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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옥한흠 목사님의 저서 로마서 강해 3권 <구원받은 자는 이렇게 산다> 235쪽에 있는 글입니다.
47. 왜 전도는 은혜인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로마서 15장 14-18절
본문 바로 앞절인 15장 13절에서 로마서의 본론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15장 14절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는 사도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론이 끝났다고 해서 중요한 말씀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본론이든 결론이든 중요한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귀중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나누고자 했던 두 가지 은혜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왜 편지를 써서 보내기를 원했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인들에게는 세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4절).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서로 도우면서 위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로마 교인들은 이와 같이 나무랄 데 없는 아름다운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려고 했을까요?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15절).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고압적인 자세로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가 로마서를 쓰고 싶어 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은혜를 나눔으로써 로마교인들에게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그는 1장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크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 예수 알기 전에는 은혜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바울입니다. 그러나 예수 만나고 나서 가슴 가득히 느끼고, 체험하고, 알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함께 고무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간절한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은혜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값없이 엄청난 선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첫째로 자기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 둘째로 자기가 아무 자격이 없는데도 너무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발견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원받은 은혜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를 통해서 여러 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롬 5:2).
바울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고 그 은혜를 지금 로마서를 통해서 간증하고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울이 발견한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자기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에게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도라는 직분을 주신 은혜입니다. 곧 사도로 부름받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면 '이 은혜는' 하고 설명이 나옵니다. 이 은혜는 구원받은 은혜도 되지만 동시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 앞에 특별히 부름받은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말하고 싶어 했고, 나누고 싶어 했고, 매일매일 새롭게 느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바울과 우리를 비교해 보면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도 있습니다. 바울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사도였습니다. 그는 평생 이방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될 특별한 직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과 같은 사도가 아닙니다. 우리와 그는 이 점에서 분명히 다릅니다.
반면에 같은 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바울에게 복음을 맡겨 전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겨서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복음 전할 사명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음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같은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혹시 '나는 복음을 전해야 될 특별한 사명은 받지 않았어' 하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말씀을 잘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뿌리째 뽑아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복음 전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반드시 인정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전도가 은혜 되는 세 가지 이유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받음
그러면 전도가 왜 은혜가 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시키셨기 때문에 전도가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인데 하나님이 시키셨기 때문에 전도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이제부터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16절).
여기에서 "일꾼"이라는 말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머슴이라든지 몇 푼 집어 주고 하루 종일 일을 시키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의 'minister'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minister'는 목사나 성직자를 뜻합니다. 세상 정부의 장관을 일컫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원래 성직을 맡은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일꾼이 바로 그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은 결단코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요,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룩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권능을 얻어서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십시오. 우리는 흔히 예배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지구 역사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에게는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구원하는 선교요 전도입니다.예수 믿지 아니하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살고 있는 이상, 전도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합동으로 이 일을 열심히 다루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16절).
누구의 일꾼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또 누구의 복음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끝 부분에 보면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분이 나옵니다. 그는 성령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에 관한 한 성부, 성자, 성령이 동참해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전도 사역이 성삼위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일이라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중요한 일일수록 그 일을 맡은 자의 영광은 큰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광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귀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하나님이 나의 무엇을 보시고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을 맡겨 주셨는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이 감격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매를 맞을 때나 감옥에 같혀 있을 때나 이 감격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웅크리고 있을 때도 이 감격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시는 일을 나 같은 놈에게 어떻게 맡기십니까? 굶어도 좋습니다. 매맞아도 좋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하겠나이다. 생명 바쳐 하겠나이다. 생명 바쳐 하겠나이다." 바울의 감격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죄인 중의 괴수인 자기에게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고 하신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은혜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가서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나 풍성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
바울은 자기에게 복음 전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음 전하도록 하신 것은 너무나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은혜를 조금이라도 헛되게 할까 두려워서 다른 사도보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했다고 했습니다. 공짜로 은혜를 받았으니 얼마나 황송합니까?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이 은혜를 받았으니 몸둘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불러 주셨다는 그 은혜에 깊이 감격한 사람은 누구나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옛날 군주시대에는 임금의 자리가 대단했습니다. 임금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될 만큼 그 위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임금이 어느 신하에게 어명을 내리면 그 명령을 받은 신하는 "하해와 같은 은혜 황공하옵나이다" 하면서 임금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온 몸을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임금이 자기를 알아 준다는 것에 대해서 감격하여 "분골쇄신, 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상감마마의 망극하신 은혜는 잊지 않고 보답하겠나이다" 하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왕이 자기를 알아 주는 것을 가지고도 이렇게 감격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복음 전하는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자기 자녀 삼으실 때도 얼마나 생각하시고 가려서 하셨는지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만세 전부터 무궁한 사랑으로 나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다음에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에서 같은 사람은 미워하고 야곱 같은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아무나 택하셨나요? 아무나 불러서 자기 자녀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 원하는 사람 중에 내가 낀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이요 은혜입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맡길 때에는 아무나 불러서 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할 만한 무슨 자격이 있나요? 무슨 선한 것이 있나요? 무슨 똑똑한 것이 있나요? 날마다 쓰러지고 넘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알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황송한 은혜입니까?
