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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여 그대는 약하니라 (고후12:7-10, 13:4)

by 【고동엽】 2022. 9. 7.

성도여 그대는 약하니라   (고후12:7-10, 13:4)


‘성도여 그대는 약하니라.’ 좀 들은 말 같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성도니라.’, ‘약한 자여 그대는 강하니라.’ 성도의 모습은 약합니다. 성도의 삶은 약하게 삽니다. 성도의 언어문화는 약한 언어들을 사용합니다. 성도는 항상 연한 줄기같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주님의 삶은 약한 자의 삶이셨습니다. 얼마나 약하셨는지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 능력과 권세도 없었습니다. 그는 참 약하신 자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는 ‘잘했다.’ 변명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허물이 없다. 나는 죄가 없다.’고 변명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를 해치는 수많은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침 뱉는 사람들, 끊임없이 때리고 채찍질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축복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약하셨습니까? 그러나 이 우주에서 가장 강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마귀와 싸워 이기셨으며, 우리 온 인류를 죄에서 건지신 분은 가장 능력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약한 자로 죽으셨지만 강한자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며 온 세계가 오늘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있으며, 그의 나라는 쇠하지 않고 망하지 않으며 영원합니다. 약한 것같이 보이고 약한 모습은 우리가 보는 대로 잠깐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승리자 참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살아갑니다. 교회는 약합니다. 사도들은 약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다 힘 있는, 능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시기 위해서 약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어 쓰실 때 우리를 약하게 만드십니다. 마귀는 우리를 들어 쓸 때 강하게 해서 들어 씁니다. 능력 있게 해서 들어 쓰고는 버립니다. 강한 자는 망합니다. 강한 자의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의 길은 영원합니다. 약하고 약한 교회는 2천년을 내려오고 있고 이 세상에 끊임없이 강한 나라 강한 세력들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강하고 오래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약한 자가 행복합니다. 약한 자는 사랑이 넘칩니다. 약한 자는 하나같이 잘됩니다. 약한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약한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동물의 세계도 보니까 약한 동물은 번성합니다. 이 지상에 있는 동물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은 양입니다. 양같이 약한 게 없습니다. 그래서 양은 사람이 길러주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개도 들개가 있습니다. 안 길러주어도 살 수가 있습니다. 소도 들소가 있습니다. 안 길러주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여튼 모든 생명 물고기든 산에 나는 새든 사람이 안 도와주어도 다 되는데 안 도우면 안 되는 생명은 양입니다. 얼마나 약합니까? 그런데도 양은 제일 번성합니다. 호주에만도 양이 7천만 마리입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생명은 번성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약한 자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약한 자가 있는 곳에 번영과 발전이 있습니다. 나는 새든 바다에 있는 물고기든 약한 자들이 번성합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맹수들은 강하니까 번성이 안 됩니다. 행복이, 평화가, 사랑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도 행복이 없습니다. 저도 호랑이를 보니까 호랑이는 각각 따로 삽니다. 부부간에도 같이 안 있습니다. 부부간에 좋아할 때도 으르렁거립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으르렁대고 쳐다봅니다. 또 위에 있는 수놈도 어흥 하면서 참 이상합니다.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데도 으르렁대고 곰도 그렇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헤어져 버립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 순간 좋아하고는 헤어집니까? 그러니까 번성이 안 됩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자기들도 행복이 없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사랑하고 화해를 좋아하며 약해야 하나가 잘되지 않습니까? 모래는 강하니까 하나가 안 됩니다. 흙은 가장 약하니까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흙을 가지고 만드신 것은 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고린도서에도 인간은 약하지만 질그릇같이 흙같이 약하지만 능력이 어디 있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약할수록 하나님은 사랑합니다. 법칙이 그렇습니다. 모든 약한 것은 힘이 있고 약한 곳은 발전하며, 약한 곳에 행복이 있고 약한 자들이 부유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약한 나라가 번성합니다. 북한 보십시오. 얼마나 강합니까?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쌀 퍼주고 비료 퍼주며 한없이 도와줘도 으르렁댑니다. 왜 그렇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퍼주는데, 퍼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갖다가 다 바칩니다. 쏟아 부어 주어도 동족끼리 캭! 캭! 합니다.  동족이라 그렇게 해놓고는 뒤로 돌아서 캭!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약한 자를 더 사랑하십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우리는 약합니다. 어린아이같이 약합니다. 우리는 내 약한 것을 인정합니다. 내 마음이 약하여, 내 몸이 연약하여 늘 넘어집니다. 그러나 능력의 주님이 우리를 늘 잡고 계시고 함께하셔서 약할 때 일으켜주시고 위로해주시며, 소망주시고 눈물 닦아주시며, 혼자 있지 않도록 늘 도와주십니다. 성도의 행복은 나는 약하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데 있습니다.

