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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치유사역 (이사야 53:4-5)

by 【고동엽】 2022. 8. 27.

교회의 치유사역  (이사야 53:4-5)

I. 치유사역은 성경적인가?

한소망교회의 비전 아니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비전이 있다면 그것은,
① 주님께서 세우시기를 원했던 바로 그 교회를 세우는 꿈입니다.
② 초대교회 즉,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왜요? 초대 교회는 오늘날 교회들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교회, 초대 교회의 원형을 함께 회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는 성경적 교회로 돌이키려는 우리의 충정이요 열정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가 된다면 교회의 사역 또한 주님이 하셨던 그 사역을 올바로 그리고 균형 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몸부림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치유의 능력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때 치유신학을 정립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이 시간, 이 치유사역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는 마음으로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회가 치유사역을 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교회가 목양사역의 일환으로 치유사역을 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Yes 그렇습니다. 교회의 치유사역은 현대교회가 행하고 있는 그 어떤 사역보다 충분한 그리고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배하는 그 예배의 순서들보다 더 확실한 신학적,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는 심방, 성경공부, 심지어 제자훈련, 전도훈련 보다도 더 많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 외에도 충분한 현실적 이유가 있습니다.

설날 아침 어머님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저희 어머님은 평생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올해도 하나님 은혜 많이 받아 온 식구 건강하거라.” 교인들로부터 기도제목을 받아 보면 가장 많은 기도제목이 치유 즉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사역은 오늘날 교회가 가장 소홀히 여기고 제일 자신 없어 하는 사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특정교단이나 부흥사들의 별난사역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치유사역을 하는 사람이나 교회는 비정상적이고 치유사역을 하지 않는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은 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비성경적인 생각들이 퍼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오랫동안 이런 생각과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치유사역에 대해 무지한 가운데 사탄은 많은 질병에 밝아 질병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질병은 사탄이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큰 무기입니다.

월남전 : 베트공들이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정글에 묻어둡니다. 한 사람이 찔리면 두 사람이 부축, 두 사람이 경계 - 찔린 사람까지 5명이 Out. 한 사람이 소중했던 정글전에서 베트공의 쇠꼬챙이 작전은 유효했습니다.

모든 병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처럼 사탄은 질병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력화시킵니다. 한 사람만 잘 공격하면 몇 사람의 손발을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II. 치유를 부정하는 신학들

우리는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이 치유사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동안 사실 치유를 부정하는 신학들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 이적과 기사는 초대교회 그리고 성경이 기록되기까지만 있었지 그 이후 특별히 오늘날엔 치유역사도 표적도 없다는 신학입니다.

이는 역사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현존하는 신학 가운데 가장 비성경적인 신학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모든 세계를 부정하는 자기중심, 인본주의 사상일 뿐입니다.

둘째, 치유는 하나님이 직접하시는 일인데 왜 딴 사람에게 기도를 받느냐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에게 기도를 받고 고침을 받습니다. 병든 자가 있으면 교회의 리더에게 기도를 요청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동차가 고장나면 수리 기술자에게 수리를 요청합니다. 치유를 위해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셋째, 자신은 치유의 은사가 없기 때문에 치유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 맡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접대의 은사가 없어도 한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한 인간으로서 남을 대접합니다. 우리는 전도의 은사가 없어도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전도합니다. 치유사역은 은사자에게만 명한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명한 사역입니다.

넷째, 교회 안에는 질병을 미화시키는 사상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질병은 아름다운 어떤 환경이 아닙니다. 질병자체는 인간의 죄와 함께 인간에게 찾아온 악입니다.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천국엔 병든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프신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감기 앓으시사 사흘을 쉬시니라" "예수님께서 관절염으로 6개월 요양하신 후에 베다니로 가시니라" 이런 말이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병으로 고생하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 유익을 얻지요. 아픈 순간에도 자신을 돌이켜보고 회개하고 겸손을 배우지요. 그것은 질병을 통해 유익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병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질병은 퇴치해야 할 대상이지 환영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질병이 그렇게 좋으신 분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온 교회의 질병을 다 안겨 드리겠습니다.

