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6:7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계속적인 부흥의 역사로 번져 나갔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통하여 번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는 3,000명, 5,000명으로 그 수가 많아지며 말씀이 흥왕하여 갔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흥왕은 사마리아인과(행 8: ), 고넬료 가정(행 10: )과 안디옥(행 11:19~26) 여러 이방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예루살렘 교회를 통하여 흥왕하는 역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왕성하여'(아윅사넨)은 '자라게 하다', '증가하게 하다'는 뜻인 '아워사노'(*)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 교회를 질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운동력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의 왕성이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성경이 증언 합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어려워 할 줄 아는 교회,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따라서 말씀 중심의 교회요,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배하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화합하는 그곳에 주님은 임재하시며 영광을 받으시고 부흥의 역사가 임합니다.
옥타비아누스라는 인도네시아에서 활약한 유명한 부흥사가 있습니다. 그의 간증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부흥회를 하고 나니까 어느 교수님이 다가오더니 “당신은 자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내가 읽어보니 그것은 역사서입니다. 옛날 이야기이던데요.” “그래요? 몇 번이나 읽으셨습니까?” “열 번 읽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오늘 저녁에는 이 성경을 머리 위에 얹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 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기도하고 읽어보십시오.” 그렇게 일러서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에 오셨는데 보니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더랍니다. 정말로 기도하고 읽었더니. 열 번을 읽어도 옛날 이야기로만 들리던 말씀이 마침내 달리 들리더랍니다. 성경이 그대로 말씀해주시는데 구구절절이 너무도 귀해서 밤새껏 읽었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지금 내가 성경을 읽고 있지만 내가 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주실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성경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90년 전 미국의 식물학 교수 윌리암 클라크가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북해도에 있는 삿포르 제국대학에 교환 교수로 부임케 되었습니다. 이 교수는 식물학만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경을 여러권 배에 실었습니다. 문부성에서 나온 장학관이 물었습니다. “ 이 책을 무엇 하려 합니까?” “ 이 성경을 제국 대학 학생들에게 가르칠 겁니다.” 이 대답을 듣고 장학관이 제국 대학에서는 성경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하자 윌리암 클라크 교수는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장학관은 필수과목으로는 안 되지만 방과 후에 성경을 가르칠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함께 가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8개월 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나서 클라크 교수는 갑자기 소환이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교수는 교문을 나서며 “ 청년이여! 대망을 품으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본국으로 떠났습니다. 이때 클라크 교수의 성경 교육에 영향을 받은 청년 중에는 일본의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였던 우찌무라 간조가 있었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인생과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데이브 비어만의 가정에서는 매주 성경을 한 구절씩 암송하기로 했습니다. 열살짜리 카라와 여섯살짜리 다나, 두 딸이 부모보다 더 성경암송을 잘했습니다. 어느날 저녁, 큰딸 카라와 둘째딸 다나가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밉다면서 싸우고 있을 때 아버지인 비어만이 큰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성경구절이 어디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카라는 '요한 1서 4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줄줄 암송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더 심하게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살지 못하는 작은 실례입니다. 데이브 비어만은 말합니다. '기독교 서적과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교회 출석 인구가 늘어나고 방송설교가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혼, 범죄, 자살, 마약중독, 낙태 등 범죄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종교가 발전하는 것만큼 죄도 발전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인 가정, 학교, 직장, 시장 등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실천할 때 가능해 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21세기 예화사전- 말씀에 대한 삶의 적용)
요즈음 보증 문제 대여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경은 변리로 대금치 말라고 하시고 보증도 서지 말라고 합니다.
(시 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잠 22:26)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주시는 은혜를 힙입고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서로 돕는 모두가 됩시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양적으로도 믿는 자의 수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전파할 때 제자의 수가 더합니다.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 11:20,21)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외국의 유명한 크리스챤 잡지에, 세계 선교에 대한 특집 기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동안 세계 선교가 발전해 온것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고계신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후 100년, 그러니까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면서, 박해와 고난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에 이어, 사요 요한이 사망할 당시까지, 세상에는 그리스도인 대 비그리스도인의 비율이 {1 대 360}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1년에는 세계 인구의 칠분의 일(1/7)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또, 이란 지역에 사는 무슬림, 즉 회교도인 가운데, 최근 10년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회교도인의 숫자는, 그 이전1000년 동안 개종한 숫자를 모두 더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1950년, 백만 명에 지나지 않던 {중국}의 그리스도인이, 이제는 6천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1900년에, 인구의 겨우 3 퍼센트(%)에 지나지 않던 {아프리카} 지역의 그리스도인 숫자가, 현재에는 인구의 40 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십니까? 친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주로영접한 사람은 85 퍼센트(%) 이상이 계속 그의 믿음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의 85 퍼센트(%)는, 쉽게 그 믿음을 잃는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리는 {관계전도}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사랑을 베풀며 칭송 받을 때 더했습니다.
