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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 (눅2:8-14)

by 【고동엽】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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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  (눅2:8-14)

내일은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온 세상이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있는 남의 생일 잔치에 참여하듯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중요한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짜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 것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무덤도 남아 있지를 않고, 성경의 원본도 없습니다. 왜 없앴을 까요? 하나님의 섭립니다. 단지 로마 황제 가이사랴 아구스도 시대에 태어났다. 또 갈릴리의 헤롯 왕 때에 태어났다. 하는 굵직한 역사적인 이름 만 남겨 놓았지 날짜를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여느 인간의 생일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처녀 탄생은 하나님이 사용한 수단입니다. 그 수단이 꼭 인간의 이성에 맞아야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취하시는 수단은 인간이 생각하는 테두리 안에서 취하시지 않습니다. 처녀 탄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하는 이 굵직굵직한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져 있고, 크리스마스가 역사적으로 정확한 날짜니 아니니, 처녀 탄생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하다 아니다라는 것을 떠들면서 조그마한 지식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성탄을 잘못 이해를 하면 성탄의 진실한 기쁨을 잊게 됩니다.

성탄을 사회 사업적인 해석을 하면 그렇게 됩니다. 즉 성탄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 하자라든가 병든 사람을 찾아 보자라 든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 카드를 보낸다던가, 어린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준다 라든 가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진실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면 헤롯과 같이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탄을 종교적인 측면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바리세인들 처럼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막상 나타나신 메시아를 마귀의 왕이라고 하고 배척 죽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이 되었다고 금방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탄을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성탄의 진실한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시고, 구세주가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데 대해서 기쁨의 강수가 흐릅니까? 기쁨이 마음에 넘칩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다행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탄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기쁜 일이 되도록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자신의 비천함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일컬어서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1:48-


참으로 성탄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비천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비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가정이 있고 세상을 살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며, 건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데 무엇이 비참하고 비천 한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죄인은 언제나 비천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요세 그런 사람들이 무척 많아 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민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만민이 다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비천한 자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기쁘게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찾아간 곳은 유대가 아니고 갈릴리였습니다. 갈릴리는 유대 나라 사람들이 멸시하는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나사렛이었습니다. 왕궁이 있는 곳이 아니라, 초라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입니다. 왜? 천사가 그 곳을 찾아 갔을까요? 비천 한자를, 자기가 비천 한자라는 것을 아는 자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자기 비천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만날 때의 높고 낮을 것을 비교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를 발견하는 사람, 즉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세 대학 병원에 가면 어려운 병에 걸린 사람들이 유명한 의사의 특진을 받기 위해 몇 달씩 기다리는 일이 하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병에 걸린 사람에게 하루는 그 유명한 의사가 찾아 왔습니다. 그럴 경우에 그 환자와 그 가족은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고 해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기쁨이 안되는 것입니다. 혹시 병이 들었다고 해도 자기가 병든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 의사는 기쁨이 될 수 없지요.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자기의 죄인임을 알고, 자기가 비천한 인생임을 아는 사람에게 주님은 기쁨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어떻게 왕이 되어, 부자 인척 하면서 주님을 맞이하겠습니까?


오늘도 이 세상 안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진정 자기가 하나님 앞에 겸손 한자요,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하나님 앞에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오셨고, 구원자가 나를 찾아 오셨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겸손히 있지만,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고, 자기가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며 저항감을 느낍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태어나셨다고 하는 베들레헴에의 마구간이 있던 자리에 조그마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마구간으로 바로 들어가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교회의 문은 지극히 낮아서 어떤 고관이라도 모자를 벗고 허리를 깊이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2. 주님을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믿은 여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1:45

마리아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을 때에 마음에 기쁨이 충만한 것을 체험했습니다. 1장35절에 보면, 마리아가 자기가 아기를 밴다는 말에 너무나 어리벙벙했습니다. 그럴 때에 천사가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 덮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 되는 분을 잉태한다.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리고 천사가 다시 부가하기를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으리라] 할 때에 [주의 계집종이 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믿었다는 말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처녀가 잉태했다.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를 하게 되었다. 그 잉태한 분이 거룩한 그리스도시다. 그걸 어떻게 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야 마리아가 잉태한 일에 대하여 달리 적당히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마리아 본인은 절대 천사의 그 말을 의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하나의 상상적인 설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 즉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엘리사벳이 볼 때에 그가 왜 기뻐할 수 있는가를 알았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실을 돌아 볼 때에 믿는 것보다, 믿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쉽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내 안과 밖에서 성난 파도 같이 죄가 넘쳐 들어오는 현실을 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판단이나 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가 그 믿음을 가지게 되어 성보가 된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성령 님의 감동이 아니고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이 성탄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 죽 성령으로 감동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뱃속에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확인도 못했습니다. 천사가 말을 하니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셨는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말을 하니, 하나님이 이미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산중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자기가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마리아는 엄청난 희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는 처녀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 죽이도록 율법은 가르쳤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당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약혼한 요셉, 부모들, 형제들의 따가운 시선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믿음으로 모두 극복을 합니다.

성탄의 기쁨은 모든 것을 다 마끼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양발을 걸어 놓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에게는 선물을 받는 기쁨을, 연휴에 대한 기쁨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성탄 보너스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그러나 이 모든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선물과 휴가와 돈으로 오는 기쁨입니다. 아기 예수로 오는 기쁨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이 아기 예수님도 기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이 기쁨은 믿은 자에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역사 합니다. 여러분 왕이 오셨습니다. 비극은 정복되었습니다. 고통은 정복되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통은 정복되었습니다. 왕이 오셨기 때문에 사망은 이미 무릎을 꿇었고, 사망은 이미 백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주변이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왕은 이미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저 동편 하늘을 바라보세요.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그 여명을 보지 못합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그 왕을 보지 못합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그 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 만이 이 것을 보고 마리아처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이러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십시오.

무엇 때문에 좋아하며, 기뻐합니까?

크리스마스 트리가 화려하고 좋아서 즐겁습니까?

무드가 좋아서 기뻐합니까?-유치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기뻐합니까?--유치합니다.

선물을 받기 때문에 기뻐합니까?-유치합니다.

공휴일이기 때문에 기뻐합니까?-유치합니다.

우리는 그런 유치함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오신 왕을 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넘칩니다.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3,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 성탄은 기쁨이 됩니다.

2:25절을 보면 시므온이라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8일째 되는 날 엄마 품에 안겨서 성전에 들어가니 벌써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시므온이 너무 기뻐서 [오 주재여 이제는 말씀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죽어도 좋습니다 하는 말입니다. 이 시므온이 어떤 사람입니까? 25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오셔서 고생 많이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그리스도를 기다림으로도 너무 큰 평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님의 재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완전히 구속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산다면 이 성탄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평안과 기쁨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 되이 세상을 살아 갈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의 날과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허랑 방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악한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을 들고 밤을 지세는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평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100만 불이라도 내 놓을 사람을 얼마든지 알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명사가 때문에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을 대하는 분이라, 그 분의 말은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100만 불이라도 내 놓으려는 사람이 수없이 많이 있다] 는 이 말을 무엇을 뜻합니까? 세상이 진정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우리는 값싼 기쁨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를 넘기지 않도록 하십시다. 진정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려고 하면 마리아처럼 자신이 비천한 것을 알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기쁨을 알려고 하면,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어떤 사람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기쁨이 임합니까? 시므온처럼 세상에는 되도록 빨리 속고, 빨리 실망하고 하나님의 위로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충만한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만족이 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라야 크리스마스를 바르게 맞이하는 성도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이 기쁨을 가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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