    강한 민족이 강한 게 아닙니다. 개인이나 민족은 강하려고 하면 이미 그게 종말론입니다. 막 강한 말들을 사용하면 그게 마지막입니다. 부드러운 언어를 쓰고 부드러운 표현을 하며, 부드러운 문화가 발전해야 나라가 잘 됩니다. 독재주의국가 공산주의국가는 영화를 해도 전부 싸움하는 것, 모든 음악도 전부 싸움하는 음악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발전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금년은 특별히 선거 해입니다. OECD 선진국들이 온 세계가 우리를 알아주는데 금년에 우리가 선거를 잘 치루기 위해서는 이제는 선거도 그전 선거같이 치루면 안 됩니다. 선거는 잔치입니다. 우리 지도자를 뽑는 잔치인데 이 얼마나 좋은 잔치를 흥겹게 춤추며 위로하며 같이 의논하고 대화하면서 이게 하나의 게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선거는 전쟁이 아닙니다. 죽고 살기 식으로 싸우지 말고 공격하고 들추어내며 인신공격하고 없는 것 막 갖다 붙여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선거는 이제 끝내야 됩니다. 선거가 끝나도 계속 싸우고 이러니 온 국민이 다 그렇게 배워 온 나라가 다 싸움판입니다. 학교도 싸움판, 직장도 싸움판, 가정도 싸움판, 아이로부터 모든 계층이 다 싸웁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이제는 그러지 맙시다. 없는 것도 다 만들어 인신공격하고 외국은 그러면 아예 국민이 돌아섭니다.  이제는 남을 공격하는 분에게는 우리도 돌아서야 됩니다. 우리 교인들도 그런 편 가르는데 따라가지 말고 가만히 누가 제일 순 한가 있다가 그날 아멘하고 찍으십시오. 어떤 교회들은 막 누구 지지하고 하는데 저는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도하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 이때에 이 나라를 부드럽게 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선거를 치룰 수 있도록 우리 교인들이 문화적으로도 앞서가면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힘으로 한다고 됩니까? 그러면 오래 못 갑니다.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사랑하시고 창녀의 친구가 되시며 죄인의 집에 가셨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이 세상에 가장 병들고 불쌍하며 버림받은 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산에 가면 산으로, 집에 가면 집으로, 들에 가면 들로, 바닷가에 가도 너무 많아 바다에서 배를 띄워놓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많이 몰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하셨지만 그렇게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는 주님이 사역하신 그 사역을 본받아 약한 교회가 되고 약함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좀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강하고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런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조금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같이 강하려고 하고 힘 있고 능력이 있으려고 하는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면 그보다 강 한자, 더 부요한 자, 더 능력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주님을 위해서 큰일을 했습니다. 신약성경이 27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쓴 책이 13권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12권이다, 더 많게 보는 분은 14권이다 그렇게 보는 분이 있습니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13권입니다. 이게 다 바울서신입니다. 이 지상에 있는 분 가운데 바울 같이 능력이 있는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을 연구해서 오늘 수 백 년 동안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아마 어림잡아 수십만, 수백만이 될 것입니다. 바울을 연구 안하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세계가 예수님 다음으로 바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능력, 그런 은혜, 그런 귀한 삶을 살아도 자기는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자기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본문 전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바울은 어디까지 갔느냐하면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디까지 인도했느냐하면 하나님 보좌 계신 곳까지 끌어갔습니다. 다 보았습니다. 그런 신령한 은혜를 다 경험하고 온갖 능력을 받으며, 수많은 환자 모든 병을 다 고치는데 하나님은 자기에게 시험 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이 병을 간질병이라 하기도 합니다. 설교하다가 넘어지기도 합니다. 눈은 나쁜 게 아예 성경에 나오고 바울은 자기가 아예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눈이 나빴습니다. 