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작전이 있습니다. (수6:1-1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도착하였을 때 모든 수고가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아직도 극복해야만 할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의 장애물은 여리고성이 있었습니다. 1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여리고 사람들은 성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때문에 출입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습니다.
이런 여리고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여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기에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만약 여리고성을 통과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리고를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은 그들 앞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는데 여리고의 장애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우리가 가는 길을 가로막는 여리고와 같은 장애물들이 수없이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기 쉽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앞에 장애물로 놓여진 여리고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오늘 이 시간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정복에 앞서 첫 관문인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저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 앞에 닥쳐올 여러 가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여리고성들을 정복하는 비결을 배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라하세요.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면 축복의 땅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신앙생활에 커다란 장애물이었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축복의 땅, 가나안땅으로 나아가는데 하나님께서는 3가지 작전명령을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비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침묵하라는 명령입니다.
10절을 보면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 음성을 들리지 말며 는 원래 원문에는 ‘왁자지껄 떠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리고성을 정복하는데 하나님 주신 작전은 말도 안 되는 작전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통과하려면 이스라엘 민족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전쟁은 하지 않고 성 주위만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작전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작전입니다. 더구나 성을 돌 때에는 일절 침묵하라는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작전명령입니다.
여리고 작전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번씩 7일 동안 돌면서 눈은 법궤에만 고정시켜 두고, 귀는 나팔소리를 향하여 열어두고, 입은 꼭 다물고 침묵하는 작전입니다.
왜 침묵하라고 했습니까? 만일 침묵을 명령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러한 전쟁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무슨 산책하러 왔는가?
백 번 천 번 여리고 성을 돌아보라. 성만 돈다고 이 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인가 ?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난무 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 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침묵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도 배워야합니다. 교회에서도 주의 일만 하려면 시끄러운 교회가 있습니다. 무슨 일만 하려면 일도 하기 전에 이런 저런 잡음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의 일을 하면서 잡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입을 다무는 침묵훈련이 필요합니다. 원망을 해서도 안 되고, 불평을 해서도 안 됩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오직 하나님의 법궤만 바라보면서 하나님 명령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침묵을 배우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전14:28인데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솔로몬도 전도서5:2에서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시141:3에서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했습니다.
우리가 여리고 성과 같은 엄청난 문제들을 넘으려면, 침묵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침묵을 명령했습니다.
옛말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의 아들이 말에게 풀을 뜯어 먹이러 들로 나갔는데, 그만 말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집안 망하게 됐다고 난리법석을 떠는데, 노인은 "좀더 기다려 봐야 한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망갔던 말이 산 속에 있는 떠돌이 말들을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동네사람들은 노인에게 이젠 큰 부자가 됐다고 야단을 떨었습니다.
노인은 "좀더 기다려 봐야 한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루는 노인의 아들이 자기 집에 온 떠돌이 말을 타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노인에게 찾아와 축복이 화근이 되었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은 이번에도 "좀더 기다려 봐야 한다네."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마을에 있는 청년들은 모두 전쟁터에 끌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부러진 그 아들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여리고와 같은 장애물이 나타나지만 좀 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고 침묵함으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축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의 힘보다 침묵의 힘이 더 강한것입니다. 침묵이 힘입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 우리는 입을 열어 말하는 것보다 조용히 침묵하며 인내하는 것이 힘이 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잠잠히 일할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교회가 꼭 해야만 하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 조용히 침묵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의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 일을 맡겨 보면 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일이 아니라고 나는 못하겠다고 핑계하고 외면하려 할 때도 있습니다. 조금만 일하면 생색내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교회가 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침묵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말없이 성실하게 일할 줄 아는 사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만날 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하소연 하려고 하기보다,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엄청난 문제 앞에서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앞에 침묵하고 하나님 앞에 입을 열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시고 닫혀 진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침묵이 바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침묵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무기가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아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순종하라 입니다.
본문에 두 번째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여리고 성을 돌라는 작전 명령입니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여리고성의 한 부분이 금이 가고 두 바퀴 돌면 더 많은 부분이 금이 가고 돌면 돌수록 금이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백성들이 한 바퀴를 돌아도 두 바퀴를 돌아도 발이 불어터지도록 육일동안 매일 한번씩 돌아도 여리고 성은 견고한 채로 그냥 있었습니다.
육일 간을 매일 한 번씩 돌고 마지막 날은 일곱 번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합하면 열세 번을 돌아야 한데 보통 짜증나고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 세번을 돌았을 때 그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열세바퀴를 돌았을 때까지도 여리고성이 허물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의심 없이 명령의 마지막 순서인 양각나팔을 길게 불고 큰 소리로 백성들이 외쳤습니다.
