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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그 뒤를 좇으라 (여호수아 3:1-6 )

by 【고동엽】 2022. 8. 31.

 그 뒤를 좇으라    (여호수아 3:1-6 )


김기선의 "즐거워라 택시 인생"이라는 수필집을 보았습니다. 그는 IMF 관리체제 아래서 좋은 직장에서 강제퇴직을 당하고 직장을 찾다가,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택시운전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택시회사에 가보니, 자신처럼 좋은 직장을 다녔던 사람들이나, 그런대로 괜찮은 사업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형편이 어려워 나온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선배 기사들에게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돌렸습니다. "이 신입생이 선배님들한테 커피 한 잔씩 대접할 테니 많은 지도 바랍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신고식을 치룬 김기선씨는 배정받은 택시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비록 폐차 직전의 낡은 소나타 택시였지만, "이제 이것이 내 사무실이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택시를 몰고 얼마 가지 않아서 한 사람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첫 손님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서 가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미터기도 꺾지 않고 한참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면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내린 후로는 한참이 지나도 손님이 들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잡으려는 듯 서 있는 사람은 많이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손을 들어 차를 세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초조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터기를 보고 또 깜짝 놀랐습니다. 아까 손님이 내리고 나서도 미터기를 꺾은 채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 캄캄한 길에 빈차 표시등도 켜놓지 않았으니 누가 택시를 세우겠습니까?
그렇게 실수 투성이로 첫날을 보내고 나니, 새벽에 택시를 몰고 나섰을 때 솟아올랐던 의욕은 이제 바닥까지 떨어져버렸습니다. 공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아내가 챙겨준 빵을 꺼내 먹는데, 자기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목이 멜텐데 이거라도 마셔가며 쉬세요"하고 커피 한 잔을 내밀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공원을 청소하던 환경 미화원 아주머니가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었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를 받아든 김기선씨는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울적한 기분은 싹 가시고 어깨에 기운이 솟는 걸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맛이 최곱니다."
정말 그렇게 맛있는 커피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비록 자판기 커피였지만 지금껏 맛본 그 어느 호텔 커피숍의 커피보다도 달고 그윽했습니다. 그는 다시 택시에 올라 힘차게 시동을 걸었습니다. 미터기와 빈차 표시등을 확인하고 안전띠를 단단히 맸습니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출발 준비 끝!" 하고는 인생 후반전의 첫날을 다시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우리 주변에는 김기선씨처럼 하루 아침에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에도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도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때로는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기선씨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탓하며 절망 속에 주저앉지 않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다시 일어났습니다. 비록 첫날부터 실수를 연발하여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환경미화원이 건넨 커피 한 잔으로 다시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왜 모르고 계시겠습니까? 다만 하나님께서는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길 바라며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처럼 우리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다시 힘차게 출발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 잔에도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위로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또한 요단강 앞에서 낙심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풍성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를 이어받은 여호수아는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과중한 책임을 위임받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싯딤'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일단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 앞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본래 요단강은 그렇게 큰 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 앞에 다다른 그 시기는 모맥을 거두는 시기로써, 헤르몬산에 쌓인 눈이 녹아 내려와 홍수시의 한강처럼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일단 싯딤을 떠나 요단강 앞에 다다른 여호수아는 거기서 3일을 머물렀습니다.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수 3:1) 그 3일 동안 여호수아는 자기 나름대로 배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보통 우리는 위기가 왔을 때 우왕좌왕하면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만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때를 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그렇게 구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두 배로 내려 주시기 위해서 오래 기다리게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번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시면 되는데, 구약시대 4000년 동안이나 오래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입니다.
요단강 앞에서 기다리며 기도하는 여호수아에게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은 너무나도 큰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수 3:7)
여호수아는 모세의 종이었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신뢰받는 지도자로 인정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싯딤'에 머무르지 않고 요단으로 나아갈 때,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들어 써 주실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수 3:3)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은 하나님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순서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앞에 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앞서 가면 안됩니다. 우리의 감정이 앞서가고,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앞서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앞서가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야 합니다.
이는 마치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들과 같습니다. 양은 앞에 가는 목자만 좇아가면 먹을 것이 풍부한 풀밭에도 갈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시냇가에도 갈 수 있습니다. 목자만 따라가면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만 따라가면 부족함이 없는 인생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따라가면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밟아 보지 못한 그 황무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는 분이십니다.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고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만들어서 그 백성을 건너게 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의심하기 일쑤입니다. 그 분의 뒤를 따라보지도 않고 불신앙적인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그 분만 따르면 우리의 인생길은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살게 되는데 언제 그 분을 외면하니 인생길이 언제나 광야같고 풍랑이 일렁이는 요단강 같습니다. 만사가 안됩니다.
우리는 성전건축이라는 주님의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를 향해 성전 건축의 길을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속기도와 재산의 십일조 운동을 통해 그 길을 열심히 뒤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어 보이고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일단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넘으로써 약속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가 성전 건축이라는 요단강을 건너게 될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의 마지막까지 인도하십니다.

드디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르는 대로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들 보다 먼저 요단강으로 들어갔습니다(수 3:14). 그런데 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요단강이 마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닥까지 말라버린 요단강을 유유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 가운데 굳게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 3:17).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거기에 서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 보다 앞서서 가시면서 우리의 인생길을 마른 땅으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요단강 한 가운데 서셔서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 인생 여정이 다할 때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일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위기, 건강의 위기, 가정해체의 위기를 만나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때에도 우리는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얼마 전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반포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창립예배를 드린 지 30여년 만에 한신교회를 한국교회의 주목 받는 교회로 성장시킨 이중표 목사님은 시대의 참 목자로 사신 분입니다. 그는 이미 30대에 암 수술을 했고, 그후로도 4번이나 수술을 하셨지만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인생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몰핀주사로 엄청난 고통과 싸우던 마지막 시기에도 평생을 자신과 동행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나면서도 "오 주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하고는 주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이 마지막까지 삶으로 고백하신 것처럼,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십니다. 지금 뿐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 떠날 때도 함께 하십니다. 아니 저 세상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넘치는 사랑을 주신 주님께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막았던 요단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장애물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그 강을 건널 수 없을 것 같이 보입니다. 성전 건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싯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요단강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거세게 흐르는 강물에 발을 디뎠던 것처럼, 담대하게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강물이 마르고 그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믿음의 길에서 끝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 가운데 굳게 서 계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의지하고 모두 함께 힘차게 요단강을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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