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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은 작지 않습니다 (미가 5:2)

by 【고동엽】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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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들레헴은 작지 않습니다   (미가 5:2)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둘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하면 베들레헴, 동방박사, 양치는 목자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을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모두 베들레헴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소망 없는 절망의 이 땅, 어디에도 길이 없는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우리의 구세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후손을 통해서, 어느 나라에 오실 것을, 왜 오실 것을, 어느 마을에 오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장소는 바로 오늘 베들레헴이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의 문제를,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억 천만 가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사망과 저주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구세주로 메시야로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경이 왜 귀합니까? 메시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귀합니다. 성경에 가장 큰 놀라운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은 온 세계 모든 성도들이 가장 사모하는 거룩한 땅입니다. 1년 내내 베들레헴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극한 대립 관계로 그러지를 못하지만은 모든 성도들의 꿈은 베들레헴에 가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발 디딜 틈도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저에게 그런 부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인들 성가대원을 데리고 와서 베들레헴에서 성탄절 예배를 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갈려고 하니 연말은 너무 우리가 많은 일들이 모여 있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성도들 한 5 만 명 다 가는 날이 있으면 아마 같이 갔으면 참 좋습니다. 5 만 명 타는 비행기가 몇 십 년 내에 안 나오겠습니까? 그런 때가 오면 과학이 발달하면 우리 모두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마굿간에 가서 주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 곳에 가면 탄생하신 그 마굿간에 그 때에 인도했던 새벽별을 이렇게 새겨 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와서 만졌는지 그 쇠가 다 달았습니다. 한번 와서 입 맞추는데도 그게 다 달았습니다. 그 정도로 수억에 수천만의 성도들이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는데 장소를 베들레헴을 선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적은 도시입니다. 지금도 베들레헴은 적은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한 8km 떨어져 있는 이 서울로 말하면 서울의 주변에 있는 변두리입니다.  변두리는 언제나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마을도 역시 그런 마을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북쪽에서부터 티베리아, 하이파, 나사렛, 아폴라, 제닌, 세겜, 라말라, 벧엘, 여리고, 예루살렘, 모두 이 베들레헴 보다 큽니다. 지중해 바닷가로도 하테라, 나타냐, 델아비브, 욥바, 아시켈톤, 아쉬도르, 이것도 모두 베들레헴 보다 큽니다. 내륙으로 이렇게 들어가 보면 큰 도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남쪽을 이 내게르 지역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도 헤브론이나 브엘세바나 디모나나 라라드나 유명한 관광지인 에일랏이나 모두 베들레헴보다 큽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더 적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고 화려하고 수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왕궁에 그 아들을 보내시지 않고, 왜 이런 곳에 우리 인류의 구세주를 보내셨습니까? 또한 베들레헴에서도 마굿간에 태어나십니다. 아무리 서민이라도 마굿간에는 안 태어날 텐데 예수님은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 인류를 위해서 가장 작은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하며, 마굿간에 오신 것은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주님은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가장 낮은 곳, 절망적인 곳, 소망이 없는 곳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이 없는 우리 인간은 어디에 살든 우리는 모두 베들레헴이며 마굿간입니다. 하나님 없고 범죄하며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은 가장 낮은 자입니다. 죄보다 더 낮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죄에 빠진 인간보다 더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입니까? 없다고 불행한 것입니까? 그런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우리 인간의 절망이고 불행이며 고통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죄를 조금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죄 때문에 신음하고 죄의 짐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는 엄청난 파멸의 능력이 있습니다. 존 번연은 말하기를 ‘하나의 틈이 배를 침몰시키는 것처럼 하나의 죄가 우리의 삶을 다 파멸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큰 건물 큰 집 큰 기업 큰 권력 이 세상에 남이 갖지 않은 모든 것을 가져도, 죄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파괴하며 불 지르고 빼앗으며 모두 흩어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입니다. 죄가 우리의 아름다운 것을 거룩한 것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죄 앞에 속수무책으로, 죄에 눌려 살아가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 오신 것입니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으시며, 그의 죽으심으로 죄를 멸하시고 모든 죄의 능력을 다 파괴합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건지시고 짐을 벗기시며,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다 치료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입니다. 기쁨입니다. 예수같이 귀한 것이 없는 것은 우리 인간의 죄를 우리가 져야 되고 우리가 해결해야 되는데 기독교는 우리의 죄를 당신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기적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은혜는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능력, 보혈의 은총입니다.

