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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살자 (에베소서 5:15-20)

by 【고동엽】 2022. 8. 26.

지혜롭게 살자    (에베소서 5:15-20)

1974년 미국 정부는 자유의 여신상을 새롭게 손질하면서 생긴 고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광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열 달이 지나도 쓰레기 처리에 응하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유대인 장사꾼이 나서서 조건 없이 계약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뉴욕의 운송회사들은 그 유대인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뉴욕 주의 쓰레기 처리규정이 워낙 까다로워서 잘못했다가는 환경단체의 고소를 당해 벌금을 물게 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을 때, 그것을 산 유대인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그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쇳조각을 녹여서 작은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고, 석회와 목재는 가공한 여신상의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연과 철로는 뉴욕 광장의 열쇠를 만들었고, 심지어 자유의 여신상을 싸고 있던 회색철도 잘라서 꽃집의 포장지로 팔아넘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3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고철 쓰레기에 불과했던 폐기물이 350만 달라의 거금으로 둔갑했습니다. 자본 투자에 비교하면 수천 배의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그러자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머리를 잘 쓰기만 해도 막대한 재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유익, 곧 영적인 유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물질적 풍요와 그 보다 더 큰 영적인 유익을 가져다 주는 지혜로운 삶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 모두 그러한 지혜를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지혜인데,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 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표현은 잠 1:7, 9:10에도 나옵니다. 여기서 '경외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레'는 '두려워하다'는 뜻도 있지만, 부정적인 두려움보다는, ‘두렵지만 이끌리는’ 긍정적인 두려움을 말합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며 오직 그분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Anderson).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의 변화’를 지향합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곧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정도로 기독교를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그 모든 세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출세의 정상에 서 있었던 바울도 예수를 만나고 나서는 오직 예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사는, 헌신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지위, 재산, 학벌, 가정을 버리고 떠돌이나 다름없이 살았던 바울을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불쌍하고 어리석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오직 그 복음에 자기 일생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동시적”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만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실상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하며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절규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베드로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만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되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4:8)라며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사람 낚는 어부’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알 때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최고로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매일 주님을 찾고, 특별히 예배와 기도 시간 마다 주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찾게 되시길 바랍니다.

2.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은 평생을 남편의 외도로 자식 셋을 혼자 키우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삯바느질을 해서 자식들을 가르쳤는데, 다행히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나왔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해서 집까지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중풍이 들어 같이 살던 여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들것에 실려 들어 온 것입니다. 그 권사님이나 자식들은 도저히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엔 바람이 나서 가정을 내팽개치더니, 이제 다 늙고 중풍이 들어서야 아내와 자식들에게 돌아왔으니 누가 반기겠습니까? 하지만 그 권사님은 교회 목사님의 권면을 듣고 남편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자식들도 집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거들 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비참하게 말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곧잘 하는 이야기가 ‘세월은 금방 간다’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 젊음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 총알같이 세월이 지나갑니다.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세월을 아끼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라 착각하며, 세월을 허비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자에게 경고합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주어진 귀한 기회를 잃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돈도, 지식도, 건강도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배움의 기회, 일할 수 있는 기회,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 협력할 수 있는 기회, 용서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까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기회를 선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고 게을러서 이 기회를 잃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더 늙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또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합니다(17절). 우리가 아무리 세월을 아껴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열심일 뿐이라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2:17-21에는 이와같은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부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뜻만을 내세우고 그것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의 모습은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어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과연 우리가 지금 사는 그 모습입니까? 우리는 지금 단지 내 생각대로, 내 지식대로, 내 경험대로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 가운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을 분간할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느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하는 일,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공중파 TV 방송국에서 9시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미국의 특파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예수를 만나고는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신학을 공부해서 미국의 어떤 교회에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야 나의 일을 찾았다’고 감격해 했다고 합니다.
물론 목회자나 선교사만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도 훌륭하게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일은 단순한 ‘밥벌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단지 ‘밥벌이’만 하다가 간다면 그처럼 허무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적으로는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쁨과 충성으로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4. 성령 충만한 힘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똑똑하다고, 돈이 많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합니까?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18절에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성령 충만’을 감정적 흥분이나 종교적 신비주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 이성적인 사람들은 ‘성령 충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무관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그 어떤 어려움이나 환란이나 풍파나 역경도 이겨나갈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또한 연약한 자기를 알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본문에서는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엡 5:18)라고 하면서 ‘술’에 의지하지 말라고 했는데, 술 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무엇인가에 취해보고 싶어 합니다. 이는 그 어디에도 자신이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 도박, 쾌락 같은 것에 쉽게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기댈만한 것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에 빠진 사람을 비참하게 파멸시켜 버리고 맙니다. 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을 받아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헛된 길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세월을 아끼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성령 충만하여, 언제나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날마다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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