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시편 103:1-11)
시편 103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때 사용되던 찬양시였다고 여겨집니다. 이 찬양시의 첫 절에 보면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했으며, 둘째 절에서도 "여호와를 송축하라"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저자는 이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한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아" 한 것은 심장, 위장, 간, 쓸개, 콩팥 등 내 몸의 모든 장기를 가리킵니다. 즉 온 몸으로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것입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릴 줄 모르게 된 심령을 흔들어 깨우기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배은망덕한 삶에서 깨어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곰곰이 되돌아보며 그 모든 은혜에 합당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것입니다.
3절 이하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 즉 하나님의 은혜의 내용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3-5절을 봅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는 그가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실 뿐 아니라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고, 온갖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시켜주시며, 언제나 젊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동체적 차원으로 옮겨갑니다. 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7절에서는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다"고 합니다. 12절에서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합니다. 나 개인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뿐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건 공동체적이건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13절에서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아버지가 자녀에 대하여 갖는 사랑과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 같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면 더더욱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절 이하에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며 신실한 것인지를 말합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합니다. 11절에서는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합니다. 17절에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공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라"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한결같음과 신실함과 영원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것들의 덧없음과 대비시킵니다. 15-17절을 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공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라."
20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릴 의무를 천하의 모든 사람과 천군천사들에게까지 확대시킵니다. 22절에서는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며, 20-21절에서는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합니다. 그 이유는 19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하늘 아래 만유에 대한 주권을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그에게 합당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만유를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로 인하여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주장하신다면 비록 당장 우리의 생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옳고 선하며 유익한 일일 수밖에 없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불만하고 불평할 일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로서는 범사에 감사할 일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할 일이 없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우리의 심령을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한 2절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은혜로 충만하신 우리의 하나님을 다시 발견하며 그에게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어떤 이에게 크고 영원할 것인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이들의 도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했습니다. 13절에서도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했습니다. 17절에서도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공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라" 했습니다. 18절에서는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했습니다. 또한 20-2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한 것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이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행해야 함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지내기 쉬운 일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사람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 돌리기를 잊고 지내는 우리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힘들다고, 사업이 부진하다고, 정치가 짜증난다고, 경제가 어렵다고 감사함이 없고 찬송이 사라진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뭐라 해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는 살아계시며 모든 것이 그의 다스리심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주권과 사랑과 능력 안에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두며 기대와 인내로 살아가야 합니다. 불만과 불평, 실망과 좌절, 자포포기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헤아릴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 사함에 대한 확신과 감격과 감사는 모든 사물을 다시 보게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할 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이 얼마나 크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너무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가리키시면서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하셨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가리키시면서는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6:28)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하찮게 널려져있는 들풀을 가리키시면서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6:30)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주변의 모든 일들이 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들임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숨 쉬고 살 수 있는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먹을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태풍의 피해도 거의 없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의 태풍 대신 대통령 탄핵과 수도이전 헌법소원이라는 정치사에 유례없는 태풍이 불어 닥쳤지만 그런대로 지나가게 되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엄청난 위기감이 이 땅을 뒤흔들고 있지만 아직은 이 나라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 안에서는 교회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가면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세계교회에 비해 한국교회는 아직 왕성한 교회이며 큰일을 하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부족한 것도 많고 맘에 안 드는 사람도 많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 받지 않고 깨끗하고 투명하며 민주적인 교회로 알려진 것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 교회예산이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신교육관건물이 소리 없이 착착 올라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전사고가 없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최근에 알게 된 너무나 불쌍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 3학년 때 골수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골수암은 일단 치료했지만 폐암으로 전이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쪽 폐를 수술했습니다. 다른 한쪽도 수술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항암치료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고 병원에서도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해서 집에 있습니다. 완치되고 살 수 있는 아무런 희망이 없이 그저 영양제만 섭취하며 하루하루 지냅니다. 가난하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도 고칠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돕고 싶은데 해 줄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유일한 위로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같은 고등학교 아이 하나가 토요일마다 집에 와서 같이 놀아주고 같이 자주고 가는 것입니다. 1년 이상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감사할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수능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결과를 놓고 또 희비가 엇갈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잘 못 쳤어도 시험 치러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 집 둘째 아이도 이번에 수능시험을 쳤습니다. 저도 그날은 틈틈틈이 그 애와 우리 교회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저는 우리 아이가 너무 긴장하고 불안해서 시험 치러 들어가기도 전에 쓰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시험 다 끝나고 기절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울고불고 난리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아프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걸어 다닐 수만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공부 잘 못해도 주말마다 친구 위해 찾아가 함께 놀아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잊고 지내며 무디어지기 쉬운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 찬송하는 마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마음을 항상 예민하게 지켜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마음뿐 아니라,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열심으로 그의 말씀을 듣고 진실하게 그 뜻대로 행하며 살려는 다짐이 늘 살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한 시편 103편의 기자의 말이 우리가 날마다 우리 자신을 향하여 반복하는 신앙의 채찍소리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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