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헝그리 마술사 (사도행전 8:14 ~ 25)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8:14-25
사람이 제일 지키기 어려운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을 잘 지켜 늘 좋은 동기를 지니고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음에 품은 악한 동기 때문에 망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동기가 좋으면 결과가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기가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 이야기는 이미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빌립 사도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빌립을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시몬은 빌립이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동안 마술에는 자신이 최고라 여겼는데 자기보다 더 큰 인물이 나타난 것입니다.
빌립 사도의 소식이 예루살렘까지 들리자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습니다.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그들은 성령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 하시고 성령을 체험 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악한 동기가 다 녹아지고 선한 동기를 갖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믿기로 작정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성령을 체험하고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빌립 세 사도가 같이 일을 하자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가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신앙이 성장한 후에도 필요에 따라서 기적을 보여 주시지만, 아직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은 신앙의 초기에 특별한 역사를 보여 주셔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한 그들에게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 기둥을 보내시고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바위에서 생수를 나게 하시고 적들을 물리치는 등 여러 기적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세워 주셨습니다. 중국에서도 공산주의 이후 기독교가 처음 전파될 시기에 이상한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슬렘 국가에서도 선교사들이 사역 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슬렘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그동안 마술로 대단한 인기와 권력과 부를 얻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사도들의 기적은 자기의 마술에 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저 권세와 능력만 얻을 수 있다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몬의 믿음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중을 따라 다니는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그냥 좇아하는 것입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13절)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 때 뉴욕에 집회를 갔다가 어떤 분과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미국에 오기 전 서울에서 7년 동안 열심히 믿었습니다.” “오, 그래요? 요새는요?” “안 믿습니다.” 미국에 온지 14년 동안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믿음’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 다닌다고 따라 다니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 두 사람의 관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처럼 “영접하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족들이 가니까 그저 좇아가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 다니며 교회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나 성령이 없었습니다. 성령 체험을 통한 마음의 변화,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기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는 사마리아에서 최고의 인물이다. 빌립의 능력을 가지면 그가 떠난 후 내가 이 동네를 다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와서 돈을 내밀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능력을 나한테 주시오. 나도 당신처럼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내 앞에서 쓰러지고 무릎을 꿇을 것이오.” 세례는 받았으나 성령이 없으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그를 책망했습니다. “너는 참 잘못됐다. 예수의 대한 신앙보다 기적에 관심이 더 많구나.” 시몬에게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더 중요했습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도, 하나님도, 진리도, 성령도 관심거리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옆에 있는 분에게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하시더군요. 물론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예수 믿으면 치아가 튼튼해지고, 아들 낳고, 좋은 대학 갈 줄로 생각할 것 아닙니까! 시몬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관심보다 기적과 능력을 받아 자기가 더 빛나고 권세를 얻고 돈을 많이 벌어 자기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무슨 사업을 해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업이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자기 사업이 잘 되면 거기 머물고 안 되면 더 큰 교회로 또 옮깁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경배하고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섬기고 그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혜택, 그 꿀맛, 그것을 좇는 것입니다. 시몬은 돈을 주고라도 기적의 능력을 사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흔들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임을 시몬은 모릅니다. 시몬은 결국 돈과 함께 망할 사람이요, 돈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물질만능주의자로 빠질 사람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작은 교회에서 한 분이 헌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니까 금방 그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장로가 되고 교회의 재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장로가 교회 건축헌금 전부를 자기 사업에 투자해서 날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시몬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일으키고 자기를 드높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사람에게 “돈이면 모든 것을 하고 돈이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고 교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시몬에게는 자기의 권력과 돈과 인기가 전부인데 돈과 함께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 알았느냐? 너는 네 돈과 함께 망하리라! 하나님 외에 무엇이라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그 권력과 인기와 지식과 돈과 함께 망한다!” 베드로 사도의 경고입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을 꿰뚫어보았습니다. 그의 동기가 좋지 못합니다. 믿는다고 했던 것도, 세례를 받은 것도, 빌립을 좇아 다닌 것도, 보고 놀란 것도 그 속에는 나쁜 동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다 보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동기, 마음속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권능만 받아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 겨우 예수 믿겠다고 출발한 네가 사도처럼 되어 큰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다니, 회개하라! 그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절) 마음속을 뒤집어 고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녹아서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바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시몬은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절) 베드로는 마음이 비뚤어지고 동기가 나빠서 불의한 것,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책망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 회개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바로 무릎을 꿇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당신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하고 회개를 해야 했지만 시몬은 “그러지 말고 나를 위해 기도 좀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내가 다스려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스려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회개하면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동기가 선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아들의 죄를 대신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죄는 엄마가, 아빠의 죄는 아빠가 회개해야 됩니다. 내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했으면 내가 기도하고 회개 해야 합니다.
