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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올바른 성탄 맞이 (눅 1:26-33)

by 【고동엽】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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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성탄 맞이  (눅 1:26-33)

성탄절 하면 어떤 그림이 연상됩니까? 빛나는 별빛, 낙타를 탄 동방박사들,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의 경배 등 이런 그림들 일 것입니다. 또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하여 성탄절 카드에는 눈 내린 마을과 교회, 눈 위를 달리는 사슴과 산타클로스 그림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의 기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북반구의 서양에서 이루어진 성탄문화의 산물입니다. 적도 부근을 위시해서 남반구에 있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있는 곳은 계절이 반대로 여름입니다. 그곳은 북반구의 여름인 칠팔월이 되어야 눈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냉장고 덕에 얼음은 매일 대하며 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아무리 발달된 과학으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정말 천지가 개벽하기 전에는 눈이 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맞는 그림을 생각해 봅니다.

1. 우리 삶의 성탄절

해마다 12월이 되면 성탄카드를 고르게 되는데, 카드들은 많지만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그림들이 보이지 않아서 고심하면서 고르게 됩니다.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성탄의 정신이 들어있는 그림을 찾는데 쉽지 않습 니다.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 맞는 성탄절 그림이 없어서 아쉬운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향기, 우리 삶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배어 있어야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림을 좀 잘 그릴 줄 안다면 이럴 때는 좋겠는데 그런 실력은 못되니 최선의 것을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코코넛 나무와 외양간의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나뭇잎을 걸친 사람들의 축하와 여름밤의 별빛, 푸른 파도와 온갖 조개 껍데기로 이루어놓는 성탄 장식 등이 있는 그림입니다. 물론 그런 풍경이 우리 성탄절의 내용을 다 담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찬가를 다시 읽었습니다.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전갈을 받고서 메시야를 노래한 장면입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낮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9)" 그리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눅(1:46-55)도 읽었습니다. 카드에 이런 마음이 담겨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알맞은 우리의 성탄 카드를 마음속으로라도 그려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의 우리 삶을 생각해 봅니다.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으로 맞이했던 한 해였지만 오히려 예년에 비해 힘들게 보냈습니다. 모든 면에서 어려운 시련을 당하고 있는 교우들도 많습니다. 몇 가정이 새로 오기도 했지만,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열심히 봉사했던 교우들 여러 가정이 이사를 갔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를 생각하면서 그런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가? 왜 이곳에 삶을 펼쳤는가? 솔직한 말로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 좀 해보려고 이사오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꿈속에서라도 '가라'고 하여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있습니까? 어쩌다 왔지 않습니까? 다시 우리 삶 속에서 맞이하는 성탄절 그림을 그려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그립니까?

2. 성탄절의 주인공

물론 그림의 주인공을 생각해야겠지요. 당연히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한다면 불경스럽고 믿음 없는 소리가 되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빠진 성탄절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이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 아들을 사랑하시어 아들에게 세상을 주셨다는 표현보다, 세상을 사랑하시어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먼저 주인공입니다. 우리가 빠지면 안 됩니다. 예년처럼 또 다시 맞이하는 성탄절이지만 우리 삶을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주인공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제대로 그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에 따라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들의 희로애락에 따라 부모의 얼굴이 바뀌듯이 말입니다.

경배하는 목자들, 동방박사들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세상의 대표자들입니다. 먼길을 와서 귀한 예물을 드렸고, 천사의 소리를 듣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경배하였지 않습니까? 이들이 없는 성탄절, 세상이 없는 예수님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기 삶을 살던 이들이 성탄절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경배드리는 사람의 모습이 성탄의 중요한 밑그림인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경배만 하였습니다. 무엇을 요구한 것도 없습니다. 아기 예수가 무슨 능력을 발휘할 것을 바랐겠습니까? 그로부터도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람들 앞에 등장하시지 않습니까? 오신것 그 자체만으로 경배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경배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신앙 말입니다. 이것이 처음 성탄을 맞이한 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받기보다는 오히려 황금과 유향과 몰약 당시의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자기들의 삶의 자리를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성탄절의 정신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에 메시야가 오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들도 그랬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비치고 천사들이 찬양하지 않습니까? 그 대열에 끼어서 경배 한다는 것만으로도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목자들의 마음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감동하시는 하나님


밤하늘의 메시야를 가리키는 별과 동방박사들은 당시 세상이 얼마나 메시야를 갈망하고 있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역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힘으로 하다가 지친 곳, 더 이상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곳,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 아닙니까? 내 혼자 할 수 있다고 해야 대장부답다고 하겠지만 조금 차원을 달리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힘을 어디에서 얻어야 하는 것이냐 말입니다. 문제 많은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우리에게 메시야를 주심을 감사하여 경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중년을 위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어느 여자 가수가 나와서 열심히 불렀습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갈채가 쏟아집니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가수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콘서트에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부부에게로 갔습니다. "두 분은 오늘 제 공연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가수는 관객들에게 기다려보자는 제스처를 했습니다. 한참 후 남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부도가 났습니다. 도망 다니다가 지쳐서, 아내와 죽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채권자들에게 성의를 표시하고 나니 딱 10만원이 남았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다가 이 공연 팜플렛이 나왔고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가 평소에 좋아하던 당신의 공연을 보고 죽자고 합의했는데, 막상 이렇게 공연을 보다보니 우리 둘은 그만 살고 싶어졌습니다. 살아서 함께 웃고, 노래 부르고, 힘을 내서 또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중년부부가 가수의 노래에 감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수가 중년부부를 보고 감동하였습니다. 아니 그날 밤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에서가 아니라 그 중년부부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외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감격하십니다. 죄 많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마음으로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선물을 받아들고 진심으로 감사해 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고 부모가 더 감격하시듯 말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보다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사랑은 훨씬 더 큽니다. 우리가 미래를 다시 기다리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일어서려는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메시야를 탄생시킨 어머니 마리아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삽니다. 아들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로 삽니다. 그에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의 첫 음성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1:28)" 처음 성탄을 경험하였던 이들처럼 비록 우리 삶이 달라지지 않아도 우리도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배하면, 하나님은 더 크게 감격하시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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