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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당치 못할 신앙 (행6:8-15)

by 【고동엽】 2022. 8. 28.

능히 당치 못할 신앙  (행6:8-15)

세상에서 제일 돈을 잘 버는 민족은 세계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유대민족입니다.“현찰이 도는 곳에는 언제나 유대인도 따라 돈다.”할 정도로 대단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느냐를 살펴보면 남다릅니다. 일류 장사꾼의 수단이 있습니다. 보통 장사꾼들을 분류할 때 세 가지 수준으로 분류합니다. 첫째<그 물건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장사꾼은 삼류 장사꾼이라고 합니다. 둘째<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에게 어떻게든지 물건을 사게 하는 비교적 솜씨 좋은 장사꾼을 이류장사꾼이라고 합니다. 셋째 일류장사꾼이 있는데 이 사람은<물건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에게 반드시 물건을 파는 고 단수 장사꾼으로 유대인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 주머니로 끌어들여 흑자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정신이 유대인들로 세계경제의 80%를 주무르는 힘 있는 민족이 되게 했고 누구도 당치 못할 대단한 물질의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힘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집사님이 어렵사리 연세가 든 아버님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드셔서 교회 처음오시다보니까 목사의 설교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주일이면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 너무나 가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교인들이 자꾸 아버님을 쳐다보면 킥킥 웃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설교시간이면 항상 조는 것이고 심하면 코까지 고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교인들 보기가 민망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하신 분께 그러지 마시라고 섣불리 말씀을 드릴 수도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루는 어린 아들 녀석을 불러서“주일 낮 예배 때 할아버지 옆에 앉아설교시간에 조시면 흔들어 깨워드려라. 그러면 한 주에 천 원씩 수고비를 주겠다.”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후로 몇 주일이 지나도록 아버님은 조시지를 안더랍니다. 그런데 한달 정도 지난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설교시간에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데도 옆에 앉아있는 아이가 깨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아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들이 대답합니다.“할아버지께서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삼천 원 주신다고 했거든요”하더랍니다. 여러분,  물질이 갖는 힘이 이런 일들이라면 이런 일도 있습니다.

어느 신학대학 교수님이 집을 수리하기 위하여 모래와 자갈을 집 앞에 몇 트럭 실어다 부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파출소 순경이 주인을 찾았습니다. 마침 교수의 모친이 집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순경이 나이 많은 노모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모래와 자갈을 왜 길가에 부어 놓았습니까? 통행에 방해가 된단 말입니다. 주인 양반 나오라고 하시오!”,“지금 집에 없는데요”,“어디 갔어요?”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그칩니다.“예, 대통령하고 아침식사를 같이 한다고 일찍 나갔습니다.”,“예, 그게 정말입니까?”,“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하겠어요? 지금 우리 아들집에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순경의 얼굴이 노래지더니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나중에 우리 아들 오면 파출소로 가보라고 할까요?”순경이 두 손을 흔들면서 말했습니다.“아닙니다. 제가 왔다 갔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미안합니다. 몰라 뵙고 그만 실례를 하였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순경은 두 손을 내어 저으면서 황급히 인사를 하고 가버렸습니다. 이 날은 연례행사인 대통령을 위한 국가 조찬기도회가 있었고, 신학대학 교수인 아들은 거기에 참석을 하러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경은 마치 이 집의 아들이 대단한 권력층쯤으로 알았던 것이죠. 웃을 수만은 없는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권력이 가지는 힘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 못 할 힘이 또 있습니다.