어느 사업가 남편은 부인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기도 좀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도하라고 하니까 부인이 잠도 잘 못자고 힘들어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그 사업가를 만나서 말했지요. “다음부터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하십시오. 당신 사업을 놓고 당신이 먼저 기도하고 아내에게 기도를 요구하십시오.” 나는 기도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나는 기도하지 않고 중보기도위원들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안 됩니다. 시몬은 “재앙이 나에게 나타나지 않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동기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그것 때문에 나타날 결과만 두려워하는 겁니다. 마음만 고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마음의 동기를 바꾸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고 베드로가 말했으나 그건 하지 않고 재앙을 받지 않게만 해 달라는 겁니다. 본문을 계속 읽어보면 기도해줬다는 말도, 용서해줬다는 말도,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다른 사마리아 많은 지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후에 시몬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성경에는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전해지는 전설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레니우스라는 초대교회 목사님이 쓰신 글에는 시몬이 베드로에게 혼이 난 후 사마리아에서 두로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사마리아는 남쪽, 예루살렘 인근 지역이고 두로는 북서쪽 해변 지역입니다. 지금은 티레(Tyre)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번 레바논 전쟁에서도 피해를 봤던 지역이지요. 두로로 이사한 시몬은 헬레나라는 창녀를 돈을 주고 사서 데리고 다니면서 “이 여자가 내 생각의 첫 번째 개념이요, 만물의 어머니다. 천사들과 천사장들이 다 이 헬레나를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잘못되었으니 그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모든 세계의 만물이 되어지는 것들은 천사들이 만든 규율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천사들이 주관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제롬이라는 사람은 교황의 비서로서 ‘라틴 벌게이트’라는 라틴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분의 글에는 시몬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내가 보혜사다. 내가 전능자다.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 때는 정신병원이 없어서 넣지도 못한 것 같아요. 당시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믿었어요. 그 사람들도 정신이 없지요. 우리나라에도 “내가 메시야”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지요.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소리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시몬과 같은 사마리아 사람인데, 로마 클로디우스 황제 때 시몬이 로마에서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신으로 섬김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티베료 강가의 동상에는 “거룩한 신, 시몬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로마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섬기고 동상까지 세웠다는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클레멘타인의 책에는 베드로와 시몬이 계속 대적했다고 합니다. 마술을 행하는 시몬을 베드로가 비판하고 두 사람은 신학적 논쟁도 했다고 합니다. 시몬은 “두 가지의 신이 있는데 구약의 신은 불완전한 신이다.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고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내가 메시야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마지막으로 뭔가를 제대로 보여 주려고 “내가 이제 부상(浮上)해서 하나님을 향해 갈 것이다. 보라!” 하고 자기를 공중에 붕 뜨게 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자기 몸을 공중에 띄우는 마술사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공중에 떴는데 둥근 테로 앞뒤좌우를 둘러도 걸리는 것 없이 공중에 떠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를 뿐 신기한 환상이지요. 시몬도 날아서 하나님께로 간다고 자기를 공중에 띄웠는데, 베드로가 밑에서 “주여, 떨어뜨리시옵소서!” 기도했더니 시몬이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저 사람, 나쁜 거짓말쟁이군!”하며 모질게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 시몬은 숨을 거두기 전에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아직 안 살아났다고 하네요. 시몬은 이렇게 인생을 끝낸 겁니다.
이런 시몬 때문에 ‘simony’라는 영어단어가 생겼습니다. 성직을 매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중세 시대에는 교황이 돈을 받고 성직을 팔았습니다. 시몬의 이야기는 마음의 동기와 생각이 잘못 되어 불쌍한 인생을 마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따른 사람들이 많았지만 초대 교부인 오리겐은 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동기는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을 하거나 행동하거나 결정할 때 좋은 동기, 순수한 동기로 할 수도 있고 이기적이고 나쁜 동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겉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없고 동기를 잘 알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저래서 저렇구나!’ 그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남의 동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내 생각, 내 순수한 동기만은 내가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성령 충만함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정결해지길 바랍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늘 성령의 도움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깨끗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동기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좋은 동기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조심하지 않으면 자꾸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속으로는 안 그러면서 겉으로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에도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려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그렇게 살짝 하라고 하십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신중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적어두셨습니다. “네 당대뿐만 아니라 네 후손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시리라.” 기도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응답해 주신다는 겁니다.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금식 때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 어느 부서를 섬길 때도 그렇습니다. 은밀하게 내 마음속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만약 성령께서 잘못된 동기를 조명해 주시면 그 즉시 바로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푸셔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좋은 동기가 있나요?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한 동기를 가지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서 우리의 삶에 많은 은총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출처/김상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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