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사기 4:14~24)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들처럼 왕정체제를 갖추기 전까지 사이의 기간 동안 필요할 때마다 이스라엘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신 이들이 사사라고 했습니다. 사사는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흔히 사사기에서 각 사사에 대하여 기록된 분량에 따라 여섯 명은 대사사 여섯 명은 소사사라고 분류합니다. 열 두 사사 중 유일하게 여성인 드보라는 대사사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열 두 사사 중 드보라에 앞서 세 번째로 소개되는 삼갈의 경우에는 그의 행적을 언급하는 데에 단 한 절(3:31)밖에 할애되지 않은데 비해, 드보라의 경우에는 4장과 5장이 온전히 그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부입니다.
사사기의 모든 기록이 그렇듯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 이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와 이스라엘의 고통,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사사의 출현과 이스라엘의 구원과 평화의 회복이라는 전형적인 틀 안에서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서는 4:1-4절을 보면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았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5:8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철병거 구백 대가 있는 막강한 군대의 무서운 장군 시스라를 거느린 하솔 왕 야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5:8 전체를 다시 보면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합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여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나 4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군사 중 "방패와 창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실제로 방패와 창이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있었지만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창을 들고 적을 향해 공격을 감행할 힘과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자손은 그 침략군의 왕에게서 이십 년 동안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새 사사로 드보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4절에서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한 것으로 보아 드보라는 사사로 세우심을 받기 이전에 이미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5절 끝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백성들로부터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5:7에 따르면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지휘관으로 앞세우고 그와 함께 전장에 나갔으며 본문 16절에서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다"고 할 만큼 적군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사십 년 동안 평온함을 누렸다는 말로(5:31) 사사 드보라 시대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한 토막 시대에 있었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우상숭배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배신을 묵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용서를 빌고 구원을 간청하는 당신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적장 시스라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에 앞서 싸우러 나가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5:13에서는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합니다. 5:20에서는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그의 군대가 공포에 사로잡히고 전의를 상실하여 혼란 가운데 도주하기에 여념이 없게 만든 천둥번개 등 하늘의 자연현상들을 일으키셨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또 5:21에서는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다" 하는데 이것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추격해온 이집트 군사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손 강물을 범람시키셔서 시스라 군대의 철병거를 무력화시키시고 그 군대를 몰살시키셨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 23절에서는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나안을 정복하던 여호수아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 또한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전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역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홀로 싸우시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위한 당신의 승리의 도구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그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여사사 드보라와 그가 만 명 이스라엘 군사의 지휘관으로 세운 바락과 막판에 등장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야엘이라는 또 한 사람의 여자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사사로서의 소명을 받자 사람을 보내어 바락이라 하는 자를 불러오고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셨다.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4:6-7). 그러자 바락이 드보라에게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4:8)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부터 승리를 약속하시며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선뜻 받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싸우려 하지 않고 사람의 도움을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자 드보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4:9). 바락이 하나님의 명령에 단번에 순종했더라면 얻을 것이었던 영광을 한 여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드보라가 아닌 한 다른 여인임이 곧 드러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바락은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드보라와 함께 다볼 산으로 갔습니다(4:10). 이 소식을 들은 적장 시스라는 철병거 구백 대와 자기의 모든 군대를 기손 강으로 집결시켰습니다(4:12-13). 