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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 (마태복음 9:35-38)

by 【고동엽】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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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 (마태복음 9:35-38)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文豪)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 앉아서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며 "새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새 천년 들어서 처음 맞이하는 창립 44주년 생일 주일입니다. 지난 반세기의 한국 역사는 분단의 아픔과 냉전 속에서 마치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위기에 처한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같이 성장하여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그 믿음으로 살아오신 신앙의 선배들과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교회는 지상(地上)에 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가 확산되면서 복음 전파가 무르익어 갈 때 참다운 교회란 어떤 것인지를 교훈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른 교회, 참된 교회, 바람직한 교회란 어떤 것입니까? 마태복음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첫 4장까지는 예수님의 탄생과 선교 준비에 대해서, 이어 5장에서 7장까지는 산상수훈이 이어지고, 8장과 9장에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강력하게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기 직전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참된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I. 행복한 교회는 교회의 본래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입니다


본문 35절은 예수님의 3대 사역을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이 지상에서 행하신 선교사역, 목회사역을 세분하면 위와 같이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르치는 일(Teaching)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전파하신 일(Proclaiming)입니다. 셋째는 모든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시는 일(Healing)입니다. 즉 치유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사역은 동시에 교회의 본래적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 본래적 사명과 본분에 충실할 때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본래적 사역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마련된 사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역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교육사역은 지적인 교육, 기술적인 교육, 사변적인 교육보다는 인격 교육이요, 영적 교육입니다. 작은 예수로서 살게 하고, 일등 시민을 만들고자 하는 천국 시민교육입니다. 기독교 영성(靈性)이 성장하면서 예수님처럼 살도록 만드는 교육입니다. 때로는 분재 교인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교인입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자라질 않아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이 바로 분재 교인입니다. 우리 교회가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우리 교회가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이날에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서로의 상처를 싸매고 고쳐주는 교회의 본래적 사역에, 언어사역, 행동사역, 봉사사역에 충실한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언어에는 행동 언어가 있고, 표정 언어가 있으며, 눈짓 언어가 있고, 생활 언어가 있습니다. 내 표정, 내 행동, 내 눈짓이 참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유하도록 훈련시키는 교회가 바로 참된 교회입니다.


II. 행복한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교회입니다


본문 36절에는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히 나타나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이 드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크기나 시설, 프로그램이 교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료 교인들에게서 예수님의 진솔한 사랑을 느낄 때 가능합니다.

아동문학가이신 안성진 목사님께 어떤 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목사님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그는 놀랍게도 6.25 한국 전쟁 때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전쟁 와중에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다고 했습니다. 대구로 피난을 내려가 허름한 천막에서 살던 시절, 먹을 것이 없자 식구들이 다 흩어져 혹시 땅바닥에 떨어진 곡식을 줍고, 저녁이 되면 그렇게 해서 모아진 곡식에서 돌이나 쥐똥 같은 것을 골라낸 후 그것으로 밥을 지어 온 식구들이 둘러 안장 한 숟가락씩 나눠 먹어도 그 때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식구들 모두 서로 사랑을 느끼며 서로를 그처럼 소중히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인생을 다 살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비록 배는 고파도 성경 말씀을 듣고 그토록 비참하고 구차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마음, 감사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바로 행복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참 하나님의 모습을 볼 때 성도는 행복해 집니다. 변화산상에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예수님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보며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감격해 하면서 행복의 절정을 체험합니다. 그의 출세가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아니면 엄청난 재산을 모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낍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순간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발이 있습니다. 사람의 두 발은 무거운 육체를 들어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발이 가장 건강할 때는 발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입니다. 발이 아프거나 티눈이 생겼거나 다쳤다면 자기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발이 건강한 사람은 마음대로 다니면서도 자기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생활합니다. 사실은 이 때가 발이 가장 건강할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가장 행복할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잊을 때입니다. 변화산상에서의 베드로가 만약 자기 자신을 보았다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잊어버리고 예수님만을 바라보자 그는 행복의 절정을 체험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잊을 때 누구든 미워하거나 질투하거나 저주할 생각이나 욕심도 사라집니다. 참으로 행복한 교회, 좋은 교회는 시설이나 역사나 어떤 프로그램보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체험되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감격과 기쁨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III. 행복한 교회는 예수님 중심으로 서로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본문 37절에서 38절에는 예수님 중심으로 일꾼들을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의 일꾼으로 모인 교회가 참으로 행복한 교회입니다. 예수님 중심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 중심의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진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 참으로 행복한 교회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지식인, 무식자,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누구나 똑같이 대하며 초청해서 함께 일하는 교회입니다. 늦게 온 자나 일찍 온 자나 9시에 온 자나 오후 5시에 온 자나 예수님 중심으로 마음껏 일하고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교회가 바로 행복한 교회입니다.

둘째로 예수님 중심 교회에는 충성스런 일꾼들이 많습니다. 좋은 교회, 성장하는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믿음 안에서 화목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 권사 그리고 모든 제직과 평신도들이 비록 직책은 다르고 맡은 바 은사는 다르지만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모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좋은 전통과 믿음을 지키고 화평한 가운데 점진적으로 성장한 데에는 이와 같은 충성스런 주님의 일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IMF 때도 모두가 어렵고 힘들어 경영하는 사업이나 회사가 고통 중에 있었지만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협력하며 교회를 위해 충성하여서 오히려 축복 받은 분들의 간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복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셋째로 예수님 중심 교회는 고매한 인격과 거룩한 삶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교회입니다. 늘 온유하고 겸손하며 섬김의 삶에서 보람과 배움을 찾는 것입니다. 앙리 누웬이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그만 두고 남은 생애의 10년간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장애인 보호시설에 들어가서 아담이라는 이름의 한 청년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는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며, 스스로 옷도 입을 수 없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26세의 청년이었습니다. 누웬은 이러한 아담을 위해 날마다 면도, 머리 빗기, 양치질, 식사할 때 손을 입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루 2시간씩 해야 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요, 저술가였던 누웬 교수가 왜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까? 그는 오히려 "나는 아담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고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나입니다. 나는 아담을 통해 영적으로 불구자인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고 계신지를 배웠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구자인 아담을 도와주면서 바로 그가 영적인 나 자신이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사랑으로 영적 불구자인 나를 돌봐 주시고 계심을 체험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얼마나 고상하고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입니까? 바로 이러한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하여 순종하는 사람이요,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부인이 옷감을 가져다 옷을 만들고 있는데 그 딸이 곁에서 조각난 옷감 조각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없어져서 찾으러 뒤뜰로 나갔더니 아이는 막대 끝에 조각난 옷감 조각을 달아 잔디밭에 꽂아 놓고는 그 주위를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얘야, 너 뭐하고 있는거니?"하고 묻자, 아이는 "내가 이렇게 깃대를 꽂고 이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면 하나님이 저 하늘에서 나를 보시고는 이곳에 내려오셔서 나와 함께 춤을 추실 거예요..."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딸아이는 저 푸른 하늘 위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상상으로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기뻐하며 노래하는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이 기쁜 날, 하나님은 마치 한 어린 여자아이의 바램처럼 우리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기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며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춤을 추며 사는 성도가 바로 축복받을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참으로 좋은 교회요 행복한 교회입니다. 오늘 생일을 맞아 하나님과 함께 춤추며 이를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동신교회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강동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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