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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고후5:8~10
https://www.youtube.com/watch?v=0wqT2MTWytk&feature=youtu.be
지금부터 20년 전입니다. 제가 아끼던 친구 목사님이
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이제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를 몇 번 방문하면서 늘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머리 맡에 자명종 시계를 두고
하루 종일 그 초침이 돌아가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친구 목사님의 모습입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CCC 에서 은혜를 받은 다음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빨리 개척해서 서초동에 조그만 교회를 건축하고
200명 가까운 성도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목회를 할 때 였는데,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장례식을 제가 다 치러 주었습니다만
그는 저보다 나이가 아래입니다.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를 뚫어져라고 쳐다보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 제 마음에서 사라지지 아니하는..
항상 자주 자주 떠올리며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심오한 영상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 그 영상을 계속 제 마음에 담고 기억하면서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그때는 나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젊은 사람도 데려가시는 것을 보니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리고 죽고 나면 하나님 앞에 설 텐데...
그 친구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리고 가시는 것 같고,
나 같은 것은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집행유예로 시간을 더 주신 것이 틀림 없고,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서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제가 이런 생각을 자주 자주 하면서 지난 20년을 살았습니다.
▲바울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바울은 은근히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에 있는 육체의 장막을 빨리 벗어 버리고
빨리 죽어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갔으면 좋겠다...는 이런 소원을 갖고 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그 분은 천국에 한 번 갔다 온 사람이거든요.
천국이 얼마나 황홀한지, 한 100분의 1 정도라도 체험을 하고 내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삼층천에 올라가서 한번 기가 막힌 상황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 날을 생각할 때마다 막 가슴이 뛰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빨리 나를 불러 주셔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영원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
그런 감정이 고후5:8절에 있잖아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가 있다면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우리하고는 너무 다르죠. 우리는 안 죽으려고 너무 바등 거리는데
사실 바울은 가고 싶어 했어요.
이런 주님 앞에 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바울을 긴장시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죽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된다..
그 심판대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내가 그것을 위해서,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천국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된다... 하는 마음을 바울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게 고후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가 세상에 사는 것을 놓고 하나님의 평가를 받는 것,
이것이 너무너무 진지한 문제인데..
이것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바울은 마음에 두고 고민했습니다.
고후5:10절을 현대인의 성경 번역으로 더 아름답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장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때는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그 분 앞에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했든지 악한 일을 했든지
땅 위에 육체로 사는 동안에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은 결심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 9절에 그렇게 나오죠.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5:9
나는 세상에서 삶을 더 살던지 덜 살던지
하나님이 불러서 하나님께 가든지 말든지
우리의 목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힘써야 되겠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힘쓴다'는 말을 필로티메오마이 라는 헬라어인데요.
이 말은 그냥 한번 해본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저 한 번 노력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야망을 갖는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야망을 가진 사람을 한 번 보세요.
정치가가 되겠다고 야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잖아요.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 더 잘 해보겠다는 학생들이 얼마나 땀을 흘리며 씨름하는지 보세요.
야망을 가진 사람은 남보다 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게 되어 있잖아요.
여기서 '힘쓴다'는 말은 바로 이런 뚯입니다
바울은 야망을 가졌어요. 어떤 야망이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한번 살고 싶다!
천국 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하나님이 나를 이세상에 남겨 놓은 몇십년동안
하나니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내 삶의 촛점을 마추고,
그것을 야망으로 삼고 자기 인생을 뛰어보겠다는 라는 생각으로 산 것입니다.
왜 요? 나중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내가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하나님이 내 인생을 보시고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볼터이니까요.
그것만이 나에게 중요하다.. 바울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 세상에서 우리가 쌓았던 것,
세상에서 우리가 얻었던 모든 명성 ..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만이 남습니다.
여러분은 진짜 믿으십니까? 하나님앞에 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만이 남습니다.
나머지는 다 썩어 없어져요.
참 안타까운 모습이 많습니다.
