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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하나님을 쉽게 믿지 말라(4) (마 8:5-13)

by 【고동엽】 2022. 8. 26.

  하나님을 쉽게 믿지 말라(4)  (마 8:5-13)

    스위스 제네바시에 쁠랭빨레는 광장이 있습니다. 그 광장 옆에는 120년의 역사를 가진 예배당이 하나 있습니다. 근간에 그 예배당이 술집을 차렸습니다. 서구 교회는 예배당이 식당이 되고 예배당이 창고가 되는 사례들은 더러 있습니다. 예배당이 술집으로 변한 것은 서구 교회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술집은 좀 별납니다. 그 예배당에 술집을 차린 주인이 누구냐 하면 그 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래서 충격을 줍니다. 그 지방 신문기자가 담임 목사에게 가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왜 예배당에 술집을 차렸습니까? 그는 "오늘날 제네바에 모든 젊은이들이 다 술집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예배당 안에 술집을 차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젊은이들이 술집에 몰려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교회로 불러오기 위하여 예배당 안에 술집을 차린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수 없는 교회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교회와 이런 지도자들을 어떻게 다루실 것인지는 두고 봐야 되겠습니다. 이 목사님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말씀의 능력보다 술기운을 더 믿는 것 같습니다. 술집을 통해서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겠다는 하나의 웃지 못할 해괴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은 같은 건물 안에 술집이 있고 그 술집에는 재즈밴드가 있습니다. 술집에 어울리는 조명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 편에는 예배당이 차려져 있는 그런 구조입니다.

     하인을 사랑한 지휘관

     오늘 이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는 백부장의 신앙고백에서 말씀의 절대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고 그 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첨가할 필요가 없는 절대의 말씀이요 절대의 진리라는 것을 우리 앞에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로마인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을 때 이 백부장이 예수님께 오셨습니다.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관심 있게 관찰하고 오늘 우리도 백부장의 믿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은 독실한 신앙인인데 그의 신앙의 첫번째 형태는 하인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내 하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병든 하인은 상관의 관심 밖일 수 있습니다. 부하노릇도 못하는 하인 군인노릇도 못하는 그 하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하인의 그 고통, 하인의 그 딱한 처지, 하인이 중풍병으로 앓고 있는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과 똑같이 내 하인을 고쳐달라는 것과 똑같이 내 하인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모습은 대단히 아름다운 상관의 자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를 소개하는 이 성경은 다른 것 이전에 하인을 향한 그의 독실한 사랑. 그 병든 하인을 불쌍히 여기는 이 백부장의 믿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보이는 사람을 향한 관심이 사랑의 척도로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처럼 당연히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서 좋은 일 하나 할게 없을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을까 궁리를 하는데 그 어느 날 밤에 잠이 잘 안옵니다. 그래서 그는 평복을 입고는 야전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남북 전쟁때 부상을 입었던 그 군인들이 아직도 고통하고 있는 그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자들을 이리저리 돌아보는 중에 한 병사의 손에 뭔가 들려 있습니다. 한쪽에 종이, 한쪽에 펜을 들고 뭘 쓰려고 하는데 글이 잘 쓰여지지 않습니다. 링컨이 다가가자 그 병사는 미안하지만 내 편지를 대신 좀 써 주겠냐고 부탁합니다. 링컨이 쾌히 그 병사의 편지를 대필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마 저는 살아서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나라를 위해서 용기 있게 싸웠어요. 어머니, 정말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후에 천국에서 만나요."
      병사가 불러 주는 되로 링컨이 편지를 씁니다. 그 병사의 이름을 싸인하고 그 밑에다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이렇게 싸인을 했어요. 그 병사가 대필해준 그 편지를 받아서 보니까 자기 편지를 써준 그 분이 대통령입니다. "각하 감사합니다." 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아니요. 감사는 내가 해야 돼요. 당신은 바로 나를 위해서 싸웠고 미국을 위해서 싸웠오. 당신은 바로 나의 가족이요. 나의 아들이요. 당신은 미국의 아들이요." 그 병사는 링컨의 손에 붙잡힌 채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중에 링컨은 그 병사에 뺨에다가 키스를 하면서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냈습니다. "my son, merry christmas(내 아들아, 복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말씀으로만의 믿음

     여러분, 신앙인은 아래 사람을 사랑합니다. 위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은 나보다 연약한 자, 나보다 아래 사람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사랑하고 돌보아주는 것으로 그 믿음이 고백되어지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하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께서 그 하인 이 백부장의 간청을 듣고는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백부장은 유명한 신앙고백을 8절에서 합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백부장의 신앙고백입니다. 믿음은 말씀의 절대성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말씀 외에 것이 필요하다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불신앙은 언제나 말씀에 세상 것을 첨가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믿음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말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말씀 더하기 지식이 있어야 되고 말씀 더하기 돈이 필요하고 말씀 더하기 자존심이 필요하고 말씀 더하기 어떤 세상의 것들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으로만 되는 겁니다. 이 진리를 오늘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 계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믿음을 온전케 하는 완전함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만 안되는 교회가 술집으로 된다는 말입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말씀 외에 것을 나도 모르게 첨가하여 살고 있는 불신앙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청산하고 정비하지 아니하면 말씀의 진리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믿음의 깊은 은혜를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삶 속에 뿌리내린 믿음

