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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행전 (행 1:1 ~ 5)

by 【고동엽】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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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행전  (행 1:1 ~ 5)

금년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해입니다. 그동안 계속되던 성전 건축이 완공되고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해입니다. 하드웨어가 준비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나씩 펼쳐지면서 그동안 꿈꿔왔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영적인 공동체는 영적인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고 또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크게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고, 친히 그 삶과 몸으로 실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복음을 전하고 완수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해주고, 설명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눈을 뜨게 해줘서 하나님의 세계와 영적 세계를 이해시키셨습니다. 그대로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셋째로, 기적적인 치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즉 섬기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먼저 내가 구원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성장해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겉 사람은 약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왕성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족과 이웃을 잘 섬겨주는 유익하고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되고 우리처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영적 운동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 썼습니까? 누가가 썼습니다. 누가복음을 쓴 분이 사도행전도 쓴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사이에 요한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접어놓고 계속 읽으면 두 책의 내용이 그대로 연결됩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쓴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은 A.D. 62년경에 기록되었는데, 누가는 원래 의사였습니다. 전문사역자였던 것이지요. 바울이 시리아의 안디옥에 가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전 세계에 예수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바울은 자기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는데 하나님은 그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고만 하셨어요. 바울은 또 눈이 잘 안보였던 같아요. 성경에 보면 “이 부분은 내가 지금 친필로 쓰고 있다”(고전16:21)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는 대필자를 옆에 두고 많은 편지를 썼던 것 같아요.

바울은 장기 선교여행을 앞두고 신체검진을 받으러 Dr. 누가에게 찾아간 것 같아요. Dr. 누가는 바울에게 “이런 몸 상태를 갖고 그처럼 힘든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리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바울이 간증을 합니다. “사실은 내가 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바리새인이었는데 예수쟁이들을 잡아다 감옥에 처넣고 때렸지요. 스데반을 돌로 때려죽일 때 내가 가담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예수를 핍박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내리며 예수님이 내게 나타나 나를 부르시지 않겠어요? 그렇게 예수님을 처음 만난 후에 계속 기도하며 그분을 점점 더 알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저를 불러서 이제는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떠나야 합니다.” “이 몸 상태를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요.” “그래도 저는 가야 합니다.”

누가가 바울의 이 간증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에게 “당신이 그 몸으로라도 정 떠나야한다면 내가 같이 가서 당신의 건강을 돌봐 주리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누가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서 유럽까지 갔다가 거기서 얼마동안 머물고, 바울이 몇 바퀴 돌고 마지막에 유럽에 왔을 때 다시 합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문제를 일으켰고 사도바울은 체포되어 북쪽 가이사랴의 감옥에 2년을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그 2년 동안 바울을 종종 면회하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제자들을 만나 사귀는 가운데 예수님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로 시작됩니다(눅 1:1-4). 즉 “우리 중에 이루어진 예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란 분이 오셔서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가르쳤고 어떻게 고난당했고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부활해서 어떻게 40일 동안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가 500여명 앞에서 승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수 사건이에요. “....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2절). ‘말씀의 목격자’란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을 처음부터 만나서 제자가 된 예수님의 목격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1절에 “태초에 말씀이(logos) 계시니라. 이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의 목격자, 즉 예수님을 만나 3년 동안 같이 지냈고,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과 부활하신 것을 보았고, 부활하신 다음에도 열여섯 번이나 나타나 말씀과 격려를 주셨던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목격자들이 헌신하여 일군이 되었습니다. 일군이란 “Ministers of the Word), 즉 말씀의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한 사도들을 말합니다. 사도가 되려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분들이 붓을 들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였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파피루스라는 누런 종이쪽지에 받아 적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집트에 가면 파피루스를 볼 수가 있어요. 설교할 때 받아 적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 때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파피루스 쪽지에 받아 적었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A.D. 95년에 기록되었으니까 누가복음 당시에는 아직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야고보서라든가 사도바울의 초기 서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가 그런 많은 문서들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머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봐도 잘 관찰하고 분석하고 조직하고 순서와 논리를 따질 줄 알았지요. 누가가 그 글들을 많이 읽어 보니까 정돈이 잘 안 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의 말처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3절). 여기에서 “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입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근원부터, 즉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떻게 사셨으며, 어릴 적에 어땠으며 하는 것을 자세히 리서치를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나온 책들을 읽어보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조사한 내용을 정돈하여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 보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각하’ 하면 옛날 군사정권 때나 대통령에게 각하를 붙였지 요즘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군대에서는 장군에게 각하를 붙이기도 한다지요. “데오빌로 각하”란 영어로 "Most excellent Theophilu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당시 도지사, 시장, 또는 왕 등에게 쓰는 단어였습니다.