    아주 전 영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넣었던 유명한 범죄인 스로스츠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만 40년을 드나들었습니다. 옥살이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드나들어도 이 사람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가죽 채찍으로 50번씩 때리는 것을 8번 맞아도 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바꿔놓겠습니까? 죄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데 누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겠습니까? 모두 골치 덩어리입니다. ‘방법이 없다.’ 그럽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출옥이 되어서 하룻밤을 구세군이 운영하는 숙박소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죄의 능력이, 죄의 무거운 짐이, 죄가 지배하던 인격과 성품과 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8년 동안 선한 일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복음을 증거 하면서 남을 섬기면서 좋은 일 하다가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는 나중에 말했습니다. ‘40년 동안 온 정부가 달려들어도 나를 고치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2분 만에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죄와 5 만년을 싸워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피할려고 해도 아무리 빠른 미사일 로케트를 타고 갈지라도 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죄는 이길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는 것입니다. 참아도 안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죄의 짐을 짊어지고 고민하다가 죄가 가는 곳으로 죄인이 가는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속하려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능력으로 그 분의 손으로 건짐 받아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으며 죄사함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저는 어제 국세청 신우회에서 예배를 봐달라고 해서 국세청에 갔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많고 청장하시는 우리 교인들도 있고 해서 저가 갔습니다. 저가 처음 갔는데 모두 나와 있고 꽃다발로 환영하며, 청장님도 저에게 선물 준비도 하시고 서울 청장님이 엘리베이터까지 나오시고 야단이었습니다. 모든 지방에서 전국에 있는 세무서장 청장의 모든 분들이 전세 버스를 가지고 다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기업가였고 사업을 해서 이렇게 불려왔다면 겁을 내어 쩔쩔쩔쩔 매고 이럴 텐데...’ 예를 들어 ‘회장님! 잠시 문의 드릴일이 있으니까 국세청 조사과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런 걸 갖고 갔더라면 벌벌벌벌 떨고 이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복음 전하러 가니까 당당하게 들어가고 모두 받아주며, 저가 거기에 오도록 국세청에 있는 직원들이 40일을 릴레이 기도를 했습니다. 40일. 세상에~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지...그래서 설교를 했는데 제가 은혜 끼치러 갔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엉엉 울고 은혜를 받았는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연극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앉아서 연극을 보니까 무대도 하나 없습니다. 그냥 천 하나만 딱 느려 뜨려 놓고 한 5명 남자2명 여자 3분이 나와 연극을 합니다. 단순한데 성경에 있는 것을 너무 그대로 표현을 잘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한 아가씨가 죄를 가지고 고민하며, 죄를 짓고 엉엉 울며 나옵니다. 엉엉 막 가슴을 치면서 막 몸 부림 치면서 나옵니다. 또 한 여성은 어떤 정신적으로 고민하면서 막 나옵니다. 또 다리 아픈 한 아가씨는 다리를 끌면서 아파가지고 막 울면서 나옵니다. 또 한 사람은 소경이 되어 절망가운데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습니다. 손을 대면서 그냥 고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이사야 53장 그대로 합니다. 다리 아픈 사람을 만지면서 주님은 다리의 아픔을 당신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이 다리 아픈 사람은 일어나 기쁨으로 걷는데 예수님은 다리가 못 견디게 아픕니다. 죄인에게 고통당하는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면서 예수님은 그 죄 짐을 지십니다. 막 몸부림치고 고통당하는 그 분의 고민과 아픔을 가져가면서 그 분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 분의 앞 못 보는 눈을 당신이 어두우면서 이 눈을 뜨게 하십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예수님이 능력이 많아서 그냥 ‘일어나라. 죄사함 받아라.’ 