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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이 있는 곳 (눅 12:32-34)

by 【고동엽】 2022. 8. 27.

 네 마음이 있는 곳  (눅 12:32-34)

지난 7월 캐나다 벤쿠버 부흥회에 가서 보니 과거에는 자녀의 영어 연수를 자녀들 혼자 보내기 때문에 그들을 돌보는 홈스테이(homestay: 현지가정체류)를 하는 이민자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것으로는 못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를 어학연수 보내면서 엄마들이 같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 열정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자식을 남부끄럽지 않게 공부시켜 사회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는 부모의 마음은 정말 훌륭합니다.
물론 해외어학연수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간혹 아이와 부모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외로움에 탈선하여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열에 대해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올바르게 성장시켜 사회에 모범적인 사람으로 만들려는 부모의 교육열은 참으로 아름다고 훌륭합니다. 자식에 대한 이러한 교육열은 퇴계 이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70)도 자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과거시험 전문 학원으로 ‘거접(巨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처럼 퇴계도 과거를 공부하는 아들과 손자를 전문입시학원인 거접에 보내 시험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대학자인 퇴계도 자신은 학문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을 고수했지만 자손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 된 심정은 어쩔 수 없어 그 역시 자녀를 거접에 보내는 고육책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퇴계는 자녀 교육에서 원칙만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퇴계는 공부를 잘했던 맏손자 안도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안도에게는 갓난 아들(창양)이 있었는데, 부인이 아들을 낳고 6개월 후에 다시 임신을 하는 바람에 젖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안도는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유모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퇴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퇴계는 “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면서 여종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별수 없이 증손자 창양은 계속 밥물로 배고픔을 달래면서 봄을 어렵게 넘겼으나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퇴계는 공부를 게을리 하는 후손이 있으면 고기와 함께 편지를 보내면서 위로하며 공부를 독려했습니다. 또 겨울에 손자에게 줄 귀마개를 사주기 위해 3개월간 하인을 시켜 시장을 꼼꼼하게 돌아보게 했습니다. 값비싼 귀마개를 사주면 손자가 자칫 물질적으로 나태해질까봐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은 것을 사주기 위해 3개월간이나 시장조사를 한 것입니다. 결국 싸고 질 좋은 귀마개를 구해 손자에게 주면서 빨리 사주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제자로 삼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르는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대단한 결단까지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쫒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고 그것들을 통치하는 분임으로 그의 가르침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교육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의 제자 교육을 통해 신자가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인간의 욕구는 세상적인 것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오 하나님](Oh! God)이란 희곡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그들에게 옷을 입혀 주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옷을 입혀주면 바로 주머니가 달려 있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고 주머니를 달아주면 돈으로 채워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고 돈을 채워주는 순간부터 모든 사고가 시작될 것이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를 짓는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 인간의 탐욕은 그치는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가리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돈을 받고 난자까지도 파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TV 시사프로그램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난자는 기증으로만 이루어지는데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임 부부들이 될 수 있으면 난자를 파는 여성의 외모와 성격, 키, 성적, 아이큐 등이 좋은 난자를 원하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난자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임 부부에게나 난자 매매자에게 난자는 차후에 한 명의 인간으로 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생명체이기 보다는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골라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도 인간이 돈을 좋아하는 지라 언젠가는 난자가 진열대에 가격표를 달고 진열되어 편하게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성숙해 지지 않고 더 물질을 탐하는 자들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과 시대의 많은 불행들이 물질의 소유욕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만족하는 심리가 나와 너 그리고 온 세상을 파괴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소중하게 보관한 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귀한 것을 잃어버렸는데도 그는 태연하였습니다. 도무지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소중하게 간직해온 당신의 활을 찾지 않습니까?”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급한 필요가 있어 그것을 가져갔을 터인즉 급하게 필요로 하지 않은 제가 찾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자기나라 사람이 찾아가면 괜찮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 선생이 이 말을 듣고는 “우리나라라는 말은 빼게, 그저 사람이 주울 것이니 꼭 내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게”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이 말을 들은 노자가 “사람이란 말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잃어버린 활이야 우주에 있으니 우주의 소유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차원이 높은 이야기라 사유재산을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이 소화해 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울타리를 쌓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젖먹이 때부터 내것 네것을 구분하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유욕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가 없고, 하나님 나라와 멀리 있을 따름입니다.

