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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느헤미야 4장 15-23절)

by 【고동엽】 2022. 8. 31.

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느헤미야 4장 15-23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고난이 찾아옵니다. 기도 응답이 늦어지고, “믿음대로 된다”는 말에 회의가 생기고, 힘든 현실 때문에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왜 믿는 사람에게 그런 힘든 일이 생길까요? 대개 고난은 훈련을 통해 더 성숙한 신앙과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의 40년 기간을 거쳤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서울에서 목포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40일밖에 걸리지 않는데 왜 40년이 걸렸을까요? 자세히 보면 사랑의 훈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몇 백 년 동안 노예로 지냈기 때문에 노예근성이 있었습니다. 그 노예근성을 빼지 않고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 종교에 동화되든지,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다 죽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을 얻을 준비를 시키기 위해 광야의 훈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는 것보다 이스라엘 안에서 애굽 근성을 빼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일에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의 체험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고난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런 때에도 더욱 하나님을 붙들고 예배와 기도에 힘쓸 때 성숙하게 되고, 고난도 곧 끝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다가오는 역경과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취와 성숙과 성공을 향한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고난은 필요한 것이고, 고난으로부터 얻는 유익도 많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해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성공도 없고 성숙도 없습니다.

또한 고난은 복음 전파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 대박해가 일어나자 복음은 각지로 더욱 맹렬하게 퍼졌습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 때에는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더 퍼졌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공산당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며 수십 년 동안 교회를 탄압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회가 공산당을 정복했습니다. 가정 내에서도 핍박하는 사람이 나중에는 예수를 더 잘 믿고 더 큰 일을 하는 것을 봅니다.

며칠 전에 아프카니스탄의 이영동 선교사님이 교회에 왔습니다. 1년 만에 보니까 눈 주위에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잘생긴 얼굴이 조폭처럼 변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30바늘을 꿰맸다는 것입니다. 사모님은 아래이빨이 다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복음 전파가 더 크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처럼 역경과 장애를 잘 극복하면 그 역경과 장애가 나중에는 더 큰 축복의 산실이 됩니다.

< 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길 >

어떻게 역경과 장애를 극복할까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할 때, 당시 대적들은 수많은 위협과 계략을 통해 재건 공사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역경과 장애를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역경과 장애를 극복하는 몇 가지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1. 단호하게 맞서십시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당시 대적들은 무력 위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흔들려 했는데 느헤미야가 확고한 리더십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맞서자 그들의 얄팍한 꾀는 무산되었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기와 정신력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강하게 맞서면 강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역경과 장애가 있어도 강하게 맞서면 얼마든지 그 역경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작품 인생을 만들려면 끈기 있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며칠 전에 아이들이 저의 생일파티를 해주었습니다. 그날 아침 식사 때에 한나가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아맞혀 보세요. 첫 글자는 ‘생’자예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그냥 말했습니다. “생수! 생명!” 그때 한나가 촐랑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힌트를 더 드릴게요. 네 글자인데, ‘생O 파티’예요.” 저는 짐작을 했습니다. “얘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정답을 말해버리면 김이 빠지니까 모른 척 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저는 최대한 놀라고 기뻐하기로 아내와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니까 파티를 준비한다고 솜 같은 것을 방바닥에 수없이 깔아놓고, 천장에 수많은 풍선을 매달아놓았습니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너무 감격이 되었고 특히 “아이들이 저 많은 풍선을 불려고 아주 고생했겠구나!”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풍선을 보니까 고양이 모양의 풍선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 풍선이 집에 3개가 달려 있습니다. 원래는 고양이 모양의 풍선이 아니라 아빠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산 하트 모양의 풍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부는 힘이 없고, 풍선이 터질까봐 겁이 나서 끝까지 불지 않으니까 풍선 모양이 고양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목표와 비전이 있어도 가다가 도중에 중단하면 고양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비전이고, 그 비전이 공상이 아닌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임을 확신하면 그 비전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나가야 합니다. 역경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두려운 일이 있어도 겁내지 말고 나가야 작품 인생이 될 것입니다.

2. 방심하지 마십시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이제 위급한 상황은 지났고 대적의 기가 꺾였습니다.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방심하지 않고 백성의 절반은 성벽 재건 사역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장을 시켜 대적의 침입에 대비했고, 씨족사회의 지도자인 민장은 그 뒤에서 모든 상황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7-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그들은 한 손으로는 일하고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고 있으면서 나팔소리를 들으면 즉시 전시체제로 들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도 역경과 장애를 이기려면 한손으로는 일하고 한손으로는 칼을 잡아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기도하며 겸손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대적이 아무리 강해도 방심하지 않고 땀과 기도로 준비하면 얼마든지 대적을 극복하고 힘 있는 자보다 잘 살 수 있습니다.