이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나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부끄러움 당하시고 우리의 옷을 입혀주는 이걸 잘 아셔야 됩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웃음이 주님의 울음 때문에 웃는 것이고, 여러분의 평안이 주님의 고통 때문에 평안을 얻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 있는 사람이 주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유함을 포기하시고 가난해 지심으로 우리가 부유함을 얻습니다. 주님이 마굿간에 오셔서 마굿간에 같이 계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마굿간에 태어나면서 마굿간에 있는 우리를 왕궁으로 옮기시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웃으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웃음을 위해서 아픔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는 걸 아셔야 됩니다. 제가 그 연극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낮고 낮은 마굿간에 우리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작은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베들레헴은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거룩한 땅 영광스러운 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가정이 베들레헴이 되고 여러분의 삶이 베들레헴이 되며, 여러분의 심령이 베들레헴이 되어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주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이제 베들레헴 같이 이 세상에 버림받은 많은 사람, 오늘도 주님은 베들레헴을 찾으러 오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삶을 본받아 우리 이웃에 먹을 것이 없는 베들레헴, 부모가 없는 베들레헴, 자녀가 없는 베들레헴, 질병과 함께 절망 중에 있는 베들레헴, 이 세상에 소년소녀 가장 지난 주일에 남편을 잃어버리고 절망가운데 있는 베들레헴, 얼마나 우리 주변에는 베들레헴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곳에 계신 줄 알고 베들레헴을 사랑하고 베들레헴을 섬기며 베들레헴을 이웃으로 삼고 찾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더 아름답고 더 영광스러우며, 더 부유하고 더 귀하며 더 높아 지려고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모두 안 내려 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낮은 곳에 계시는데 베들레헴에 계십니다. 교회도 점점 점점 천국까지 올라 가려고 합니다. 더 잘 짓고 더 큰 목회하며, 더 높아져서 ‘올라가자. 올라가자. 더 영광스럽게 되자. 더 유명한 목사가 되자.’ 이게 다 베들레헴과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베들레헴 목회를 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의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들레헴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세계 최고의 미인이며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린 사람을 대표적으로 클레오파트라라고 합니다. 크레온이 아니고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이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분은 부왕이 이 땅을 떠나고 그 나라를 이어 받아서 그의 남동생하고 결혼을 합니다. 너무 미모가 뛰어나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 관리를 위해서 국력을 쏟아 넣습니다. 이 분은 전 세계를 통치하는 애굽의 황제입니다. 여자지만은 애굽의 전체를 다스리는 황제입니다. 그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화장품 회사만 9개를 거느리고 2개의 맷돌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약초를 갖으며, 2개의 대형 가마에다가 연고를 만들어서 몸 관리를 했습니다. 아름답게 관리를 했습니다. 그는 맥주 거품으로 목욕을 하고 온 몸에 보화로 가득 채워서 전체 보화로 몸을 다 덮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름다움으로 남편이 있었지만은 세계적인 영웅 쥴리어스 시저를 가까이 해서 그 미모와 아름다움으로 시저를 넘어뜨립니다. 시저를 가까이해서 시저의 아이를 안고 나중에 이집트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시저는 죽습니다. 자기 부하에 의해서 죽습니다. 대 로마를 통치했던 시저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유명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라고 하는 이 두 분이 권력 쟁탈전을 벌일 때 이번에는 이 클레오파트라는 ‘누구 누구의 손을 잡아야 될까?’하다 안토니우스라고 하는 분의 손을 잡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이 너무 예쁘니까 안토니우스도 결국 그 유혹을 못 물리칩니다. 그래서 둘이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한테 패합니다.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그만 침실에다가 뱀, 코브라를 가져다 놓고 물려 죽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파스칼은 말하기를 ‘클레오파트라가 코가 1cm 만 낮았더라면 세계가 바꿔졌을 것이다,’ 너무 잘나 가지고 한 사람도 아니고 세계의 통치자를 몇 번이나 이렇게 같이 지나고 조금만 덜 났더라면 그런 일이 없을 텐데... 너무 전 애굽의 모든 영광 애굽의 황제도 모두 가지고 로마까지 다 서로 이렇게 손에 잡았지만은 그는 마지막에 그렇게 죽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도 그때부터 로마의 속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육적으로 너무 높아지는거 좋은게 아닙니다. 