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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장 3절)

by 【고동엽】 2022. 8. 29.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장 3절)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편지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책이요, 또 하나는 우리 크리스천들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귀중한 하나님의 편지,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안 읽는데 우리 크리스천의 언행심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편지는 읽지 말라고 해도 잘 읽습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말은 맨 처음 안디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믿는 냄새를 너무 확실히 나타냈기 때문에 온 안디옥 사람들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크리스천임을 나타내 보이도록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크리스천임을 알 수가 있을까요?

1. 죄에 대한 태도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회심한 증표의 제일 첫째가 회개인데 회개란 죄에서 돌이켰다는 뜻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면 거듭난 사람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죄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면 크리스천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9절 말씀은 하나님께로난 자 즉 거듭난 신자는 계속해서 죄를 반복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듭난 자도 때때로 미끄러져 넘어질 때도 있으나 그 죄악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여 주님께 손을 내밀어 범죄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크리스천이 죄와 타협하는 자 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일날에는 교회에 나오고 밤에는 친구 따라 적당히 죄 짓는 장소에 가도록 일러줍니다. 또 마귀는 돈을 적당히 교회에 바치면 되지 너무 곧이곧대로 십일조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또 돈 벌기 위해 적당히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또 목사가 보는 데서는 말조심하지만 안 보는 데서는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일러줍니다.
  그러나 이렇게 타협하는 크리스천은 남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합니다. 참다운 크리스천은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주일날과 똑같이 다른 날도 크리스천이다. 교회에서와 똑같이 회사에서도 행동하겠다.”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다가 귀신 들린 자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몸을 해치고 남에게도 해를 끼치는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동묘지로 달려가서 자기 몸을 상케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붙잡아다가 쇠고랑을 채우면 그것을 끊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고 쇠고랑도 풀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은 성 안에 들어가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말했고 사람들은 그가 변한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에게서도 예수님 믿기 전과 믿은 후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회심한 다음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부흥회 때, 남편을 모시고 간 부인이 어서 예수님 믿기로 작정하라고 요청하니까 고개를 흔들며 싫다고 하더랍니다. 또다시 다그쳐도 역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부인이 “오늘 밤에 당신이 예수님 믿기를 바랬는데 왜 고집을 부렸어요?”라고 하니까 “내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절대로 무례한 짓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소. 당신은 예수님 믿고 나는 안 믿는데 당신과 나의 생활에 아무런 차이가 없질 않소? 내가 하는 짓을 당신도 하고, 내가 가는 곳에 당신도 가고, 내가 보는 것을 당신도 보고, 당신이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나도 당신만큼 착한 사람이오.”라고 말할 때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는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한 소년이 어머니한테 좀 좋지 못한 장소에 한 번만 갔다 오겠다고 간청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타일렀으나 굳이 한 번만 갔다가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는 “네가 정말 그 곳에 간다면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 좋지 않은 장소에 갔다가 새벽 2시에 돌아와서 어머니 방문 앞을 지나가다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 하나님! 나의 귀여운 아들이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살펴 주옵소서.” 아들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어머니 앞에 주저앉아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나쁜 장소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생은 변화가 많습니다. 건강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돈 많이 벌어도 달라지고, 결혼한 다음에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변화는 우리가 예수님 믿고 회심한 다음에 오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알아봅니다. 죄에 대한 태도를 통해우리가 크리스천임을 잘 보여줍니다.

   2. 무엇으로 만족하는가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밤중에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닌다면 아무도 그를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는 생활에서 하나님을 쫓아버리고 오직 농장과 곳간과 곡식만으로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물질만으로 만족한 생활을 한다면 그는 분명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바울은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예수님을 알고 섬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이 어디 있었는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돼지는 진흙구덩이에 뒹굴면서 만족해 하지만 양은 진흙에 빠져서는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악 속에 뒹굴며 살면서 만족을 얻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죄에 빠져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속히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돌이킵니다. 그것은 그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이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 홍수 때 비가 멎은 후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보냈는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비둘기는 돌아왔습니다. 까마귀는 송장 위에 앉아 뜯어먹으며 즐길 수 있었지만 비둘기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으로 만족한다면 거듭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더 기뻐합니까? 무슨 책을 더 즐겨 읽습니까? 한가할 때 무엇으로 시간을 보냅니까? 어떤 부류의 사람과 사귀고 있습니까? TV 연속극 보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 중 어떤 것을 더 소중히 여깁니까? 당신이 즐겨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를 증명합니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는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고 하셨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한 집사가 다른 교인을 가리키며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목사님이 “그러니까 복음이 이 교회에서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멸시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증오심이 꽉 찬 심령에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술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더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전에는 착하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살하러 가는데 한 크리스천이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으니까 “지옥으로 가는 중이오.”라고 했더니 “아이구, 그러면 안 되지요. 내가 도와드릴게요.” 하고 도와주었더니 곧 하나님께 돌아와 새 생활을 했습니다. 그 크리스천이 그 사람에게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를 구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면 사랑할 만한 사람이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망신 주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세상이 우리가 크리스천임을 알게 됩니다.

  4. 교회에 대한 태도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회에 대한 진정한 태도란 무엇입니까?
  ①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참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정성껏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정말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실까요?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② 구원받은 성도라면 복음 듣기를 원합니다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위대한 설교나 세상의 훌륭한 노래보다도 복음 듣기를 더 원해야 합니다. 오늘날 참된 복음을 전하지 않으니까 이단이 들끓고 교회가 혼란한 것입니다. 참다운 복음을 듣기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크리스천으로 보지 않습니다.      
③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도의 교제를 갖기 원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3:14)라고 했습니다. 만일 한 크리스천이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간다면 자연히 교회를 찾아가서 성도들과 교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성도들과 교제를 갖기 원치 않고 죄악된 사람과 교제하고 세상 친구들만 사귀기를 원한다면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④ 구원받은 성도라면 교회 일에 동참합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7:16)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의 열매로 우리가 크리스천임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통해 크리스천의 열매를 나타낼 때  우리 교회는 더 부흥되고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의 못된 성품이 길들여져서 온유한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까? 아직도 사탄의 지배를 받습니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열매 중의 하나가 “충성”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잘 출석도 아니하고 헌금도 안 바치고 봉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이 과연 크리스천일까요?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막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십니까? 영
적인 것으로 만족합니까, 세속적인 것으로 만족합니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삽니까? 교회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삽니까? 크리스천으로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크리스천이라 인정할 수 있게 삽니까?
  어느 날 예수님이 무덤 사이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주어서 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고침 받은 뒤에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의 아이들이 창 밖을 내다보다가 “엄마, 엄마, 아버지가 오셔”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엄마는 뛰어가 문을 잠그면서 “얘들아 무서워 말아라. 문을 잠갔으니까 들어오지 못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창 밖을 내다봅니다. 그리고 곧 말하기를 “엄마, 저 사람은 그전 아버지 같지 않아. 아빠는 뛰어오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이 사람은 천천히 걸어오면서 아주 조용해”라고 했지만 엄마는 “조용들 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 모두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조였습니다. 문이 안 열리자 그 사람은 부드럽게 노크했으나 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여보, 문 열어요. 나 이젠 괜찮아. 내가 예수님을 만났거든. 그래서 완전히 변화되었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두려움으로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은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 숨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얘들아 무서워하지 마라. 나는 오늘 예수님을 만나서 다른 사람이 되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그는 팔을 벌리고 아이들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친절히 말하면서 준비된 식탁에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잠자리에 든 후에도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두런두런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에 감사했습니다. “오늘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변화되었소.”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보도록 삽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들입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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