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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잠4:23)

by 【고동엽】 2022. 9. 2.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잠4:23)

“마음먹기에 달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질병의 원인 가운데 무려 75% 이상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학계의 보고가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분노가 생기고, 실패의 감정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작용하여 병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아름답고,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얼굴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노래가 있듯이 얼굴이 예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 예쁘면 좋죠? 그러나 아무리 얼굴이 예쁘다할지라도 마음이 엉망이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마음이 병들면 불행한 것입니다. 집이 아무리 넓을지라도 마음이 좁으면 좁은 것이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어도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운 자는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깨끗하게 보여도 본심이 더럽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더러운 것만 찾아다닙니다.

그러기에 다른 그 어떠한 것보다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별것이 아닌 것에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고, 물질을 투자하고, 정성을 다하는데 그러나 정작 마음이 병들고 잘못되어 그 심령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얼굴에 뭐가 나고 흉이 생기면 즉시 약을 바르거나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고치려고 하지만 마음의 흉은 수술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병들은 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에디슨은 말하기를, "그 사람의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천국을 만들면 어디를 가도 천국이고, 마음으로 지옥을 만들면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지옥같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에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의 중심, 마음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만일 외모만 보신다면 혹시 우리 교회에서 자신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마음을 보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망입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지킬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기쁘게 보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지키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먹은 대로 척척 되어간다면 그보다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마음이 무너지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먹고 성경읽기로 했는데 작심삼일이 되고 맙니다.
마음먹고 기도하기로 했는데 점점 결심이 약해져서 이리 핑계되고 저리 핑계되면서 나 스스로가 기도의 시간을 어기게 됩니다.
마음먹고 십일조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쓸 곳이 많이 생기는지 그래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시겠지?’ 합리화 시키면서 십일조를 까먹습니다.
마음먹고 봉사하려고 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마귀가 주장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이 주장하신다면 우리의 마음을 지킨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는 말하기를, "성령과 악마가 싸우고 있는데, 이 전쟁터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성령과 마귀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갈라디아 5장 16절과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6-17)
그렇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립니다. 또한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아가서 4:12절 말씀에 보면,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는 잠근 동산이 되고, 덮은 우물이 되고 봉한 샘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의 심령은 마치 잠근 동산처럼 잡다한 것이 들오지 못하게 막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은 덮은 우물이 되어서 똥파리인 사단이 들어와서 오염시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님만 들어오셔서 그분과 교제하며 즐거워하는 동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산에 문을 잠그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지나가던 사람도 들어오고, 장사꾼도 들어오고, 불량배도 들어오고, 도적도 들어옵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심령도 잘 잠가 두어서 주님만 들어오셔서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동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쁜 것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의 문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이런 나쁜 것이 들어오면 그것이 내 인격을 주장하고, 내 사고 방식을 주장하고, 나의 모든 삶을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들어오기 전에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직 주의 성령만이 주장하시는 복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아내와 외식을 하기 위해서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밤 12시쯤 됐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으니까 모 병원 영안실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죽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고 원인을 알아보니까, 그녀가 운전을 하면서 만날 장소로 오는데 술 취한 사람의 차가 그만 중앙선을 침범해서 자기 아내의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내는 남편이 대학원과 미국에 유학을 하는 동안...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하였습니다. 오로지 남편의 성공만을 바라보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는데, 이제 겨우 살만하게 되니까 교통사고가 난 것입니다.
죽은 아내를 화장하고 돌아오던 날,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편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밤새도록 거리를 헤매었습니다. 목적지도 없고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마냥 걷습니다. 아침이 밝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정신이 돌아와.... 자기가 어느 강가에 서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 향하려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자기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의 등 뒤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늙으신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로할 길이 없어... 말은 안했지만 밤새도록 아들의 뒤를 따라 다닌 것입니다.
유난히 아내를 사랑했고, 더욱이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 아들이... 아내를 잃고 미친 사람처럼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 아버지는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충격 속에 빠져 있는 이 아들에게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그의 뒤를 따라다닌 것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늙은 아버지처럼 우리가 삶의 고달픔 때문에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욥33:23).

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때로는 탄식하시면서 우리 안에서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아니하고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습니까? 그분이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도우실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마음먹지만 넘어질 때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응원하시는 성령님께 민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출처/ 이덕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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