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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성실한 청지기 (눅12:36 ~ 48)

by 【고동엽】 2022. 8. 26.

  성실한 청지기  (눅12:36 ~ 48)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12:36-48

사람의 일생을 살펴볼 때 그 결과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큰 철도회사에 사장이 새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직원은 새 사장이 30년 전에 자기와 같이 일했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앤더슨! 자네가 우리 회사 사장이 되었군. 30년 전에 우리는 하루 5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었나!” 라고 말했습니다. 사장은 “아, 정말 오래 전 이야기야! 그런데 나는 5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철도사업의 발전을 위해 일했다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의 출발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죽도록 일하고 하루에 5불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국가의 철도를 위해서 헌신하였기에 30년 뒤 그 회사의 사장으로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실한 청지기”와 “악한 청지기”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신실한 청지기이며 어떤 사람이 악한 청지기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신실한 청지기는 첫째, 자기가 청지기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청지기다. 내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것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잣집에 청지기로 들어간 어느 사람은 주인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멀리 잔칫집에 가자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주인의 마음에 맞도록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이 올 날을 기다립니다. 이경은 밤 12시, 삼경은 새벽 3시인데 주인이 이경에 돌아오든 삼경에 돌아오든 언제나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비롯해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가 어디선가 보니 건강을 위해서 좋은 환경을 가꾸는 분이 환경활동 중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산천초목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지요. 한번은 비행기에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이 제 옆자리에 앉았는데 끝도 없이 뭔가를 계속 먹더군요. 기내식까지 다 먹은 후 마실 것은 ‘다이어트 콜라’를 찾아요. 뭔가 맞지 않습니다. 내 몸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청지기 의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 돌봐야 합니다. 아무거나 몸에 해로운 것을 마구 먹어서 될 일입니까? 요즘 한국에는 암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모릅니다. 모든 암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유전적인 것뿐 아니라 먹는 음식, 사는 방식 등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남용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24시간을 최선의 결과를 얻도록 지혜롭게,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냥 낭비하고 써 버리면 가버린 시간을 다시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에 대해서도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도 그렇습니다. 어떤 은사든지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뭔가 재능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목사님께 “저에게는 아무 은사가 없어요. 찬양도 못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지도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할아버지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은사가 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제일 먼저 오셔서 맨 앞자리에 앉아 제 설교를 듣는 그 모습을 보면 제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 줄 아십니까! 듣는 은사가 있잖아요.” 하셨답니다. 나의 능력, 재능마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선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잔뜩 쌓아 놓은 채 죽어버리면 큰일입니다. 그 재물은 나에게 주신 것이지 자식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식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식의 형편에 따라 주실 것입니다. 지금 재산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연세 드신 분들, 여러분이 결혼할 때 뭐 있었어요? 별로 없었지요. 어떤 분들은 “목사님, 우리는 단칸방 셋방살이부터 시작했어요.”라고 하셔요. “지금은요?” “지금은 아파트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몇 배를 주셨습니까? 계산이 안 됩니다. 물질도 나한테 주신 것이니 끝까지 책임지고 가장 선하게, 훌륭한 목적을 위해 다 쓰고 가야지요. 주님께서 “내가 너에게 10억을 주었는데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실 때 “아, 글쎄, 주님께서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지 않고 갑자기 데리고 오시는 바람에 제대로 처리를 못하고 왔습니다.” 하실 겁니까? 아니면 “아, 그거요, 우리 아들한테 다 주고 왔습니다.” 하실 겁니까? 아들은 아들 몫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평생 신실하게 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듯이 아들들은 여러분이 공부만 시키고, 그들이 여러분 살아온 모습대로 열심히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적합한 은혜를 주십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에덴동산과 같은 아름다운 가정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잘 가꾸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망가뜨리면 되겠어요?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고 하는 소신이 가슴에 있어야 여러분의 삶에 성공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잘 준비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주인이 언제 봐도 그 청지기는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신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직장에서 일을 해도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장을 주신 것이므로 내가 반드시 이 직장의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고 잘 준비된 삶을 삽니다.