요즘 참 안타까운 모습을 신문과 화면을 통해 보지 않습니까?
지난 5년동안 권력의 핵심에 서서,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살던 모 인사를 보세요.
국민들이 납득할수 있도록 정도를 따라서, 국정을 했더라면, 그런 꼴이 안 되지요.
그러나 국민이 납득할수 없는 방법으로, 또 어떤 면에서는 거짓말하면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하나 밝혀지는 모습을 보세요.
과거의 영화나,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떨어지는 꽃잎이라고 스스로 표현했습니다.
꽃잎도 떨어질 때는 이뻐요. 그러나 사람이 떨어질 때는 이쁘지도 않아요.
인간 검사 앞에서도 지난 날을 평가받을때, 뭔가 잘못되면, 초라해지는 모습을 보는데,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하나님의 인정하지 아니한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만이 영원히 남아요.
이번에 5월 달 미국가니까 그 형제가 저에게 만나서 말해요.
거라지세일 할때 고물들, 가치가 있는 것들을 자기가 수집을 하는데,
여전히 그런 일이 자주 나오나 봐요.
유명한 사람이 죽었어요. 한때 이 사람은 대단한 명성을 얻었어요.
그사람이 받은 상패, 훈장을 박스에 가득 채우고 끈으로 묶어 거라지 세일에 내놓았는데
얼마예요? 10불이에요.
그래서 그걸 사서 자기집에 데코레이션으로 여기도 걸어놓고 저기도 걸어놓고 했더라고요.
아니 세상에! 한 때 그 죽은 사람은
그 상장 하나, 상패 하나 받으려고 몇 년을 씨름하며 노력했을지 모르겠지만,
죽고나서보니 그것은 모두가 휴지조작이에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나를 위해 살았던 인생은 어떤것이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햇어요
가끔보면, 교회를 다니면서 '난 참 천국에만 가면 좋겠다'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말을 처음 들어보면 '이분이 구원받기를 사모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으나,
그 밑에 깔린 생각을 보면 조금 고약한 생각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천국에만 갔으면 좋겠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는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내가 원하는 인생 한 번 마음껏 즐겨보고
그리고 천국이 있으면 예수 믿는다는 그 말(신앙고백) 한 마디로, 천국 문안에라도 들어가면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즉 내 식대로, 내 기분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왔다가 가는 세상, 후회 없이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안중에도 없는 일이요,
그러면서 교회를 다닙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할 때가 많이 있거든요.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어떤 때는 자기를 포기해야 될 때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일단 제쳐놓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면서도,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글쎄 제가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뭘 보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주님이 한 때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물었어요. '주님, 받을 사람이 적겠습니까?'
차라리 많겠습니까? 하고 질문했으면 좋겠는데요..
그 질문을 받은 주님께서 매우 심각한 말씀 한 마디 하셨습니다.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들어가는 자들이 많음이라'
가만히 들어보세요. '좁은 문'이라 그랬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좁은 문이라고 주님이 표현하셨어요.
예수 믿기는 쉬워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예수 믿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무슨 값을 요구합니까? 아니면 무슨 선한 공로를 요구합니까?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를 보고 믿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원자라고 믿고 고백하면 됩니다.
이렇게 예수 믿기는 쉬워요.
그러나 예수 믿은 다음에 신앙생활은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가려 합니다.
왜 좁은 문일까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관심은 천국에만 들어가면 좋겠다.. 가 아닙니다.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것 아니예요.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보답하는 인생을 살까?'
이게 주된 관심사요, 우리의 화두가 됩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하나님,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더러운 것(나)을 주께서 이렇게 구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으시고
하늘에 있는 모든 축복을 값없이 안겨주셨는데
이 귀한 은혜를 받은 내가 한 생을 살면서
이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이것이 항상 관심사가 됩니다.
이 관삼사대로 살려면, 입으로 주여 주여만 해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자기를 부인해야 되거든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도 많이 있거든요.
