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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7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4~17)

by 【고동엽】 2022. 8. 18.

[2021년 06월 27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4~17) - 곽선희 목사님
https://www.youtube.com/watch?v=zoExovO0H2E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4장 14절로 1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267면입니다. 267면에 있는 고린도전서 4장 14절부터 봉독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다 함께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실 곧 나의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아멘."

아마도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우리 교단 총회 목사고시 위원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이 시험장에 700명의 목사 지원생이 모였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입니다. 마지막 관문 목사고시를 보는 장소입니다. 이 시험을 다 보고 나서 맨 마지막에는 면접시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험관들과 그 시험생이 일대일로 한 사람씩 만나서 이렇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면접시험입니다.

저도 이렇게 한 이십 명 되는 사람을 면접시험을 하게 되는데, 그때 저는 꼭 모든 수험생들에게 물어본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까지 살면서 참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앉아서 세 사람의 이름을 쓰세요. 당신이 존경하는 세 사람의 이름을 쓰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세 사람씩 이름을 써 나가는 걸 보았습니다. 뭐 그저 이런 목사님도 쓰고, 또 학자의 이름도 쓰고, 또 교수님의 이름도 쓰고 나름대로 이름을 이렇게 쓰는 그런 장면을 보았는데, 한 가지는 선뜻 쓰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면서 이렇게 세 사람의 이름을 쓰는 걸 보았습니다. 또 다른 수험생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주 당돌하게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그래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당신이 전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없습니다. 전후좌우 둘러봐도 제가 존경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 하고 하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많은 제가 그런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 이름을 수첩에다 좀 적었습니다. "어디 두고 보자." 한 20년 후에 보니까요. 목회 다 실패했어요. 그 말로가 비참한 걸 제가 산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가 한평생 참으로 존경하고 모든 정성을 들여서 본받고 싶은 사람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사람은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전혀 없다, 당신은 벌써 벌써 불행한 사람입니다. 최고의 행복은 평생 존경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 되고, 그것이 내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11살 때에 소아마비로 죽어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임종할 때에 부모님이 너무 답답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아이를 위로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죽어가는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서 빙긋이 웃으면서 "아버지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천국 가는 티켓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가더랍니다. 여러분, 정말 행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장 불행한 것은 존경할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존경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믿을 사람이 어딨어, 세상에 어디 믿을 어른이 있어, 나는 아무도 안 믿어" 그렇죠. 그 자체가 저주받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벌써 버려진 사람입니다.

