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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개혁되어야 할 교회 (삿8:28-35)

by 【고동엽】 2022. 8. 31.

언제나 개혁되어야 할 교회  (삿8:28-35)


   여 사사 드보라의 활약과 인도 하에 가나안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의 20년간의 극심한 학대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은 40년간의 평화를 누린 끝에 또 다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을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 칠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고 궁핍함이 극심해지자 하나님께 또 다시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새 사사로 기드온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기드온은 영웅적인 활약으로 이스라엘의 노략자들을 다 물리칠 뿐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종하며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였고 그가 사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본문 28절).  그런데 오늘 본문 끝부분에 보면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은 또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우상신들을 섬기며 음행을 일삼고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33-34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고 스스로 불러들인 고난 때문에 신음하다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평화를 얻은 후에는 또 다시 하나님을 배신하기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죄적 본성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토록 수없이 배신을 거듭한 이스라엘이지만 또 용서하시고, 구원과 평화를 베풀어주셔도 오래 못 가서 또 우상신에게로 돌아설 이스라엘임을 다 아시면서도 살려달라고 부르짖으면 또 구원과 평화를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거듭된 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과 인내와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거듭된 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과 인내와 용서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에 대해 느긋한 마음을 갖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늘 죄인이고 항상 죄 지을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우상을 지니고 살기 쉽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며 성령께서 주장하시고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개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도 2000년의 역사 속에서 부패하고 타락했다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물들을 통해 개혁되고 회복되며, 다시 변질되고 퇴보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각성과 갱신과 부흥의 역사를 이루고는 또다시 부패와 쇠락의 길을 가기를 반복해왔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 배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끝없는 개혁과 갱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사사들의 신앙과 위업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리도 속히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와 타락의 길을 가곤 했는지를 살핌으로써 우리의 신앙적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기드온의 역사를 전하는 사사기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드온은 삼만이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미디안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셨습니다(삿7:1-3).  기드온은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이만이천 명이 집으로 돌아갔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삿7: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에게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면 거기서 같이 싸우러 나갈 사람과 같이 싸우러 나가지 않을 사람을 구별해서 일러주겠다고 하셨습니다(삿7:4).  기드온이 사람들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을 따로 세우라 하셨습니다(삿7:5).  그러자 삼백 명이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물을 핥아 먹었고 그 외에는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삿7:6).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습니다(삿7:7).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아 먹는 행동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행동의 상징적 의미에 대하여 이런 저런 해석들이 있지만 별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은 수의 사람을 택하셨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삿7:12에서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적의 병력과 싸워야 하는데 그나마 싸우겠다고 나선 이스라엘의 삼만이천 명을 단 삼백 명으로 줄이시고 그들을 데리고 싸우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드온은 아무런 항변도 질문도 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기드온에게는 단 삼백 명밖에 남겨주지 않으신 것은 그 전쟁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 이기실 전쟁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7장의 2, 4, 7, 9절에서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라는 말이 집중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사실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일일이 지시하셨고 기드온과 그의 군사 삼백 명은 그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한 것뿐이며 그나마 싸움다운 싸움은 해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었다가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고는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외친 것뿐이었습니다(7:16-20).  기드온과 그의 삼백 명은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고만 있었을 뿐입니다(7:21).  7:21-22에 보면 기드온의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적진의 온 군사들이 아우성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하였고 하나님께서 그 온 진영에서 적군들로 하여금 서로 칼로 치게 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 전쟁이었고 하나님께서 거두신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려지고 이스라엘은 그저 겸손하게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할 승리였습니다.  그것을 아는 기드온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8:22) 하였지만 그는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고 답하며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8:23).  여기까지의 기드온은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훌륭함은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한 것과 백성의 칭송에 도취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의 왕이 되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바람직하지 못한 점은 사실은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따름으로써 거둔 그의 첫 승리 이전부터 이미 엿보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는 밤중에 적군을 기습하기에 앞서 그의 군사 삼백 명에게 작전지시를 하며 말하기를 자기를 따라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외칠 때에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치라 했습니다(7:16-18).  오직 "하나님을 위하라"고 외치게 하지 않고 거기에 "기드온을 위하라"는 말을 나란히 덧붙여 외치게 한 것입니다.  그의 삼백 군사 또한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술 때에 외치기를 "여호와의 칼이다"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7:20)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전투에서 이긴 후 흔히 하나님을 향해 부른 찬양시나 기도가 기드온의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없다는 사실도 어쩌면 이와 연관이 있을지 모릅니다.