너무 잘나는거 좋은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줄 이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천만 억만이 모든 국민들이 지지해도 어려울 때는 자기 혼자 서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열이면 뭐하고 스물이면 뭐합니까? 이 땅을 떠날 때는 혼자입니다. 없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아무도 없습니다. 욥기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게 그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부자지만은 모두 떠나 갑니다. 실패하면 다 떠나 갑니다. 누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수 있습니까? 모두 떠나 갔습니다. 나중에 친구 3 사람이 있습니다. 수아 사람 빌닷 그다음 데만 사람 엘리바스, 나만 사람 소발이라고 하는 세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이 욥과 같이 있었지만은 욥을 어디 위로해 줍니까? 한다는 말이 다 욥을 괴롭힙니다. ‘너가 뭐 하나님 앞에 바로 섰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데 너 하나님께 회개나 하고 바로 서.’라고 전부 이런 말만 합니다. 그래서 욥이 마지막에 하는 말이 뭡니까? ‘너희들이 나를 조롱하는구나.’ 친구 어디 있습니까? 실패하면 혼자입니다. 친구 안 만나는 게 낫습니다. ‘너 그때 학교 다닐 때 까불더니 그럴 줄 알았다.’, ‘너 요사이 뭐 니? 혼자 잘났다 그더니만 그럴 줄 알았다.’ 우리가 어려울 때는 마굿간에 오실 이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우리는 예수님을 귀히 여겨야 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다 떠납니다. 모두 없습니다. 좋을 때도 나와 함께 하시지만은 어려울 때도 나와 함께 하시고, 살 때도 함께 하시지 만은 천국 갈 때도 함께 하시며, 땅에서도 함께 하시지만 하늘에서도 함께 하시고, 영원 영원히 함께 할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찬송가 102장)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혼자인걸 알아야 됩니다. 다 혼자입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인간은 혼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혼자일 때 걷잡지를 못합니다. 의지 했다가 다 떠나가면 그래서 클레오파트라가 사실은 소식만 듣고 먼저 죽은 것입니다. 소리만 들어도 ‘아휴~ 이제 난 끝났다.’ 그러고 그만 독사하고 혼자 갔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 떠나갈 때 믿음이 깊어집니다. 모두 사라질 때에 내 영혼에 눈을 뜹니다. 베들레헴을 찾아오신 주님을 오히려 그때 만납니다. 그래서 기쁨과 능력이 충만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이 믿음이 성도에게 있게 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헛된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제2의 조금 전에 말했던 클레오파트라가 참 많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길을 너무 많이 걸어갑니다. 클레오파트라같이 너무 예뻐지려고 하고 저 브라질에 있는 여성은 거식증에 걸려 가지고 이 분의 기도제목이 무엇이냐하면 ‘하늘이시여! 항상 마른체형을 유지하게 해주세요. 43kg이 넘지 않게 해주세요.’ 이게 아예 기도제목입니다. 마른체형. 그래서 23살에 굶어 죽었습니다. 먹으면 바로 사는데 ‘먹고 살 찌는거 보다는 말라 가지고 죽는게 낫다.’ 이래 가지고 죽었습니다. 너무너무 놀랍습니다. 예뻐지려고 막 주름 펴달라고 클레오파트라의 길을 모두 갑니다.
주름 펴야지 그래서 웃음도 바로 안 웃습니다. 하하 하하 허허 활짝 못 웃습니다. 이거 주름질까봐 그냥 하하 하하 확 못 웃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세상에 있는 영광 세상에 있는 행복을 좇아서 그저 오늘도 이 남자 아니면 저 남자 어디에 이 만족할거 없나 해가지고 오늘 이 온 나라가 소란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령한 삶으로 주님을 만나는 주님이 계신 곳 베들레헴으로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와 같아서 번성하리라.”고 잠언 11장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모해야 됩니다. 잠언 8장34절에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문설주 옆이 무엇입니까? “내 문 옆에서 기다리며 문 곁에서 기다린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출애굽할 때에 내일 출애굽 하니까 문설주에다 피를 바르고 이 출애굽을 기다립니다. 안자고 기다립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탄생하신 주님을 이번 성탄절에 만나기 위해서 내 영혼이 깨어 기도하고 사모하며, 정결하고 거룩한 길을 밤을 새워 사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밤새도록 정욕을 좇아가며 밤새도록 쾌락을 좇아서 잠을 안자는 이 시대에 경건에 눈을 뜨고 믿음의 눈을 뜨며, 베들레헴을 바라보고 주님 사모하는 길로 나아가면 여러분의 평생은 주님이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와 함께 베들레헴을 사랑하고 베들레헴의 길로 나아가며 오늘 우리 이웃에 있는 베들레헴을 잘 섬기면서 나가면 여러분은 주님 오실 때 앞장서서 영접하는 성도 될 줄로 믿습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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