그 순간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벽이 벽채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 깨어지면서 기초까지 무너져 내렸습니다. 단 한명도 성벽에 의하여 앞사 되거나 다친 일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순종해야 기적이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던 한 성경학자의 말입니다. '한 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듯이 상황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람나라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만나주지도 않고 하인 게하시를 시켜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처음에는 화를 내면서 귀국하려고 하다가 참모들의 권고에 의하여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목욕을 한번 할 때마다 환부가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6번 씻고 나왔을 때에도 전혀 고침 받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인내를 가지고 7번째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7번이나 돌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리고 성과 같은 엄청난 문제들을 넘으려면, 순종의 무기가 필요합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곧 순종입니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제까지 배운 경험과 이성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여리고 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성만을 바라볼 때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순종했던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무슨 칼이나 창이나 화살과 같은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그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다른 날과 달리, 일곱 번 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작전 명령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꼭 아이들 장난과 같은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한다면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하여 ‘바보들의 행진’과 같다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 불만을 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그 성을 돌았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200만 명이 함께 그 성을 한 바퀴 돌려면 최소 2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랐습니다. 결국 이러한 순종이 그들로 하여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영국 최초의 목사 중 한 사람이었던 윌리암 그래드 스톤(William Grad Stone) 경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인물 95명을 알고 있다. 이 중 87명이 성경에 순종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똑똑한 사람이 많으면 교회가 잘 될 것 같은데, 오히려 분란이 일어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사람의 똑똑함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똑똑하지는 못해도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에 풍성한 사랑이 넘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슈메이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10% 순종하면 10%의 행복을, 50% 순종하면 50%의 행복을, 100% 순종하면 100%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기적을 낳는 줄로 믿습니다. 100% 순종은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순종이 응답받는 비결이요, 문제의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순종이 바로 닫혀 진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두 번째 무기입니다.
셋 째 신뢰하라 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고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언제 그 성이 무너졌습니까? 물론 함성을 지를 때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의 그 견고한 금성철벽이 사람의 함성 소리 때문에 무너질 수 있습니까?
함성을 지른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한 것 뿐 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함성은 '하나님이여 명하신 대로 믿음으로 순종한 것 뿐 입니다.
여기 함성은 믿음의 함성이요, 믿음의 기도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함성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11:30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칠일 동안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여리고 작전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 작전입니다.
"성 주위를 한 번씩 돌 때에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돌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또 순종하여 돌지 아니했더라면 여리고 성은 무너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돌을 던지라, 망치로 때려 부수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라 그리하면 성이 무너지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작전입니까? 얼마나 이해곤란의 당부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돌고, 나팔을 불고, 잠잠하고, 때가 되매 함성을 질렀습니다. 결국 여리고 성은 믿음으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여리고 작전에서의 성공비결이 무엇입니까? 무력입니까? 아닙니다. 군사력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돌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돈다고 그 철벽이 무너질 수 있습니까? 백 번을 돌아도 도는 그 것은 성이 무너지는 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세 번을 돌았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돈 것 아닙니다. 그들이 돌 때 믿음으로 돌았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하게 보인 것 같으나 믿음으로 행하면 이적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또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런데 기적은 사람의 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욕심과 지혜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기적은 믿음이 만듭니다. 축복도 믿음이 만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경의 원리 똑 같은 것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순종하면 축복, 그러나 불신앙으로 불순종하면 저주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생활 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믿음을 빼 버리면 지푸라기 생활입니다. 처음도 믿음, 나중도 믿음, 믿음 이것이 성도들 생활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어찌했습니까? 마9:23인데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했다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책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성을 돌았고, 잠잠하여 침묵했고, 궤를 앞장 세웠고, 나팔을 불었고, 함성을 불렀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누가보고 있었습니까? 수3:10을 보니까 살아 계시는 여호수아의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진하는 삶을 보십니다. 우리의 삶의 초점이 사람이냐, 하나님이냐를 보십니다. 삶의 중심에 믿음이 있느냐, 욕심이 있느냐를 보십니다. 또 살아 계신 하나님은 사람 앞에서 침묵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호소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이여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세요.'기도했을 때 들으실 뿐만 아니라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리고와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작전 명령을 기억하고 순종하여 승리하시를 축원합니다.
침묵하라, 순종하라, 신뢰하라 이 세 가지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우리 눈앞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성공을 가지시어 신앙의 승리자들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들이 다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용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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