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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너는 페트라(반석) (마태복음 16:13-20)

by 【고동엽】 2022. 9. 2.

너는 페트라(반석)   (마태복음 16:13-20)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철학자들이, 우리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인생을 논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입니까? 어제 어떤 신문사에서 기자가 와서 저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사람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생은 무엇입니까?”이런 말을 처음으로 질문을 받으니까, 그래서 저는 “인생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을 두 가지로 봅니다. 한 분야는 인생을 허무하게 보고, 또 한 분야는 인생을 고통과 괴로운 인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평생은 정말 허무한 인생이요, 괴로운 인생입니다. 찬송가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산을 오르는 것에, 광야를 헤매는 것에 인생을 비유합니다.

일본의 샐러리맨 한 사람이 30년 동안 자기의 삶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기록을 했습니다. 30년 동안 10,950일인데, 잠자는 시간이 3,505일이었고, 괴롭고 힘들고 어렵고 불평불만을 하면서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이 1,596일, 담배 피우는 시간이 1,140일, TV를 본 날이 775일, 남의 흉 본 것이 442일, 술집에 다닌 것이 266일, 도박판에서 258일, 밥 먹고, 그리고 여자들은 화장하고 인터넷, 파티, 관혼상제, 다 별 게 없더라는 겁니다. 상당히 성공한 사람도 그의 인생이 별것 없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허무하게 보았습니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생명의 많이 연장 되겠지만 연장되면 할 일이 무엇이냐? 무엇을 할 것이냐?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집에 들어가면 잠시 TV 보고, 그리고 밥 먹고 자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빨리 빨리 준비해 가지고 나오고, 또 시간이 좀 있으면 동물의 왕국 보고, 혹시 K1이나 없나 보고, 그 외에는 별로 볼 것도 없고, 어디에 볼 것이 그렇게 많습니까?  뭐 대단한 일이 있습니까?  별것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천하에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많이 받은 왕이었지만 그도 역시 별 것이 없었다고 그럽니다. 전도서 2장11절에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무도 많이 심고, 양떼와 소떼를 많이 두었고, 은금과 보화를 많이 두고, 온 세계 왕들이 찾아오니까 세계 왕들과 많은 만남도 가졌습니다. 처와 첩들을 많이 두기도 하고, 은사가 많아서 글도 많이 쓰고,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다 헛되더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헛되더라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몽골에 가보니까 몽골에도 석유가 나고, 세계 여섯째 가는 지하자원을 보유한 나라랍니다. 전 세계 강대국들이 얼마나 몰려오는지 세계의 부자들이 기업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몇 백 년을 가난하게 지내다가 신흥 부자들이 엄청납니다. 한순간에 몇 천만 불, 몇 억불 버는 사람이 막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집들이 울란바토르가 건축 붐입니다. 건축하는 어떤 공장과 같습니다. 거기에 있는 분이 그럽니다. “목사님! 이 사람들 집에 초청을 받아서 가면 집에 수영장을 거의 다 만들었습니다.” 아파트 안에다가 수영장을 만들었답니다. 얼마나 크니까 수영장을 만들겠습니까? 집안에 바가 다 있습니다. 세계 진귀한 것 가져다가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차를 굴리고,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수영장을 집에 두면 얼마나 습하고, 또 수영장 막상 해 놓으면 자주하겠습니까? 몽골 같이 추운 나라에 수영장이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더운 나라에서 하는 짓을 공연히, 방안에다 수영장을 하면 좋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중국 사람도 지금 경제가 성장해서 엄청난 신흥 부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솔로몬의 길을 가는 겁니다. 대단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돈 벌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 끼 밥 먹는데 세계 제일 비싼 식사가 중국에서 막 나온답니다. 한 끼에 2,500만 원짜리가 나옵니다. 하룻밤 자는데 5천만 원, 6천만 원 들어가는 호텔이 생깁니다. 6천만 원 주고 자나, 2,500만 원짜리 먹으나 무엇이 다릅니다. 자고 나면 그만인데, 아무리 비싼 2,500만 원짜리도 다 먹고 나면 똥 되는 거지 그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별 것이 있겠습니까? 자기는 그게 속에 금덩어리가 들어간 줄 아는데 사람 속에 들어가면 다 별거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밖에서 돈 벌고 성공하고 모두 힘이 있으면 다 그런 일에 눈 뜨고 대단한 줄 알고 가는데, 얼마 안가서 깨닫는 것은 하나입니다. 허무함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예수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삶의 눈에는 그런 것만 보이고, 그런 길만 보이지만, 가보면 결국 허무함 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나서 질문하는 것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 선생님을 어떤 분은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아!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는 나를 어떻게 믿고 따라 오느냐?” “예.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십니다. 나의 구주이십니다. 당신은 온 인류의 메시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신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신다고 약속해 주신 당신은 바로 메시야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실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야훼의 아들이십니다. 당신만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며 소유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했습니다. “시몬아!  바요나 시몬아! 내가 복이 있도다.” 사람이 지식이 있고, 권력이 있고, 이 세상의 부귀영광을 누려서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딱 하나입니다. 복이 있는 것은 이 하나의 고백을 가지고 그 사람을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는 복이 있다. 이를 내게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너는 이 하나를 알고, 하나를 믿고, 하나를 가지고 있으므로 너는 복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너는 너의 이름을 페트라라고 해라.” 베드로라는 말은 페트라입니다. “베드로다. 너는 반석이다. 오늘부터 너의 이름의 반석이다. 반석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 교회는 어디에 세워져 있습니까? 반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반석은 무엇입니까? 