입으로 질병을 시인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들은 '나는 환절기만 되면 아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아플 겁니다. 입으로 시인하지 마십시오. 건강을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마귀와 질병을 퇴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III. 제3성령의 물결

이 치유사역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지난 세기 격렬한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근간 새롭게 등장한 신학 용어 가운데 「제3성령의 물결」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20세기에 일어난 성령운동들과 관련된 말입니다.

① 제1성령의 물결은 20세기초 미국에서 일어나 전 세계로 퍼져간 오순절 운동을 일컫습니다.

찬양과 기도의 감정적 자유, 축사, 치유, 방언으로 나타났던 이 운동을 포용할만한 신학이 당시엔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주의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가 있었습니다. 나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해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② 제2성령의 물결은 20세기 중반에 다시 불일 듯 일어난 은사운동을 말합니다.

이 운동은 이제 오순절 교회들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교단들 -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회중교회 등 많은 개신교회와 심지어 천주교회에서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부 보수교단에서는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기적사역들을 이해할 수 없어 더 굳게 문을 닫아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교회들끼리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③ 제3성령의 물결은 20세기 말, 오순절이나 은사주의자들과 전혀 교류하거나 합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새로운 성령운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성령의 주권적이고 강권적인 역사였습니다. 이 세 물결은 비슷한 성격과 현상들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감정표현이 자유로운 경배와 찬양 그리고 두 손을 들고 열정적으로 기도합니다. 활발한 치유사역, 설명이 어려운 표적들로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세기 전 세계 교회 부흥 한 가운데 이 제3성령의 물결이 있습니다. 이 운동을 체험하고 받아들이는 교회나 공동체들은 모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동안 교회 안에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그 역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뒤에서 잡아 당기는 수구파도 있었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 선구자도 있었습니다.

수구파 16%, 방관자 34%, 초기 동조자 34%, 열렬한 후원자 13.5%, 창조적 선구자 2.5% =100%
이 선구자들이 언제나 새 역사를 창조하고 역사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를 잡아 당기는 사람입니까? 선구자입니까?
여러분은, 성령사역의 구경꾼입니까? 아니면 열렬한 환영자입니까?

그동안 한국교회의 치유사역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치유사역에 마음을 닫기까지는 그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① 치유사역이 몇몇 은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자기 과시처럼 시행되어 왔습니다.

신유의 종, 신유집회 하면 대게 조금 이상한 사람이 하는 이상한 집회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이러한 집회들마저 찾아 보기가 힘이 듭니다.

② 치유방법이 너무 비성경적이었습니다.

손톱으로 상처를 할퀴고 안찰 한다고 두들겨 패다가 사람이 죽지를 않나?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눈을 상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사람들은 치유사역을 이상 행동 내지는 미신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 밖에요. 성경 어디에 두들겨 팬즉 나으니라. 손가락으로 눈을 찌른즉 나으리라는 말이 있습니까?

③ 치유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이 영광을 받거나 댓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유 사역자들은 무리한 댓가까지 요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치유사역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누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어떤 보상도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치유사역자들 돈 받으면 안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④ 즉, 치유사역을 교회 밖에 있는 한수 낮은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복음적이고 전통적인 사역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교회들이 치유사역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불행한 경험들이었습니다.


IV. 삼위일체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

① 이제 성경적으로 치유사역이 제대로 자리 매김을 해야 할 때입니다.

출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훼 라파 - 하나님은 치유자체이십니다. 교회는 치료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찌르고 상처내고 죽이고 파괴하는 공동체로, 사람들로 전락했습니까?

※ 양을 치라 - 몽둥이로 양을 내리치는 설교.
※ 일본에 이런 교회가 하나 있다 - 교회 이름? 깐 이마 또 까기 교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공동체는 날마다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는 교회였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성령역사 한 가운데 치유사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 미망인(울어도, 안울어도) (성가대 쉬어도, 참여해도) - 상처

② 하나님이 치유자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치유자로 오셨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 보면 마귀가 하는 일과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확실하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건강을 빼앗으면 바로 이렇게 됩니다. 집안에 중병환자 한 사람만 있으면 온 식구들이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사역을 요약하고 있는, 마9:35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이 하신 사역 셋 즉, 이 땅에 있는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역 셋이 있습니다. 이것을 삼중사역이라고 합니다. ① 가르치는 사역 ②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 ③ 병을 고치는 사역입니다.