셋째로, 언제나 종말적인 삶을 산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인생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놓고 따지는 날이 옵니다. 그래서 언제 종말이 오든지 하나님 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는 겁니다. 제 마음의 소원 가운데 하나는 예배드리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할렐루야 교회 교인들이 몽땅 하늘나라에 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 골프 치러 간 사람들은 큰일이지요. 허튼 생각과 허튼 소리를 하며 잘못된 삶을 사는 중에 주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시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종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임한다 하셨습니다. 늘 긴장감과 기대감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말과 행동이 다 달라집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주님이 조금 지체하신다면 우리가 금방 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교회 수련회 갔던 차가 굴러 몇 사람이 죽은 사고도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매일이 주님 만날 시간인줄 알고 신실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신실한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밤중에 돌아온 주인이 이 신실한 사람을 보며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37절) 하나님께서 특별대우를 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실한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사람들을 땅에서도, 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언제나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중국의 어느 왕이 부하에게 우물물을 길어 독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어도 독에 물이 차지를 않습니다. 밑이 빠진 독이었습니다. 그래도 신하는 계속 물을 부었습니다. 어느덧 우물이 말라버렸어요. 그런데 그 바닥에 누런 것이 보였습니다. 꺼내 보니 큰 금덩어리였어요. 그것을 왕에게 가지고 가서 “폐하, 죄송합니다. 제가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우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왕은 웃으면서 “참 잘했다. 자네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보려고 깨진 독인 줄 알면서도 물을 채우라고 했네. 이 금덩어리는 자네같이 충성스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니 자네가 가지고 가서 편안하게 잘 살게.”라고 말했습니다. 왕의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여 우물을 팠을 때 왕이 일부러 넣어놓은 금덩어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부하가 “왕이 정신이 나갔어. 밑 빠진 독을 어떻게 채우라는 거야?” 불평을 했더라면 마지막 칭찬도 없고 마지막 금덩어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면서 청지기로서 언제든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이 주님이 주신 것인 줄 알고 신실하게 살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저 우물 밑 금덩어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신실한 삶이 우리의 삶이되길 바랍니다.

넷째로,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42절). ‘진실하다’는 신실하다 또는 충성스럽다(faithful)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을 믿고 신실하게 사는 모습입니다. 사람을 보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42절) 이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가 물었지요. “예수님, 지금 이 비유가 우리를 위한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까?” 물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비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학생으로서 할 일이 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가정주부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 있습니다. 청지기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44절) 예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라. 사람을 보지 말고 나를 보고 충성하라. 그러면 더 큰 것을 맡기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땅의 축복과 영원한 축복이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건축회사를 다니다가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사장이 마지막으로 집을 하나 더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를 써먹는다는 생각에 속이 상해서 뚝딱뚝딱 대충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는 날 사장이 말했습니다. “참 수고했습니다. 이 집은 평생 이 회사에서 수고한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 사람은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재료로 잘 지을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주인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신실한 여러분을 향한 축복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특별대우를 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반면에 악한 청지기가 있습니다. 악한 청지기에게는 몇 가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고방식이 잘못되었습니다.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45절). 주인이 언제 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주인이 아마 천천히 올 것이다. 올 날이 며칠 더 남았으니 아무렇게나 하자.’고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잘못 생각하면 결과도 잘못되고 잘 생각하면 결과도 좋습니다. 생각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만들면 모든 것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생각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는 대인관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인관계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이기적으로 남을 이용해먹으려 해서는 절대로 잘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이 사람도 대인관계가 아주 나쁩니다. 노비를 때렸습니다. 직장에 일할 사람들을 두었으면 사랑하고 베풀고 잘 돌봐야 합니다.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마구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는 약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이가 두어 살만 어려도 말을 놓습니다. “내가 선배 아닌가!” 그건 학생 때 이야기지요.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존중해야지요.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성공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기술과 능력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연구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80%가 대인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은 20% 정도랍니다.

악한 청지기는 원문에 따르면 “남자 종들과 여자 종들”을 때렸습니다. 특별히 여자를 때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제일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지 입은 남자가 치마 입은 여자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힘이 좀 세다고 여자를 싸워 이기는 것은 진짜 치사한 일입니다. 악한 청지기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때렸습니다. 여러분의 밑의 사람도, 나이 적은 사람도, 여자처럼 약한 사람도,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마구 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아이인데 부모라고 해서 막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부모가 화나고 짜증이 나면 막 대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자녀가 적어서 그러고 싶어도 할 아이가 없어요.

셋째는 정신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노비를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해서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술 취해서 정신없이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에 취해서 자기 인생을 방치하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무엇에 취해 있습니까? 조심해야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과 물질, 가족과 직장, 교회, 우리 사회를 잘 섬기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축복하시고 또 영원히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허송생활하고 불충성하는 사람은 주인에게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47절) 의도적으로 불충성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은 크게 맞지만, 고맙게도 몰라서 실수한 것은 주인이 감싸준다고 합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48절) 정확하게 말하면 “will be bitten few blows"입니다. ‘few blow'는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연약해서, 실수로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맥킨리 국회의원이 워싱턴에서 전철을 타고 국회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어느 사람 앞에 섰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 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할머니를 못 본 척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맥킨리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임명하는 중에 어느 날 대사 추천 명단이 올라왔어요. 가만히 보니 예전에 전철에서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편하겠다고 힘든 할머니를 못 본 척하고 좋은 선을 베풀 기회에 선을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나라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언제 어디서나 늘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충성스런 사람이 되어 마지막까지 우리의 최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면서 이 땅에서 잘 되는 축복, 하늘에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김상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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