돌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그 사람이 반석이요, 그의 인생이 반석이요, 그의 가정이 반석이요, 그가 가는 모든 것은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석이 모여서 만세반석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고 허무하며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면서, 주님만이 나의 구주가 되는 것을 믿으면서, 우리는 그 순간 내가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만세반석 페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반석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만이 반석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반석이십니다. 그의 아들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그의 반석과 함께 내가 또한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귀합니까? 교회가 왜 능력이 있습니까? 인원이 많아서입니까? 재정이 많아서입니까? 교회에 무슨 대단한 분이 있어서 정치인, 권력가가 있어서 입니까? 교회가 능력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이 믿음 때문에 교회가 능력이 있고, 이 세상에서 오늘날까지 2천년동안 아무리 어마어마한 어두움의 세력, 오늘 본문에 말씀하는 음부의 권세가 있다 할지라도 이 반석을 넘어뜨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이 허무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믿음으로 우리는 허무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슬픈 것도 확실합니다. 괴로운 것도 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괴로운 것도 아니요, 슬픈 것도 아닙니다. 승리자는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도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우리 모두 허무함과 저주 아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이 믿음 하나를 가지므로 우리는 존귀한 자가 되고 영광스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의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만세반석은 없습니다. 누구도 반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도 진흙이요, 나도 모래요, 나도 한줌의 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콘크리트를 만들어 봐야 콘크리트도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 남산에 있는 20층 외국인 아파트 무너질 때 무슨 장치를 해서 무너뜨리니까 10초 만에 다 무너집니다. 폭삭 무너지는 겁니다. 이 세상에 무너지지 아니할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너지지 아니할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무너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서 있는,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아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썬더씽’이라고 하는 인도의 성자가 있습니다. 이분이 히말라야에 가서 많은 수양과 고행하는 분들, 힌두교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힌두교는 처음도 끝도 인생을 고행에서 의미를 찾지 않습니까? 그래서 올라가보니까 어떤 사람은 평생을 거꾸로 나무에 매달아 놓고 다리를 묶어놓고 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밥 먹고, 볼일도 다 거꾸로 봅니다. 어떤 분은 평생을 손을 들고 사는 분이 있는데, 10년 동안 손을 들어서 손이 내려오지 않는 답니다. 어떤 분은 몸에다가 나뭇가지를 뚫는 분도 있고, 저도 직접 봤습니다. 인도의 겐지스 강 유역으로 보면 수많은 사람이 바위 위에 앉아서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그곳에서 페인팅을 해서 밤낮으로, 밤에도 그대로 앉아있고, 낮에도 그대로 앉아있고, 성철스님도 똑같이 그랬지 않습니까? 고행하는 겁니다. 인생을 어디에서 찾느냐? 그런 곳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무덤에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또 보니 어떤 분은 굴속에 들어가 굴을 막아버리고 이만한 구멍으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그곳에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썬더씽이 물었습니다. 굴속에 있는 분 보고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살면서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그곳에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동굴 속에 있는 분이 말하기를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마음은 이 동굴보다도 훨씬 더 어둡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이 세상에서, 고행 속에서 의미를 찾든지 어떤 분은 성공 속에서, 물질 속에서, 인기 속에서, 쾌락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분도 너무 많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거기에 서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주제는, 똑같은 결론은 그리스도 밖에서는 다 허무함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 다 무너집니다. 성철스님도 평생을 그랬지만 마지막 유언이 무엇입니까? “나는 지옥으로 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죄 안 지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렇게 고행을 했지만 결국 가는 길은 지옥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페트라는 없습니다. 무너지지 아니하는 반석은 없습니다. 반석과 같은 안전함, 반석과 같은 평안함, 반석과 같은 견고함, 반석과 같은 영원한 만세반석은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는 반석을 찾습니다. 우리가 숨을 곳, 피할 곳, 우리가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10.26때도 보면 총소리가 딱 들리니까 그 앞에 앉아 그렇게 높은 분도 어디로 숨었느냐? 화장실 밑에 가서 숨었습니다.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환란이 왔을 때, 내 앞에 한순간에 닥치는 이 어려움 앞에 우리는 반석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견고한 만세반석, 페트라가 되십니다. 그를 믿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도 다 그와 함께 반석이 되어서 주님의 보호 아래 사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시편 18편 2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리로다.” 시편 18편 29절 “내가 주를 의뢰하며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내 앞에 가로 막힌 담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새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담을 많이 뛰어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담을 어떻게 넘습니까? 