③ 나아가 성령님 역시 치유자이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의 보혈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치유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치유사역은 분명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시기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행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들이 행하는 치유사역에 충격을 받은 교권주의자들은 이 사역을 못하게 하려고 제자들을 비난하고 이 치유사역을 폄하해 보려고 몸부림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에 결단코 중단시킬 수도 중단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요14:12 "너희는 내가 했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할렐루야!


V. 구속 사역 한 가운데 있는 치유 사역

우리가 치유사역을 소중히 여기고 능력 있게 감당해야 할 또 다른 하나의 이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치유사역은 구속사역의 중심에 있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총체적인 구원이십니다. 죄와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미래에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구원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바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능력 가운데 치유사역이 포함됩니다.

예수님의 구속사건 속에 치유사역이 분명히 들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치유를 하시면서 구약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자신의 고난이 치유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도다"(사53:5) 이것은 신비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권능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 가운데 놀랍게도 치유사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할렐루야!

※ 야베스의 기도 - 못 찾아 먹은 방

- 교회가 하는 많은 사역들 가운데 가장 많이 못 찾아 먹은 방 가운데 하나가 아마 치유사역 일 것이다.

눅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믿는 자는 누구나 이런 표적이 따릅니다. 믿는 자 일부가 아닙니다. 믿는 목사 몇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입니다. 요즘 교회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적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따르고 실패가 따라옵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신 권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권능과 기적이 없는 연약한 교회가 아니라 예배에서, 셀 모임에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권세를 행하고 이 땅을 정복해 가는 권능 있는 교회, 권능 있는 신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VI.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치유자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치유의 사역이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펼쳐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십시다. 치유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적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치유사역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사복음서의 ¼-1/5 정도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파송할 때 치유사역을 명하셨습니다. 70인 전도인을 보내실 때 역시 치유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때문에 치유사역은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은사가 없어도 치유사역과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병이 낫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지상명령 가운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란 말이 있지요. 예수님께서 여기 분부하신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이, 가장 자주하신 분부 하나가 치유의 명령입니다. 치유사역은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이 땅에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VII. 믿음으로 감당하면 더 크게 기름 부어 주신다.

이 명령은 은사 받은 몇 사람에게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이 치유사역은 몇 사람 은사 받은 목회자들이 전세낸 사역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누리라고 주신 권세요 축복입니다.

부모들은 아픈 자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역자들과 장로들 그리고 목자들은 역시 아픈 셀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목장과 가정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중보기도실에서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 치유사역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협력해야 할 사역입니다. 병원의 의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상담가, 목회자, 치유 은사자들 그리고 셀 목장의 리더들이 서로 각자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서로 동역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 의사 집사님 한분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이 고치시도록 길 안내만 하지요. 사실은 하나님이 고치시고 돈은 의사가 받습니다.” 겸손하고 진실한 고백입니다.

치유사역자들은 병원과 약국도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으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느 병원 환자가 수술실에서 도망을 나왔습니다. 온 병원에 비상벨이 울리고 직원들이 동원된 뒤 마침내 수위실에서 환자가 붙잡혔습니다. 수위 아저씨가 환자를 붙들고 물었다. "무슨 수술인데 그렇게 겁을 내요?” "맹장 수술이요.” "그까짓 맹장 수술 가지고 그렇게 겁을 내면 어떡해요.” "수술실에서도 간호사가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가 나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바로 수술하는 풋내기 의사한테 했단 말이오. 그래서 도망나온 거란 말이오.”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가 마땅히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치유사역에 너무 겁부터 먹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기름 부어주심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사역하면 부어 주십니다. 내 힘으로 하려는 무엇, 내가 붙들고 있는 그것들을 놓으세요. 그리고 주님만 의지하고 사역의 현장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름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권능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치유사역만큼 분명하고 확실하고 풍성한 성경적 근거를 가진 사역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의 치유사역을 부정하는 어떤 신학도, 논리도 사상도 비성경적 가치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치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치유사역은 예수님의 구속사역 한복판에 있는 소중한 사역입니다. 가서 병든 자를 고치라. 이건 지상명령입니다. 이제 기쁨으로 순종하십니다. 교회에, 셀목장에, 가정에 기름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출처/류영모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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