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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야 할 말씀 (계시록 10장)
요한은 특별히 남은 재앙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새로운 환상을 체험하게 되는데 예수님 닮은 천사를 보았으며 그 마지막 천사의 나팔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하여 체험할 때 새로운 감각입니다만, 본문은 요한이 마지막 대환난의 마지막 나팔 재앙을 앞두고 또 새롭게 영감을 배나 충만히 받으면서 계시를 받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1. 말씀을 받을 때 나타난 환상
먼저 계시하는 천사인, 1-2, '힘센 다른 천사',를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일부 해석자들은 이 천사의 모습이 예수님과 비슷하게 닮아 보인다고 그냥 예수로 해석하지만 계시록에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표현했습니다. 결코 예수를 천사라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천사는 구름을 입었으나 예수님은 구름을 타며 백마를 타고 오십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을 때 환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신약에서도 사도들이 하나님의 특수한 지시를 받을 때 예언적인 환상을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 모세는 부름을 받을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주의 사자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왕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바울은,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그러나 환상 자체보다 그것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환상 자체는 무의미하고 결국 악령의 유혹으로 신앙만 규모 없어지고 이상하게 변질될 것입니다.
# 통일교 문선명이가 굴에 들어가서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든가
# 여러 교주들이 직접계시를 받았다는 것들이 모두 자기 신성화를 꿈꾸다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 그런 소리를 합니다.
신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 하나님 말씀의 쓴맛
9-11, '갖다 먹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먹으니 천사가 일러 준 말대로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먹는다 했고, 먹을 때 입에는 꿀같이 달다 함은 듣기에는 오묘하고 즐거우나 그것을 실행하기에는 괴롭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쓰다는 표현은 말세에 나타날 심판적 내용이 참혹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꿀같이 달게 여기기도 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아서 쓴맛을 함께 알아야 참된 말씀의 자녀가 되는 법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듣고 쉽게 사는 법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결코 그런 새로운 방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특히 증거되어야 할 예언적 말씀을 들을 때는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 모세가 도망쳐 나온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을 구축하라는 계시라든가
* 이사야, 요나, 호세아 등이 맡은 예언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 사도가 받은 복음이라도, 즉 우리가 받은 복된 소식인 이 복음도 결코 쉬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전할 때 고통이 따른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무조건 복만 받는다고 했다가는 예수 믿는 날부터 시험을 받아서 어려움을 받아 낙심할 사람도 있고 때로는 엄청난 마귀의 질투를 받아 큰 고충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복음 안에는 단맛과 쓴맛의 양면이 있습니다.
듣기엔 좋게 보이나 생활 습관이, 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복음의 성질대로 살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또한 마귀가 방해할 것이 분명합니다. 말세에 바른 말씀을 외치는 자를 오히려 반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악한 영적 세계의 작동인줄 알아야 합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3. 전해야 할 말씀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계시록상 바다는 세속, 땅은 종교사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온 세계가 다 들어야 할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전파하는 종교입니다.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는 종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죽음이란 사실을 전하는 겁니다.
타 종교인들은 꼭 믿으라, 믿으라 권유할 게 뭐 있냐고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습니다. 그게 함정입니다. 내버려두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심방하고 관심하고 물어보고 서로 교제를 깊게 하려면 간섭한다 여깁니다.
자신들의 영혼이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전하는 말씀, 전하는 말씀의 사람, 전하는 성경, 전해져야만 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경고의 말씀, 예언입니다.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전하지 않는 교인, 전하고 싶지 않은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전하지 않는 교회의 모임 내용, 전하고 싶은 충동이 없는 메시지는 참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증거해야 합니다.
11절에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목사가 설교한 내용을 다시, 또 다른 이에게 예언(설교)하여야 하리라!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받은 진리는 무슨 소승불교도처럼 혼자 좋아라고 마음에 간직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공유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함께, 이 귀한 생명의 도리를 나누자고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말씀이 있고, 말씀을 들은 자는!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전하는 일이 어렵고 쓴맛이 나도 꼭 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도를 닮아, 주의 증거를 아낌없이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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