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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모두 한 동역자 (고린도전서 3:9)

by 【고동엽】 2022. 9. 1.

모두 한 동역자   (고린도전서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는 동역자입니다. 모두가 동역자입니다.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라고 말씀합니다. 동역자는 함께 수고하고,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고후6:1). 동역은 예수님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동역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놀랍게도 사람들과도 동역하셨습니다. 평범한 어부에 불과한 제자들과 동역하셨습니다. 초대교회도 동역했습니다. 120문도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 와서는 동역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는 다시금 동역의 가치를 발견하여 만인제사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동역하게 되었습니다. 직분을 넘어선 동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초대교회나 예수님 하신 것과 같은 동역이 부족합니다. 연령과 성별을 넘어선 동역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동역자”입니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청년도 모두 한 동역자입니다. 삶과 사명과 고통과 즐거움의 동역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만인제사장입니다.

모두 한 동역자임을 깨달아, 동역의 기쁨과 유익을 누리며 삽시다.

첫째, 성령님과 동역자

우리는 성령님의 동역자입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성령님의 동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은 우리를 세워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능력과 기적의 현장으로 초대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은 성령님이 그를 동역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행 13:2). 바울은 성령의 동역자가 되어서 성령이 쓰시는 최일선에서 선교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복음의 영광을 맛보고,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며, 선교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사역합시다. 바울을 부르신 성령님은 우리도 부르십니다(렘 1:5). 성경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부르셨기에 예배자로 섬기게 되었고, 봉사자로 헌신하게 되었고, 성전건축의 동역자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동역자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위치, 어떤 일을 한다 하더라도 긍지와 사명을 가지고 전진해 나아갑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둘째, 여,남도 동역자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도 동역자입니다.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높고 낮음은 없습니다. 여남, 남녀는 서로에게 돕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에게만 통치권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성에게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공동의 지도력을 주셨습니다(창 1:28). 아브라함과 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만 열국의 아비가 아닙니다. 사라를 향해서도 열국의 어미라고 부르셨습니다. 두 사람이 동역할 때, 천한 만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은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고 말씀합니다. 서로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성령을 남종과 여종 모두에게 부어주십니다(행 2:18). 초대교회의 위대한 역사는 여성과 남성이 동역한 결과입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29명의 사역자 명단이 나옵니다. 그 중 10명이 여성입니다. 가장 돋보인 사람이 브리스가입니다(롬 16:3). 남편보다 아내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만큼 주도적이고 열심히 사역했다는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각자의 장점이 있습니다.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잘 살립시다. 서로의 장점을 갖고 동역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셋째, 어린이도 동역자

어린이도 사역의 동역자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무슨 사역을 하겠냐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를 사역의 대상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린이를 사역의 주인공으로 쓰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무엘을 봅시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섬겼습니다(삼상 2:18).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시고 맡기셨습니다(삼상 3:10,11). 예수님도 어린아이를 동역자로 대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나올 만큼 중요합니다. 이 기적은 한 아이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천국에 대해 설명하시면서도 어린이를 동역자로 쓰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도 사역자입니다. 어린이도 성령의 동역자입니다(행 2:17). 어린이를 사역의 주인공으로 인정합시다.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세워줍시다. 그럴 때,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우리 교회에서 분명히 배출됩니다.

넷째, 청소년도 동역자

하나님은 청소년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공부할 때라고 예외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공부할 때이기에 더 강하게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일을 먼저 공부하기 원하십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는 공부만 있고 사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동역하기 보다는 공부 소리만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워야 합니다. 요셉은 요즘 식으로 보면, 왕따였습니다. 성적인 유혹과 물질적인 유혹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년이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집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삽니다. 어떻게 보면, 삶을 원망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청소년과 함께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신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경적인 가치를 실천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인으로 구별되게 살았습니다. 결국, 두 청소년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기 하면, 꿈꾸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때가 다가옵니다. 청소년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청소년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세워줍시다. 요셉 같은 청소년, 다니엘 같은 청소년이 자라납니다.

다섯째, 청년 대학생도 동역자

신앙은 2인 3각 경기와 같습니다. 나 혼자 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발을 묶고 뛰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다음세대와 발을 묶고 뛰어야 합니다. 청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른들은 청년, 대학생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청년, 대학생들은 어른들과 함께 뛰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동역입니다. 모세는 청년 여호수아와 동역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동역했습니다. 베드로는 마가와 동역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청년들과 동역했습니다. 이와 같은 동역을 통해 믿음이 전수되고, 사역의 지경이 넓어졌습니다. 청년들이 더욱 큰 사역자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모두 바울과 디모데처럼 동역합시다. 바울은 디모데를 세워주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맡김으로 사역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를 통해 지혜와 훈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에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바울과 함께했습니다(빌 2:22). 교회 안에 이와 같은 동역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성장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를 동역자로 인정합시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여성, 남성, 모두가 동역자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땀 흘리고, 신뢰함으로 사역을 서로 맡깁시다. 아이 취급 하면 영원히 아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인정하면 어린이라도 능력 있게 사역합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바라봅시다. 사무엘과 같은 어린 사역자가 나올 것입니다.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청소년 사역자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디모데 같은 청년 사역자가 배출될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부부 사역자가 세워질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성령님이 쓰시는 동역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서로를 동역자로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최성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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