담을 딱 붙잡고 점프를 하면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담에 서있지 않고, 담을 짚고 오히려 넘으려고 하면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짚으면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환란, 시험도 넘을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 가정불화가 일어나서 싸우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여!” 하고 담을 뛰어넘는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많은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가 담에 깔려 죽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담에 깔려 죽는 것은 바로 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믿음 없기 때문에, 페트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페트라만 있으면 넘을 수 있습니다. 인생을 오늘도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넘을 수 있습니다. 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담을 뛰어넘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8편 31절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페트라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페트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페트라 같은 권력이 있습니까? 나라가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어느 나라에도 지상에 페트라는 없습니다. 무너지지 아니하는 집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편 16편 1절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교회는 피해오는 것입니다. 도피성입니다. 반석에 모두 들어오는 겁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찬송가 79장) 주님이 우리의 페트라이십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 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대고 환란풍파 없도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예수 나를 숨겨주소서♬(찬송가 439장) 찬송가 어디를 불러 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바위가 되시고, 피할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성경은, 찬송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굳건한 반석이십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송가 539장)

    중국의 만리장성은 높이가 9미터입니다. 넓이가 5미터입니다. 길이가 4천 킬로가 넘습니다. 얼마나 견고합니까? 평지에 9미터를 쌓았으면 말도 안합니다. 어디를 거치느냐? 쌓는 곳이 다 산악을 갑니다. 설악산 같은 곳에도 9미터를 쌓았습니다. 설악산 정상 같은 곳에도 9미터로 계속 나아갑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넓이가 5미터입니다. 자동차가 두 대, 마차가 두 대 지나가도록 그 성을 쌓았으니 그 성이 얼마나 견고합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북쪽으로 밀려오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투를 막으려고 만 리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쌓은 그 민족이 오래 평안을 누렸느냐? 아닙니다. 금방 무너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이 잘못 쌓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실공사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만 리를 지키니 그 만 리를 지키는 군인 가운데는 어디에 구멍이 있습니다. 한 곳만 매수를 하니까 그쪽으로 군인들이 다 들어와 무너뜨렸습니다.  

    여러분! 견고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리 철통 같이 지켜도 적이 들어올 수 있는, 오늘 본문에 말하는 음부의 권세가 못 들어갈 데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망의 권세에 온갖 원수마귀는 능치 못함이 없는데, 아무리 막은들 한 손에 쥐고 한 손에 가시 잡고, 그렇게 막아도 소용이 없다라는 겁니다.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은 가시 덩굴로 막고, 찾아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고 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우탁의 탄로가) 막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지켜주시면, 주님이 나의 반석이 되시면 침투한 마귀도 성경에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간다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많은 혼란과 무질서 속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큰 재벌도 그렇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큰 재벌이 한순간에 자살할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영원히 안 무너질 줄 알았지, 그러나 교인은 재벌이 아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항상 평안과 감사와 승리의 삶이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권력을 안 가져도, 면서기 하나를 못해도 여러분은 안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야훼께서 여러분의 반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이어령 교수에 대해서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세례를 받는다고, 대단히 한국 교회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 지성 1호였습니다. 최고의 지성이인이었지만, 기독교를 철학으로 수양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지, 예수님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분에게 어려움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1992년에 갑상선 암에 걸렸고, 96년과 99년에 다시 재발했습니다. 가정에 큰 환란이 밀어닥쳤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이분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딸도 지식이 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입니다. 딸 있는데 아버지가 갔는데 이 딸이 눈이 어두워서 부엌에서 설거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릇이 어디에 있는지 눈까지 실명을 당하는 마지막 위기 앞에서 이 딸이 하나님 앞에 나간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 고백을 했습니다. 이 딸이 낳는다면 나는 주님을 믿겠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정말 네가 주안에서 평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동행하자. 지금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 달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예수의 이름으로, 만세반석 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눈도 뜨고, 암도 고침 받고, 이것은 우리 교회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분은 세상 지식으로는, 미국의 천하의 유명한 병원이 다 못 고친다고 하는 병이 교회에 나와서 고침을 받으니 이 얼마니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만세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자기의 진흙 같은 인생을 포기해야 합니다. 