2.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인생의 좋은 것을 다 포기하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2절). 예수의 사역 가운데 제일 중요한 주제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가는 천국과는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정의와 평화와 자유가 있는 나라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지상에 인간이 세우려는 이상적인 나라 곧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물론 인간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처한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여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자유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재자라고 신앙 고백하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인본주의에 입각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임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면 마음에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지배,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기도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조속히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드리드에서 1958년에 세계 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감격스런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결승점을 불과 1마일 남겨두고 1등으로 달려오던 선수의 다리에 심한 쥐가 나서 그냥 누워버렸습니다. 2등으로 들어오던 선수가 그 장면을 보고 1등으로 달리던 선수를 일으켜 부축하고 함께 천천히 달려 들어왔습니다. 물론 이들은 둘 다 메달을 놓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기장에 입장하여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돌 때 관중은 다 기립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1등을 하느냐, 누가 제일 부자가 되느냐, 누가 제일 성공을 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는 1등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쌍히 여겨 그를 부축하는 2등이 보여준 것과 같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2등은 쥐가 난 1등을 그냥 두고 달리면 자신이 1등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에서 1등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히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달리는 것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의 마음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경제적 이득이 있다는 것을 분명 앎에도 불구하고 생명 때문에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1968년, 장 기려 박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물론, 병원 원장이나 대학 학장으로서의 수당은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월급이나 수당보다는 가불이 더 많았습니다. 의사가 가불이라니 바보 같은 의사입니다. 그런데 장 박사는 진짜 ‘바보’였습니다. 장 박사에 대한 미신에 가까운 풍문을 듣고 전국의 가난한 수술 환자들과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말기 암 수술 환자들이 부산 복음 병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입원비와 약값이 없었습니다. 이 때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원장실이었습니다.
원래, 잇속이 밝지 않아 셈을 잘 할 줄 모르고, 바보 같을 정도로 마음이 착한 장 박사에게 “시골 우리 집은 논도 밭도 없고 소 한 마리도 없는 소작농이어서 입원비나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환자들이 하소연하면, 장 박사는 그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고는 눈물겨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환자의 치료비 전액을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 처리하고는 하였습니다.
병원 행정을 이렇게 하다 보니 장 박사의 월급은 항상 적자였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병원 운영도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병원 회의에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앞으로 무료 환자에 관한 모든 것은 원장 마음대로가 아니라, 부장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환자들이 장 박사를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결정권을 박탈당한 이후부터 장 박사는 어려운 환자들이 생기면 “내가 밤에 살그머니 나가서 병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거기로 빠져 나가라”고 일러주어 야밤에 도주케 하였습니다.
그는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산 복음 병원 원장으로 40년, 복음 간호 대학 학장으로 20년을 근무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서민 아파트 한 채, 죽은 후에 묻힐 공동묘지 한 평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바보’ 의사입니다. 하지만 이런 ‘바보’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바보’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좋아하십니다.

3. 우리는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둘 곳을 위해 “그 곳에 너의 보물을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은 하늘입니다. 곧 천국입니다. 천국에 보물을 쌓으면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보물이 됩니다. 우리는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서 천국에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우리는 보물을 천국에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월 마지막 주일에 자율적으로 구제 헌금을 합니다. 이것으로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주고 살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제 헌금은 선행을 하기 위한 자선 행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에 쌓는 우리의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도둑이 구멍을 뚫어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에 금액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치는 하늘에 있는 나의 보물이 됩니다.
구제와 함께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은 하늘의 귀한 보물이 됩니다. 어느 교회에 나이 많은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많은 교인들과 모여서 식사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주방에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그 부인은 관절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으로 불평하거나 자기가 아픈 것을 핑계로 해서 남을 섬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앞치마를 두르고 일할 채비를 차리고 조용히 그 필요에 응했습니다. 이 부인은 섬김의 모범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은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권면은 일하는 태세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우리 신자는 언제나 일할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부인은 언제나 주의 일을 할 자세를 갖추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세상에 살아서 교회를 섬기는 생활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와 내 가정만을 생각하는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절)”한 말씀처럼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 때 다른 세상 것까지도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교회를 잘 섬기는 삶을 통해 영육간에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출처/전병금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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