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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뜨거워야 한다 (누가복음 24:13-32)

by 【고동엽】 2022. 9. 2.

뜨거워야 한다   (누가복음 24:13-32)

사람은 누구나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늘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실패를 경험하고, 환난을 당하고, 실수와 좌절에 빠지고, 사람을 통해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런 일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성령충만한 사람이나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늙거나 젊거나, 높거나 낮거나,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이러한 역경을 이겨 내야 하고, 또 감당해 내야 합니다.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빠졌다면 주님의 도우심으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일찍 찾아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때 그 삶이 빛이 나고, 가치 있는 삶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 같지만 모든 일이  끝나는 시점에, 어두운 그날에 환난 앞에서 인생을 통탄하며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과 실패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이길 수 있다. 이 실패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큰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이 어려움에서 빠져나와 정금같이 쓰임을 받으리라.” 이렇게 믿고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시련과 장애물을 많이 겪은 동물일수록 훨씬 더 건강하고 수명도 길다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쥐를 길러 보면, 잘 먹이고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게 한 쥐는 몸이 약하고 병에도 잘 걸리며 수명도 짧다고 합니다. 쥐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태국의 코끼리들이 농부의 손에 이끌려 중노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구 때리면서 일을 시켰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가 트럭 몇 대의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코끼리들은 밀림에 사는 다른 코끼리들보다 10년은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하루 130~180㎏을 먹고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코끼리들은 병들어서 일찍 죽는다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시달리면서 긴장하고 힘들지만, 훨씬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다고 합니다. 사자나 호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누가와 또 한 제자라고 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지금 거리로 보면 13㎞ 정도 떨어진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은혜 충만한 제자들이었지만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나사로를 살리시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실 때,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실 줄이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실 줄 알았어.” 무덤까지 다 확인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은 근심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주셨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므로 다시 부활하셨다. 결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놀라운 감동을 받았지만 이분이 예수님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고 가시라고 붙잡으며 예수님을 모시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둡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축사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두 제자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오, 주님이시여!” 제자들이 놀라워하며 주님을 불렀지만 주님은 이미 그 자리를 뜨셨습니다.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재빨리 달려갔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다 모였고, 많은 여인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만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나타나시고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들이 모인 곳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 모인 곳에서 오늘의 기독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만 낙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성령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도 엠마오로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선교사님들도, 성가대, 교회학교, 여선교회에 그렇게 열심히 충성하던 분들에게도 엠마오의 길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려가는 그 길에 주님께서 늘 찾아오십니다.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의 문이 닫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왜 좋으신 주님이십니까? 내 마음의 상처 속에, 내 삶의 위기와 환난 가운데에 가까이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수술을 앞둔 분들이 저에게 많이 찾아옵니다. 오늘도 여러 명의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수술을 앞두고 겁내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칼로 배를 째는데 겁이 안 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줍니다. “모든 사람은 수술실 밖에 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수술받는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이 왜 좋습니까? 내가 감옥에 가면 감옥에도 함께 오십니다. 감옥에 같이 갈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도 오지 않는 길에도 주님께서는 오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심령이 뜨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오시면,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심령은 뜨거워집니다.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 성령충만함을 받은 하나님 자녀의 가슴은, 영혼은 뜨거워집니다. 그래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은 쾅쾅쾅 뜁니다. 죽은 사람은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저는 임종을 많이 보았고, 시체도 많이 만져 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서서히 식어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시신이 싸늘해집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자식이든, 부모든, 남편이든, 아내든 생명이 끊어진 피부는 차가운 쇠에 닿는 것과 같이 섬뜩합니다. 정이 뚝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떠나가면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고 이 세상에서 차갑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힘 있게, 행복하게, 넘치는 축복 가운데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심장처럼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뜨거워지면 모든 것이 뜨거워지고, 내 영혼이 차가워지면 우리의 삶이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아담과 이브가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서로 사랑하고, 한없는 행복과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육은 살았으되 그 영혼의 심장이 뛰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신 싸늘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버린 이 영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을 때 그는 숨었습니다. 선악과도 이브 때문에 따먹었다며 책임을 아내에게 덮어씌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생명이 끊어지니 부부간에도 차가워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얼마나 차갑습니까?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감사, 믿음이 다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 부족한 것입니까? 얼음덩어리 같은 이 시대의 문제점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발달했지만 지식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삶을 뜨겁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사랑과 이해와 관용과 긍휼과 자비와 격려와 감사와 희망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지식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긴장시키는지 모릅니다.  
