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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편 1편)

by 【고동엽】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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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편 1편)

시편 1편은 시편 150 편 전체의 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론에는 무슨 내용들이 담겨집니까? 여러분이 논술을 한다고 할 때 서론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씁니까? 서론에서는 왜 내가 이 글을 쓰는가 하는 목적과,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그리고 이런 동기와 목적에 의해서 어떤 내용들을 다룰 것인가를 쓰게 됩니다. 시편 1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편은 시편 가장 처음에 위치하여 시편 전체의 방향을 지시하는 서론입니다. 시편 1편은 시편을 쓰게 된 동기와 이 150개의 시편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주려 하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편 1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편 1편이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전체가 바로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학교 공부하고, 미래의 꿈을 설계하느라 이 행복이라는 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이를 먹어 갈수록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행복이란 가장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며, 인간의 목적은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행복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요? 돈으로 채우면 만족합니까? 인기로 채우면 만족합니까? 공부로 채우면 만족합니까? 시편 기자는 이에 대해 강하게 '아니오'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것들이 결코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만들 때 그 영혼의 한 쪽을 공백으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이 공백을 오직 하나님으로 채울 때만 우리 영혼은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행복은 달러순이 아니다

독일에 '슈피겔' 지라는 유명한 주간지가 있습니다. 이 주간지에서 '국가별 국민 행복감 순위' 라는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 합쳐 54개국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자기의 삶에 대해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드려 그 만족도를 평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행복 만족도 1위를 차지한 나라가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방글라데시였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으로 방글라데시가 어떤 나라인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연중 홍수로 고생하는 나라,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많은 나라, 굶주려 죽는 사람이 많고 파리가 득시글거리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방글라데시인데, 이 나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가장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나이지리아가 3위, 인도가 5위를 차지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미국은 꼴찌에서 열번째인 45위, 가까운 나라 일본은 44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는 41위,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37위였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우리 나라는 선진국들을 제치고 2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결과는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것은 행복이 달러 순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질과 명예는 일시적으로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 같지만 얼마 못 가서 사람을 다시 곤고하게 만듭니다. 물질과 명예는 바닷물과 같습니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물질과 명예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그것을 좇아가면 물이 있을 것 같지만 가면 갈수록 저만큼 멀어지고 맙니다. 선진국들이 물질의 부를 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였지만 얻은 것은 영적인 빈곤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악인의 길에서 떠나세요, 여러분이 행복해 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영혼을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세요."

악인의 길에서 떠나라

1절에서 시편기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악에 빠져드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좇는다, 곧 따르기만 합니다. 마음을 악인에게 주지 않고, 가끔 가서 그의 지혜만을 빌릴 뿐이며 곧장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면서 사람은 악인의 길에 점점 들어서게 됩니다. 두번째 단계는 그 길에 서 있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놀다가 해질녘이 되어야 돌아옵니다. 세번째 단계는 아예 자리를 잡고 주저앉는 단계입니다. 아예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악을 피하는 것입니다. 악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악을 대적하지도 말고 그것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근주자적이요,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자기도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 하면 자기의 손도 검어지기 마련입니다. 악은 피하십시오. 가까이도 하지 마십시오. 악한 말을 들었습니까? 귀를 씻으십시오.

그렇다면 도대체 악인이 누구고, 죄인이 누구고, 오만한 자가 누구입니까? 도둑입니까? 인상이 험한 깡패입니까? 아니면 남을 험담하거나 거짓말하는 사람입니까? 교만한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니까 구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더 큰 악인은 우리를 교묘히 속여 하나님의 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신사복을 입고 우리를 유혹하는 악인이 정말로 무서운 악인입니다. 이 악인은 물질이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인기가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성적이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하며 당신을 유혹합니다.

물론 재물, 명예, 지식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인 것처럼 속이는 데 있습니다. 이것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들의 위력을 자랑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데 있습니다. 돈의 위력을 의지하여, 권력의 위력을 의지하여 "보아라,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하나님 율법을 지키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신사복을 입은 악인들을 피하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

두번째로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악한 길에서만 떠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난 사람은 이제 그 영혼을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났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다른 악한 것이 찾아와 그 공백을 메우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우리는 편지를 읽으면서 상대방의 뜻과 마음을 알 듯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지를 압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편지를 통하여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사랑의 끈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이 쓰여지던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모세오경으로 대표되는 율법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119:103) 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제 이 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주어졌고, 신약 성경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배나 더 갖춘 사람들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묵상은 말씀을 읽는 것과는 다릅니다. 묵상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그냥 눈으로 쭉 읽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악인은 누구입니까?' 질문하며 읽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하니 주님 저의 영혼이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며 기도하며 읽는 것입니다. 읽는 것은 밀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묵상하는 것은 밀을 타작하여 방아를 찧어 빵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읽는 것은 소가 풀을 뜯어먹는 것과 같고, 묵상은 그 풀을 되새김질하여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영혼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묵상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암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하였는데 일을 하면서 어떻게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까? 전기 시설도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의 깜깜한 밤중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비결은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전철을 타고 지나가면서, 걸어 가면서, 잠자리에 누워서 암송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솟아 나올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시편기자는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길을 피하는 사람,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요, 의인입니다. 이런 의인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이 예배에 모인 여러분은 의인이며,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평소에도 보기가 좋고 열매가 많지만, 가뭄 때에는 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가뭄 때에는 모든 나무들이 말라죽지만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가뭄 때에도 늘 푸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기 때문에 결코 여러분의 영혼이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푸른 듯하고, 의인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가뭄이 오고 고난이 오면 다 시들고 메말라 버립니다. 외로움의 바람이 불고, 곤고함의 바람이 불고, 빈곤함의 바람이 불면 다 날라가 버리고 맙니다.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덧없이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더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우리 영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자식은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악인의 길입니다. 하나는 복 있는 사람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복 없는 사람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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