알고 보면 그 깊은 곳에 교만이 있습니다. 뒤쓸 수 없는 교만, 회개할 수 없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혼 생활을 하고 삽니다마는 남편을 사랑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남편을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만약 존경이 없다면 그 사랑은 에로스입니다. 아가페가 아닙니다. 그 사랑은 피곤합니다. 종종 실망하고 괴로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존경하는 사람, 사랑과 존경을 겸할 때, 그러나 아가페적 사랑을 할 때, 그의 마음은 항상 천국 같은 평안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인간 됨이란 그의 지식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건강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격에 있는 겁니다. 그 인격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어떤 교육을 받느냐, 어떤 교육 환경에 있었느냐 중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거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결혼식 주례 할 때마다 그 신랑 신부에게 첫 번째 하는 말이 이겁니다. "오늘 결혼하는 이 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세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한평생 나를 길러준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 스승에게 감사."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번 잘못된 스승을 만나 가지고 일생이 망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육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느낌으로 살아가느냐에, 어떤 감성으로 무엇을 느끼며, 불행을 느끼며 사느냐, 행복을 느끼며 사느냐, 기쁜 마음으로 사느냐, 초조한 마음으로 사느냐, 슬픈 마음으로 아니 감사한 마음으로 아니 원망하는 마음으로, 어떤 느낌이, 가슴의 상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체험으로 사느냐,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며 어떤 형편에서 살아가느냐 많습니다. 이걸 정리하면은 Knowledge, Experience, Practice 세 가지입니다. 지식 (Knowledge), Experience 어떤 감수성, 그리고 Practice 무엇을 경험하며 사느냐. 여기에 따라서 내 인격이 이루어집니다. 아주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이 일들이 다 은사입니다. 이게 다 축복입니다. 그런데 가장 쉽고 가장 힘이 있는 변화는, 힘 있는 교육은 좋은 모형입니다. 그 존경에서 큰 교육, 큰 감동, 큰 변화, 큰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따질 것도 없어요. 어느 순간에 큰 감동으로 큰 스승을 만나서 그 존경을 바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인격은 변화되고 내 영혼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믿음, 그러나 믿음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존경과 신뢰로 바뀝니다. 그리고 본받는 마음으로 바뀝니다. 아니 나도 모르게 본받게 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면, 믿으면 본받게 됩니다. 닮아가는 것입니다. 닮아가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전인적 교육입니다. 전인적, 전 인격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실제적인 인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감동스러운 말씀입니다. 많은 분들 가운데 그런 말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는데 이 말은 좀 건방지다. 어떻게 감히 "나를 본받으라" 할 수 있겠나? 그럴까요? 좀 더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깊이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하게 교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어찌 생각하면 이 말을 못 한다면 잘못된 거죠. 이 말을 못 한다면 그 타락입니다. 내 마음속에 충만함이 있고 충만한 은혜가 있다면 누구를 만나도 "나를 본받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가지고 마지막에 로마로 가기 직전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죄수의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황제 앞에서 마지막 재판을 받는 순간 그런 말 합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죄수의 사슬에 묶여 있는 이 사슬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베스도 총독이 옆에 취하여 "이 사람이 몇 가지 말 해 가지고 나를 예수 믿게 만들라" 라고 비웃습니다. 사실입니다. 그 만족감, 그 충만함, 망설일 것이 없어요. 내 자신에 대해서, 신앙고백에 대해서, 생활 자체에 대해서 만족할 때 이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믿는 대로 믿어라. 내가 간 대로 가라. 내가 느끼는 대로 느껴라. 내가 지금 충만하고 있다. 만족하고 있다" 하는 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데 결코 교만한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해석이 나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 내가 본받으라는 말이 뭡니까? 나처럼 살아라, 따라와라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애쓰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 것, 충만함을 본받으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그것을 본받으라 라고 말합니다. 이 선언은 자기 만족의 고백이요, 충만함의 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본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생각, 그리스도의 가치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라. 마음을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느끼고 그리스도처럼 생각, 주님을 본받을 때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유함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짐은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아 여기서 귀중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예수의 멍에는 같이 메고 예수와 같이 가고 예수를 배우라. 여기에 "내게 배우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는 "데오나"는 말이지요. 내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 학생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내 제자, 나를 본받는 제자, 내 제자가 될 때 내 짐은 가벼워진다, 내 일은 쉽게 풀려진다, 내 멍에는 쉽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행동, 예수와 함께 그리할 때 온전한 자유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 가끔 길에 나서게 되면 어린아이들이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그 꼬마들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그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가는 모습을 봅니다. 생각하면 어디 가는 지도 몰라요. 어디 가는 지 알 것도 없어요. 그냥 같이 가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는 마음이 그래야 합니다. 뭐 이렇게 따져요. 뭐 이렇게 비판해요. 뭐 그렇게 손익 계산을 하였어요. 전적으로, Total Dependence, Total Discipleship, Total Commitment 그것이 신앙입니다.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전적으로 맡겨 버립니다. 내 운명을 완전히 맡겨 버립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겁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안심스러운 교육입니다.

확실한 교육입니다. 믿습니다. 따릅니다. 배웁니다. 아니 본받습니다. 본받습니다. 같이 가고, 같이 느끼고, 같이 즐기고. 놀라운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살고, "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부활에 이르려 한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입니다.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생각, 그의 느낌, 그의 행동 아니야. 십자가를 본받으려고 한 것이요. 죽으심을 본받아 그때 가서야 부활에 이르게 된다고 그런 신비로운 고백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생각을 단순화해야 됩니다. 이 본받는다는 것만큼 간단한 거 없습니다. 그냥 따라가면 되니까. 그냥 행동하면 되니까. 그것이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귀한 고백을 듣습니다.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나는 그만큼 만족하고 행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나와 같이 되라 더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내가 전적으로 본받고 따라갈 때 아무런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을 향해서 나를 본받으라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은 자유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해서 "나를 본받으세요. 나와 함께 갑시다. 나와 함께 즐깁시다. 나와 함께 영생 합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고 여기까지 이끄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를 따르지 않고, 주님을 배운다고 하면서 주를 본받지 않으며, 함께 가는 것을 꺼려하는, 그 십자가의 길을 기피하는 저희들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온전히 주께 맡기고 믿고 의지하고 주를 본받아 가면서 주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기쁨과 그 능력을 힘입을 수도 있고, 그 감격과 그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말씀 봉독 및 서론: 존경할 사람과 행복