사탄의 가시라 그랬습니다. 자기를 밤마다 찌르고 순간순간 고통을 주는 이 가시가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 일인지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작정기도를 합니다. 일 년 내내 금식하면서 이것 좀 고쳐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안 해주시는 것입니다. 3번이나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마지막 응답이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가 너에게 왜 가시를 주었느냐? 너로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너 그런 은혜 받았는데 그 가시만 없으면 넌 날 떠나. 너는 기도 안 해. 너는 하나님을 순종 안 해. 너 나에게 붙잡힌 것은 그 가시 때문에 붙잡힌 거야. 가시가 있으니까 다른 은혜도 너에게 있는 거야. 너는 그 가시 때문에 겸손해지는 거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인데 너도 다 없어봐.’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는 것 신앙생활 하는 것 다 가시 때문입니다. 가시가 없으면 교인이 안 됩니다. 가시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것 때문에 눈물이 나고, 가시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것 때문에 순종하고 기도합니다. 주의 계명을 따라갑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은 모든 분들은 가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다윗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가시 있는 분들이 큰일을 합니다. 오늘 인류역사에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다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 없이 큰 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큰일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바울에게 있는 가시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들도 가정에 가시가 있습니다. 남편의 가시가 있습니다. 아내의 가시가 있습니다. 자녀의 가시가 있습니다. 오늘 1부 마치고 보니까 어떤 분이 기도 받으러 왔는데 자기가 병이 들었습니다. 두 딸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부인이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남편 버리고 자녀 버리고 어디 그만 미세스 고멜처럼 나가버렸습니다. ‘고멜아, 고멜아’ 하고 데려오면 또 나갑니다. 그래서 마음에 병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낙심하지 말라고 그게 가시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식이 가시이고 어떤 분은 부모가 가시이며, 어떤 분은 질병의 가시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가시가 있습니다. 너무 물질적으로 어려워도 그게 가시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시는 가시일 뿐입니다. 가시 때문에 여러분은 살아납니다. 믿음이 살아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문이 열리고 천국 문이 열립니다. 가시 때문에 은혜를 받습니다. 주일날 와도 가시가 있는 성도여야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힘은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저도 얼마나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주님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나의 능력이십니다. 나의 구원이십니다. 명성교회가 되는 것은 제가 무슨 잘해가지고 이렇게 되겠습니까? 제 능력이 아닙니다. 이것은 백퍼센트 주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주일날 이 3부 예배를 보십시오. 수많은 비디오 실에도 지금 다 찼습니다. 제가 오라고 한다고 오겠습니까? 돈을 준들 이렇게 오겠습니까? 오히려 여러분이 돈을 내고 갑니다. 와서는 헌금 다 하고 갑니다. 어려운데도 와서 주차하고 몇 시간을 와가지고 이걸 어떻게 제가 하겠습니까? ‘이 세상을 내 힘으로 산다.’ 그것같이 어려운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사야 41장 14절에 보면 야곱을 가리켜서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그랬습니다. 지렁이가 제일 약합니다. 지렁이는 공격하는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지렁이는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냄새 맡을 코도 없으며, 들을 수 있는 귀도 없습니다. 다만 피부로 숨 쉬고 맛을 느낄 뿐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너를 해치는 저 바벨론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다 꺾겠다.’ ‘너 해치는 것, 너는 지렁이 같다고 해도 너를 밟을 사람은 없다.’