물질 또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차갑게 하는지 모릅니다. 물질은 이해관계입니다. 이기적입니다. 요만한 것 가지고도 싸웁니다. 농촌에서 여름에 물 댈 때가 되면 옆집과 싸움이 벌어집니다. 제가 잘 아는 장로님도 물 대는 것 때문에 삽으로 옆집 사람을 찔러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살벌합니다.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형제도 부모도 자식도 없습니다. 물질주의가 이렇게 차가운 것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이 끊어진 우리 인간이 지식을 좇아가고, 물질을 좇아가고, 과학을 좇아가다 보니 이 사회에 걷잡을 수 없는 냉해현상이 오는 것입니다. 농사지을 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냉해입니다. 1년 농사 잘 지었다가도 한 보름만 일찍 찬바람이 불면 그해 농사지은 것은 끝장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냉랭해졌습니다. 차가워진 이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범죄가 점점 늘어가고, 청소년 탈선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너무 냉랭해졌습니다. 결혼식하기가 바쁘게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냉해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주의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하면 모든 부부간의 냉해, 자녀간의 냉해, 이웃간의 냉해가 치료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려면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야 합니다. 성령의 불만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 교인의 머리는 차가워야 하지만, 가슴은 뜨거워야 합니다. 잘못된 교인은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차갑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헨델은 56세에 병들어서 모든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어느 눈 오는 날 밤, 그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성령으로 뜨거워졌을 때 만든 작품이 그 유명한 헨델의 ‘메시아’입니다. 베토벤도 실의에 빠졌을 때 주님을 영접하여 은혜받고 ‘심포니 9’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심포니 9’과 헨델의 ‘메시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를 차갑게 만듭니다. 어디를 가도 차갑습니다. 엠마오의 길입니다. 교회에 나옴으로 심령이 뜨거워져 그 뜨거워진 심령으로 민주주의를 일으키고, 경제를 일으키고, 교육을 일으키고, 사회를 일으켜야 합니다. 기독교 국가가 잘되는 이유는 가슴을 뜨겁게 하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는 심령의 불을 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사람을 만나면 동족인데도 차갑습니다. 눈빛이 무섭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안에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사회도 교육도 문화도, 전부 불이 꺼진 것입니다. 앞으로 나라를 일으킬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죄의 길을 가던 사람도 예수를 믿으면 그 안에 성령의 불이 붙게 됩니다. 그 불로 인해 죄를 이기고 불의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도 불은 있지만 그 불은 나쁜 불입니다. 정욕의 불, 교만의 불, 음욕의 불, 방탕의 불입니다. 이 불길이 타올라 자기를 태우는 것입니다. 가정을 망치는 것도 잘못된 불 때문입니다. 이 불은 누가 끌 수 있습니까? 이 불을 끌 수 있는 길은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야 합니다. 성령의 불만이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도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조용한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불 꺼진 사람이 불 꺼진 곳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 마음은 시베리아같이 꽁꽁 얼어붙게 됩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가슴이 뜨거운 친구를 사귀기 바랍니다. 결혼을 할 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만나야 가정에 오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교회에 성령의 불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불을 끄는 것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한 시간이면 아주 차가워집니다. 그러나 불을 붙이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립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왜 기도합니까?  왜 예배를 드립니까? 여러분의 심령에 불을 붙이려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불이 붙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환하고 건강해집니다.
인간의 최대 발명품은 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발전해 온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붙음으로 기독교 국가들이 세계 최고의 국가들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John Wesley, 1703~1791)는 영국이 위기에 빠졌을 때 “영혼에 하나님의 불을 붙이라!”고 외쳤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일어난 이 성령의 불길로 영국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위기에 와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이 나라에 붙을 때, 이 민족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여름에 미국에 가면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캠핑을 가기 위해 버스처럼 생긴 큰 패밀리카를 조그만 승용차가 끌고 갑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 세워 놓고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다 오는 것입니다. 버스만한 패밀리카를 어떻게 조그만 승용차가 끌고 갈 수 있습니까? 승용차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승용차의 힘은 어떤 힘입니까?  엔진의 힘입니다. 엔진 하나의 힘으로 큰 패밀리카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영적인 엔진, 성령의 힘으로 건강하게 움직이면 여러분의 패밀리를 잘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요즘은 부모를 죽어도 안 모시려고 합니다. 혼자 살려고 합니다. 자기의 짐도 안 지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부족하지만 오늘까지 많은 짐을 져왔습니다. 지금도 교계의 수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 제가 져야 할 수많은 짐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쁩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께서 주신 힘으로 감당하니 너무 재미있습니다.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남을 돕는 데 소문이 나서, 많은 교회에서 건축하다가 어려워지면 도와 달라는 편지가 옵니다. 또 많은 목사님들이 임종을 앞두고 사모님에게 유언을 합니다. “꼭 김삼환 목사님을 찾아가시오.” 해외유학생들은 몸이 아프거나 돈이 떨어지면 “목사님, 기도하는 중에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라고 편지를 합니다. 그래서인지 옥스퍼드대나 하버드대를 졸업한 박사들이 우리 교회 안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짐들이 전혀 짐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므로, 주님께서 주신 힘으로 감당하므로 피곤치 않은 것입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냉해로 인해 차가운 인격과 마음뿐인 이 어려운 시대에 여러분은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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