어떤 때는 생명과 바꾸는 위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값을 지불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이것은 좁은 길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주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 천국에 들어갈 자가 많습니까, 적습니까?'
주님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식으로 대답하셨습니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으니까)
주님의 대답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게 아니라 정직하게 얘기해 봅시다.
오늘 날 한국에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은 수백만 명, 어떤 수치는 1천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큰 일 나죠. 큰 일 납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갔다는
천국이 오염되어서, 천국에서 평화롭게 살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지, 실제 삶을 보면 얼마나 추악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가지고도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서 제멋대로 사는 데가 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보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뭡니까?
좁은 문을 들어가서 험하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왜 험한 길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소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이게 신앙생활입니다. (내 소원 성취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지금 가고 있는 사람인지,
그것이 귀찮아서 그냥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면서
입으로만 할렐루야 하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그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문제가 심각한지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제가 다시 한 번 마음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20세기 초 영국이 배출한 탁월한 설교자요,
아마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의 한 분으로 꼽힐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주석가입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트 채플에서 80세가 넘도록 사역하셨습니다.
그분의 책이 많이 번역되었는데, 여러분이 어느 것을 하나 들고 펴보아도
여러분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그가 그렇게 평생을 주님 위해 살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영국 황실의 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받고서 그 직을 던져버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일생동안 성직자로서 거룩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가 이제 병이 들어서 임종이 임박한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후배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설교하면서 사셨는데
그렇게 하면서 평생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가장 진귀한 생각이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로이드존스 목사는 그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내게는 한 가지 진지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내가 목사 직을 하다가 죽으면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터인데
그 때 하나님께서 나의 한 생을 돌아보시면서, 어떻게 평가하실까?
이것이 가장 진지한 질문입니다!'
그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심판대 앞에서 나를 보시고
'너 한 평생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구나!'
이렇게 칭찬해 주실까?
아니면 '너 목사가 되어가지고, 한 평생 너 자신의 성공과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았구나!'
하는 책망을 하실까? .. 이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목사들이 어떻게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살까?'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선지자, 제사장, 하나님께서 성직자로 부르신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많이 갔는지.. 성경을 봐도 허다합니다.
그리고 교회사를 보면, 진짜 타락한 사람들이 성직자 중에 많이 있었습니다.
목사라고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다고 하면 착각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목회 성공을 위해서, 교회를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며 생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목사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어요.
사람은 그 사람의 중심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자기를 기쁘게 한 삶이었는지
판단을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거든요. 정직하고 의롭게 판단하십니다!
잘못하면, 목사도 자기를 위해서 인생을 즐기고 살다가 (하늘에) 온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가 되어서, 설 땅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옷깃을 여미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여러분은 목사가 아니라고, 나는 평신도라서
되는대로 살다가, 믿어서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입장입니까? (문이 좁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설교하니까 여러분이 지금 굉장히 진지하고
어떻게 보면 얼굴이 굳어있는데
잘 들으셔야 됩니다.
아침에 교회나올 때는 기분 좋게 집을 나섰는데
오늘 영 재수 없는 설교를 듣고.. 영 기분 잡쳤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런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왜냐면 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내 식대로, 내 기분대로 세상에서 그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저 우리가 들고 다니는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 행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영원한 나라에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연습입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은 여행하는 (거처가는) 곳입니다.
여기서 리허설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면
영원한 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복한 자가 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리허설을 하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살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 사람은 천국에 용납이 안 되니까요.
◑그러면 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이 기쁘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신앙인격이 갖춰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여러분이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키우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재롱을 피우는 것을 보면 부모로서 고생한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애들을 키우는 것은 희생이라기보다는
부모를 위해서 너무너무 하나님이 좋은 선물을 자녀를 통해 주셨어요.
그래서 세상 사는 재미를 우리가 느끼지 않습니까, 애를 키우면서요!