카셀이라는 사람이 이런 찬송시를 썼습니다. 찬송가 270장입니다.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 전하는 일은 하늘의 천사도 부러워하는 일이라고 그는 노래했습니다. 그 좋은 일을, 그 아름다운 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천사가 흠모하는 일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만큼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한국 교회사를 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 가운데 전도에 미친 위대한 영웅들이 많습니다. 백여 년밖에 안 된 짧은 선교 역사지만 전도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목숨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위대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은혜가 귀한 줄을 알았기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일을 맡겨 주신 은혜가 귀한 줄을 알았기 때문에 생명 걸고 전하였던 것입니다.
'전도' 하면 우리는 최권능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많이 따라다닙니다. 사실 그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못해서 몇 번 낙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열등생에 끼일 만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불러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연로한 나이인데도 복음 전하는 일에는 뛰어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이적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한 예를 들고자 합니다.
어느 날 평안북도 산골에 있는 화전민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화전민은 힘들게 마련한 작은 농토를 가지고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을 전도해야겠다고 찾아간 것입니다.
전도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궁리를 하다가 꾀를 내었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들릴까 말까 하는 위치에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진한 화전민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밭을 매던 호미를 집어던지고 황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금새 5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거든요. 그는 속으로 때는 이때다 하고 큰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예수 안 믿으면 사람 죽소. 예수 믿어야 하오" 하고 외쳤습니다.
지켜보던 화전민들이 얼마나 황당했습니까? 일하다가 놀라서 뛰어왔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이 영감쟁이가 돌았군" 하며 그를 두들겨 패려고 했습니다. 그는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치면서 가슴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외쳤습니다. 화전민들은 놀랐습니다. 옛날에 암행어사가 마패를 차고 출두하면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순진한 화전민들이라 너무 놀라서 전부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진짜 암행어사가 온 줄 알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마패가 아니고 어느 노회에서 전도를 잘한다고 준 기념패였습니다. 그것을 품에 넣고 다니다가 때마침 끄집어내어 흔든 것입니다. 화전민들이 엎드려 있는 곳에 그가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요.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리 아시요."
이처럼 장난기 어린 전도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 화전민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암행어사가 누구입니까? 바로 전도자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일을 맡기신 복음의 일꾼입니다. 당신에게 이와 같은 긍지가 있습니까? 구원받은 감격이 있으면 보냄받은 감격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의 감격이 있으면 복음 전하라고 나에게 일을 맡기신 데 대한 은혜의 감격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음
둘째로, 전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므로 은혜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16절).
제사라는 것은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신을 섬기며 그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입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일은 제사장이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제사 드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왜 복음 전하는 것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로 보았습니까? 여기에는 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원수끼리는 화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조자와 피조물, 곧 영원히 거룩하신 분과 영원히 저주받은 죄인이 어떻게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끼리라면 문제가 안 됩니다.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얼마든지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묶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만 믿으십시오.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하고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키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 믿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께 제일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안 믿는 남편을 아내가 열심히 전도해서 예수 믿게 했다면 아내는 남편을 제물 삼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는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제사장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제사장은 아무나 못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출 28:1, 2).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맡게 된다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높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직분이 제사장이라는 직분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의 제사장들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제사장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웃시야라는 왕은 대단히 걸출한 왕이었습니다만 그가 나중에 정치를 잘해서 나라가 굉장히 부강해지고 평안해지니까 그만 교만해져서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제단에 제물을 바치다가 문둥병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 않았습니다. 왕이든지, 부자든지, 많이 배운 사람이든지, 무식한 사람이든지 간에 제 마음대로 제사장 자리를 넘보는 자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함부로 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복음 전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세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무나 고귀한 직분을 주셨기에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세워 주셨기에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시간만 나면 전도하려는 사람은 이 은혜를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는 백여 년밖에 안 되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포기해버리고 저 산간오지로, 적도로, 아프리카 등지로 달려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번 서울에서 선교한국 '92 대회를 할 때도 3,000명이나 되는 대학생들이 모였고 선교사를 지원하는 사람이 1,000명 넘게 나왔습니다. 복음 전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마음속에는 감격이 있습니다. 생의 의미가 넘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제사장이 되게 하셨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당신에게도 이 감격이 있습니까?
