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의 하나님// 20010124
2001-12-08 17:34:41 read : 245
수요일 저녁예배// 출애굽기 17장 8-16절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아지트에 시체소각장까지 만들어서 태워버렸습니다.
그들이 벌인 살인극은 해방 이후에 가장 잔인한 것이라고 떠들썩했습니다.
매스컴에 나와서까지 그들은 눈을 치켜 뜨며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데
더 죽이지 못하고 잡혀서 아쉽다고 서슴없이 말할 때 사람들은 치를 떨었습니다.
그 얼마 후에 온보현이라는 사람이 6명을 연쇄적으로 죽였다가 잡혔습니다.
그는 잡혀서 담담하게 살인 부문 최고 신기록을 내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서운 인간이 아닌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봤습니다.
거기에는 자기를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한 인간이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함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바로 자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위대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자기를 극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좌절, 열등감, 욕구불만, 지나친 죄의식, 염려와 두려움 등을 극복해야 하고,
또한 피해의식, 책임전가, 이기주의, 불신도 극복해야 할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런 극복의 대상이 되는 문제들 중 몇 가지 문제는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돈이 있어도 있고, 공부를 많이 해도 있고, 잘 생겨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이 위대해지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그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족속과 싸우는 장면입니다.
이 싸움은 보통 자기와의 싸움, 문제 및 사단과의 싸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 극복의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힘
9절 말씀을 보면 모세는 아말렉과의 싸움이 일어날 때
자기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한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추적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항상 하나님께 붙잡혀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 그리고 명예와 지위를 붙잡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우리의 영혼은 더욱 못 지켜줍니다.
그것들은 안개와 같고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햇빛이 나면 없어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이기는 튼튼한 영혼을 가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혀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중심을 아시지요?
문제 앞에서, 유혹 앞에서 자주 넘어지는 저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옵소서!"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하늘의 힘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 능력이 옵니까? 훈련으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힘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붙들어 주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붙들리면 우리는 문제를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지순례를 가서 로마의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을 갔습니다.
성당의 규모와 장엄함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무엇보다 놀란 것은
성당 벽에 새겨진 조각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조각들이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놀란 것은 가까이 가보니 그 놀라운 작품들이
버려진 돌 조각, 유리 조각, 대리석 조각, 조개 등으로 만들어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가치 없는 것들, 버려진 것들이 장인의 손에 붙잡혀서
적절한 자리에 질서 있게 배치되니까 위대한 작품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리석 조각처럼, 유리 조각처럼 버려진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에 붙잡혀서 하나님이 원하는 제자리에 가 있으면
그 인생도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내세울만한 것들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권능에 붙잡혀 취한 사람들처럼 살았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면 옥수수 떼가 흔들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리고,
성령의 바람에 이끌려 살았기에 그들을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능력 있는 삶,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밤 새워 기도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면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능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발견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성자는 죄 없는 자가 아닙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입니다.
남보다 다른 어떤 신앙적인 모습이 우리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감
10절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을 받들어 아말렉과 싸우러 가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성경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승리는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하나님 만나기를 즐겨 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혼자 자기 극복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면 도저히 해결의 길은 없다는 것!
그것이 이제까지의 삶의 결론입니다. 살면서 그런 지혜 정도는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왜 실망하게 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2)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3) 사람들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4)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 거부 하워드 휴즈의 삶을 들어보셨습니까?
죽을 때가 되니까 자기의 재물을 누군가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먹고 있는 음식에 누군가 독을 넣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을 멀리 하고, 다른 사람이 해 준 음식은 먹지 않고
혼자 유리관 속에서 빵 조각에 쨈을 발라서 먹으며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어떤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어떤 때는 돈도 지식도 소용없고, 사람도 믿을 대상이 아님을 가르쳐줍니다.
이 세상에 가까이 해서 유익이 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고 정말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나아가기를 즐겨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추구하는데 담대하지 못합니다.
어제 어떤 집사님을 만났는데 열심히 하나님을 추구하는 모습은 있는데
하나님 일을 하지 않으면 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추구합니다.
그처럼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판사 앞에 가는 것처럼 나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마치 손자가 할머니한테 가는 것과 같습니다.
손자들은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 "할머니!"하고 기쁘게 소리를 칩니다.
떼도 부리고, 잘못도 하지만 자기를 사랑해 주는 할머니가 그렇게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런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죄송한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기도함.
모세는 아말렉과 전쟁할 때 산꼭대기에서 하늘 높이 두 손을 듭니다.
그래서 두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두 손이 내려오면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 말씀에서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를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하는 손이 내려져서는 안됩니다.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한가지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기도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면
그 믿음은 기본적으로 거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기도는 영혼의 신경과도 같습니다. 신경이 죽으면 인생은 죽습니다.
중추신경이 죽으면 육체가 죽어가거나 썩어가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기도신경이 죽으면 영혼이 썩어가도 모르고 죽어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이 살아있다는 뚜렷한 증거 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슨 심령이 아름답다, 무슨 심령이 아름답다"고 말해도 목사인 저에게는
기도하는 심령이 제일 값지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기도하는 모습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칠팔 십 년 살다가면서 인생에 귀하고, 즐거운 시간이 많지만
이 기도 시간보다 귀한 시간은 없고, 즐거운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착해지는 시간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 시간보다 착해지는 시간은 없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 땅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없이 어떻게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평안할 수 있습니까?
서울에 제가 평신도 때 다니던 교회에 어떤 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의 아이의 새끼손가락 끝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려고 마취하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가 통곡하면서 회개하며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나는 요까짓 것 수술할 때는 기도 안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살면서 가볍게 여겨지는 '그까짓 것'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줄이 끊긴다면 이 세상의 어떤 일도 그까짓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도 기도 없이 이루려는 작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땀조차, 우리의 수고조차 기도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롱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장 약한 성도가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무서워서 떱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를 가까이 함으로 자기 극복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4. 중보하는 마음
본문에서 모세가 힘들어 손이 내려올 때 아혼과 훌이 모세 좌우에서 협력해줍니다.
그러한 중보의 사역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또 하나의 비결입니다.
본문의 승리에는 기도의 협력, 사역의 협력, 순종의 협력(여호수아)이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누구의 조그만 도움 및 짤막한 한마디가 그렇게 힘이 됩니다.
저에게도 가끔 마음이 무거울 때 어떤 분이 천사처럼 나타나 말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이 상황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말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중보의 사역으로 공동 승리를 이끌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학사 에스라의 개혁도 그런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에스라 7장을 보면 에스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바벨론에서 귀향합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의 원리를 어김으로
철저하게 마비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잠시 절망했습니다.
너무 슬퍼서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에스라 9장 3절을 보면 그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에스라가 하나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에스라 10장 1절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같이 심히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이 눈물의 기도에 뒤이어 백성들 사이에 광범위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개혁의 물결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10장 2절에서 4절까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오히려 에스라를 위로하고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도울 테니 힘써 하나님의 개혁을 행하소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도우면서 해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이시고,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서로 협력하고 도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군자는 뜻이 안 맞아도 화합하고 소인은 뜻을 같이하면서도 날마다 불화한다."
진짜 큰 사람은 작은 것 가지고 싸우지 않습니다.
하물며 믿는 사람이 작은 것을 가지고 등을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 중보하고 도우면서 승리의 역사를 일구어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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