   놀라운 승리를 맛본 기드온은 그 전쟁을 아주 끝장낼 생각으로 패퇴하는 적들을 거세게 밀어붙였습니다.  기드온은 사자들을 보내서 새 군사들을 동원하여 적들의 퇴로를 봉쇄하며 적국의 방백들과 왕들을 사로잡아 죽이고 목을 베게 했습니다(7:23-25, 8:21).  기드온은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게 했으며(8:4), 피곤한 군사들에게 양식을 제공하지 않는 마을의 사람들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위협했고(8:5-9), 실제로 그 위협대로 가차 없이 보복했습니다(8:15-21).  그런데 이 모든 후속전투의 상황을 전하는 사사기의 기록에서는 첫 야간기습의 전투를 위한 준비를 전하는 부분에서 빈번하게 나오던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 없이 즉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행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간적 목적에 이끌려 행동하기 시작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고 그의 아들과 손자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라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그 대신 백성에게 재물을 요구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에 있는 24절을 봅니다: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기드온의 이 요구에 따라 백성들은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대답하며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들과 각종 장신구와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을 내놓았습니다(8:25-26).  기드온이 그렇게 걷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다고 합니다(8:27).  세마포로 만들면 되는 에봇을 금으로 만든 것은 기드온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간적인 존재 즉 사실상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여긴 속셈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금으로 만든 에봇을 자기 고향 집에다 모셔 놓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기드온 자신이 우상이 된 것이며 그래서 훗날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데에 크게 일조했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그의 아들 중에 왕권을 노리는 자가 등장하여 70명의 형제를 한 사람 빼고 일시에 다 죽이는 무서운 골육상쟁을 일으키게 하는 올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은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합니다.  기드온이 사실상 왕 같은 영화를 누리고 살았으며 대단히 육적으로 탐닉하는 삶을 살았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겜에서 얻은 첩은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기드온은 이방여자를 취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방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첩으로 맞아들인 것을 보면 그 여자를 대단히 총애했을 것이며 그래서 그 여자에게서 난 아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자처럼 행세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아비멜렉은 훗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섰으며 돈을 주고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의 이복형제 70명 중 용케 숨었던 막내만 빼고는 한 자리에서 다 죽여 없애게 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한 것입니다(9:1-6).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이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사실은 자기의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기드온의 속생각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왕이 되기를 거절했지만 기드온은 사실상 왕이기를 원했음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이러한 모습이 이스라엘이 쉽게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배신과 우상숭배에로 나아간 사실과 연관성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기드온의 과오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돌려질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기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왕같이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부귀영화의 탐욕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는 요인들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의 자성이 요구됩니다.  제왕적 담임목사라든가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의 부자간 세습이라든가 하는 것 때문에 교회가 시험에 들고 내분이 일어나며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일은 아마도 한국에서만 있는 현상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그 어느 교회보다도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었음을 깨달아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느 교회보다도 더 심하게 부패하였음을 인식하고 통회해야 할 것입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이 범한 과오는 곧 우리 개개인과 교회 안에 항존하는 가능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개인과 교회는 모두 언제나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우리 자신을 복속시켜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장로교회는 한 차례의 개혁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개혁하는 교회"의 전통 위에 서있음을 잊지 맙시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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