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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심은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7-10)

by 【고동엽】 2022. 9. 1.

심은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7-10)


어떤 마을에 부자 신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도할 때마다 빈민과 걸인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살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철야기도회에서는 찬송을 부르며 눈물로 하나님께 가난한 사람을 위로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니 그의 아들이 금고의 열쇠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 평소에 없이 갑자기 열쇠를 달라는 말에 그 부자는 으아하게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 으아한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름 아니라 아버지의 그 간절한 기도가 성취되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해서요.”
아들의 당돌한 그 말에 아버지는 근엄한 얼굴로 꾸짖듯이 말하였습니다. “기도를 성취하여 주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그러자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금고를 열어놓고 빈민과 걸인을 구제하면서 그런 기도를 해야지요.”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구원의 확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는 도저히 기독교인의 행위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말만 기독교인이어서 그들에게서는 기독교인이면 마땅히 가져야만 될 윤리의식이나 책임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훈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9월 2일 화곡동으로 성전을 옮겨 지역사회를 올바로 섬기려는 교회로 거듭나려고 준비하고 있는 이 때,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7절)

우리나라의 이단 사상 가운데 일명 ‘구원파’라는 것이 있는데 이 교회는 기성교회들에 침투하기 위해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이 종파는 오래전에 ‘오대양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자살한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모든 죄를 용서 받았으니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보혈의 능력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해결해 놓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며 예수 믿는 사람이 다시 죄를 짓고 ‘사해 주심을 믿나니,’ ‘죄를 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회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또다시 회개하는 것은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그들 외에 다른 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도 본래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침투한 악의 세력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죄는 우리 영혼을 파괴시키고 영혼을 병들게 만듭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구원받은 자는 회개와 필요없이 구원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을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진실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다시금 회복시켜 놓고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줍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가난한 피아니스트가 살았습니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한 뒤, 청중을 많이 모으기 위하여 당시 유명한 음악가였던 리스트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가 있기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리스트가 마을에 왔을 때에 그는 그 앞으로 달려가서 사정을 합니다. “저는 원래 고아 출신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이렇게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리스트는 그에게 “당신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자, 내 앞에서 한번 연주해보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는 벌벌 떨면서 리스트 앞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리스트는 연주를 들으면서 몇 군데를 바로 잡아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밝게 웃고 위로의 말을 합니다. “잠시라도 내가 당신을 가르쳤으니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마지막 곡은 제자가 아닌 스승 리스트가 직접 연주를 하겠다고 소개하십시오.” 결국 회개함으로 더 큰 은혜를 얻은 그 피아니스트는 뒷날에 훌륭한 연주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7절) 본문은 하나님을 없수히 여기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지만 우리가 구원받았으니 어떤 죄도 우리가 회개만 하면 된다는 정통 교회의 주장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으니 성령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성령 충만하여야 합니다.

2.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 교회의 왕성한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며칠을 보내다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공항에서 말하기를 “한국 교회는 주일 신앙이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불신앙이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생활이 어떠하든지 상관없고 주일에 와서 회개를 통해 용서받는 교회의 모습을 비판한 말인 것 같습니다.
위대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기독교 복음을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라고 했습니다. 죄 짓고 주일날 와서 회개만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값싼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피 공로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값은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만의 신자가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지방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투고 했습니다. “나는 지난번 연휴에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비집고 앉을 틈조차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까스로 빈자리를 하나 차지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끝마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드린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날 똑같은 신문, 똑같은 자리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나도 어제 아무개가 말했던 그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내 옆에 어떤 노인이 서 계신 것을 보고는 그 즉시 자리를 양보하고는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서서 여행을 했다.” 이것은 그 지방의 어떤 무신론자가 전 날에 글을 실었던 그 기독교인을 비웃기 위해서 쓴 기사였다. 결국 이 기독교인은 무신론자보다도 더 못한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고만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값비싼 은혜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우리의 입으로, 말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자연이치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고 밤나무에서는 밤이 열립니다. 자연계는 그 원칙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는 개를 낳고 소는 소를 낳습니다. 신비하리만큼 정확합니다. 그 원리가 무너지면 우주의 근본 질서가 무너집니다. 자연계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따라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생활도 그 이치에 따라 움직입니다. 과거의 행위는 현재와 관련이 있고 현재의 행위는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1년 전에 한 행동을 설사 잊었다하더라도 그 행위는 현재의 결과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행동도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나비의 자그마한 날개 짓이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영적인 세계 역시 이러한 법칙을 따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의 소욕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은 결국 파멸할 것입니다. 반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선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씨앗을 뿌린 자는 융성하고 복된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3.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9절)

본문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선은 마땅히 해야만 될 의무적인 착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의무적인 행동을 넘어서서 주님께, 교회에, 이웃에게 행한 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많은 선행을 했는데 금방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생활이 더 어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내가 한 것처럼 생각하고 결과가 나빠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로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운행하시고 질서를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를 좇아 선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 여부를 판가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꼭 선한 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는 마땅히 물질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외경의 토비야(Tobias)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토비야가 항상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거리에서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주고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공해서 많을 재산을 벌어 그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토비야의 한 가지 걱정은 아버지가 눈이 멀어져서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많은 재산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어서 좋았으나 아버지의 눈이 멀어서 걱정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눈이 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자네 아버지의 눈에 물고기 쓸개를 발라 드리게”해서 그대로 해서 아버지가 재산 뿐 아니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토비야는 너무 좋아서 그 친구를 찾아내서 “자네 말대로 해서 우리 아버지 눈이 뜨셨으니 자네에게 남은 내 재산을 다 주려고 하네”하였습니다. 그 때 그 친구가 “아니네. 나는 사람이 아니라네. 나는 일곱 천사중의 하나인 라파엘일세”하였습니다. “어떻게 천사가 나와 함께 있었단 말인가!”하면서 감격하기에 천사가 말하기를 “자네의 예배와 구제와 선행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자네에게 보냈네”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행한 것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미국의 대 사업가였던 워너 메이커(John Wanamaker)는 주일날 교회에서 봉사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대사업가로서 많은 일이 있을 텐데 주일 날 이렇게 한가하게 교회에서 하루 내내 보내십니까?” “아,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나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비교하면 다른 일들은 다 하찮은 일에 불과합니다. 지금부터 45년 전 나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확실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나는 교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님은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시다. 그것이 우리가 잘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진실하게,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값비싼 은혜의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선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씨앗을 뿌려 성령의 참된 열매를 거둘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깨달음이 화곡동 시대를 준비하는 여러분을 감동시키는 이번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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