그런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나중에 성공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유명한 사람 되기도 원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볼 때 '야, 우리 아이가 돼 먹었구나!'
누가 생각해도 인격자로 존중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도둑놈이 되어도 돈이나 많이 벌어라' ..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또라도 당첨되어 돈 많이 벌어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 자녀를 제대로 사람만들려고 키우는 사람은
그런 속된 생각 안 합니다.
'사람 답게 살아라!'
'사람 답게 대우 받는 사람이 되어라!'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제가 최근에 출판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에요.
세계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 사람들의 그 성장과정,
그리고 미국 지도자들의 사고의식,
이런 것을 좀 들여다 보고 싶었어요. 제가 그런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자서전 같은 것을 읽으면, 그 사람들의 가치관이라든지, 사고의 방식이라든지
세계를 보는 안목이라든지 이런 것을 좀 들여다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힐러리 여사 자서전>이 한국에서 출판되자마자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힐러리 여사의 아버지는 1930년대 살인적인 미국 경제대공황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경제가 밑바닥에 떨어져서 그날 그날 하루 먹고 사는 것도 기적일만큼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힐러리 여사의 아버지는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가난이었어요.
가난의 그 잔인함을 그가 뼛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자녀에 대한 소원이 있었어요.
딸 하나에 아들 둘인데, 이 자녀들에게 소원이 있었어요.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사람으로 키우자!
그리고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강한 사람!
이런 사람으로 키워야 되겠다.. 이게 자녀를 자기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그 딸을 철저하게 자기의 그 생각대로 키웠는지,
어릴 때 양치질을 하다가 아이들이 치약뚜껑을 열어놓고 나가면,
그다음에 아버지가 들어와서 그걸 보고 치약을 창밖에 던져버렸어요.
그러면 그다음에 딸이 양치질을 하려면 창 밖에 나가서
그 수풀속에 치약이 어디 빠졌는지 모르는 가운데,
그 치약을 찾아서 한참 해매서 들고 와서 양치질을 하게 만들었어요.
왜요? 뚜껑을 열어놓으면 치약이 나와서 낭비가 된다는 거죠.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교육방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그 때 배인 그 습관 때문에
힐러리 여사는 무슨 쥬스를 하나 마시고도, 남으면 위에 비닐로 덮어서 넣어놨다가
다시 꺼내서 마신다고 합니다.
자립하는 정신을 아버지가 키우기 원했기 때문에
13살 먹는 딸이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어디 갖다 내놔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
이게 힐러이 여사의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소망이었어요.
누구나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소망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소망이 뭔지 아세요?
자기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기 형상을 닮은 사람, 다른 말로 바꾸면 자기 아들인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서 나타내 보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마다 기뻐하시고, 우리를 보실 때마다 즐거이 부르실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창조하실 때도 우리를 만드실 때도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잖아요.
창세기 1장에 보면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이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인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존엄합니다. 인간이 참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우리는 이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이 형상이 파괴되어 버렸어요.
그리고는 하나님보다 마귀를 닮는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들판에서 형제가 일하다가 형이 돌맹이를 들고,
동생을 그냥 때려 죽이는 그런 일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마귀와 같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 하셨어요.
1백년, 2백년, 1천년, 2천년 슬퍼하셨어요.
오래오래 슬퍼 하시면서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다시 나를 닮은 거룩한 형상을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구나.. 작정하시고는
자기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짐을 지우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저주를 그 몸에 박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고
예수님처럼 되는 거룩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래서 우리 모두가 예수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원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원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성령을 모시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하시는 일이 뭔지 아세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으로 우리 안에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모시고 살면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누가 사세요?
예수님이 사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함께 동행하도록,
함께 예수님을 모시고 살도록 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
뭐냐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도록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도록 계속 일하세요.
우리의 성격을 바꿉니다.
우리에게 개성을 개조합니다.
우리의 기질을 바꿉니다.
우리의 나쁜 습관을 전부 뜯어 고치게 만듭니다.
