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세 가지 색상 (히 10:9-10)
영국의 버밍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지칭하는 `크리스마스'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를 윈터벌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겨울에 해당하는 윈터와 축제에 해당하는 페스티벌의 합해서 윈터벌로 바꾸자는 의견서를 시 정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탄은 예수님의 탄생과 상관없이 겨울의 한 축제가 되었으니 굳이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붙힐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들은 영국의 교회에서 "이러한 발상은 세속주의의 극치요,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해 버렸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인데 타락한 이 세상은 오히려 예수님을 제외하고 겨울의 축제로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더욱 분명히 성탄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성탄의 의미를 성탄의 세 가지 색상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한다. 성탄의 중요한 색은 빨강, 녹색, 하얀색이다. 빨강색은 산타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녹색은 상록수의 나무에서, 하얀색을 하얀 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왠지 크리스마스가 되면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같이 빨강색, 녹색, 하얀색이 성탄의 세 가지 색상인데 이러한 색은 분명한 성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탄절이면 이러한 색을 볼 텐데 볼 때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빨강색은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낮고 천한 우리에게 오셨다. 이 땅에 오실 때에 태어날 곳도 없어서 말구유에 비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서 절정에 이루었다. 강단의 빨간 카페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상징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화초 포인세티아가 있다. 이 꽃의 색깔은 유난히 붉어서 종종 예수의 보혈로 상징된다. 그런데 이 화초는 아주 춥고 캄캄한 곳에서 특유의 붉은 꽃을 피운다. 빛이 완전히 차단되고 냉기가 감도는 공간에서 남모르게 꽃을 피운다. 포인세티아의 파란 잎사귀가 어둠과 추위를 견뎌내고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만약 포인세티아가 있는 곳에 빛이 새어들어가면 붉은 꽃에 얼룩이 생긴다. 심지어 비상구의 약한 불빛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방해가 될뿐이다. 포인세티아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립과 어둠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포인세티아처럼 우리에게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으셨다.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다. 빨강색은 곧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산타 할아버지가 빨간 옷을 입었다고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표현되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기에 이러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성탄절이면 빨강색이 중요한 색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기적을 믿습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 켄터키 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임신 8개월된 어머니가 차를 타고가다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다. 화물차가 제방에 부딪히면서 뒤칸에 누워있던 이 여인이 앞 유리 밖으로 튕겨나가면서 복부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고 즉사했다. 이 어머니는 자기가 죽어가면서 배에 일부러 상처를 내어서 8개월된 아들을이 자궁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이것을 즉시 발견하고 현장에 가보았다. 모두 죽은 줄 알고 담요로 덮어 놓았는데, 의사가 와서 탯줄을 잡는 순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결국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 사고 주변에 보니 성경책 한권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여인이 자기가 죽어가면서 스스로 배에 상처를 내어서 아이를 살려내었다. 희생적인 사랑 때문에 이 아이는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이다. 녹색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빨강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결과는 녹색이 의미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신다.
이 녹색은 전나무로 만든 성탄 트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성탄 트리의 시작이 어디에서 되었는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한 의견은 6-7 세기의 유럽에서 성탄 전야에 성경 내용으로 연극을 하게 되었다. 그 연극의 내용 중에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장면에서 주요한 장식은 바로 생명나무이었다. 겨울에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전나무를 사용하면서 이 나무를 생명나무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성탄 트리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탄 나무는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를 상징하고, 이 나무는 이새의 줄기에서 그리스도가 오심을 기념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이 생명 나무에 사과를 장식해서 우리의 죄를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생명의 빵을 상징하기 위해서 빵도 달아 놓고, 생명의 빛을 상징하기 위해서 촛불도 달아 놓고, 이사야의 말씀에 "속된 나무 이새의 줄기에서 이 추운 겨울에 한 싱싱한 가지가 솟았도다. 굳은 땅 위에 고요하고 청명한 이 밤에 한 송이 장미가 피었도다"는 말씀을 따라서 나무에 장미를 달아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같이 성탄트리는 생명나무의 상징이요, 녹색도 역시 영원한 생명의 의미를 가져다 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빨강의 희생적인 사랑이, 녹색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요즈음에 환경을 의미하는 색은 녹색을 사용한다. 그린 색이다. 환경은 곧 우리의 생명과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에 대한 묘사를 보라.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천국을 색으로 표현하라면 마치 녹색과도 같다. 천국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 녹색의 영원한 생명은 곧 우리의 희망이 되었다. 그래서 녹색은 영원한 생명 뿐만 아니라 소망을 담고 있다. 내가 죽을 환경에 있어도, 내가 사명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지금 사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생환훈련(Survival Training)을 받는다. 비상식량의 표지에 "희망을 가져라 그대는 반드시 구조될 것이다"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다. 어떤 비상 사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반드시 구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생긴다.
이같이 빨강색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요, 녹색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었다. 적색은총은 우리에게 녹색은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흰색과 연결된다. 흰색은 순결함을 의미한다. 희생적신 적색은총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녹색은총을 받았으니 우리의 삶은 주님을 향한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의 말씀에 "이 뜻을 따라 에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영적인 순결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건만 끊임없이 그들은 영적인 순결을 잃어버리고 우상에게 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죄를 짓는다. 호세아서의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음탕한 고멜과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멜은 자기의 남편만을 섬기는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음탕한 고멜과도 같은 백성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영적인 순결을 지켰던 사람이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의 믿음을 지켰다. 사자굴 속에 들어가도 자신의 믿음을 지켰다. 욥도 영적인 순결을 지켰던 사람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켜 결국은 신앙의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희생적인 하나님 사랑의 적색은총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녹색은총을 허락하여 주셨다. 이러한 은총을 받은 사람은 백색의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적인 순결을 지켜야 한다.
영적인 순결이란 무엇인가?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요, 주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곱추였던 여자와 곱추였던 남자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였다. 아이를 가졌는데 그 부부는 걱적이 되었다. 부모의 유전을 받아 곱추가 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곱추 엄마는 아이를 정성으로 살폈고 착한 아이도 엄마를 잘 따랐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걱정이 되었다. 곱추 엄마를 외면할까봐...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학교에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학교를 가게 되었다. 엄마는 고민하기 시작했죠... 이 도시락을 학교로 갖다주는게 나은지.... 도시락을 갖다 주면 아이가 무척 창피해할텐데.... 그렇다고 갖다주지 않으면 점심을 굶게 되는데.... 이런저런 고민끝에 학교에 살짝 갖다 주기로 했다.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볼까봐 몰래... 수업시간중에 학교로 찾아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의 학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엄마였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왠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어느 반의 체육시간이었다. 그런데 저쪽 나무 밑에서 엄마의 아이가 보였다. 엄마는 순간 당황했고 학교를 급히 빠져나가려했다. 아이가 볼까봐서...... 친구들이 볼까봐서.... 서러운 맘을 감추지 못하고 힘든 몸을 이끈채 조심조심 뛰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발견하였고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놀라며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려 하였다. 그런데 저쪽나무밑에서.. 아이가 교문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입을 모으고 소리쳤다. 엄마!!! 곱추엄마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는 영적인 순결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주님이 오시는 이 계절에 나는 주님만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성탄은 빨강색, 녹색, 하얀색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깊은 의미가 있는 절기이다. 겨울의 축제를 의미하는 윈터벌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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