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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9) (수 14:6-12)

by 【고동엽】 2022. 8. 26.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9)   (수 14:6-12)

고등학교 3학년 말 국어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들 소원이 뭐냐?’ 개구쟁이 친구 하나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 이놈아 그렇게 되면 쥐약 생각 날 것이다.’

대학 시험에 실패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마냥 잤습니다. 정말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잤습니다. 한 사흘을 그렇게 지난 것 같았습니다. .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습니다. 신문의 두 줄 짜리 광고까지 다 읽어도 시간이 가질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정말 국어 선생님 말씀처럼 쥐약 생각이 났습니다.

세상에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퇴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보다 더 무서운 일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서양에 이런 속담이 있답니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맞는 말입니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팔자가 좋은 사람이고,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은 팔자가 그만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우유를 마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우유를 배달하는 시림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유를 마시는 목적은 건강입니다. 그런데 그 건강은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이것이 매우 재미있는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편히 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아닙니다. 무조건 편히 사는 것만 추구하다보면 우리들은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지고, 정신도 약해지고, 신앙도 약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좇아오던 햇빛인데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나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 십자가라고 하는 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행복으로 이해하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십자가가 어떤 것인데 세상에 부러워 할 것이 없어서 십자가를 부러워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저는 윤동주 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잘 이해한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고 비참한 일이지만, 십자가에 죽을 만큼 중요하고 사랑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알고 부러워하기까지 했던 윤동주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편히 잘 살기 위하여 돈을 벌고 성공을 합니다. 돈을 벌고 성공을 하면 삶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 편히 살면 행복해 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삶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건강해지지도 않습니다. 그 성공과 부요함이 가져다 준 편안함이 우리를 오히려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경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성공 속에 패망인자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30년을 넘기는 기업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원칙은 교회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흥과 성장 속에 패망인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무서운 부흥과 성장을 경험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힘들고 어려울 때 부흥하고 성장하였는데, 막상 부흥하고 성장한 후에 자충수를 두며 급격히 몰락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성공 속에 있는 패망인자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패망인자 중에 하나를 저는 대형교회의 부자세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업과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성공 속에 패망인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많은 성공한 사람들을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잠이 부족한 수험생들을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정말 우리 국어 선생님 말씀과 같이 쥐약 생각만 났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고 열심히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막상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된 후 저들은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을 죽을 때까지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바울은 참 성공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6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사도바울은 인간적으로 성공한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당시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 시민권자였고, 학문도 높았고 집안도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편히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줄을 안 후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정말 배설물처럼 버리고 자기 한 목숨을 십자가에 걸어도 좋을 만한 일을 위하여 죽을지 살지 모르는 삶을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가나안 농군 학교를 세우셨던 김용기 장로님이 간암에 걸리셔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으셨을 때 의사들은 요양을 권하셨지만 김 장로님은 반대로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이곳, 저곳을 다시시면서 아픈 몸을 이끄시고 강연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근사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아픈 몸을 이끄시고도 할 강연이 있고 말씀이 있고 일이 있으셨던 장로님은 참으로 잘 사신 분이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남강 이승훈 장로님도 민족대표 33인 중에 하나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이 이승훈이가 이부자리에 누워 죽을 줄 알았더니 이제야 죽을 자리를 찾으셨다며 기뻐하셨다는 것을 책을 통해 읽으면서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리에 욕심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일에 욕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일도 살 일이 아닌 죽을 일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은 85세 나이가 되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의 훌륭한 제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자기를 제치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시험에 들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가장 힘든 사람이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평생 여호수아를 시기하며 여호수아에게 가시같은 삶을 살았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갈렙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의 충실한 부하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여호수아 못지않게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장로를 선출하는 날입니다. 갈렙과 같이 자리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죽을 일에 연연하는 사람이 우리교회의 장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장로에 선출되지 않아도 장로에 선출된 사람들을 시기하지 아니하고, 방해하지 아니하고 잘 섬길 줄 아는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렙의 관심과 욕심은 자리가 아니라 일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도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산지를 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85세 였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85세 된 노인이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씀하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전율을 느끼게 할 만한 참으로 근사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러시아에 선교사로 나가 계시는 윤영애 권사님이 60이 넘어 선교사로 나가시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 갈렙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편지나 메일을 보내실 때는 윤갈렙이라는 이름을 자주 쓰십니다. 