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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3-17)

by 【고동엽】 2022. 8. 27.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3-17)

백년 만에 내렸다는 3월의 폭설로 곳곳에서 많은 피해가 속출하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춥고 긴 겨울은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마다 개학을 했습니다. 우리교회도 겨울동안 방학에 들어갔던 여러 가지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3월을 맞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성경을 배워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얼마 후면 나무를 심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됩니다. 심을 만한 나무를 사기위해 수목을 재배하는 농원에 가보면 그리 큰 나무도 아닌데 유난히 비싼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나무들은 정원사의 손에 의해 잘 다듬어진 나무들입니다. 아무렇게나 멋대로 자란 나무는 비록 오래되고 키가 크다 할지라도 가차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필요한 능력을 잘 갖춘 사람을 가리켜“인재(人材)”라고 합니다. 이 말에 재(材)란 재목(材木) 즉 나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어떤 단체에 꼭 필요하여 장차 기대가 모아지는 사람을 가리켜 기둥감이라고 합니다. 이 기둥이란 말도 나무에 비유된 것입니다.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서 집을 지을 때 철근 콘크리트로 기둥을 만듭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모두가 목조건물이라 기둥은 굵고 곧고 단단한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했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면 기둥이 되고, 잘 다듬어지면 비싼 값에 팔려나가듯, 사람도 잘 다듬어지면 이와 같습니다. 무엇으로 사람을 다듬을까요? 그것은 교육 즉 배움입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부모형제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렇게나 살아 갈수 없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가는 비결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배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하신 것입니다. 가르쳐 지키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변화하는 시대에 적절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칸트도 말하기를“인간은 교육을 요하는 유일한 창조물이며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식만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워 지키는 자리에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에“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하셨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내야하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배워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1. 확신에 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에“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하셨습니다. 확신이란, 확고한 신념을 뜻하는 말입니다. “거하라”는 것은, 계속적으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 중에는 참된 복음을 저버리고 자신들이 예전에 섬기던 불의와 이단의 가르침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말씀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 흔들리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성서적인 지난날의 생활습관이 고개를 들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려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갖가지 잘못된 이단자들의 미혹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성경에 기록하시기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하셨습니다. 이처럼 간교한 대적을 이기기 위해“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하셨습니다. 악한 영들의 간계를 물리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뻐들으시며 응답하시는 것입니다.“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하셨습니다. 확신에 찬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늘이 움직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6-18)하셨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 하셨습니다.

2.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 속에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건이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성경 속에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불쌍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이야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 속에 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성경 속에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세상을 이겨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한 선교사가 중국에 가서 선교를 하면서 어느 곳에 가보니 어떤 부인이 맨 손으로 10년 동안 우물을 파서 깊이 25자, 넓이 10자의 큰 우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왜 맨 손으로 우물을 팝니까?”하고 묻자 “저는 명예도 돈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맨 손으로 우물이라도 파서 덕을 쌓아 자손들에게 이 공적을 통해 축복의 유산을 물려주고자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여인에게 말하시기를 “맨 손으로 수백자의 우물을 파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면 자자손손 복을 받아 눌릴 수 있습니다.”라고 가르쳐 주며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성경 안에만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던 독일의 괴테는“만약 내가 감옥에 갇히게 되어 단 한권의 책을 갖고 들어가는 것이 허용 된다면 나는 성경을 택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16절-17절 말씀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교육을 위한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위해 성경만큼 위대한 책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4장12절 말씀에“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이었습니다.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꼼짝 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다 내놔.”라고 위협한 강도는 그 방에 값나갈 것을 다 챙겨 넣고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아저씨, 중요한 것은 다 가져 간다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 가져가요.”라고 하며 한 낡은 책을 가리켰습니다. 도둑은 그 책도 집어넣었습니다. 그 도둑은 훔친 물건들을 파는데 그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습니다.“도대체 아무도 안 사는 이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하며 그 책을 읽어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 말이 계속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읽고 또 읽는 동안 그만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훗날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부흥목사가 되어 한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자기가 옛날 예수 믿게 된 동기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중년 부인이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자기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 우는 줄 알고 그 부인에게 간증을 요구했습니다. 그 여인은 나와서 말하기를, 기숙사에서 성경을 준 여학생이 바로 자기라고 하며 그 후 강도를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3. 무거운 짐을 벗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쉬게 하시고자 초청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죄의 짐 아래에서 번민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분은 생활의 짐으로, 또 어떤 분은 질병의 짐으로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어 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기를“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 곧 쉼을 얻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가정마다 자가용 승용차들이 거의 다 있습니다. 자동차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기에 편리합니다. 먼 길을 빨리 왕래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집 뜰에 세워져 있지만 전혀 그 자동차를 활용하지 못하고 고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에게는 운전면허가 없을까요? 배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일찍 운전을 배웠더라면 자동차로 인해 쉼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쉼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워 아는 사람만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4. 신앙생활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2-3의 말씀에“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지식에 따르지 않은 열심을 경계하신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열심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심 없는 심령을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시록 3:15-16)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내는 열심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됩니다. 말씀에 의한 방법이 아닌 열심은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한 국제 학술세미나에서 인도 대표로 참석한 어느 학자는 말하기를 “현대인이 범하기 쉬운 정신적 범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 둘째,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셋째, 할 수 있는 대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응답을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밤을 세워 기도한다 해서 다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머니를 털어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에도 성경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벗어나면, 내 쓸 것 쓰지 않고 이웃을 도왔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땀 흘려 봉사를 하는 데에도 성경적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알지 못하면 땀 흘려 봉사한 수고가 아무런 보람도 의미도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5. 배움은 흥망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4:6의 말씀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지식이란 일반 사회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농부가 농사짓는 방법을 알지 못해, 봄에 뿌려야 할 씨앗을 가을에 뿌리거나, 가을에 뿌려야할 씨앗을 봄에 뿌린다면 그 농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장사하는 사람이 상술을 알지 못한다면 그 또한 사업에 성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성도, 복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약속하신 복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의 약속은 조건 없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을 따라 살아 갈 때 하나님은 나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며 은혜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조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고 배워 깨달으며, 깨달은 말씀을 실천할 때 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가난하게 혼자 살던 허만이라는 여든 아홉 살 된 노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청직원이 그 노인의 유품을 정리하고자 노인이 살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거지의 집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온통 넝마와 부서진 가구들로 가득했습니다. 시청직원이 짐을 하나하나 챙기는 중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넝마 속에 파묻혀 있던 다섯 개의 바이올린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바이올린 제작의 대가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들고 그가 직접 사인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값은 당시의 돈으로 수십만 달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노인은 그것을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알고 그렇게 쓰레기 속에 던져놓고 가난하게만 살았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하나님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삶을 대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섬길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 이 험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에 관한 기록들이 성경에 있습니다. 이 고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배우지 못해 알지 못한다면, 값비싼 바이올린을 쓰레기 속에 묻어둔 노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비밀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험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6~9)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출처/이익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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