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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넘치는 후원자들/로마서 16장 1-7절

by 【고동엽】 2022. 8. 30.

사랑이 넘치는 후원자들// 20010909

2001-12-07 23:42:02 read : 181

 

주일 낮예배// 로마서 161-7

 

< 좋은 후원자를 만나는 축복 >

 

밀레는 돈 때문에 누드화를 그려 팔았는데 그 일 때문에 항상 고민을 하다가

단단히 각오하고 누드화 그리기를 포기했습니다. 생활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그의 친구 루소가 그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밀레! 아는 친구가 그림을 사 달라고 3백 프랑을 주었네. 저 그림을 주게."

뜻밖의 일로 인해 밀레는 그해 겨울철을 비교적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밀레는 루소의 집에서 우연히 3백 프랑에 판 자기 그림을 보게 됩니다.

밀레는 나중에 크게 성공한 후, 그때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조용한 후원>은 한 사람의 성공의 문을 여는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좋은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살면서 어떤 분은 판단하기를 좋아하지만, 어떤 분은 후원하기를 좋아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두 종류의 전혀 다른 형태의 교인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은 다른 교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훌륭한 교인입니다.

반면에 어떤 교인은 다른 교인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성도는 근심거리가 되기보다 남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낙심될 때 모세의 팔을 바쳐주던 아론과 훌과 같은 기도 후원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론과 훌처럼 양쪽 옆에서 기도하는 팔을 받쳐주기는커녕

기도하는 팔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오히려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힘을 빼는 판단자>가 아니라 <힘을 주는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진실한 사람입니까? 무엇보다 조용히 후원하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하면 최선을 다해 돕는 분이 있습니다. 복된 태도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남을 밟고 희망을 좇습니다. 그것은 희망을 쫓는 것입니다.

타인을 조용히 후원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 사랑의 후원자 뵈뵈 >

 

오늘 본문이 나오는 로마서 16장을 보면 바울의 진실한 후원자 명단이 나옵니다.

유명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교사역에 보석과도 같은 귀한 이름들입니다.

위대한 사람을 보면 뒤에는 대개 이런 진실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꼭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후원자 중에서 몇 사람만 살펴보고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누가 제일 먼저 나옵니까?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 뵈뵈입니다.

얼마나 훌륭하면 바울의 아름다운 기억창고에서 그녀가 제일 처음 나오겠습니까?

그것을 보면 뵈뵈가 얼마나 사도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겐그레아 교회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지도자의 추천은 성공의 제일 요소입니다. "뵈뵈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바울의 이 한마디로 뵈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영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원자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그를 축복의 자리로 이끌어주십니다.

 

어느 대학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착순으로 좋은 방들을 배정하는데

가장 먼저 온 어떤 학생이 가장 시끄러운 계단 아랫방을 달라고 합니다.

당시 사감으로 있던 교수님이 감동되어 이 학생의 이름을 수첩에 기록했습니다.

그 뒤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이 학생은 그 대학의 총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자리를 자원하는 겸손한 후원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자리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계속해서 2절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뵈뵈는 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보호자(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뵈뵈 집사는 비교적 부유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바쳐 바울의 선교를 돕고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쓴 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하는 역할도 한 헌신적인 여집사였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뵈뵈 집사는 기도하는 집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후원도 기도의 후원보다 효과적인 후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의 진정한 보호자다운 모습은 어려운 때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려운 때 판단을 좋아하는 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문제가 뭐야?"

그래서 판단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순간에 그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그러나 보호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의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호자는 어려운 순간에 그 어려움의 일부분이라도 맡으려고 합니다.

바로 그런 보호자의 태도가 어려운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작은 몸짓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고 구경하기보다는 문제를 떠맡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어려울 때 연약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을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었을까요?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뜻입니다.

왜 교회에 먼저 있게 하셨을까요? 나중에 온 사람을 돌보라는 사명인 줄 믿습니다.

왜 나에게 물질을 주셨을까요? 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왜 형이 되게 하셨을까요? 그것에는 동생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지켜주지 않고 시기하다가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못 살고, 조금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크게 보면 우리는 다 한 가족 아니겠습니까? 누가 나보다 나으면 좀 어떻습니까?

