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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지도자

지도자의 기본적 자질 (딤전1:12)

by 【고동엽】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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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기본적 자질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

한 해에도 수천, 혹은 수만의 사역자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신학교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사역자들을 배출해 내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하고 자신들의 신학교로 와 줄 것을 홍보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부름에 화답하듯이 입학을 하고 열심히 사역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모두 사역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역자가 되어 있더라도 대부분은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은 앞으로의 사역들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시대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그들이 모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교회를 종교라는 틀 안에 가두어 놓고 오히려 복음의 빛을 가리우는 일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결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소명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도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1. 지도자의 소명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오늘날의 사역자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소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지도자들뿐만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역자의 자격을 논함에 있어서 어느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어느 교단에 소속이 되어 있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사람들은 자신의 지명도를 좀 더 높이기 위해서 가짜 학위라도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신학교를 대상으로 돈을 주고 사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과연 사역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이처럼 명문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교단에 속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사역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이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물론 구약성경에서 선지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는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왕하9:1). 그리고 엘리야가 그의 생도였던 엘리사에게 그 사역을 위임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을 전혀 부인할 수만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훈련도 필요하고, 자질도 있어야 하고, 많은 지식과 경험도 필요하겠지만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적이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사역자로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관한 말씀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즐겨 사용합니다. 분명히 그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하게 부르심을 입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과거에 지도자로서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40세가 되던 해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을 죽였고, 자신들의 민족의 문제에 관여하고자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집트로부터 도망을 해야했고,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목자로서 지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그가 이집트의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과 지도력을 훈련받았다 할지라도 스스로 주님의 일을 하고자 했을 때에 그를 쓰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가 목자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이집트에서의 일들을 거의 잊어갈 무렵 80이라는 나이에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늙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주님에게 항변을 해보지만 주님은 그를 쓰셨고, 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소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일컬음을 얻었던 "다윗"입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버린 사울을 대신하여 왕을 세울 자를 기름을 붓는다고 그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분명히 그 집에는 훌륭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매우 늠름하고 용모가 수려했던 엘리압, 그리고 아비나답, 삼마 등 일곱 아들이 모두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있지도 않고 양을 지키고 있었던 다윗을 불러 기름을 붓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았던 것입니다(삼상16:7).
그렇다면 신약시대에는 어떨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스스로 제자가 되기를 원해서 제자가 된 자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에게 얼마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수 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신앙을 보이려고 했으며, 심지어 예수님께서 죽으신다면 자신도 따라 죽겠다고 말했던 자였습니다(마26:35).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조차도 주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를 하면서 배반하고 돌아섰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오랜 시간동안 주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았지만 아직은 쓰임을 받을 수 없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자 오순절날 성령이 그에게 임했을 때 비로소 그는 사역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를 사역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의 곁에 있었고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비록 3년 반 동안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역자는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소명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을 만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바울"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하기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디모데전서1: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서신서들의 첫 머리에 그의 부르심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소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중에 누군가가 사역자의 조건을 세상 학문의 배경에 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이렇게 답해 주어야만 합니다. "소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역대 주님으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았던 자들 가운데 과연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자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마도 우리의 기준에서 사역자를 평가하려 한다면 우리는 스펄젼, 무디, 존 번연과 같은 분들의 책을 버리고, 또한 사역자로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단 한번도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2. 지도자는 성도의 인격에 대하여 간섭이 아닌 인도를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개역 성경에서 "양무리를 치라"(벧전5:2, 요21:16)는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한국 교회 안에서 무서운 누룩으로 발전되어진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지도자가 군림하는, 즉 다스리는 형태로 발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먹이라"(feed)는 말씀으로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지도자들이 양무리들을 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무리를 치는 것은 오직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목자의 역할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목자였던 아벨과 다윗, 그리고 모세에 대하여 양을 지키는 자(keeper)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 목자는 예수님이시고(요10:11,14), 지도자라는 것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자 즉 청지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는 예수님의 사역을 위임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분의 소유인 성도들을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까? 