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약한데 대해서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족한데 대해서 ‘아~ 나는 빽이 없다.’ 이런데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걸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은혜 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키 작은 것 때문에 걱정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삭개오도 키가 작지만 예수님은 그 집에만 가셨습니다. 인물이 좀 나쁘다고 고민하고 돈 벌어서 성형 수술해야 되겠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 돈 가지고 소고기 사먹고 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 쪽으로 은혜가 온다는데 이리 쳐다보면서 ‘아버지, 시험 드시지요?’, ‘야야 시험 안 든다. 내가 그것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어떤 분은 자기가 배운 것에 대한 좋은 학력이 없으니까 돈 벌어서 여기에 좀 걸 맞는 걸로 좀 이렇게 화려하게 하려고 하는데 절대로 그러지 마십시오. 못 배운 그쪽으로 은혜가 옵니다. 학력 화려하지 못한 것 그쪽으로 은혜가 옵니다.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 울고 나왔습니다. 울고는 울산고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학력이 되시고 주님이 여러분의 경력이 되시며, 얼굴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며 부요함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23편을 한번 보겠습니다. 늘 보는 말씀이지만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얼마나 좋은 일이 있느냐? 내가 부족해도,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나는 육체의 가시로 인해서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이렇게 부족함이 많은데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은 다 사라집니다. 다른 부족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이 덮어주시니 그 부족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 있어도 하나님이 안계시면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데 무엇으로 이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다 가져도 우리는 부족함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다 없어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실 때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다섯가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나옵니다. 왜 부족함이 없느냐하면,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골프장이 아닙니다. 푸른 초장이라고 해서 골프장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 교회 나와서 예수님 따라가면 언제나 푸른 초장 아니면 쉴만한 물가입니다. 쉼이 있는 곳입니다. 초장은 자원이 풍성한 곳입니다. 걱정과 염려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 세상으로 나가 초장 같은 곳을 찾아가보면 광야로 들어가게 됩니다. 쉴 만한 물가로 찾아가 보면 적막하고 외로우며 허무한 곳으로 나아갑니다. 어제 뉴스에 또 나왔지 않습니까? 훌륭한 연예인이 또 목매어 죽었습니다. 하룻밤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매어 죽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을 그린(green)으로 알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성전에 그린, 신령한 은혜의 그린, 내 영혼의 그린을 찾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 소생시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갈 때 좋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소생시키십니다. 교회에 나오면 소생 안되는 게 없습니다. 건강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오늘 소생하는 줄로 믿습니다. 마음이 소생합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던 분에게 소망을 주시고 미움이 있는 분은 사랑으로 소생이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죄악에 상처받은 마음들 모든 영혼이 소생됩니다. 불행이 행복으로 소생합니다. 전부 살아납니다. 교회에 나오면, 아버지께 나오면, 예수님 따라가면 언제나 소생이 됩니다. 실패가 성공으로 소생 합니다.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예수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면 소생합니다. 좋아집니다. 금년 한 해 소생하는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의의 길로 가야 소생이 됩니다. 죄악의 길로 가면 좋은 것도 나빠집니다. 여러분의 잘 되던 가정이 다 나빠집니다. 그러나 의의 길로 주님을 믿는 믿음의 길로 가면 항상 소생합니다.

