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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쉽게 믿지 말라(3) (마1:18∼25)

by 【고동엽】 2022. 8. 26.

하나님을 쉽게 믿지 말라(3)  (마1:18∼25)
  
요즘 온 세계에 뉴스를 몰고 다니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들이를 하면 세계의 뉴스가 집중하게 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입니다. 왜 이 사람을 주목하느냐 하면 미사일 때문입니다. 미국이 주목을 하고 남한이 주목을 하며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로마 교황입니다. 로마 교황이 나들이를 하면 온 세계뉴스가 집중을 합니다. 그만큼 그는 이 시대에 또 하나의 인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티벳 라마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입니다. 이 사람도 나들이를 할 때마다 세계뉴스가 주목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몇 차례 초청이 되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올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8월 축제가 있습니다. 2000년 8월 축제 때 달라이 라마를 제네바 시에서 초청했습니다. 제네바의 대표적인 교회라 할 수 있는 쌩 피에르 교회가 주일예배 때 달라이 라마를 설교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서구교회의 타락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제네바 시민들이 오천명이나 모였다고 합니다. 스피커로 삼천명이 예배당 밖에서 달라이 라마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주제는 『행복』이었습니다. 별다른 의미도 없는 일반적인 행복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서구 사람들은 지금 달라이 라마의 그 소리 한 마디에 심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네바 일정을 마치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센츄럴 파크에서 오만명이 모인데서 그는 다시 설법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CNN방송에서 달라이 라마 특집을 구성하여 방송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대 내부에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그대의 내적 마음입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창조주는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그대의 마음이라는 불교의 전형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생명의 창조자 하나님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하나님은 창조주임을 우리 앞에 선언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인간의 생과 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이 남자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처녀 마리아의 몸에 아이를 잉태시키고 출산케 하셨습니다. 메시야가 마리아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생명은 곧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인 것입니다.
      창조자는 전능자와 같은 뜻입니다. 전능자는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사조는 이 세 가지 개념을 부정합니다. '우리 밖에 창조주는 없다. 전능자는 없다. 절대자는 없다. 당신의 마음이 창조주요. 당신의 신념이 하나님이요. 당신의 사상이 하나님이요. 당신이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이 하나님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명백하게 보여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것을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는 이는 창조주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몸을 지으시고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어도 영혼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멸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참새 한 마리가 팔리는 일도 인간은 예사로 생각합니다. 참새 한 마리의 생명이 죽는 것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도 기억하시며 주목하고 계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30).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시며 머리털 하나의 운명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가 빠져서 땅에 떨어질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머리카락 하나가 없어지는 일에 대해 무슨 관심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머리카락 하나의 운명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창조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저는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을 진정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으십니까?' 이 고백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신앙고백이 우리 앞에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은 말씀 한 마디에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의 명령 한마디에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혼자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호와가 창조주이심을 믿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이제는 그 분이 쓰시는 도구가 되는 자리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홀로 이 땅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라는 부부를 통하여 메시야가 잉태되고 출산되고 양육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몸을 빌려 이 땅에 나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 자신들이 이제 큰 숙제를 하나 풀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목수는 굽은 못을 바로 펼 때가 많습니다. 사용한 못은 굽어 있습니다. 그 굽은 못은 바로 다듬어서 사용을 합니다.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굽은 못을 펼 때 성령의 능력을 구하지 않으셨다.' 못은 망치를 가지고 두드리면은 펴집니다. 예수님이 목수 일을 하시면서도 굽은 못을 펴기 위해 성령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망치로 못을 펴셨습니다. 이 망치가 못을 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모든 일을 스스로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망치로 쓰십니다. 자기를 믿는 자들을 파트너로 사용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그 하나님의 요구 앞에 도구로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