꼭 힘이 있어야 잘살고 번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세계를 보면 강한 것보다 약한 것이 더 번성합니다. 공룡이나 맘모스 같은 강한 동물들은 다 멸종되었고 호랑이나 사자나 독수리 같은 동물들도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성질이 더럽고, 남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강하다고 자만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진딧물, 개미, 곤충 등은 엄청나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약한 줄 알고 부지런히 살길을 찾아 노력하고 대비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강한 나라가 영원히 강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나라를 약소국으로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한 합쳐서 인구 7000만의 대국이고,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입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약소국이면 다른 조그만 나라는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왜소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스위스는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나라인데도 얼마나 잘 삽니까? 우리도 지하자원이 없다고 하지만 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단결하고 외적에 대해서 철저히 대비하니까 강한 나라들 틈에서도 잘 살고 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방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땀을 흘리고 기도하면 어떤 역경이나 장애나 사단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우리의 비전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3. 담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당시 백성들은 성벽을 쌓기 위해 널리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이 공격하면 신속히 모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나팔 부는 사람을 자기 곁에 세워두고 나팔 소리가 나면 자기에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대적에 비해 군사력이 훨씬 뒤진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라고 독려했습니다.

그처럼 열심히 준비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영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환경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역경과 장애를 만나면 어느새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좋은 뜻을 포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렵다고 선교를 포기하면 생활의 어려움이 해결됩니까? 대개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워도 믿음으로 선교할 때 하나님께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살면서 언제나 어려움은 찾아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때로는 생각지 않았던 고통이 다가오고, 예기치 못한 질병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5장 36절 말씀을 보면 죽은 딸을 두고 낙심한 야이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우리도 재정 문제나 자녀 문제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포기해버리면 하나님의 체면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고통스런 일이 있어도 고통스런 환경만 보지 말고 그 환경의 배후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적은 일어날 수 있고, 역전승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잘 다니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더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아직도 자기 고집과 체면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면 체면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체면을 살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체면을 버릴수록 하나님의 체면은 올라가게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우리의 문제는 거뜬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고, 믿는 우리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잃어버리는 것도 있지만 남아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 남은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 된다! 이제는 포기하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된다! 주님을 믿고 다시 해보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우리의 달란트를 그냥 묻어두지 말아야 합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기고,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시간은 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은 사단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기도를 막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우리는 그 사단의 전략을 알고 최소한 기도에는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그처럼 기도해야 저주와 운명과 낙심과 절망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먼저 기도생활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기도 소리부터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새벽 기도 식구들이 늘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기도의 부흥에서 시작됩니다. 인생의 부흥도 기도의 부흥에서 시작됩니다.

초대 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은과 금은 있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과거보다 교회는 커지고, 교인들은 많아지고, 재력 있고 유명 인사들이 교회를 찾고, 핍박도 없지만 영적인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살고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과 영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흉내 내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흉내 내는 신앙을 겁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믿음의 코드가 맞아야 하고, 예수님의 권능에 접속되어야 하고, 성령 충만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관이 완전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의 삶으로 흘러들어오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역경과 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못할 것이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4. 열심히 땀을 흘리십시오.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그들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땀은 무엇보다 소중한 신경안정제입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면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고민, 그리고 불면증도 사라지고, 더 나아가 미움과 증오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그때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의 비전을 이룰 때까지는 집에 들어가지 말고 밤에는 공사 현장을 지키고 낮에는 일을 하자고 헌신을 독려했습니다.

