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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이유 (시 136:25-26)

by 【고동엽】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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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이유    (시 136:25-26)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그리고 가을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연중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것 같습니다. 가는 곳 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넉넉함도 있습니다. 나무들이 열매들이 충실히 맺혀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이 참 아름다운 세상이고 넉넉함을 주는 그런 세상으로 보입니다.

또 금년 이 한해를 보내면서 감사한 것은 농사가 그런대로 잘 된 것이 감사합니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이 농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이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나라는 농사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은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초가을 이 땅을 휩쓸고 간 태풍으로 인해서 얼마나 걱정을 했습니까. 모두 망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럼에도 평년작을 이루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예배 자체가 모두 감사의 표현입니다. 찬송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봉헌하는 것도 모두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을 보면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18:29절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엡 5:4절을 보면 “너희는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빌 4:6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모든 육체에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감사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 감사하라는 말도 대부분 명령형입니다. 이것이 특별한 일입니다.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그 말은 감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감사해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강한 삶의 요소” 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적극적인 삶의 요소입니다. 이 감사라는 정신이 내안에 들어오면 삶이 순간 소망 적으로 펼쳐집니다. 세상에는 소망을 주는 말이 있고 비관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금지, 하지마, 실패, 낙오, 안돼 등은 사람으로 하여금 비관스럽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소망을 주고 넉넉함을 줍니다. 우선 감사하게 되면 마음이 넉넉해져 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되도록이면 감사하도록 힘써보라” 하고 말씀하지 않고 명령형으로 “너희는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너희는 감사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감사하게 되면 마음에 넉넉함을 암시받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마음이 넉넉함이 있고 포근함이 있고 윤기가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함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라고 명령형으로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암시가 참 중요합니다. 삶에 아주 강한 암시를 줍니다. 운동선수들이 때로 파이팅을 외칩니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는 암시법입니다. 배구선수들이 강한 스파이크로 한점을 먹으면 파이팅을 외칩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기도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아멘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믿습니다” 라는 순종의 표시이고 “그렇습니다” 라는 동의의 표시이고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라는 자기 확신의 표시입니다.

이 암시가 이렇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악수를 할 때도 손을 꽉 잡아주면 상대방에게 강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도 생활도 이렇게 힘 있게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되도록 감사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이렇게 확실하게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이 감사함을 통해서 자신 있게 살아가도록 암시를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넉넉해지고 풍성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주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자신과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이웃과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가장 좋은 언어는 감사입니다. 이 짤막한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그렇게 감동시킵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집을 사주고 차를 사주는 것 보다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로 오늘까지 살아왔음을 감사하는 말을 할 때가 부모들이 가장 기쁘고 좋아합니다. 그때 부모들은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고 자식들이 대견스럽고 고맙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주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스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졸업한 후에도 스승을 찾아와 아직 지성이 미숙할 때 성숙하도록 깨우쳐주시고 가르침 주신 것을 감사할 때 이 땅의 스승들은 감격할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것입니까. 선배도 후배가 감사할 때 가장 기쁠 것입니다. 어른들도 이웃들도 동료들도 모두 그렇게 감격할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감사할 때 가장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몇 주 전에 설교를 마치고 인사하러 나가 섰는데 젊은 학생이 나오면서  제 손을 꼭 잡더니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보겠습니다”하고 진지하게 대답하고 돌아갔습니다. 순간 참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모습입니까. 그때 참 기뻤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삶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기뻐하고 감격하고 행복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들 뿐 아니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이 땅이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하는 삶을 살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릴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너희는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마음으로 감사하라”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감사하는 삶이나 기도나 찬양이 이런 파괴력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말, 감사하는 언어, 감사하는 기도, 감사의 찬양, 이것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조합니다. “너희는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마음으로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세 번째는 “건강함이 주어지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있는 곳을 보면 거기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함입니다. 이 건강함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이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이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선 “마음의 건강함”이 주어집니다. 사람이 마음이 건강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마음이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건강하면 매사가 즐겁고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 감사함이 없으면 상처가 있고 원망이 있고 불평과 원망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우울함과 비관스러움과 어두운 마음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마음이 건강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따뜻해지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허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 “삶의 내용도 따뜻해”집니다. 그래서 잠이 달고 음식이 맛이 있고 삶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그 삶이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건강하면 생각도 마음도 언어도 감정도 따뜻해집니다. 이 감사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또 “관계도 원만함”이 주어집니다.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이 너와 나와의 관계가 아주 원만해 집니다. 부드러워집니다. 정다운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화목해집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거기 어디에 원망이 있고 불평이 자리를 잡겠습니까. 그리고 가족간에 무슨 이유로 불화를 일으키고 보기 싫은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삶의 열쇠입니다. 감사함의 살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에 감사함이 없으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관계의 불화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선 사람이 싫어집니다. 너도 싫지만 나 자신이 싫어집니다. 그래서 두문불출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싫어지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이웃도 형제도 모두 싫어집니다. 그 마음에 감사함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병들고 감정이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관계의 불화하면 고부간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모든 관계의 원조입니다. 이 관계가 원만하냐 안하냐 하는 문제도 그 집에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아니냐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고부간의 관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라는데 이 관계도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문제는 이 마음들이 없기 때문에 불화와 갈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이 감사함과 건강한 마음이 있으면 왜 이 관계가 악화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 관계가 왜 악화되어야 하는 관계입니까. 시부모는 내 남편의 부모입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내 아들의 아내이고 며느리도 내 자식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런데 왜 서로 불화해야 하고 갈등해야 하고 원수처럼 살아야 하는 관계입니까.