제가 동안교회에 있을 때 수요일 저녁에 여호수아를 강해하면서 오늘과 같이 갈렙에 대한 설교를 하였는데 그때 그 설교에 감동을 받고 결국 노년에 갈렙과 같이 젊은이도 가기 힘든 러시아 볼고그라드 노보니꼴스꼬에로 가신 것입니다.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 사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들은 모두 성공 속에 있는 패망인자에 당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과 삶을 정말 성공적으로 끝마친 몇 안되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에는 크게 두 종류의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자면 살기 위하여 하는 일과 윤동주 시인의 표현과 같이 말하자면 죽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잘라 이야기하기는 좀 어려우나 보편적으로 볼 때 은퇴 전의 일은 대개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일이 하찮다거나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퇴 후에도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은퇴 없이 죽을 때까지 돈만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훌륭한 일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는 사람은 절대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은퇴 후에도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은퇴 후의 일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은퇴 전의 일보다 더 근사하고 훌륭한 일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하는 일입니다. 벌기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 열심히 벌었던 것을 잘 쓰기 위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돈을 벌 때 보다, 자신만을 위하여 살 때보다 비교도 되지 않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삶이 건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편히 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고 편안한 집에서 크고 좋은 차를 타면서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골프를 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행복한 삶을 원하신다면 절대로 그런 꿈을 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와 같이 꿈같은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 여러분들 중에 만일 계신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듣고 그 꿈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죽을 때까지 놀지 마시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갈렙이 도전하였던 산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공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수고하여 얻은 부와 성공을 그냥 편히 골프나 치면서 낭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수고하여 얻은 부와 성공을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산지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한지 5년 만에 주일 장년 출석이 4천명에 가까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유명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냥 우리 교회만 생각하면 학교에서 셋방살이 하지 않아도 되고 넓고 좋은 땅을 사어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 편히, 정말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교회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가르쳐 주는 식에 의하면 별로 근사한 일이 아닙니다. 훌륭한 일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산지에 도전하는 것이 근사한 일입니다. 십자가에 도전하는 일이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의 힘을 열매 나눔 재단과 같은 곳에 쏟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 제일의 부자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입니다. 두 번째 부자는 주식투자로 세계적인 부자가 된 워렌 버핏 회장입니다. 빌 게이츠 회장은 빌 앤 멜린다 재산이라는 사회복지 재단을 세웠습니다. 2006년 6월 현재 재단의 기금은 약 292억 불이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약 27조원 정도가 됩니다. 엄청난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재단은 아프리카와 같은 빈민 국가의 질병 퇴치와 같은 단위가 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대륙 전체를 질병에서 구출해 내는 것과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세계 두 번째 부자인 워렌 버핏이 최근 370억 불이라고 하는 어마 어마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자기 총 재산이 440 억 불인데 그 중 370 억 불을 기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자기도 재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70 억 불 중 300억 불을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빌 앤 멜린다 재단에 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운영하는 재단보다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이 더 훌륭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상이 안 가도록 놀랍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가히 가진 자들의 혁명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래도 워렌 버핏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돈이 70 억 불이나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압니다. 제 사고방식대로 말하라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70억 불이라고 하는 돈만 해도 물론 상상이 가지 않는 돈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그는 여전히 부자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부자들을 인정해 주고 존경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자들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도 자기 재산을 자녀들에게 다 상속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천만 불씩 이상의 돈은 주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천만 불도 100억 원 가까운 돈이니 큰 돈임에 틀림이 없지만 빌 게이츠 같은 부자가 자식에게 그 같은 돈만 물려주고 자신의 그 많은 재산을 다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 열번째 부자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 부자인 싱가폴의 리카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재산은 182억 불이라고 합니다. 그가 최근 자기가 세운 복지 재단에 재산의 1/3인 62억불을 기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영향을 받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리카싱 재단이 자기의 셋째 아들이라고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자신의 재단이 셋째 아들이어서 재산의 1/3을 상속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근사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재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 교회에서 그런 사람이 먼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꼭 많아야만 훌륭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 그리고 리카싱과 같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갈렙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공 속에 패망 인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하여 편히 살자는 일반적인 생각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저녁 먹고 자는 삶 속에 행복은 없었습니다. 아마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 노년에 편히 크고 좋은 집에서 골프만 치며 사는 삶에도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갈렙과 같은 삶에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이 산지 같이 생각하고 쉽게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 특별한 삶에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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