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12-31
어떤 청년이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 목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완벽한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그런 교회 찾기가 쉽질 않네요. 혹시 목사님은 아실까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마도 다른 목사님 같으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신앙 생활을 하십시오”라고 할텐데 스펄전 목사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겸손한 자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런 완벽한 교회를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만일 형제님이 더 다니다가 완벽한 교회를 찾으면 나에게 연락해 주십시오.”하고는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실망한 그 청년은 발걸음을 되돌려 스펄전 목사의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 나가려고 하는 청년에게 스펄전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설상 완벽한 교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그 교회에 다니는 한, 그 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같은 완벽한 교회를 찾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죄인들이기 때문에, 죄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 안에는 별스러운 일이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훌륭한 기독교인들을 보여주는 ‘전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한 기독교인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봐주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곳이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이 땅 위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으로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단히 기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도 참으로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인들이 서로 분열되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추종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종류의 계파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아볼로파’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각각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라고 부르면서, 서로 자신들이 신앙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정당도 아닌 교회에 무슨 계파가 이렇게 많았을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유복하고 교양을 갖춘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부터 수공업자, 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활습관과 관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고, 지적인 면에서도, 영적 감각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갈등이 심화되어 갔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신앙적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교회들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사회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 시간 바울의 권면을 묵상함으로써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인간적인 조직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룩한 공동체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교회란 생활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적인 모임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세례를 통하여 하나가 됩니다.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는 말씀처럼 성령은 성도들을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묶어 놓습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일본이나 그 어떤 인종이나 혈통의 구별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거룩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몸’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발’은 몸의 다른 부분을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체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저급하게 취급 당합니다.
그에 비해 ‘손’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손으로는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만들거나 옮길 수도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말하는 데 장애가 있는 분들도 손짓으로 의사표시를 하거나 감정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옛말에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도 있듯이 ‘눈’은 매우 중요한 지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귀’는 잘 보이지도 않고 듣는 기능 밖에는 없다고 눈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 지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몸의 지체를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비록 각 지체의 기능을 다르지만, 모두 다 소중한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각 지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필요없는 것이라면 일부러 만드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중 어느 것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전체를 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기관과 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든 기관과 부서와 성도들은 각각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하찮게 여길 만한 부서나 신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비록 부족하더라도 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자신만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 주의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워 나가야 합니다. 절대로 교회 안에서는 분파가 있다든지 미움과 알력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손과 발이 서로 싸우는 일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는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다툼과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큰 원인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본문 21절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각 지체가 서로에게 “난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그 몸이 온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이런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기관이 있습니다. 당회와 제직회, 남녀선교회, 청년회, 찬양대, 주일학교 등 각기 맡은 제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기관이 말하기를 “우리 기관이 가장 중요하고, 당신네 기관은 별로 필요없다”고 주장한다면 그 교회는 금방 분란에 휩싸이고 말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찬양대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차량 안내위원회도 중요합니다. 교회학교는 어떻습니까? 어느 기관 하나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없습니다. 각각 그들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는 어떤 경우가 있어도 결코 서로 반목하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체의 여러 각 부분이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어 나갈 때,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회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각 기관과 부서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서 가장 연약한 기관이나 사람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약자를 짓밟고 무시합니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밀림의 법칙’ 만이 존재합니다. 연약한 존재는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약자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그 다음 약자가 또다시 제거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결국 그 공동체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약자를 용납하고 도와주게 되면 점차 공동체 안에 있는 약한 자들의 비율이 줄어들게 되고 그 공동체는 점점 건강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멸시천대 받는 이들을 교회에서도 그렇게 대한다면, 큰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미국의 어느 큰 교회에서 흑인이 예배드리러 왔는데 백인 안내위원들이 “이 교회는 백인 교회이니 흑인 교회로 가십시오”하고는 못들어 오게 하더랍니다. 그는 풀이 죽어 교회 밖의 계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낯선 남자가 다가오더니 그를 위로하며 “당신도 못들어 갔군요. 저도 못들어 갔습니다. 같이 다른 교회를 찾아가 봅시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흑인이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낯선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교리나 건물이 아니라, 약자를 더 소중하게 대해주는 신앙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난한 자, 어리석은 자를 무시한다면 세상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이웃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은 서로에 대해 민감하게 대해야 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사람 ‘인’자도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있는 수많은 지체가 서로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어 온전한 몸을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체는 다른 지체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만약 우리 몸에서 발바닥이 아프다면 발바닥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온 몸이 아픕니다. 한 군데가 아프면 전 몸의 지체들이 다 비상이 걸립니다. 손가락 끝에 바늘만 박혀 있어도 거기에 정신이 쓰여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병들었는데 무감각하다면 그 몸은 그보다 더 심각한 병에 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한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고 상처를 입으면 전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그 성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유지됩니다.
지난번에 우리 교회에서 한 집사님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온 교회 성도들이 마치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녀가 속한 여선교회에서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서 모금을 했습니다. 헌혈증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젊은 여신도들이 모금함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교회의 한 지체에 대해서 같이 아파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곧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다른 지체에 대한 민감성입니다. 반대로 다른 지체에 대해 둔감할 때, 교회는 약화됩니다. 다른 성도들의 실패와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핍박으로 실상 생활의 위기에서도 바울 선생의 선교활동에 크게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외롭게 선교활동을 할 때 빌립보 교회는 많은 선교비를 보내서 그의 선교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런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 4:14)
하나님께서는 형제의 아픔에 참예하는 자, 주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예한 자에게 풍성한 은혜로 갚아 주십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안옥희 선교사와, 뉴질랜드의 한명수 선교사를 전적으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일에 참여하여, 선교헌금에 협력하는 성도들에게 선교사역자와 동일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와 사회에서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돕는 일에 나섬으로써, 정말 아름다운 강남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전병금 목사 설교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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