저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계에서는 원로목사님을 시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는 참 좋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국내외 초교파를 포함해서 이 고부간의 관계가 가장 원만하다고 이름이 나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모두 이 시어머니에게 있습니다. 우리 원로목사님은 다니시며 이 며느리를 극구 칭찬하십니다. 다 잘해서 칭찬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 칭찬이 다시 돌아와 내 귀에 그대로 들려집니다. 그러면 며느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악담하겠습니까. 둘 다 마음에 감사함이 있는데 왜 그 마음에서 악담이 나오겠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둘의 마음에 이 감사함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모습마다 싫은 것입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살면 며느리나 시부모 아니고도 내 친형제도 싫어지고 내 친 부모도 싫어지는 법입니다. 마음에 그리고 삶에 이 감사함의 삶의 요소가 없으면 그 삶에는 온통 불화와 불만과 갈등만 서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이 감사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 모릅니다. 이 감사함은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아예 명령형으로 당부하고 있습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홀어머니가 아들을 잘 키워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한집에서 함께 삽니다. 하루는 저녁에 화장실에 가느라 아들 방 앞을 지나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는 아들 며느리의 이야기를 안 듣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어머니가 발길을 멈추고 엿들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뻐?, 1번이 누구야 ?” 그러자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당신이지”, 그러자 이 며느리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러더니 또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누구?” “두 번째는 우리 예쁜 딸이지.” “그러면 세 번째는 ?.” 아들이 거침없이 말합니다. “물론 당신을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그러면 네 번째는 누구야?” “그야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지” 둘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다섯째는 누구야 ?” 아들이 한참 망설이다가 “그야 나를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지”하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둘이 깔깔대고 좋아라 몸부림을 치며 웃습니다. 문밖에서 듣자니까 참 가관입니다. “이놈이 미쳐도 분수가 있지?” 그래도 시어머니는 참았습니다. 다음날 일찍 집을 나가며 메모지 한 장을 냉장고에 붙여놓았습니다. “1번 보아라 5번은 노인정에 간다“.

그 아들이 그날 한 이야기는 순전히 의전용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그 말이 의전용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어머니가 그날부터 당장 보복에 나섰습니다. 그날부터 며느리를 들볶으면서 사사건건 이유를 붙였고 간섭했고 불평했고 불화했고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이 시어머니가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속으로 참 시원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례식 날 어머니의 관이 방을 나오다 그만 문지방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이 시어머니가 그만 깨어난 것입니다. 그때 이 며느리가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깨어난 시어머니가 5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에는 이 며느리가 관 주위를 지키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 관이 방에서 나가던 날 이 며느리는 절대로 관이 문지방에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소리 소리를 지르며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얼마나 그 마음과 정신이 병들고 불건전하면 이렇게 되겠습니까. 원인이 있다면 서로에게 이 감사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며느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리고 시부모가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그 관계도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관계들 아닙니까. 그런데 왜 서로 원수가 되어야 합니까. 그 마음에 감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게 되면 모두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고 모두와 원만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감사의 삶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고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께 하는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최고의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훈련이 되면 누구에게도, 무슨 일에도 감사하게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모든 성도는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흘려보내야 복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삶을 이룰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 중 최고의 감사는 하나님께 하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독일의 어느 병원에서 혀암으로 절제수술을 받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그때 의사가 말합니다. “이제 절제수술을 받으면 다시는 말할 수가 없으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이 그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청년이 한참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강조하신 뜻입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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