      마리아가 잉태된 것이 6개월만에 나타났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그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마리아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여,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마리아는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당연합니다. 남자와 관계를 한 일이 없는 마리아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천사를 붙잡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천사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이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된 것을 알고는 파혼하려고 작정했습니다. '저 여인을 내가 데려오다간 패가망신하겠다. 파혼을 하자.' 그 마음을 먹고 있는 날 밤에 가브리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아라.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 천사가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네 아내 마리아를 버리지 말고 데리고 와서 그 아기를 낳도록 하라고 두 남녀에게 꿈에 현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이 두 남녀는 천사 가브리엘의 증거하는 그 말씀 앞에 "아멘"을 했습니다. 천사가 전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믿습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 마리아는 "네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그 아이가 메시아라, 그가 예수라, 네가 그 예수를 잉태하였느니라"고 하나님이 일러줄 때에 "주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를 믿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요셉도 아멘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책임감과 책임완수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믿음의 첫 부분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아멘을 한 그 이후부터 또 다른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은 일종의 남자로서의 책임감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 아멘 한 것도 책임감입니다. 내가 이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해야 된다는 책임감입니다. 믿음은 책임감입니다. 믿음의 고백은 책임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감만으로는 믿음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메시아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희생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감과 책임완수는 다릅니다. 우리는 곧잘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책임완수는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책임감을 고백하는 믿음과 그 믿음에 따라오는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책임을 완수하시는 자를 통하여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두 가지 영성의 뿌리

      그래서 믿음은 두 가지 뿌리를 가져야 됩니다. 요셉이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데리고 오면 요셉과 마리아는 다 죽습니다. 천사의 지시를 받았지만 마리아를 데리고 오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목숨을 건 모험입니다. 마리아를 데리고 온 그 때부터 요셉은 이제 고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숨겨야 됩니다. 이 역할을 요셉이 해주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천사의 말씀 앞에 '아멘'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아멘을 한 후 6개월 동안이 더 어려웠습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출생했습니다. 그때부터 따라온 것은 환영이 아니라 헤롯대왕의 핍박이었습니다. 헤롯이 메시아를 죽이려는 무서운 흉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핏덩이를 안고 요셉과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아멘 했던 그들이 그 아멘에 따르는 책임완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은 희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창조주 하나님이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서 메시아 탄생사건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뿌리를 두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뿌리가 박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은 이 땅의 것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까지 뿌리가 뻗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둔 영성,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또 하나는 현실에 영성을 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아멘'하는 이 뿌리와 아멘대로 살기 위해서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고난을 극복하는 뿌리가 있어야 됩니다. 현실에 뿌리를 둔 영성이 있어야만 믿음이 됩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데서 여호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서의 믿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약의 요셉과 구약의 요셉은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똑같은 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믿음의 사람 이였습니다. 요셉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믿음이 하나님께 뿌리가 박혀 있지만 그의 현실은 종살이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는 현실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려다가 유혹을 당하고 모함을 당하고 감옥에 투옥되는 것이 요셉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 속에 요셉은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크리스찬들은 이 두 가지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은 책임감의 고백과 책임완수의 실천이 따르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입술의 고백만 있고 책임완수를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헌신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파트너가 될 수 없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파트너입니다. 그들을 주님이 쓰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순종도 억압적인 순종과 강압적인 순종이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은 그들 자신이 목숨을 건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누구 때문에 하는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그 말씀에 대한 신앙고백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위험을 알고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 믿음이 하나님께 뿌리가 박혀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현실 속에 이 뿌리가 박힌 믿음을 가지고 사셔야 됩니다. 여러분의 직장 속에 여러분의 사업 속에 여러분이 발을 옮기고 있는 그 현실 속에 여러분의 인간관계 속에 우리 믿음의 뿌리가 박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맺는 말

      전능하신 하나님은 홀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쓰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은 참 멋있는 분입니다. 휴가에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가면 가장 멋있는 파트너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쓰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까지 나를 쓰시면서 만족하신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나의 믿음이 하나님이 쓸만한 믿음인가? 나를 쓰시면서 하나님의 속이 얼마나 타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지 아니하신 것은 한번 이 땅에서 멋있게 쓰고 데려 가려고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분 앞에 쓰임받는 도구로 사십시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너무 쉽게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쉽게 고백하지 마십시오. 그 고백에 따른 책임완수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쓰십니다. 믿음의 뿌리를 점검하십시오. 우리 믿음은 하늘나라에 뿌리가 있는 반면 우리 현실 속에도 뿌리가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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