더 거룩한 자리로 나아가면서 주님처럼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작업을 하세요.
그래서 예수 바로 믿은 사람은, 믿은 연륜이 많아질수록
예수님을 닮는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게 정상이에요.
왜? 예수님을 닮은 자가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성령이 지금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교회에서 말씀을 계속 배우게 하시고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예수님을 닮은 자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보면 성령의 열매 9가지 나오는데요.
그 9가지를 다 보태면 예수님 닮은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형성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항상 기뻐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화평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오래 참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친절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선하게 만드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성실한 사람 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온유한 자가 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절제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계세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누구를 닮아가요?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떻습니까?
'하나님, 저는 예수님을,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참으셨다지요? 저도 참을게요. 싫지만은 참아볼게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를 소원 하는데.. 이런 야망이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용서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나도 예수님을 닮아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한 번 용서할게요.' 이런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꾸 나도 모르게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 옆에 가면 편안해 집니다.
왜? 예수님을 닮은 구석이 많이 있거든요.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글쎄 여러분이 옥목사를 보고 좀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 분은 예수님을 좀 닮았다..'
여러분이 저를 좀 그렇게 인정을 해 줄 수만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어디 가서 물어 보니
'저 예수님을 좀 닮은 거 같아요?' 라면 사람들이 '글쎄요..' 하고 씩 웃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믿어요.
겉으로는 뭐 드러내 보이기 어렵지만, 내면으로 예수님을 많이 닮아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성령이 계셔서 예수님을 항상 닮도록 작업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은
나도 모르게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두 번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골로새서 1장 10절.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1:10
주님께 합당히 행하여.. 합당히 행한다는게 뭡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라 그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1) 첫째는 예배입니다. 참 중요한 게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의 자녀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하는 자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어요.
예배가 뭔지 아세요? 이렇게 모여가지고 앉아서 어떤 절차를 따라서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만
예배라고 하지 마세요. 예배를 마디로 정리할까요? 예배란 하나님을 즐기는게 예배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예수님이 좋은 거예요.
로마서 12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가지고 움직이는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도 하나님이 좋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찬송합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나 같은 것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 너무 감격스러워서
입으로 자기도 모르게 '주님 고맙습니다!' 하면서 눈물이 글썽 글썽 할 때가 있는 것,
이게 다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즐기는 거죠.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가정에 여러가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막 조여드는 답답함을 느낄 때도,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것!
잠깐 지나가는 거야! 결국 이 지상의 생활 끝나면
이 세상에서 내가 누리지 못한 모든 영광과 축복을 하나님이 주실 텐데
이런 아름다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는
나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찬송들이 터지는 것.. 이것이 예배입니다.
막 예수님이 좋은 것입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또한 일정한 장소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거룩한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주일 날 예배에 절대 등한히 여기지 않습니다.
더 열심 내는 사람은 수요일도 나오고 금요일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예배 하기를 원합니다.
저도 수요일 날 꼭 빠지지 않고 나오지 못할 때가 있는데
어쩌다가 나와보면 저를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날 저녁에 분명히 아르헨티나 하고 한국하고 축구 지금 중계 한단 말이에요.
그럼 제 생각에는 젊은 애들은 하나도 수요일 저녁에 안 나올 것 같은데
나와보면 그 멋지게 생긴 젊은이들이 교회에 가득 앉아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너무 감격스러워서요.
근데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괜히 축구 본다고 눈이 빠지게 보다가, 한 골 먹고 한국이 져서 허탈해가지고
나중에 투덜거리는 사람보다는, 여러분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무슨 집회가 있으면 '아, 오늘 주님 앞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싶다'
이런 갈증이 나와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사는 모습입니다.
노란 손수건(연속극)만 쳐다보고 앉아가지고
저녁마다 그냥 그거 아무리 봐도 뭐 그게 그거지요.