그를 위해 십자가도 질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성도인데 시기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선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을 시기해서도 안되고,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오히려 앞선 사람들은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신앙의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행실로 배우자와 자녀를 인도하고, 나중에 등록한 교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믿는 배우자 때문에 교회와 주님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아내가 없는 곳이 천국이라고 하며 아내 때문에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쁜 신앙의 모델이 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을 조심하고 그들을 세워줄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따뜻한 말과 태도로 형제를 사랑하고 섬길 것을 원하십니다.

이제 나의 말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맙시다.

우리의 말 한마디의 후원이 사람에게 큰 힘을 주고 주님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100년 전 한 미술학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애를 드리기 위해서 신학교에 가게 됐고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돕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처음에 그가 섬기던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신학생으로서 처음 하는 설교를 두고 교인들은 설교가 어떻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한 비판적 얘기를 몇 번 듣고 그 젊은이는 결국 좌절하고 목회를 포기합니다.

그런 마음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그는 다시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가 나중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로를 잘 바꿨어!"라고 말했지만 고흐의 전기작가는 주장합니다.

고흐가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아서 그가 만약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면

인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를 잃었다고 주장합니다.

격려해주십시오. 그러한 격려를 먹은 사람이 힘을 얻고 내일을 개척하게 됩니다.

 

< 진정한 보호자가 되려면 >

 

그리고 뵈뵈처럼 진실한 보호자가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믿어 주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믿음을 주소서!"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그를 믿어주십시오.

내가 믿어주면 반드시 그 사람은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사는 바로 굳건한 믿음을 가진 분입니다.

 

얼마 전 나온 책 중에 'CEO가 되는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잭 웰치 회장의 성공 비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말한 성공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아도 어머니만은 항상 그에게 믿음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반드시 잘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나는 믿는다."

 

그런데 요새 똑똑한 부모들은 어떻게 합니까? 너무 자녀들을 믿지 않습니다.

"내가 속을 줄 아니! 안 속아!"라고 하는데 이건 부모가 아니라 형사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눈치밥 먹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부모로부터 얻는 믿음의 훈련>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내는 자꾸 묻습니다. "왜 늦었냐?"

옆에 친구도 자꾸 의심을 부채질합니다. "물러서면 안돼! 그거 위험 신호야!"

바람직하지 않은 친구입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남편도 못 믿어! 너무 남편에게 꼬치꼬치 묻지마! 그냥 믿어!"

 

그래서 믿음을 주는 부모, 믿음을 주는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후원할 때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지도록 도와야 합니다.

 

의심이 들면 채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채용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들면 결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물론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믿어주십시오.

의심하는 것은 사실 속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이고,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부모나 배우자나 동료가 되려면 정말 믿어주십시오.

 

< 행복한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계속해서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성경에 여러 번 이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항상 부부의 이름이 같이 나옵니다.

그만큼 부부가 협력해서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사역을 후원했다는 증거입니다.

 

원래 브리스길라는 귀족 출신 부잣집 딸이었고, 아굴라는 천민 출신 종이었습니다.

아마 아굴라의 듬직한 모습에 반해 우여곡절 끝에 둘이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들의 로마 추방 명령이 내려지자

브리스길라는 남편을 따라 이민을 작정하고 고린도에 정착했다가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복음을 위해 죽도록 헌신하는 부부가 됩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길래 이들을 이토록 고생의 길로 들어서게 만듭니까?

이 부부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고, 자신의 행복조차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 내버릴 각오가 되어있었습니다(4).

그들은 행복을 포기했지만 실제적으로 그 부부는 가장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키고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결국 귀족 출신인 브리스길라의 인도로 천민 출신인 아굴라는 큰 인물이 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굴라는 초대교회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내들은 남편이 신앙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복음 성가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형제를 사랑합니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남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뭔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이 믿지 않는 남편에게 주님의 기쁨을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주 무뚝뚝한 남자였습니다. 거기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때문에 행복해요. 당신 만난 것이 정말 행복인 것 같아요."

그랬더니 남편이 "와카노 니 미쳤나?"라고 핀잔을 주더랍니다.

 

그래도 모른 척 하고 다음날에도 또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하고 결혼한 것을 어제 곰곰이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앞으로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또 결혼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또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는 "여보! 사실은 나도 그래!"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 더 합니다.

"잘 알았어, 앞으로 나도 교회가 나가 볼게"라고 말하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 믿어라 권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는데 말을 바꾸니까 통했습니다.

