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결과 (고후 9:7-12)
서론
바울이 말하기를 "인색함이 아니고 억지가 아니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결과는 주의 사랑을 받고 그의 은혜가 넘치며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사람이 감사하고는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은혜 베푼 사람에게 감사하면 감사하는 베푼 사람은 그 은혜를 고맙게 여기고 보답하는 그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더욱 은혜를 베풀고 심은 마음이 생겨서 계속해서 은혜를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본문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연보의 액수가 많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충동적이거나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 내적인 결심에 의해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자랑하거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또는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많이 바쳤다면 그것은 참다운 연보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척윱灸?하였습니다. 주기 싫은 것을 아까워하면서 연보 하거나 대의 명분이나 외부적 압력에 의해 연보를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즐겁게 주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저자는 말하기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하였습니다(잠 8:17). 이는 성경과 고대 문헌에 있어서 이러한 긍정적인 보응의 용례는 자주 나타내는 것입니다(요 14:21). 사랑하는 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그의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습니다
본문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라고 했는데 이는 6절부터 시작된 동일한 주제가 점차 발전적으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본 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주실 능력이 있는데 이는 착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의미는 간단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복 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복을 주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선행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필연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불행에 처한 형제들을 위하여 구제금을 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선행은 그가 그토록 반대하는 바 율법의 요구에 복종하여 그것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율법주의에 대한 반대와 모순된다고 볼 수 있는가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단 율법주의와 다른 것은 선한 행위를 하되 의롭게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된 결과로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넉넉하여 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자족 또는 충족으로 인간 자신의 내재적 잠재력 안에서 완전히 만족하는 존재 즉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만으로서 완전한 독립적인 인격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만족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풍성한 복을 넘치게 받습니다
본문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 할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하였습니다. 이 봉사란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연보를 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봉사라는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즉 공적인 섬김과 하나님께 대한 봉사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롬 15:27). 이렇게 볼 때 바울이 구제 연보 행위를 봉사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의 의미를 넘어 예전적(禮典的)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행위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봉사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인들이 하는 구제 연보가 가난한 성도들의 부족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그 도움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렸다는 표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풍성한 복을 넘치게 받는 것입니다. 선을 베풀면 주께서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주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기록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하였습니다(시 37:25-27).
다윗은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여서 의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거나 그 자식이 구걸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문자 그대로 절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본 시편 기자가 의인의 고통에 관한 언급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지적하는 바 핵심은 경건한 의인은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잠 10:3).
의인은 번성할 뿐 아니라 그의 풍성함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꾸어 주는 일은 사업의 수단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돕는 방편입니다. 한편 히브리의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에게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는 받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22:25). 그렇게 함으로 그 자손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떠나 선에 속하여 구제하는 자들은 주께서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눅 6:38. 잠 11:24-27).
"결론"
감사하며 선을 행한 결과는 결코 손해보는 일도 없고 잘못되는 일은 더욱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고 그의 은혜를 넘치게 받으며 풍성한 복을 넘치게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을 범사에 감사하여 오늘 보다 내일이 좋아지고 이 달보다 다음 달이 더 좋아지며 금년보다 내년이 점점 잘되는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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