비전이 이루려면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하지 않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꾀를 부리면 잠깐 좋은 것 같아도 결국은 망합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큰소리를 내고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자기 관리를 잘하고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당시 백성들은 옷을 벗지 않고 잠시도 일을 놓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비전에 집중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이런 열정과 집중력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 성적과 말 잘하는 것을 주로 보았지만 요즘은 다양하게 면접시험을 봅니다. 어떤 기업은 인사를 잘하는가를 봅니다. 독불장군보다는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기업은 사우나에 데리고 가서 열탕에 들어서게 합니다. 그때 “앗! 뜨거!”하고 탕에서 나오는 사람은 탈락입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는데 그때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기업은 노래방에 가서 면접을 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그러면 떨어집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 항상 불평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이런 사람도 떨어집니다.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철새처럼 떠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미아리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이 사람도 떨어집니다. 우유부단한 사람과 일하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런 사람도 떨어집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런 노래를 부르면 합격시킵니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목회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 말한 대로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봅니다. 노래도 많이 부르면 그 부른 노래대로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으로 말하고 희망의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간상은 열정이라고 합니다. 단정한 옷차림과 얼굴을 하지 않으면 일단 탈락입니다. 자기를 단장하는 것은 부지런함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게으르게 지내는 것은 무덤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이 있어야 죽은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 열정을 가지고 힘써 헌신하십시오 >

신앙생활에서도 축복받는 사람은 대개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도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며칠 기도하고 포기하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열심히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어떤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은 ‘열정적인 기도’라고 합니다. 열정적인 기도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그처럼 열정이 중요하지만 열정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받으려는 열정이 강해서 화도 잘 내고 큰소리도 잘 냅니다. 그러면 참 곤란하고 피곤한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드리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이라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자기를 드려 끝내주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책임감입니다.

며칠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야수와 미녀’라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외모 지상주의를 타파하는 영화라는 광고를 보고, 아이들이 앞으로 남자를 선택할 때 외모를 보고 선택하지 않고 내면을 보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같이 갔습니다.

영화 시간이 남아서 KFC에서 식사를 하면서 제가 아내에게 평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장애인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장애가 있어도 괜찮은데, 다만 아이들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남편감으로 골랐으면 좋겠다.”

그때 한나가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아빠! 영국의 스티븐 호킹은 장애인이지만 훌륭한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은 괜찮지요?”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괜찮지.”

장애인이면 어떻습니까? 사실 책임감이 없는 것이 더 큰 장애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맡은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부담을 지우지 말고 내가 부담을 지겠다고 해야 합니다. 식당에 갔을 때도 형편이 된다면 먼저 내는 태도를 끊임없이 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받는 것도 기쁘고 감사하게 잘 받아야 합니다. 받을 때는 기쁘게 받고, 드릴 때는 기쁘게 먼저 드릴 줄 아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 아프가니스탄의 이영동 선교사님이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예배 후, 교제 시간에 아내가 선교헌금을 하겠다고 슬쩍 저에게 따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내에게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하여튼 드리는 믿음은 나보다 훨씬 많네. 간신히 통장이 플러스가 될 만 하면 이렇게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리니 남편이 등골이 휘겠네. 죽을 때까지 집이 없어도 괜찮으냐?” 겉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의 선교편지가 왔습니다. 요새 신학생을 훈련시키는데 한 사람당 매월 100달러가 소요되는데 교육비가 많이 모자란다는 편지였습니다. 편지가 이렇게 끝나 있었습니다. “목사님! 후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후원이 없어도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을 보냅니다.”

제가 여러 방면으로 선교사님들의 필요를 알려서 저희교회와 요삼일육선교회와 한국복음주의 기독교 선교연맹 및 개인적으로 아는 여러 교회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을 돕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필리핀의 김일로 선교사님을 위해서는 개인 후원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만 생각하면 김일로 선교사님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항상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에 누군가 반응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소유가 적어도 그것의 일부를 이웃에게 나누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평화가 주어지고, 그런 사람과 그 자녀에게는 결코 걸식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남의 아픔과 필요에 항상 귀를 막고 지낸다면 우리의 기도는 허무한 기도가 되고, 우리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기복주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사랑과 나눔이 있는 곳에 계십니다. 성령 충만도 드릴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모든 행복과 기쁨과 보람도 드릴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사랑의 손길을 펼 줄 알아야 합니다. 불행한 부부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결혼을 할 때도 받을 것을 생각하고 조건을 보고 결혼하니까 불평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나중에는 더 불행하게 됩니다. 반면에 행복한 부부는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행복의 원리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주려는 삶에 행복이 있습니다. 성공의 원리도 너무 간단합니다. 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능력과 지위가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주는 삶을 열심히 실천한 사람은 역경과 장애가 있어도 평소에 배양한 신앙의 능력을 가지고 아주 가볍게 역경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주어진 비전과 사명에 매진하고, 무엇보다 열심히 주는 사랑을 실천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받고 칭찬받고, 결국 가진 비전을 아름답게 이루시는 복된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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