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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 (행 2:37 ~ 42)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큰 위기입니다. 약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고, 일하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고 부활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위기(crisis)라는 것은 이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에 대해서 개인적인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든지, 거부하고 영원히 죽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며,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중립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았느니라.”(요3:18) 하셨습니다. 이제 영원한 심판에서 영원한 구원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일이 남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사건을 증거하자 사람들이 마음에 찔렸습니다(31절). 예수님을 자세히 알게 되면 마음이 찔립니다. 동요합니다. 부담이 옵니다. 각자의 영생이 결정되는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백두산에서 한 쪽으로는 두만강이, 다른 한 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소식을 들으면 반발하거나 싸우거나, 공산주의자들은 심지어 죽인다고 달려듭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도 그렇고 베트남도 그렇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세상의 타락한 것들은 다 받아들여도 예수 믿는 것 하나는 규제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예수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좋아지는데,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데,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직장인, 사회인이 될 수 있는데, 왜 서양의 타락한 것과 별의별 사상은 다 받아들이면서 예수 믿는 것 하나는 그렇게 반대하는지....
예수의 사건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예수의 사건은 말세의 사건이요, 성령의 사건이요, 예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승천하신 사건이요, 재림주로 다시 오실 사건입니다. 예수의 사건은 예수님이 주와 구원자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출발부터 놀라운 탄생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을 놀라게 했고, 목동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심지어 헤롯 왕 마저도 놀랐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예수님의 출생지를 묻자, 헤롯 왕은 너무나 놀라서 “도대체 그게 누구냐? 무슨 왕이 어디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냐?” 하며 당시 두 살 미만의 사내아기들을 죽이라 명령하는 바람에 아기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출생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완벽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책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사람은 말해놓고 후회하고 행동하고 후회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행동에 대해서 한 번도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울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후회 없는 완벽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탁월한 교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남녀평등과 민주주의사상을 일으켰고, 과학을 발달시켰고, 더럽고 악한 문화를 바꿔 새로운 문화를 일으키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탁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때는 뺨을 맞고도 참게 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내가 볼을 패스해서 볼이 저기 가는데, 내 친구가 내 정강이를 차버린 거예요. 그 순간 ‘때려줄까’ 하다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교훈이 생각나서 제가 참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만 아니었다면 저 못 참았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처음 한 번만 참은 겁니다. 두 번째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땐 못 참았습니다. 그래도 두 번 가운데 한 번이라도 참았잖아요. 예수님 때문에.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도덕률은 너무 높아서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쟁이가 되지 않겠다.” 그러나 인류가 예수님의 탁월한 교훈에까지 다다르지는 못해도 그나마 다다르도록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에 역사와 문명이 발전하고, 도덕률도 좋아졌던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또 기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예수의 사건은 예수님에 의해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잘 먹는 등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몰래 행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그 기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만 인정한 것이 아니라, 적들과 중립적인 사람들과 관망하는 사람들도 다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하셨습니다.
다섯째로, 예수님은 친히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사람은 경배를 받으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사람에게 경배하면 안 되었습니다. 헤롯 왕이 하도 인물 좋고 목소리 좋아 한번씩 대중 앞에서 연설하면 사람들이 ‘저 기가 막힌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가! 저분이 하나님이 아닌가!’ 칭찬을 한 적이 있었는데, 헤롯이 어느 날 “내가 하나님이다” 했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천사도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 번은 사도요한에게 천사가 나타나자 요한이 너무 놀라 엎드려 경배하니까 천사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 하나님께만 경배해야지, 나는 당신의 동료에 불과하다” 하였습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섯째로, 예수님은 당당히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을 때 유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아니, 하나님 밖에는 죄를 용서할 자가 없는데, 자기가 뭔데 죄를 용서한다고 하는가?” 하면서 돌멩이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그냥 용서해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버리신 것입니다.
일곱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16번에 걸쳐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승천하실 때 약 400명이 지켜보았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유대교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주일에 예배합니다. 왜?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릅니다. 우리는 부활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역사와 문화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수님 때문에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결국 예수의 사건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런즉 이스라엘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베드로는 결국 예수가 누구신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지금 들은 것입니다. 이제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역사의 중심이요, 우주의 창조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믿고 또 바라건대, 여러분은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구원 받은 분들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사건은 인간의 마음을 찌릅니다. 우리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이에 베드로 사도가 대답합니다.
첫째로, 회개하라 하였습니다(38절). 회개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를 위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구주이심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이 돌이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망을 향해 치닫던 사람이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 하늘의 시민권을 얻는 것이 회개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과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께 올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것을 감사하십시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어느 한 분이라도 예수님에 대해 개인적 결단을 하시지 않았다면 이 시간이 그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개인적 결단이 없으면 인생이 변하지 않습니다. 내속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셔야 합니다. 불신에서 돌이켜 예수께 나아와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하였습니다(38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란 무엇입니까? 씻는 것입니다. Cleansing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모든 죄를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히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를 오래 다니셨는데도 세례 받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하세요. 세례 받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죄인이라서 스스로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의 구주가 되시고 영생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런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면 세례를 받으십시오.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수 있으면 세례를 받는 것이 옳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장관이자 내시였던 사람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성경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빌립 집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셨고, 빌립 집사가 그 마차에 올라타 함께 가면서 “고난 받으신 하나님의 종”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해주고 난 후 “믿겠습니까?” 하니 “믿겠습니다” 하여 바로 요단강에 들어가 세례를 주었습니다. 지금은 예수 믿어도 즉시 그 자리에서 세례를 베풀지는 않고 학습문답 과정을 거쳐 그 믿음을 확인하고 세례를 주지만, 그 때는 그 자리에서 바로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세례란 드디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음을 개인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고백하고 확증 받는 세례예식에 참여하기 바랍니다.
셋째로, 죄 사함을 받으라 하였습니다(38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그것이 죄 사함을 받았다는 표입니다. 나의 모든 죄 -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 - 가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매일 회개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죄를 그때그때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으면 내가 불편합니다. 내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죄의식과 고통이 있어서 영적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데 좀 알려줄래?’ 그래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한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 확실한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넷째로,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 하였습니다(38절). 성령의 선물이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 하였습니다. ‘성령의 선물’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다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성령님 자신을 내 가슴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이란 여러 가지 은사를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을 받을까요? 성령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그 순간에, 죄 사함 받는 그 순간에, 세례 받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마음을 활짝 여는 그 순간에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십니다.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 속에는 이미 성령께서 임하여 계십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바울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경을 몰랐고 예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겠다는 마음 자체가 성령이 이미 오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리라. 성령이 오시면 네 안에 거하실 것이요, 영원히 너와 함께 계시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이 약속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모르고 있던 고린도 교인을 두 번이나 책망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심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39절). 몇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40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요새 중학생들이 일진회를 만들어서 친구들을 못살게 굴고 악하게 행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으면 중학생들까지 그렇겠습니까! 그리고 젊은 세대를 타락시키고 악을 행하게 하여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타락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아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의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39절). 하나님은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를, 부모와 자식과 형제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바로 이 시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만약 이 자리에 한 분이라도 예수의 사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오늘 예수를 믿어 영원한 구원을 받기 바랍니다. 이 시간 성령을 선물로 받아 언제 어디서든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도움을 받아 사시기 바랍니다.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지혜에 있어서나 능력에 있어서나, 마귀와 죄와의 싸움에 있어서나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심지어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성령이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하기만 하면 지혜와 해야 할 말까지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신 여러분, 모두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이끌림과 도움을 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머지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김상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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