막론하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쓰나미 사건을 통해서 그 잊혔던 생명들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는 없었거나 아주 시간이 오래 지난 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합니까. 저는 그곳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마의 최초 선교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신비하게 느낀 것은 그곳이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선교한 선교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은 2천 년 전 기원 52년에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최초로 인도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도마의 순교성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 옛날 도마가 인도남쪽 첸나이 지역에 까지 건너가서 무슨 내용으로 전도를 했겠습니까.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철두철미하게 부인하다가 창피를 당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왔을 때 그때 도마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돌아와 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녀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도마가 나는 내 손가락으로 창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부활을 믿을 수가 없다고 아주 철저하게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찾아온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이제야 네가 믿겠느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도마가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겠습니까. 그 부끄러움을 갚기 위해서 도마는 가장 멀리 인도에 까지 가서 전도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인도까지 가려면 레바논을 거쳐서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거쳐야 갈수 있습니다. 도마는 주님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먼 인도까지 멀리 걸어서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마가 인도에 가서 전도할 때 무엇을 특별히 강조했겠습니까. 도마는 20년 동안 그 땅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의 부활을 목이 터져라 외쳤을 것입니다. 도마는 그렇게라도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자신의 불신했던 모습을 씻어내려 했을 것입니다. 도마는 그렇게 외치다가 그 땅에서 힌두교도들에게 발각되어 끌려가 창에 찔려 순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오늘 그 지역은 복음을 잊어버린 불모지 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도마의 피소리가 그냥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지역에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쓰나미의 물결로 휩쓸게 해서 그 지역에 다시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신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신다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절을 보면 “사람은 모두 연약하여 기도할 바를 모를 때 성령은 탄식하면서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27절에서는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28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오늘 현재 이 시간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옛날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준비하시되 모두에게 유익하도록 준비하십니다.

한 가지 우리의 숙제

저는 돌아오면서 한 가지 숙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집이 50채면 200여명 밖에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집이 없어 임시움막에서 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600여명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들이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붙잡고 집을 더 지어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우리교회가 50여 채 집을 더 지어주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 한 채에 300만원씩이니까 50여명만 동참하면 50여 채를 지어서 200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다른 교회에 부탁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일에 동참해 주십시오. 300만원이면 영구한 집을 지어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그렇게 흔하게 쓰고 살게 하신 것도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옷 해 입기로 계획하였으면 한해만 더 입고 연기하십시요. 여행가기로 계획하였으면 한해만 연기하고 다음해에 가십시오. 회갑잔치, 칠순 잔치하려고 계획하였으면 대신 이 일에 동참해서 보람 있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남녀전도회에서도 한번 놀러가는 것 연기하고 이 일에 동참해 보십시오. 결혼해서 신혼여행 가려고 계획한 분들 있으면 가까운 곳으로 가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새 인생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 돈을 쓴 것 보다 훨씬 더 큰 보람과 영광과 마음의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들이 다 지어졌을 때 우리 모두 그곳에 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립시다. 저는 이때를 위해서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넉넉하게 살고 안락한 잠자리에서 자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시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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