드보라가 바락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라 바락은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의 시스라 군대를 향해 달려 내려가 전투를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셨고 친히 싸워주셨기 때문에 바락의 군대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14-16절). 그러나 옛날의 전투에서의 완전한 승리는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손 강을 범람시키시고 철병거들을 표류시키시자 적장 시스라는 그의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범람한 강가에서 병거가 잘 달릴 수도 없었거니와 군대장관의 병거를 타고 적으로부터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기도해서였을 것입니다.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쳐 자기의 주군인 하솔 왕 야빈과 평화조약을 맺은 겐 사람 헤벨의 야영지로 들어갔습니다. 평화조약을 맺은 사이였으므로 안전과 보호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시스라는 거기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을 찾아갔습니다(17절). 그는 여인의 장막은 침범하지 않는 관습을 이용하여 보다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거기에 이 전쟁을 끝내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비책이 숨어 있을 줄을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꾀를 훤히 꿰뚫어 보시고 앞서 가 계시는 하나님의 손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유혹과 그녀가 가한 결정타였습니다. 야엘이 어떤 동기로 어떤 계기에 자기 남편과 평화조약을 맺은 시스라를 자기 장막으로 끌어들여 죽일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이고 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야엘은 그녀의 장막 밖에 나가 시스라에게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며 그를 영접했습니다. 시스라가 그 장막에 들어가자 야엘은 이불로 그를 덮어주었습니다(18절). 친절을 베풀며 시스라를 안심시킨 것입니다. 야엘은 시스라가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자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어주었습니다(19절). 치열한 전투와 공포 속의 도주로 극도의 피로상태에 있었을 시스라를 잠재우기에 적합한 친절이었던 것입니다. 시스라는 야엘에게 장막 문에 서 있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없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하고서는 깊이 잠들었습니다(20-21절). 그러자 야엘은 장막 말뚝 하나와 방망이를 들고 잠든 시스라에게로 가만히 다가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망이로 내리쳤습니다. 얼마나 힘껏 내리쳤는지 말뚝은 시스라의 머리를 꿰뚫고 땅에 박혔으며 그는 기절하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22절). 얼마 후에 적장 시스라를 쫓던 바락이 야엘의 장막 앞에 이르자 야엘은 나가서 그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22절). 그 말을 따라 바락은 야엘의 장막에 들어가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채 엎드러져 죽어있는 시스라를 찾았으나 드보라의 예언대로 적장을 죽여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기회는 이미 여인 야엘의 몫이 되고 만 후였습니다. 바락은 뒤에 드보라와 함께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5:24) 노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십년간 학대한 하솔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준 세 명의 영웅 중 두 명이 여인이고 한 사람이 남자였습니다. 그나마 남자 바락은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워 이긴 지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즉각적인 순종의 결여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영광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충직한 선지자요 신망 있는 지도자였던 드보라는 사사로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도 성실하고 용기 있게 수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이십년간 이스라엘을 학대한 이방의 왕과 그 군대를 진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후에 사십 년간 평화를 누리게 한 공로를 백성들이 그녀에게 돌렸다는 뜻입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과 신뢰와 존경과 순종과 감사를 드보라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야엘은 이스라엘 여자도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과 담대함으로 이스라엘의 적장을 죽이는 영광을 차지했으며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한 시대가 믿음과 순종의 두 여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는 이름이 갖는 뜻은 꿀벌이고 이라는 이름의 뜻은 산염소라는 사실은 놀라운 의미를 갖습니다. 산염소는 젖을 내고 꿀벌은 꿀을 만듭니다. 꿀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이 정의로운 심판을 통해 꿀과 같이 단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하였으며 용기로 민족을 이끌어감으로써 20년간 이방왕의 학대에 신음하던 민족을 살려내었고, 산염소를 뜻하는 이름의 한 여인이 무서운 적장을 죽여 없앰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시름을 씻어내고 사십년간의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젖과 꿀이 흐르리라고 약속된 가나안 땅이 진정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은 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철저한 순종을 드리는 이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드라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신하여 환난과 고통을 자초하면 그 땅에 흐르는 젖과 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삼천리금수강산이 일제하에서나 공산치하에서 우리에게 무슨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악한 자들에게 수탈당하는 젖과 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한민국과 이 삼천리금수강산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도록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바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부른 노래인 사사기 5장의 끝에서 드보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5:31). 이 드보라의 기도처럼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힘차게 돋는 희망과 위로의 햇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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