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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설교 : 고난이 다가 올 때 (약1:2-3)

by 【고동엽】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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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다가 올 때   (약1:2-3)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견디기 어려운 심한 어려움이나, 고난을 당하게 되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오는가?' 하며 탄식하고 괴로워합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신을 부정하고 죽음의 길을 택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에는 IMF한파로 인해 직장을 잃고 또 부도 난 사업장 때문에 너무 괴로워한 나머지 삶을 비관하고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고난이란 나 혼자만 당하는 이상한 일도 아니며, 다가와서는 절대 안 되는 그러한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지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창조할 수도 있고, 파멸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고난, 그 자체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지만 고난에 대한 자세와 대응책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을 축복의 손길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⑴,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오면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해 마음에 큰 부담을 느낍니다. 고난에 대해 심히 반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난은 반발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도 예수 님을 믿기 전에는 고난 당하는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가오면 심한 반발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고난이 다가오면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을 믿고 난 후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것임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당할 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고난 당할 때 불평과 원망을 품으면 부정적인 마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 그 자체보다도 부정적인 마음이 영혼을 파괴하며 평화와 기쁨과 소망을 산산조각 내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 올 때에는 그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여서 긍정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고난은 악마로 왔다 가도 천사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난을 잘 이기기만 하면 오히려 고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이유는 고난이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도전이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평안한 생활 속에서는 변화와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수정해 줍니다. 또한 고난은 회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인간은 고난이 다가와야 깨어집니다. 사람은 자기 고집대로 살고, 하나님을 반역하며 살다가도, 고난을 당하면 자아가 깨어져 인격적으로 모난 것들이 다듬어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고난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신앙적으로 나태했던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새벽 기도도 나가고, 철야 기도도 열심히 하게 되며,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고난에 처했을 때에는 감사함으로 그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한 마음, 기쁜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고난을 받아들이면 우리를 파괴하려는 고난은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신 우리 앞에 더 발전적인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⑵,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면 우선 환경을 원망을 하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망을 하게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기쁨과 평안을 잃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더욱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은 쓴 뿌리와 같습니다. 이러므로 원망을 품으면 마음속에 쓴 물이 가득하여 결국은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역 성경에 나오는 욥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그 많은 소유를 잃고 자녀들까지도 잃었지만, 하나님께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몸에 악창까지 생겨 고난이 극에 달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잿더미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을 때, 그의 아내조차도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1:21-22절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욥은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자세로 그 고난을 받아들였고, 그 때문에 욥은 고난 이후 하나님께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고난을 당했을 때 결코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 한 번째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으므로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지 형들이 있는 세겜에 가도록 했습니다. 세겜에서 요셉은 형들이 도단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도단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요셉을 발견한 형들은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놓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도록 하자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렇지만 르우벤이 피를 흘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요셉은 채색 옷이 벗겨진 채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얼마쯤 지나 애굽으로 가는 대상 이스마엘 족속을 만난 형들은 은 이십 개에 요셉을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은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갔습니다. 고생을 하면서도 성실히 일을 하여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나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에 분개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는 거짓을 꾸몄고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13년 동안 온갖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경이나 형들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갖기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이를 신앙으로 극복했습니다. 그 결과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 장을 만나게 되어 그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훗날에는 애굽 왕 바로의 꿈까지 해석함으로써 왕의 총애를 받아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총리 대신이 된 후,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와서 요셉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향해 원수를 갚지 않고 야곱과 함께 그 형들을 고센 땅에서 잘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 후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보고 형들에게 잘해 주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 앞에 엎으려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50:18)라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50:19∼21)라고 하며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가 많았지만 원한을 품지 않고, 용서와 이해와 사랑과 동정을 갖고 형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원한을 품고 원수를 갚으려 했다면, 요셉은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살아감으로 그 원한의 쓴 뿌리로 인해 스스로 파괴당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원한의 쓴 뿌리는 이처럼 자신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커다란 해독을 가져다줍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는 환경과 사람에 대해 이해와 용서와 동정과 사랑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자신을 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성경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20)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용서하면 그것이 축복으로 변하여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자기 행위대로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갈6:7). 우리가 원수를 용서해 줌으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하면, 우리는 평안과 기쁨을 갖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왔을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마음에 품은 원한을 반드시 없애고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용서로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놀라운 비결입니다.

⑶,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삶을 창조합니다. 요셉이 그 극한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서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장차 나는 우리 가정을 다스릴 사람이 되겠구나' 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이 꿈이 있었기에 요셉은 종살이를 하고 감옥살이를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갖게 되자 이제는 그 꿈이 요셉을 사로잡아 그를 이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이 요셉으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하고, 힘을 내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기도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갖게 되면 그 꿈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29:1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는 방탕하게 되고, 꿈이 없는 가정은 파괴되며, 꿈이 없는 민족은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함으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앞길은 칠흑같이 어둡다고 할지라도 꿈과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치 않으며 생명력이 넘치는 꿈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중생과 성령 충만과 치료와 축복과 천국의 꿈을 가질 수 있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꿈과 비전을 갖고 있는 개인, 가정, 단체,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꿈의 재료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성경을 통해 늙은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꿈이 우리를 변화시켜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어떠한 고난을 당하더라도 성경을 통해서 주어진 꿈과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⑷,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심한 북풍이 불어 다가와 우리 삶 전체가 풍파 당할 지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끈질긴 믿음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능히 그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 비로소 서로가 믿을 수 있습니다. 과거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이 아무리 테이블을 같이하고 계약을 맺어도, 서로 그 계약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믿음만이 진실로 살아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와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실 때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온 땅에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예수 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절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처참한 심판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질병과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를 죄악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우주 천지에 이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우리에게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절망하지 않고 이 사랑을 좇아 하나님께서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심을 믿습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고 괴로워도 하나님께서는 장차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는 이 사랑에 대한 뜨거운 신뢰, 이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신뢰하면, 이 세상에서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복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신앙, 그 믿음은 고난을 당하면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없이 성경 말씀 몇 마디만을 알고 있는 냉랭한 신앙, 그 믿음도 고난을 당하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한 믿음, 그 절실한 사랑에 대한 믿음은 어떠한 고난의 거센 바람이 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그 힘을 잃고 맙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고난이 아무리 소용돌이치며 무서운 기세로 다가와도 그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을 자원하거나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난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다가옵니다. 그것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고난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그 고난은 악마로 변할 수도 있고, 천사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태도로 고난을 극복하여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크기나 색깔이 다를 뿐 고난을 겪지 않는 인생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 들이 불신자들과 다른 것은 신앙인 들은 어떠한 고난이 다가오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짐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므로 신앙인 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이상한 일 당한 것같이 생각하지 말고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그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나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으로 마음에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극심한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예수 님의 십자가에서 얻은 그 꿈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축복의 손길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성공적인 삶 속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출처/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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