의학용어 가운데<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무런 약효가 없는 약을 환자에게 투약하면서 이 약만 먹으면 반드시 병이 나을 거라며 거듭 강조하면 환자는 실제로 경과가 좋아진다는 보고입니다. 수면제를 줘야할 환자에게 수면제라고 말하고는 소화제를 주었을 때에 이 환자는 수면제의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소화제를 먹고도 금방 잠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열이 많은 사람에게 해열성분이 전혀 없는 맹물을 해열제라고 말하고 투여했을 때 열이 내렸다는 임상보고가 있습니다. 임상보고 가운데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여인이 모기약을 뿌리다가 살충제가 입에 들어가 죽었습니다. 검시관이 해부를 해보니 살충제의 성분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여인이 죽은 것일까를 조사하다가 그 이유를 밝혀냈는데 그 원인이 쇼크사였습니다. 즉 살충제는 사실 입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내가 살충제를 먹었으니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그 충격 때문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약효가 없는 약을 먹고도,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약만 먹으면 반드시 낫는다는 환자의 마음속에 있는 철석같은 믿음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할 때‘이건 틀림없이 잘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는 자기 확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신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념이 있는 사람의 얼굴은 활기차 보이고, 활기차게 일을 하는 사람은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이<플라시보 성공학>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만이 믿고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냐 따라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사람에게는 강한<육체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이 육체적인 욕구는 먹거나, 입거나, 소유하는 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힘의 최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세상사는 재미를 느낍니다. 최고가 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을 좋아하고 재력을 좋아하고 명예욕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잡다한 육체적 욕구들을 다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적인 본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다른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가지는 중요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욕구입니다. 단순히‘무엇을 더 먹을까? 무엇을 더 입을까? 무엇을 더 가질까?’하는 저급한 욕구에서 벗어나‘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급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게 참된 인간상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저 사람만큼은 도무지 당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육체적인 힘입니까? 재력의 일인자가 되어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정신력하나만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십니까? 이거 다 우리들이 듣기 좋아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좀 다른 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당치 못했던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바로[스데반]인데요 중요한 것은 세상이 당치 못할 그의 힘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재력도 정신력도 아닌 영적인 힘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정말 들어야 할 말이 있다면“신앙적인 면에 있어서 저 사람만큼은 당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영적인 힘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의 중상모략을 받아 공회 앞에 심문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데반이 무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요, 재력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들이 능히 당치 못하여”(10절)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누굽니까? 예루살렘성안에 이름 높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과 백성의 장로들이었고 스데반을 죄인으로 모는 여론을 만들기 위하여 돈으로 매수된 거짓증인들과 거리에서 동원된 허다한 군중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실상 자기들이 가졌던 금력, 권력, 지력, 폭력 등 그 어떤 힘으로도 능히 한 사람 스데반을 당치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데반에게 당치 못할 힘이었다는 것입니까? 바로 그의 신앙, 즉 영적인 힘입니다. 그의 속에 가득한 영적 힘이 어떠했느냐를 15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여건에서 용기를 얻어 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나약함과 불안과 두려움이 환경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이 바뀌면 괜찮을 것이라고 여겨 직장도 바꿔보고 거처도 옮겨보고 합니다. 심지어는 남편도 갈아 치워보고 아내도 바꾸어 봅니다. 그러나 소용없습니다. 불안한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항상 두려움에 떨고 근심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자기 확신에서 용기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은 보잘것없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기 확신에서 용기가 생깁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몸이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용기가 충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환경이 어렵다고 해도 그럴수록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큰 힘을 내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무릇 약한 자는 변명이 많습니다.“나는 가진 게 없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자기합리화 내지는 변명을 합니다. 용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용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정말신비하게도 용기의 뿌리는 오직 신앙에 있습니다. 보세요.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신앙이 있는 자는 용기가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 자는 어디서나 강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신앙은 인생의 힘이다.”라고 외쳤고,[아인슈타인]은“나의 연구하는 전 생애를 통하여 모든 고난에서 실망치 않은 것은 오직 신앙의 힘이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칼라일]이라고 하는 사람은“위대한 신앙을 가진 민족은 위대한 국가를 건설한다.”고 했습니다. 이토록 신앙이란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 인생 속에 감춰진 신앙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것이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속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기분 좋을 때는 좋은 대로 기분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다 나타내 보이게 만드셨습니다. 숨길 수가 없어요. 이거 숨기는 사람들이 대체로 보면 병이 납니다. 오래 못삽니다. 싫은데도 숨기고, 화가 나는데도 히죽거리는 동안에 속에 다 쌓입니다. 그게 쌓이다 쌓이다 병 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감정을 드러나게 만들었는데 안 나타내려고 하다보니까 부작용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싫어하는 감정이 금방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보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속 편하고 건강합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어디에 가장 먼저 나타납니까? 얼굴입니다. 이 얼굴에 웃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붉으락푸르락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만큼 숨김없이 진실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창세기에 보면[가인]이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고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자 그 얼굴에 금방 그 기분이 나타나지 않습니까?“안색이 변했더라.”그랬어요. 그래 그걸 보신 하나님께서 뭐라 하셨어요?“네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하시지 않습니까? 얼굴에 나타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얼굴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속에 생각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그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피부는 4년마다 바뀐다고 합니다. 여자 분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합니다마는 사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어떻게 바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건강미가 중요합니다. 병이 들면 아무리 얼굴에 무엇을 바른다고 해도 별로 신통치가 않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은혜와 빛이 있어야 얼굴에도 빛이 나는 것입니다. 마음은 썩어 가는데 어찌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모양대로 얼굴의 모양도 변합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는 말씀은 그의 마음에 숨겨진 영적인 힘이 가져다주는 외적인 표식입니다. 행 7장에도 나옵니다마는 공회라고 하는 곳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집행권을 가진 곳입니다. 그 살벌한 장소에서, 그 많은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도 당치 못할 지혜 있는 말을 쏟아 낼 수 있는 능력과 천사와 같은 얼굴로 나타나는 그의 힘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사의 얼굴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얼굴이 아닙니다. 마음이 천사의 마음이어야 가질 수 있는 얼굴입니다. 그렇듯이 여러분 속에 무엇보다도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이 가득 담겨져 있어서 어떠한 상황이라도, 어떤 여건이라도, 세상 그 어떤 세력이라도 당치 못할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출처/김철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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