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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12)

by 【고동엽】 2022. 8. 27.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8~12)

삶의 중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언이나 충고처럼 값진 것은 없습니다. 사업이 어려울 때 조언해 줄 수 있는 선배만큼 귀한 것도 없습니다. 영적 방황과 갈등으로 괴로워할 때,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을 지켜나가는 지혜를 듣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습니다. 잠언 15장 23절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기를 놓치지 않은 적절한 충고나 권면의 말은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고난과 복음
노(老)사도인 바울은 감옥에 갇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사역의 지침에 대해 충고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가 소장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길 원한다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 사랑, 근신,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합니다. 또 디모데에게 이 땅에서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증인이 된 것이나, 자신이 주님을 위해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은 고난과 함께 전파되고, 고난이 없는 전도와 선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고난 가운데 만났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편지를 쓰는 지금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고난 중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이 쉽지 않지만 복음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권합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따르면 바울과 바나바는 1차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남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루스드라’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성경 말씀의 문맥상으로 보면, 그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생애에 한 번도 걸어보거나 뛰어본 적이 없는 아주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능력을 입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가 일어서서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인간으로 나타난 신이라며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며 바울에게 돌을 던져 그를 거의 죽음 상태로 만들어 성밖으로 내던져버렸습니다. 바울을 향해 돌을 던졌던 사람들이 떠나간 후 제자들이 바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바울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돌로 쳐서 스데반을 죽였던 일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기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난이 인도하는 곳
그런데 14장에서 바울은 ‘루스드라’와 ‘더베’라는 곳으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죽을 만큼 핍박을 받았지만 다시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유니게와 로이스인 디모데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16장을 보면, 당시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전진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디모데라는 귀한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을 보았고, 그로 인해 바울이 죽을 만큼 돌로 맞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음을 피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다시 일어나 복음 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며, 주님의 증인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이 말씀을 원어 그대로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만 앞세우지 않고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자고 제의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았고,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에 참예하자고 권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하십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때로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를 인도해 주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간에 설 연휴가 있었습니다. 명절에 믿지 않는 가정에서 제사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물러서지 말고 제사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다시 한번 믿음을 굳건히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앙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핍박, 고난, 좁은길이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한 번쯤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받아야 할 고난이 있다면, 고난 참예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주님께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에 위로와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네 가지 사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권하는 이유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9, 10절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네 가지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구원은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창세기 3장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 앞에 죄를 범한 아담은 나아가지 못하고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고 그 음성에 응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로 이뤄집니다. 사람의 공로나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공로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부족함과 부끄러움만 깨달을 뿐입니다. 죄로 더렵혀지고 찢겨진 모습만 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공로나 행위에 의하지 않고 은혜로 하십니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살펴보면 야망, 욕심, 인기, 공로, 교만 등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대속할 만한 공로나 행위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 선행을 했다고 말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죄인인 자아만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주에 TV에서 ‘남경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인데 너무나 잔인하고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면서 요즘도 세계 곳곳에서 그와 같은 만행들이 자행되고 있음을 잠깐씩 보여주었습니다.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치적인 조직, 시스템, 종교, 철학, 이데올로기 등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대안이나 수단은 도무지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 앞에 엎드려 경배할 뿐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셋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2~13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뤄질 일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일입니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넷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이 완성되고,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불멸의 생명을 주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우리를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5, 16절에“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로 인해 자신을 믿는 자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4~16절을 보면“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고 그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으며, 우리는 불멸의 영생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것을 권하고, 오늘날 성경이 우리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것을 권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1, 12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받았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어떤 사람으로 세움을 받았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어떤 사람으로 세움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받은 직분들을 감당하게 될 때 고난이 따른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전도자, 사도,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구원을 갖는 그 자체가 세상에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고난 받기를 피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아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자리에 초청하십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것을 권고하십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잘 아시고 지켜주신다는 사실에서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 크리스천 홀리덴 문 여사가 있습니다. 그 분은 나치 독일에 쫓기는 유대인들을 숨겨주다가 붙잡혀 나치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무서운 고문을 당한 후에 여동생마저 잃었습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후 홀리덴 문 여사는 많은 간증 집회와 저술 활동을 통해 전도를 했습니다. 문 여사는 간증 집회에서 형형색색으로 수가 놓인 왕관 모양의 큰 헝겊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아름다운 왕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헝겊을 돌려서 뒷면도 보여줬습니다. 거기엔 무질서하게 얽혀 늘어진 실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편에서 보면, 복잡하게 늘어진 실타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아름다운 왕관입니다. 영광스런 왕관을 이뤄가는 하나님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 여사는 “인간의 삶에 있는 고난과 어려움과 환란과 박해가 우리에겐 얽혀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생의 영광스런 왕관을 만들어 가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홀리덴 문 여사는 요셉에게 엎치고 덮쳤던 고난들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워 가는 하나님의 과정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과 역경도 영광스런 왕관을 수놓아 가는 하나님의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있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이든 사도로서 감옥에 갇혀 있지만,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을 위해 고난도 함께 받자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복음으로 인해 당하는 많은 고난들은 삶을 힘들게 하고 곧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도와주신다는 것과 모든 것이 얽히고설킨 실타래들이 영광의 왕관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복음으로 고난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감격을 누리기 위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둠에 구원의 빛을 비추기 위해, 닥쳐오는 고난에 당당하게 맞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헤아리시고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의 왕관을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출처/박종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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