     백부장의 이 신앙고백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9절에 나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이 믿음을 자기 생활 속에서 배웠다는 겁니다. 백부장도 지휘관입니다. 자기를 부하를 보고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갑니다. 지휘관의 말은 생명입니다. 지휘관의 말은 곧 결과입니다. 지휘관의 말을 불복종하면 곧 죽음입니다. 자기 자신이 부하들을 향하여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갑니다. 지휘관의 말씀은 곧 권능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에 주되신 주께서 말씀하심으로 내 하인이 나을 줄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활 속에서 그 원리가 뿌리를 박고 있어야 됩니다. 그의 삶 속에 뿌리박은 믿음, 그 믿음은 곧 예수님 앞에서도 말씀으로 만의 믿음으로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하여 주님은 극찬을 했습니다.
     1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중 아무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이 말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는 이만한 믿음이 없다. 그리고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더욱 극찬하는 것입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이런 믿음이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신에 처해 있지만 이방인 이 백부장이 놀라운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그 당대 최고의 믿음으로 극찬을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땅위에서는 만점 신앙인을 우리 주님이 추천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백부장의 믿음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길래 주님이 그렇게도 극찬하시는가. 저는 이것을 한마디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의 균형'이라 것입니다. 여러분, 균형은 아름답습니다. 균형은 미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는 것은 화려함이 아닙니다. 균형입니다. 균형이 있을 때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균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는 하인을 사랑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ale음이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균형을 보게 됩니다. 백부장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 뿌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을 뿐 아니라 하인을 사랑하는 뿌리가 깊이 박혀있고 자기가 백부장으로서 그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가 깊이 박혀있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균형이 예수님을 그렇게도 감동시킨 믿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균형을 가져야 됩니다. 너무 영적으로만 치우치면 안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과 이 모든 것을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어떤 분하고 전화를 나누었는데 이분이 건강에 장애가 와서 채식을 한다고 내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채식을 육개월 작정하고 한답니다. 그런데 채식이라 할 때 고기 외에 다른 것 다 먹는 채식은 저도 부담이 없다고 봅니다. 오곡백과를 다 먹고 채소도 먹는 채식이야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채식은 좀 별납니다. 아주 제한적인 채식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께 권면을 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수도원에서 가만히 은거하면서 요양을 한다면 채식을 해도 괜찮겠지만 당신이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먹고 되겠느냐. 뭔가 조금 치우친 것 같으니 한번 더 재고를 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어쨌든 모든 일은 균형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백부장의 믿음을 그렇게 극찬한 것은 이 사람의 믿음이 선지자나 제사장의 어떤 경지에 믿음으로 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의 균형입니다. 믿음의 균형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보는 믿음

     그리고 예수님은 그 다음 성구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 앞에 줍니다. 11, 12절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쫒겨나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구절에 큰 의미가 숨어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의 미래를 보고있는 겁니다. 미래의 소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던져질 것이다.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 메시야를 거부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백부장과 같은 이런 신앙인은 역사의 소망이 될 것임을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역사의 소망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오늘 이 현실의 소망입니다. 이 나라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그 믿음의 자리에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 가장 영향력 있는 빌 하이벌스 라는 목사님은 수천명의 목사님들에게 "목사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빌 하이벌스의 이 말은 목사가 교회를 위해서 줄 수 있는 최고 선물은 목사 자신의 건강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건강의 요건이 네 가지입니다.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영성의 건강, 비전의 건강입니다. 만약 교인들이 목사를 볼 때 마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목사님의 모습, 정신적으로 건강한 목사님의 모습, 영성으로 건강한 모습, 비전으로 건강한 모습을 본다면 그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최상의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목사가 시들어지면 이건 교회에 가장 걱정스러운 일을 끼치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목사에게만 해당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 현실에 보면 나이와 관계없이 신체장애를 받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젊은 청년들 중에 정신이 시들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영성이 시들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꿈이, 비전이 시들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면에서 건강한 자기 모습을 하나님의 교회에서 보여줄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가 이 네 가지 면에 건강함들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곧 균형입니다.

     예수님이 싸인한 믿음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되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에 싸인을 하신 겁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오늘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싸인을 받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재자가 싸인 하면 그대로 됩니다. 우리가 믿으려면 믿음대로 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으로 안될 믿음은 처음부터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은 믿음대로 된 믿음이었습니다. 그 하인이 나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자리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결재를 받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여행객 한 사람이 불란서 여행을 했는데 그 시골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목걸이를 하나 염가로 샀어요. 그런데 귀국할 때 세관에서 이 목걸이를 그 자국 세관 그 검사관이 이리 저리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더니 세금을 메기는데 엉청난 세금을 메기는 것입니다. 항의를 했습니다. 이건 제가 여행 중에 염가로 산 거라고 여기 영수증을 보라 고작 이렇게 구입을 했는데 이렇게 비싸게 세금을 메기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항의를 했어요. 그때 검사관이 하는 말이 선생님이 구입한 이 목걸이는 대단히 귀한 고가의 목걸이입니다. 그리 아시고 세금을 내십시오. 영문을 모른채 이 사람은 고가의 세금을 물고 그 목걸이를 가지고 호기심이 나서 여명한 보석상에 가서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그러자 그 감정사가 흥분을 합니다. 그 감정사가 이 손님을 붙잡고는 당신은 보물을 가졌습니다. 이건 대단히 귀한 유물입니다. 사연을 알아보니까 그 목걸이 핀에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현미경으로 확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싸인이 있었어요. "조세핀에게 보나빠르트 나폴레옹"이라는 싸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싸인이 그 목걸이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유물로써 가치를 준 것입니다.

     맺는 말

     여러분, 우리의 속에 하나님의 싸인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령의 인치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싸인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싸인은 이 땅위에 보물의 가치로써 계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생의 보장이 있는 싸인입니다. 이 성령의 싸인을 받은 우리는 거기에 맞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그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됩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의 믿음에 하나님의 놀라운 믿음의 기적이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날마다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과거의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의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오늘의 믿음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거듭 거듭 역사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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