누가가 예수의 좋은 소식을 전해서 데오빌로가 예수를 믿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분이 이것저것을 배워 깨달으며 신앙이 성장했지만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가 “예수님에 대하여 내가 자세히 조사한 것을 순서대로 자세히 정리하여 당신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면서 누가복음을 보낸 것입니다. 기록 목적은 4절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즉 누가는 데오빌로가 예수에 대해 잘 아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서문에 보면 누가복음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장은 “데오빌로여”라고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무엇이라고 불렀지요? “데오빌로 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각하를 빼고 그냥 “데오빌로여” 라고 불렀어요. 그동안 둘이 좀 친해졌나 봅니다. 서양 사람들도 친해지면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잖아요. 저도 처음 미국 가서 문화충격이 컸었습니다. John Smith 라는 연로한 분과 친해졌더니 절보고 "Call me John" 하지 않겠어요? 그냥 자기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No, Sir" 하면서 우리 한국에서는 Mr. Smith, 또는 Dr. Smith 이렇게 하지 막 그렇게 “John”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했더니 괜찮다고 계속 "Call me John" 해보라는 거예요. 후에 알고 보니까 서양 사람들은 친하면 그저 이름을 부르더군요. “Mr. Smith” 하면 아직도 관계가 안 좋다는 거예요. “John” 그래야 친하다는 겁니다.

누가도 그동안 데오빌로와 친해진 것 같아요. 아마 데오빌로가 제 1권 누가복음을 다 읽고 나서 누가에게 답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참 잘 읽었네. 참 좋았어. 이런 것을 자세히 몰랐었는데 자네가 그렇게 자세히 연구해서 잘 써 보내주어서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게 되었어.” 그래서 이제 누가가 제 2권 사도행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2절). 제 1권을 통해서 예수를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제 2권을 통해서 성령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에는 두 종류, 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누가복음적 신자입니다. 누가복음적 신자는 예수님을 몰랐다가 알고 친해진 사람입니다. 주일만 되면 예수님을 만나 찬양하러 교회에 갑니다. 여기 앉으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신자이기를 원합니다. 만약에 아직도 예수님을 소문으로만 들었지 아직 그분을 체험했거나 자신의 구주로,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 주시고 눈을 뜨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게 영생을 주신 분으로 확실히 믿고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저도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알기만 하다가 어느 날 눈이 번쩍 떠지더군요. 마치 캄캄한 방에 스위치가 올라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분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증거라는 것이 내 마음 속에서 환하게 깨달아지고 보이더군요. 여러분 모두가 보셨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만 머물러있으면 안 됩니다. 지식적 신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도행전적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사도행전적 신앙인이란 누가복음에서 예수를 만나 알게 된 후에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만나고 성령을 알게 된 신앙인을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감동과 내 안에 계심과 능력주심을 체험한 신앙인을 말합니다. 정적인 신앙에서 역동적인 신앙으로, 지식적 신앙에서 행동적 신앙으로 변화된 신앙인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마지막 장에 보면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눅24:44).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등 십자가 사건 전체가 이미 저 모세 때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시편을 통해서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즉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 쓰인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절). 예수님이 성경을 설명해주시니까 “아! 그렇구나. 이게 바로 그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성경을 읽어도 잘 안 깨달아질 때가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시면,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머리가 있어도 깨달아지지 않던 상황에서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런 사도행전적 성령의 체험을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6-47절). 이게 누가복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 하셨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요, 아는 사람들이요, 친구와 구원자로 삼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49절 말씀을 우리 다같이 읽어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예수를 알게 된 것, 예수를 통해 죄 사함, 천국,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된 것은 너무도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첫 단계란 말입니다. 누가복음적 신앙은 첫 단계이기 때문에 이제 둘째 단계인 사도행전적 신앙으로 가서 사도행전적 성령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2005년은 우리가 누가복음적 신앙에서 사도행전적 신앙으로 도약하는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적 신앙인과 사도행전적 신앙인이 똑같지가 않단 말입니다. 누가복음적 신앙인은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어요. 행동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식적으로만 아는 신앙인이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49절), 여기에서 입히운다는 것은 영어성경으로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NIV), 즉 성령으로 옷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온 몸으로 느끼 듯 능력의 성령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 혼자, 내 능력으로, 내 지식과 기술로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어서 말하고 행동하고 증거하고 일을 성취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인들이 되기 원합니다. 이걸 위해서 사도행전을 쓴 거예요.

다시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4절). 성령의 새로운 역사가 내 가슴과 영혼 속에 일어나야 누가복음적 신앙인이 사도행전적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힘이 없던 사람이 힘을 얻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능한 세계를 보고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도행전적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의 사역이 그 복판에 들어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를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사도행전적 신앙인입니다. 의사는 병원에서, 선생님은 학교에서, 사업인은 사업장에서, 주부는 동네에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는 축복이 새해에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5절). 예수를 아는 것처럼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을 통해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는 성령을 만났어요. 예수님은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이제 성령님이 새로 오셨어요. 이제 신약 시대에는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과 도우심을 받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를 증거 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올해는 꼭 지금까지 지식적 신앙인의 모습에서 한 단계 뛰어올라 성령의 감화와 감동과 역동적 능력으로 증인의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재도약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새해에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예수를 만나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이제 성령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이 날마다 내 삶 속에 나타나 주옵소서. 매일, 매주, 매달, 사사건건마다, 일을 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성령이여 나를 새롭게 하시고 능력을 주옵소서. 정적이고 지식적인 신앙인에서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제게 나타나주옵소서. 저는 지금까지 누가복음적 신앙인, 머리만 컸던 신앙인이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입게 하시고 성령께서 친히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올해야 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역동적인 사도행전적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을 만민이 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출처/김상복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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