"I am so happy because of you(당신 때문에 정말 행복해요)." 이 말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애교심을 가지고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징징거리면서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당신과 결혼한 것이 역사적인 실수야!"라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내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 행복한 눈으로 보면 천국이 펼쳐지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나로 눈물 흘리게 하는 부모, 남편, 자녀도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 사명에서도 함께 하십시오 >

 

그리고 부부는 마음도 함께 할 뿐 아니라 사명에서도 함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부부의 집에서 일년 반 동안 머물었는데

이 일은 부부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18:2,3).

아무리 선교사라지만 어느 누가 자기 집을 1년 반 동안이나 제공하겠습니까?

 

또한 사도행전 1818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로 떠날 때에

이들 부부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섬기는 교회를 따라 집까지 이사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부부가 사명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아내였던 브리스길라의 역할이 단연 컸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아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이 남성 중심의 사회인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 따라가는 경우도 많지만, 남편이 아내 따라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면 가정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습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를 여자가 조종합니다.

아내의 일이 남편의 일에 비해서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명성왕후 보십시오. 드러난 활동은 남자가 하지만 조종은 뒤에서 여자가 합니다.

일은 남자가 해서 돈을 벌면, 돈은 여자가 쥐고 있는 통장에 고스란히 입금됩니다.

명예는 남자 것이고, 실익은 여자 것이라는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아내의 힘이 큽니다. 그 큰 힘으로 남편을 영적 일꾼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이 부부는 자기 집을 가정 교회로 제공했습니다.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헌신한 것이지만 크게 보면 복이 넝쿨째 굴러오는 태도입니다.

흔히 인간관계를 하면서 아주 중요한 것은 마음문을 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문을 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 가정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구역예배든, 월례회 예배든, 심방 예배든 내 가정을 예배 장소로 공개할 때

하나님은 그 가정에 더욱 축복을 예비해주실 것입니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여러분! 믿음을 형제를 집으로 많이 초청해 예배도 드리고, 기도와 교제도 하십시오.

내 가정이 한번이라도 더 예배처소가 되고 기도처소가 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목숨 걸고 헌신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아마 이 부분을 쓰면서 바울은 이 부부의 헌신을 생각하며 울먹였을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양은 목자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관계가 진정 복된 관계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로만 헌신하면 안됩니다. 진짜 헌신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 부부의 용기 있는 헌신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선교와 구제에 같이 헌신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서 힘껏 도와야 합니다.

도우면 내 인생에 손해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은 외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출이 잘되면 국내 경제도 잘되고, 수출이 막히면 국내 경제도 어려워지는 것처럼

선교를 잘하면 영혼이 건강해지고, 선교를 하지 못하면 영혼이 침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도 선교하는 가정이 될 때 그 가정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세계적 안목을 가진 훌륭한 자녀로 키워주실 것입니다.

 

< 충성된 사람 에배네도 >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에배네도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신앙 열매였습니다.

처음 신앙 열매가 특별히 소중한 이유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장 충성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헌신을 아는 충성된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집니다.

 

일반적으로 충성을 판가름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오랫동안 함께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둘째, 작은 일에도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내려놓아도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 어려운 때에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충성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충성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먼저 절교 선언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복과 절교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리더가 나를 내치지 않는 한, 나는 리더를 붙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랫사람에 나를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아랫사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들어도 먼저 절교 선언을 하지 않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감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함과 인내와 충성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가정생활에서도 대단히 모범적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가정생활을 성공비결이 무엇입니까?"

포드가 대답했습니다. "자동차 개발할 때처럼 한 여자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인내할 줄 모르고 새 것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치면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방송인 중에 바바라 월터스라는 유명한 앵커우먼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했는데, 나중에 성공적 재혼을 위해 신중하게 남편 대상을 물색하며,

컴퓨터에 자기 적성을 비롯한 모든 자료를 넣고 최종 남편감 후보를 뽑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른 가장 좋은 남편 후보감을 보니까 바로 전 남편이었습니다.

갈아보았자 소용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는 인내해야 축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 16장을 보면서 선교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바울과

목숨을 걸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후원했던 귀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선교하고, 또한 최선을 다해 선교사역을 후원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과 그의 후원자들을 동시에 축복하시고, 그들을 높여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용한 사랑의 후원자들이 되어 축복을 예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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