  • 말씀 봉독: 고린도전서 4장 14절-17절을 봉독하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하는 자녀에게 권면하듯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하며,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보내 바울의 가르침과 행실을 생각나게 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 존경의 중요성 (30년 전 목사고시 면접 일화):
    • 설교자가 목사고시 위원장일 때 700명의 지원생에게 존경하는 세 사람의 이름을 물어봄.
    • 이름을 쓰는 것을 주저하거나, 심지어 존경할 사람이 전혀 없다고 대답하는 지원생이 있었음.
    • 20년 후 확인 결과,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던 이들은 목회에 실패하고 말로가 비참했음을 산증거로 경험함.
  • 결론: 평생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지만, 전혀 없다면 불행한 사람이며, 이는 내면의 교만 때문일 수 있음.

👨‍👩‍👧‍👦 인간됨의 근원과 본받음의 교육

  • 진정한 사랑: 남편을 사랑해도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에로스이며 피곤하고 실망할 수 있지만, 존경아가페적 사랑을 겸할 때 평안을 얻음.
  • 인간됨의 요소: 인간의 인격은 지식, 건강, 소유가 아닌 인격에 있으며, 이는 다음 세 가지를 통해 이루어짐:
    1. 교육 (스승):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교육 환경이 인격 형성에 중요함.
    2. 감동 (느낌/감성): 어떤 느낌(행복, 감사, 원망 등)으로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짐.
    3. 체험 (Practice): 무엇을 경험하며 살아가느냐.
    • 요약: 지식(Knowledge), 감수성(Experience), 경험(Practice)을 통해 인격이 형성됨.
  • 최고의 교육 방법: 좋은 모형/본받음:
    • 위의 요소들은 은사이지만, 가장 쉽고 강력한 교육은 좋은 모형, 즉 존경을 통한 본받음임.
    •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인격과 영혼이 변화됨.
    • 믿음은 깊어지면서 존경신뢰로 바뀌고, 결국 본받는 마음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닮아감. 이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실제적인 전인적 교육임.

🧑‍🤝‍🧑 사도 바울의 담대한 권면: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사도 바울의 담대함:
    • 일부에서는 바울의 "나를 본받으라"는 말이 건방지다고 여길 수 있으나,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와 행하는 일,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할 수 있었음.
    • 이 말을 못 하는 것은 오히려 타락이며, 마음속에 충만한 은혜가 있다면 담대히 권할 수 있음.
    •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죄수의 사슬에 묶인 채 "이 사슬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기를 바란다"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신앙과 삶에 충만함이 있었음.
  • 권면의 진정한 의미 (고전 11:1):
    • "나를 본받으라"는 것은 단순히 '나처럼 살아라'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는 뜻임.
    • 즉,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노력, 충만함,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가치관을 본받으라는 권면임.

🔗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의 삶

  • 그리스도의 멍에: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심.
    • '내게 배우라'는 헬라어 원어는 **'데오나'**로, 곧 내 제자가 되라는 뜻임.
    • 예수의 제자, 즉 예수를 본받는 자가 될 때 짐이 가벼워지고 일이 쉽게 풀림.
  • 전적인 헌신 (Total Dependence, Total Discipleship, Total Commitment):
    • 주님을 따를 때 계산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고, 맡겨 버리고 그 길을 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안심스러운 교육임.
  • 최고의 본받음 (빌 3:10):
    • 사도 바울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함.
    • 복잡한 세상에서 본받음처럼 간단한 신앙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임.
  • 마지막 권면: 사도 바울은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나는 그만큼 만족하고 행복하고 있다"고 간증하며,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함. 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자유함과 영생으로 함께 가자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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