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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맥추 감사설교

근원적인 감사 (막 15:29-39)

by 【고동엽】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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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인 감사 (막 15:29-39)

옛날에 까만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때 교복에는 단추가 많았습니다. 학교에 오면 꼭 옷을 삐딱하게 입고 오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우입니다. 첫 단추가 바로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는 다 맞게 들어가게 되어 있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 다음은 아무리 조준을 잘하고, 애를 써도 마지막에는 단추가 하나 남든지 , 단추 구멍이 하나 남게 되면서 사람이 완전히 바보 비슷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첫 단추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어 장차 천국까지의 과정을 신학적인 도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먼저는 하나님의 선택(chose, pick out-골라내다)입니다. 에베소서1:4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르심(calling)입니다. 로마서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되거나, 자기의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한복음15:16) 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의롭게 하심입니다. 로마서8:30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하십니다.

고린도전서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씻음” “거룩함” “의로움” 이  세 가지의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죄가 사함 받아 이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성화인데 거룩한 생활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그 즉시에 사람이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으니 이제 생활이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의롭게 되는 생활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입니다. 즉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도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기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응답하여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즉 믿을 때입니다. 그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을 때 나는 “의롭게 되는”은혜를 입게 됩니다. 즉 죄가 다 사하여지므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첫 단추는 의롭게 됨 혹은 죄 사함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사함을 받게 되어 내가 의롭게 되므로 동시에 주어지는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져, 하나님께 마음껏 나아갈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고,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게 되고, 저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을 자격이 부여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므로, 주어지는 혜택은 실로 놀랍고 엄청난 것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니 복이 줄줄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물을 잡아당기니 그 안에 큰 고기, 작은 고기, 가뜩 들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의 은혜만 제대로 깨닫게 되면 삶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내 맘에 깨달아지지 않으므로 신앙생활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이런 죄 사함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신앙생활이 잘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면 신앙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절대 불평불만하지 않고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는 찬송을 감격하며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것이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이나, 아들을 죽게 하시는 하나님이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이루시는 그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의 죄 사함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아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예수께서 십자가위에서 달렸을 때 밑에서 사람들이 조롱하는 소리를 듣고 참아주신 것입니다.

대못이 손목, 발목에 박힌채  십자가위에 달려 있으므로 오는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엄청난 고통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 중에 있을 때, 예수께 들리는 소리는 “성전을 헐었다가 사흘만에 짓는다고 하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

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32)

예수가 지금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고통받고 있는데, 지들 때문인데!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는 내려올 권한도, 능력도 있습니다. 당장 내려와 그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내려가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데, 참아야지 참아야지’ 이를 악물고 참아주셨습니다. 만약에 ‘그래 내려가지 뭐!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는데!’하고는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여 내려오셨다면 모든 것 끝장이 났습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는 없습니다.

2.하나님의 속이 새까맣게 탔지만 참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무려3시간동안 어둠이 임하였습니다. 저는 그 어둠은 당시에 하나님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새까맣게 탔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찌 새까맣게 타지 않을 수 있습니까! 거기에다 아들은 절규하며 크게 소리 지르며 부르짖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34)

어떤 아버지가 아들의 이런 음성을 듣고,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그냥 두겠습니까? 능력이 안 되어 할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도저히 못 참겠다. 인류의 죄 사함도 좋지만 내 아들의 절규소리는 더 이상 못 듣고 있겠다. 하시고는 ‘여기서 모든 곳 중단 한다’선포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았습니다. 죄 사함 받았어요. 영생을 얻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어요. 영생을 얻었어요!  

우리가 단순히 2005년도에 반년동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이라는 이 엄청난 은혜 안에서 살아가게 되고, 그 안에서 또 반년을 지나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반년을 결산했을 때 손해를 본 사람도 있고,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자도 있습니다. 건강을 얻기보다 잃어버린 자도 있고, 소득이 많아지기보다 줄어든 자도 있습니다.

손해 본 자, 잃어버린 자, 병이 든 자, 소득이 줄어든 자는 이 맥추감사절에 감사하지 않아야 합니까? 잘 된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라고 원망을 하며, 내가 왜 감사헌금하지!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근원적인 것 때문에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지난 반년에 소득, 건강등 눈에 보이는 어떤 것만이 그리스도인의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감사의 조건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항상 상대적인 빈곤에 허덕이니, 즉 내가100평에 살아도 150평에 사는 사람 앞에 가난을 느끼고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하며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사함을 받았느냐? 받지 못하였느냐?에 감사의 조건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언제든지 그에게 나아가 구할 수 있고,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자격이 주어지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눈에 보이는 그것 좀 많고, 적음이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어차피 그것들도 하나님의 소관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이라는 근원적인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명심하세요. 십자가위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리 죄를 사해 주기 위하여 참아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이 새까맣게 타면서도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끝까지 참고 아들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은혜를 말입니다.

이런 사랑과 은혜로 나의 죄 사함이 이루어졌고, 그로인하여 많은 복을 받았음을 깨닫고, 눈에 보이는 소득에 관계없이 감사하며 살기 바랍니다. (강재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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