    셋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세 번째는 보호하십니다. 지켜주십니다. 인도할 뿐만 아니라 소생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오는 닥치는 수많은 위기와 환난과 시험과 재난에서 주님은 막아주십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세력이 머리털같이 많고 시편에 보면 얼마나 물소떼와 같고 독사와 같고 이리와 같고 사자와 같은 짐승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해치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면 여러분은 보호를 받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보호받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지키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않고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누가 나를 아무리 해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한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나 두렴없네 두렴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금년 일 년, 그리고 길이길이 주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셔서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 넷째,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 인간은 잔이 있습니다. 자기 가슴에 잔이 있습니다. 이상의 잔, 소망의 잔, 행복의 잔, 물질의 잔이 있습니다. 이걸 물질로 채우고 행복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아무도 내 잔을 채워줄 이가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 잔을 빼앗아 갑니다. 자기가 먹어 버립니다. 나도 다 먹기 어려운데 모두 이 잔에 있는 걸 탐내고 빼앗아 가려고 하지 나의 이 빈 잔을 채워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면 항상 삶이 허전하고 공허 합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20세기 가장 공통된 병은 허무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요사이는 우울증 환자가 많은지 제일 많은 게 우울증입니다. 허무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는 다 집을 나갑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허무합니다. 잔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잔을 채워줄 이가 누구입니까? 권력을 향하여 이 세상에 어디를 향하여 손을 들어도 이 잔을 채울 이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잔을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기름을 채우세 내 맘 속에 은혜를 채우세 내 맘 속에 축복을 채우세 내 영혼에 주님의 축복을 채워♬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저같이 부족한 이 보잘 것 없는 빈 잔, 밑바닥에도 없는 저 같은 사람도 넘치게 주셨습니다. ‘나의 잔이 채워졌다.’ 그런 말 안했습니다.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Full로... 폭포를 영어로 Falls라고 합니다. 넘친다는 말입니다. 넘쳐가지고 막 흐릅니다. 폭포같이 막 떨어집니다. 태산같이 채워주십니다. 그것도 어디에 채워주느냐? 원수 앞에 채워줍니다. 나를 비방하는 모든 분들 앞에 채워줍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딸은 친정에 가서도 큰 소리 칩니다. ‘야~ 쟤는 너무 복 받았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동창회 가도 인기가 있습니다. ‘야~ 쟤는 예수 믿어 복 받았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곗군끼리 모여도 ‘아~ 참 복 받았다. 그래서 한턱내라.’ 그럽니다. 잔이 넘칩니다. 그건 안 믿는 사람도 압니다. 그냥 잔이 채워지면야 모르지만 넘쳐나니깐 다 압니다. ‘아~ 저 김집사 복 받았다.’ 예수 믿는 나라 미국은 잔이 넘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하나님이 막 부어주십니다. 영국도 부어주십니다. 세계에 예수 잘 믿는 나라는 하나님이 다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오늘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잔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은 소망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꿈과 소망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늘 채워주시고 늘 인도하시며, 늘 부족함이 없게 돌보아 주시고 늘 우리를 소생케 하시며 예배를 드리면 항상 이 여섯 가지가 같이 주어집니다. 할렐루야!

    오늘 조금 살만하다고 해서 우리 민족이 너무 교만해졌습니다. 에스겔 28장 16절에 보면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28장 17절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렵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좀 아름답다고 뭐 좀 잘났다고 무역이 풍성하므로 경제가 좀 안정이 되었다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면 이건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입니다. 강하므로 버림받습니다. 너 화광석같이 버림받고... 에스겔 28장 4절 5절에 보면 조금 지혜가 있다고 해서 교만해도 안 됩니다.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예레미야 9장 23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우리가 자랑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52편 7절에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호세아 13장 6절 “저희가 먹이운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여러분 조금 배불러 가지고 주일도 잊어버린 성도 없습니까? 십일조도 잊어버리고 다 먹는 성도 없습니까? 교만한 것입니다.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고 자신이 가진 것 좀 잘된다고 나가는 길 좀 잘 나간다고 형통하다고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며, 자기 스스로 잘난 줄 알면 하나님은 아름다움도 빼앗아 가고 부요함도 빼앗아 가며 그 지혜도 다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기를 바랍니다.

    약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성도는 약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약해야 합니다. 한국의 주의 종들, 모든 주의 종들 큰 교회 목사님들도 약해야 합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입니다. 약하면 능력 있고 약하면 주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이런 생각은 심히 교만한 생각입니다. 한 순간도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몸이기에 늘 주님 사랑하고 나아갈 때 이 험한 세상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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