지난날에 제 아무리 잘났다고 할지라도 진흙 위에서 서 있는 것이니까, 쓰레기 위에서 자랑했던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다 불태우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출발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한국의 지성 1호가 아닌 세계의 지성 1호일지라도 우리 인간은 조그마한 나뭇잎 하나 흔들려도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나의 반석이 될 때는 세상의 어떤 것도 이 반석 위에 있는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는 없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세계를 통치하던 바벨론이 붙잡아온 죄수 노예 다니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사자가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이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주님 믿는 믿음 위에만 바로 서면 이 세상에서 분명히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이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너무 교인들도 현실과 타협하고, 뭐 그렇게 오래 살려고, 잘 사는데 목표를 두고, 건강에 목표를 두고, 세상의 엔조이에 목표를 두므로 여러분의 반석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반석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여러분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MBC의 PD수첩에 나온 겁니다. 뭐냐 하면 빨간 일기장입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두가 다 빨간 일기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트가 빨갛습니다. 빨간 것은 무엇이냐 하면 피, 증오심을 말합니다. 여기에다가 자기 미워하는 사람에게 화살을 쏘고, 거기에다가 글을 쓰는 겁니다. 가장 저주하는 글을 쓰는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선생님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선생님 죽으라는 말을 9번 적어 놓은 겁니다. “가다가 교통사고 나가지고 피 흘리고 죽어라. 뒤져라. 죽어라.” 애들이 그것을 전부 쓰게 만든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만세반석이 없는, 예수가 없는 우리의 마음은 아이로부터 노인까지, 목사든 장로든 간에, 교인이든 누구든 간에 이 안에 빨간 일기장이 누구에게나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빨간 일기장이 우리 모두를 빨갛게 물들여 가고 있습니다. 증오심만 가지고 선동하고, 높거나, 낮거나, 별 수 없어 다 똑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빨간 일기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아서 성령의 일기장이 되시고, 기도의 일기장이 되시고, 믿음의 일기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증오, 죄악, 저주, 온갖 음란과 불의에서 해방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능력은 반석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넘어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 있는 교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시험 들고, 왜 그렇게 낙심이 많습니까? 왜 그렇게 더위도 잘 타고, 추위도 잘 탑니까? 왜 그렇게 섭섭한 일이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반석 위에 서지 않고, 오늘 현대인과 함께 교인들도 연약해 졌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온 모든 성도들,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는 여러분, 페트라의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나왔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 경기장에서 전 세계 1억 명이 6년 동안 인터넷으로 투표를 해서 7대 불가사의가 나왔습니다. 1번이 만리장성입니다. 대단한 겁니다. 두 번째는 멕시코의 치첸아차의 마야유적지. 세 번째 페루의 마추픽추. 네 번째 브라질의 예수 상. 그다음에 로마의 콜로세움,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옛날에 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라든지 이런 것은 이번 7대 불가사의에는 빠졌습니다. 여러분! 대단한 일입니다. 만리장성을 쌓고 콜로세움, 페트라, 피라미드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일은 아닙니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나라가 다 망했고, 이런 불가사의가 있는 나라치고 가난하지 않은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사는데 쩔쩔 매고, 거지가 득실득실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짜 영원한 불가사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민족이 가난한 민족 봤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 나라가 망한 나라를 봤습니까? 여러분의 생애가 그리스도를 잘 믿는 믿음의 만리장성 쌓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페트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신앙의 타지마할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여러분의 반석으로 삼으며 그를 높이고 그를 사랑할 때 여러분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를 사랑하면 여러분은 사랑의 바다에 헤엄치게 되어 있고, 그가 중심에 서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를 의지하면 그는 우리의 견고한 바위가 되시며, 그를 경외하면 한없는 부유함이 주어지고, 그에게 감사하면 세상은 천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를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CF가 되면, 우리나라도 CF가 돈 법니다. 영화배우나 연예인들이 탤런트 하는 분들이 꼭 방송에서 돈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렇게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선전하면, 회사에서 받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선전해 봐야 몇 억 주겠죠. 예수님을 선전해 보십시오. 이번에 미국에 골프 경기에 최경주씨가 나와 1등을 하면서 세계 수백 명의 기자 앞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그 신문 보고 “정말 CF 진짜 잘한다.” 저렇게 말해야지, “나는 원래 연습벌레입니다.” 엉뚱하게 말하는 사람, “나는 어제 돼지 꿈 꿨습니다.” 꿈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마십시오. 이것은 만세반석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도 만세반석 위에 부모님하고 같이 서야 부모님도 안 망하고 나도 안 망하지, 예수 떠나서 부부간에 서봐야 부부간도 모래위의 집입니다. 부자간, 형제간에도 모래위의 집입니다. 친구? 누구를 높인다라는 겁니까? 우리는 예수님만 높이고, 바울이 빌립보서 1장에 있는 대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진짜 페트라입니다. 이 페트라의 신앙으로 살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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