며칠 전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유병국 선교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감비아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서 한 번 찾아 보세요. 그곳은 적도입니다.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곳입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유 선교사의 편지를 보니, 언제나 더운 날씨에 모기 떼는 항상 우글거리고 물을 얻으려면 7km를 가야 겨우 한 통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덥고 짜증나는 곳이라면 물이라도 풍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살기 힘들고 가난한 나라에서 유 선교사는 주의 복음을 위해서 가족들과 함께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편지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언제나 같은 날씨, 같은 환경, 같은 음식, 같은 사람 속에 묻혀 사는 생활을 하다 보니 도대체 가을이 오는지, 여름이 가는지, 8월인지, 9월인지 느끼지도 못하는 가운데 시간이 자꾸만 지나고 있습니다. 모처럼 저녁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가 약간 기울어 가는 밝은 달을 보며 고향 생각을 하다 추석이 지난 달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중단된 상태에 있지만 이곳에다 이 땅에서의 저희의 영구적인 거처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가끔씩 서글프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가기 전까지 저희가 돌아갈 곳이 한국에는 없고 이 머나먼 타향 감비아가 바로 저희와 아이들의 고향이 된다고 생각해서겠지요. 그래도 저희는 기쁨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열정을 가지고 우리 젊은이들이 한 생을 바칩니까? 감비아는 회교권 국가이기 때문에 선교하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는 선교 활동을 펼치려고 오지 마을에 들어가서 집을 지었는데 그 곁에 도서관이라는 명목으로 조그마한 집을 하나 더 지었습니다. 거기에 청년들이 모여들면 은밀하게 말씀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는 나 같은 사람을 불러서 그리스도의 일꾼 삼아 주셨다는 감격 때문에 전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 신문에 박우신, 김효숙 두 집사님 부부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박 집사님은 조그마한 인쇄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꿈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이 쉰이 되면 세상 일은 좀 제쳐놓고 세계 선교를 위해 한번 뛰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소박한 꿈입니다. 집사님은 저에게 약올리는 말을 한마디 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옥 목사님도 안 부러워요. 전도와 선교에 미친 김세환 장로님과 이성준 집사님이 제일 부러워요. 저도 속히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세환 장로님과 이성준 집사님은 전도에 미쳐 있는 분들입니다. 박 집사님이 그 두 분을 가장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열정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열정을 주시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음
끝으로, 또 하나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왜 전도가 은혜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성령의 능력을 제일 많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17, 18절).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는 기가 막힌 특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입니다. 사복음서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 기사는 전부 다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눈먼 자가 눈을 떴고, 귀신들린 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성령의 능력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 전하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또 17절을 보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
여기서 믿는 자는 복음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리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리에서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부모도 고치지 못한 자식, 선생도 바르게 하지 못한 자식, 친구들도 바로 인도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아예 포기해버린 젊은이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새롭게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 기적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바로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에게는 믿고 전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다 해 주신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자랑해 보라고 하면 대답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엊그제 제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했어요. 그 아주머니는 이웃에서 소문난 싸움꾼이에요. 그런데 제가 복음 전하는 것을 듣고 예수 믿기로 했어요. 이것이 웬 은혜입니까? 아주머니는 제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교회 갈 때 자기를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우리 하나님,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전도하는 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자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세상 앞에 세우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은혜입니까? 이것이 전도하는 사람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성령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소리높여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왜 전도가 은혜입니까? 예수의 일꾼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일이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이것이 전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믿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 산 불구경하듯이 그들에게 무관심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불러서 영광스러운 일을 맡겨 주셨다는 데 대해서 너무나 무지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응답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가장 하기를 원하고, 받기를 원하고, 이루기를 원하는 일에 당신 자신이 먼저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하십시오. 오늘 저녁이라도 주님이 불러 가시면 영원히 놓쳐버릴 영혼들이 당신의 가정에 있습니다. 당신의 이웃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자랑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움을 받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출처] 47. 왜 전도는 은혜인가?|작성자 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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