(행 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많아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가 수그러지게 합니다. 프랜시스와 그의 제자들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혼자 남아 집을 지키는데 악명 높은 산적 셋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용기를 다하여 큰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너희들은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는 것이냐!” 도적들은 마음이 찔렸는지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이 돌아오시자 이 소년은 자랑스러운 듯이 있었던 일을 고했는데 프랜시스가 섭섭한 투로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실수했다. 지금 곧 도적들에게 가서 이 빵과 포도즙을 주고 오너라.” 소년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들을 바로 쫓아가서 빵과 포도즙이 든 선물을 전달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먹지 않고 소년을 따라 수도원으로 왔으며, 회개하고 프랜시스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성도가 관대함을 보일 때 이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사장은 유대 종교와 사회 기득권의 대표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는 것은 율법과 제사 중심의 유대교가 폐하여졌음의 객관적 입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 내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조차 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따르면 예수 당시의 유대인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명가량이었고 이중 8,000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제사장들이 제사의식 기능을 수행했던 기간은 3대 명절의 순례 축제 기간과 연 2주간 정도였으며 나머지 연 10-11개월 동안은 고정된 수입이 없었던 관계로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과 대제사장들 사이의 사회적인 신분격차는 대단히 컸으며 대제사장들은 항상 제사장들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곤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별다른 소득이 없는 제사장들은 굶어죽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제사장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생활과 또한 유대교 자체의 부패상으로 인해서 많은 회의를 갖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생명력있는 기독교 신앙이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은 한마디로 사도들의 말씀 연구 전념의 결과입니다. 사도들은 성경을 연구하므로 구약의 율법과 제사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음을 밝혀냈고(롬 3:21; 갈 3:24; 히 10:12) 이것이 제사장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말씀은 이방을 개종시키는 능력으로 임합니다.
(롬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1903년 1월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옥중학교와 더불어 옥중 도서실을 설치하였다합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합니다. 서적실을 설치하여 죄수들로 하여금 임의로 책을 얻어 보게 하려 하매 성서공회에서 기꺼이 찬조하여 지폐 오십 원을 위한하고 보조하기를 허락하매 사백 냥 돈을 들여 책장을 만들고 각처에 청구하야 서책을 수합하매 심지어 일본과 상해에 외국 교사들이 듣고 서책을 연보한자 무수한지라 영서, 한문, 국문의 모든 서책이 방금 있는 것이 이백 오십여 권인데 처음 십오일동안에 책 본 사람이 통히 이백 륙십팔이오 지난달은 일삭 동안에 통히 249명이라 천문, 산학, 경제 등 모든 정치상 관계되는 책이 더 있으면 보는 사람이 더욱 많을 터인데 방장 구하여 오는 책이 또한 불소하다 하는지라 국민이 이만치 유조할 일이 없을 듯하도다." 당시 250여 권으로 시작한 옥중 도서실 장서 수는 1904년 8월 말에는 한문책 222종 338권, 한글책 52종 165건, 영문책 20종 20권등 총 294종 523권이 소장되어 있었다합니다. 수감자들은 대부분 책을 열심히 읽어 1903년 1월17일부터 1904년 8월 31일 사이에 한 번 이상 책을 빌려 본 사람은 229명이었고, 대출 도서 수는 2,020권 가량되었다. 옥중 소장 도서의 대다수 내용은 기독교적인 것으로 그 기증처가 국내외선교사, 성서공회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 책을 읽은 수감자들의 옥중 기독교 개종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합니다. 한편, 도서대출 대상자 가운데는 옥중 재소자 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도 있었다합니다.
레이 리치몬드(Leight Richmond)라는 사람이 길에 종교 관계의 소책자를 떨어뜨리고, 어떤 좋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가지를 바랬다합니다. 과연 어떤 한 좋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갔으며 그가 감옥에 들어갈 때 그책을 갖고 들어가, 감옥 안에서 그것을 읽고 개종하게 되었다합니다. 바로 그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존 번연(John Bunyan)이라 합니다.
성도의 선행이 감화의 역사로 임할 때 개종의 역사가 임합니다.
30여년 전에 유명한 전도자였던 필포트는 개종하기 전에 대장장이였다합니다. 그는 매우 거치른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번째 목회 구역은 매우 작았기 때문에 그는 작은 농장에서 일을 해서 그의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그의 이웃에는 전도자들을 몹시 싫어하는 한 무신론자가 살았는데 그는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전도자들을 속여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쓸모없는 기생충처럼 여겼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분노를 터뜨릴 때 필포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무신론자가 필포트에게 그의 정원을 쟁기로 갈 사람을 구할 수 없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필포트는 즉석에서 자진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으며 대가를 지불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얼마 후 그 무신론자는 그에게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전도자입니다"라고 필포트는 대답했습니다. 그 무신론자는 거의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전도자인데 당신이 나의 정원을 쟁기로 갈았습니까?" 그는 전도자가 쟁기질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더구나 무신론자를 기꺼이 도와 주려고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그 무신론자는 나중에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필포트가 그의 뜰로 건너가서 그의 외투의 깃을 붙잡고 "형제여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말했더라면 그 무신론자는 그를 집 밖으로 내쫓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하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 (0) | 2022.09.08 |
---|---|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행복 이야기 (0) | 2022.09.08 |
이 세상 소풍 마치고 하늘로 가는날 (0) | 2022.09.07 |
성도여 그대는 약하니라 (고후12:7-10, 13:4) (0) | 2022.09.07 |
네 목의 줄을 풀지어다 (이사야 52:1~2) (0) | 2022.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