마치 교회의 소유가 목사나 성도들의 것이고, 교회 안에 계급을 만들어 서로 다스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성경이 가져다 준 누룩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자리를 위협하는 행동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도자는 성도들에 대하여 결코 군림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본을 보이고 앞서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벧전5:3). 이러한 지도자가 되어 있을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지도자는 거짓 진리에 대하여 방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사역의 특징을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거짓진리를 분별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나 오늘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탄은 여전히 교회를 위협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에 침투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짓이 참된 것처럼, 참된 것이 거짓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수많은 증거들을 통하여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전통과 유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지극히 사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묘하게도 사탄적인 전통과 유전들을 참된 것으로 위장하고 오히려 참 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태양신 바알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둔갑시키고, 이집트 여신 이스터의 축제일을 부활절로 둔갑시켜 숭배하도록 만들고, 바벨탑의 영향을 받아 세운 종탑들을 교회마다 세우게 하고, 고대로부터 저주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십자가를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교회 안에 계급을 만들어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들이 바뀌어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지도자라면 당연히 그러한 거짓 진리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지도자가 우유부단한 자세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가운데 성도들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결국 사탄의 노리개로 전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주는 자입니다(요10:11). 물론 이것이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기는 하지만 목양을 일을 하는 지도자들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본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거짓 진리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다면 우리의 양들은 모두 이리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도자는 거짓진리에 대하여 목숨을 버리면서가지 방어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4. 지도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이 더욱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많은 구경꾼 신자들을 봅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당에 나와 말씀을 듣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지도자는 그들이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을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격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라가야 할 뿐만 아니라(히5:13,14),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서게 될 날들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만 받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심지어 지도자라고 말하는 이들조차도 이러한 방법으로 가르침으로서 그들이 더 이상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 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의 필요에 의해 움직일 것만을 주문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성도들을 더 이상 꼭뚜각시가 되도록 해서는 않됩니다. 그것은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얻지 못하는 브끄러움과 수치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와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은사(선물 gift)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사가 주어졌다고 말하고 교회 안에 누구도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역할은 분명해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분별하여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획일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도들을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은사들을 모두가 가져야 한다고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교회는 모두가 같은 은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은사를 가진 자들이 모여서 서로 함 몸을 이루는 것이 참다운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입니다. 지도자는 이일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지도자의 지도력(영향력)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본을 보인다고 하는 것은 지도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많은 곳을 통하여 실패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그 중에 대표적인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자였지만 결국 왕이 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자입니다. 기드온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어 용사 300명으로 십 삼만 오 천명을 이긴 자였지만 그의 나태함(삿8:27)은 결국 그의 아들 70명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상황으로 치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결코 나태한 마음을 가져서는 않됩니다. 그것은 결국 패망으로 치닫게 만들 것입니다. 나의 행동 하나가 곧 교회와 성도들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언제나 근신하는 자세가 없다면 그는 지도자로서 치명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6. 지도자에게 있어서 고난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겪어지는 일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훌륭한 지도자가 된 자가 있을까요? 저는 주저 없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지도자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상황을 넘겨보지 않은 사람이 위기의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건져낼 수 있을까요? 어찌 병들어 보지도 않은 사람이 병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비록 인생에 있어서 매우 쓴 것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잇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40년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세월이 없이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다윗에게 사울의 의해 쫓겨다니던 시절이 없이 그의 위대함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통곡이 없이 그가 주님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수많은 매와 투옥을 경험했다는 바울이 그러한 과정 없이 그의 위대한 서신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밧모 섬에 유배되어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보내진 요한의 서신은 어떤가요?
우리는 지도자가 당하는 고난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계획에 의해 의도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고전10:13). 만일 우리 중에 누군가가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이 고난의 과정에 차여할 준비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참 된 지도자는 찾아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저마다 자신이야말로 참된 지도자라고 소리를 내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 된 지도자는 오직 주님에게 속한 자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에게만 충성스러운 자가 참 된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주님의 의해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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