제가 이렇게 연속극 제목을 잘 않은 이유는 저도 가끔 본다는 이야긴데,
그것 다 하찮은 거예요. 꾸민 이야기입니다.
TV 앞에서 우리가 울기도 기도하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광대놀이 하다가 끝나는데요..
그런 것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어떻게 비교할 수가 없어요.
▲2.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를 기뻐합니다.
예수님 이 세상에 오셔서 섬기는 삶을 사셨잖아요.
예수님이 한 평생에 하신 일을 보면 3D 업종에 속한 일들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날마다 환자들하고 씨름하는 것, 세상에 3D 업종 중에 업종입니다.
그게 쉬운 일입니까? 가난한 자들, 세상에 실패한 자들 하고 같이 지내는 것,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이지요.
병자들을 고쳐 주느라고 땀방울을 흘리는 그 일이 절대 쉬운 거 아니지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가면서, 비난의 화살을 받아가면서도
꿋꿋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주님의 모습은
그것은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제자들을 위해서 밤새도록 산에 가서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시는 것 쉬운 일입니까?
제자들을 위하여 아침 밥을 친히 준비하시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아이들을 봐 주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 주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만 섬기는 삶을 사셨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느냐?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는 자를 기뻐합니다.
교회 안밖에 섬겨야 할 대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 도니까 생색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섬기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내가 자원해서 해야지,
하나님이 좋아 하시니까 내가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서 남을 섬기는 것,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진정 기쁘게 하는 삶을 살려면, 전도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선교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세상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제일 하고 싶어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보고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네 이웃을 구원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중요한 일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이에요. 전도 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선교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가면, 오직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수고한 일 많이 영원히 영원히 남습니다. 영원히 남아요!
선교사들이 저렇게 고생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 나라에 가면은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자가 되리라고 성경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잠깐 초라하게 살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광스럽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이웃을 위해서 계속 기도 합니까?
내 옆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때, 담대하게 입을 열고 전도 합니까?
세상의 것을 가지고 으시대고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너무너무 그 영혼이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일이 있습니까?
선교사를 위해서 날마다 정해 놓고 기도합니까?
세계를 가슴에 품고 캄보디아 중국 러시아 이렇게 나라 이름을 매일 하나씩 들어가면서
기도해 줍니까? 내가 땀 흘려서 번 돈을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일에 기쁨으로 사용합니까?
만약에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타니 야스토 라는 일본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일본의 가내보 라는 회사의 회장입니다.
평범한 말단 사원으로 그 회사에 들어가서 나중에 회장이 되었고
회장이 된 다음에 그 가내보 회사를 일본의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그 분이 쓴 작은 책이 있어요. 제가 읽으면서 감동 받았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 아내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서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루는 아내가 자기 남편을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주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한 생을 사세요!
출세요? 그건 안 해도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다가 회사에서 잘리면 과감히 그만 두세요.
그러면 나하고 둘이서 전도하고 다니면 돼요!'
오랜 후에 그 남편이 아내를 놓고 쓴 글을 보면
그때 '출세 안 해도 돼요!' 하는 그 말이 너무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고 그래요.
왜냐면 많은 부인들은 출세, 출세! 하면서 남편을 뒤에서 몰거든요.
그래서 남자들이 그냥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일찍 죽잖아요.
근데 아 출세 안 해도 된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자! 이러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편해졌답니다.
이 야스토 씨가 예수 믿고 나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달라졌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하나가 남아있었어요.
그것이 뭔지 아세요? 갈1:10절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는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기 되기를 원한다!'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자주 불이익을 여러번 당했습니다.
좌천을 당하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위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보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사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그 회사에 최고자리에 올리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먼저 됩시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됩시다! 그다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합시다!
많은 일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예배와 섬김과 전도,
이것을 통해서 내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나중에 주님의 심판대에서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주님이 칭찬하시고
모든 천군천사들과 함께 기뻐하는 날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이대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서로 쳐다보면서 서로가 자랑스러워하는 날이 오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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