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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의 감사, 우리의 감사 (하박국 3:16~19)

by 【고동엽】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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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박국의 감사, 우리의 감사   (하박국 3:16~19)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앗수르라고 하 는 강대국이 멸망하고 애굽이라는 나라 역시 기울어 가면서 새롭게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강한 세력을 가지고 국제 무대에 등장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는 바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유대 나라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머지 않아서 바벨론이 창검을 번뜩이면서 유대 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 져 있었습니다. 더욱이 유대 나라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감히 바벨론과 싸워서 이 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벨론의 침공 소식을 전하여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16절에서 고백한 것 처럼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는 것 같고 온 몸이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곧 유대 나라에 전쟁이 닥치고 온 나라가 망할 지경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감 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합 3:17,18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유다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엄청난 두려움에 떨 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징계가 결국은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여 주 실 은총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환난과 고통이 온다하더라도 참고 기다리어서 믿음의 승리 를 거두겠다는 확고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다른 하나 는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를 보면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 는데 가을 추수 후 수확을 수장한 후 지키는 절기인 수장절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애굽기 23:16)

그리고 1620년 9월에 영국의 청교도들 102명이 국왕 제임스 1세의 종교적인 박해를 피 하여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5일간의 항해 끝에 플리머스라는 항구에 상륙을 하기는 하였 지만 그 해 첫 겨울에 굶주림과 추위, 인디언의 습격에 시달려서 겨울을 지나는 동안 무려 건강한 남자들이 괴혈병, 폐염 등 질병에 걸려서 44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청교도들은 다음 해 가을에 처음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를 잡아놓고 하나 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후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26일을 감사절로 정하였고 1941년이 되어서는 국회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국경일 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아니더라도 금년 한해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 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귀하고 복된 날에 본문에 나타난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감사 신앙을 점검하여 보고자 합니다.

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환난 중에도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생활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보면 "그러므로" 의 감사와 "그러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의 감사는 일상 생활 가운데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 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는다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시편 40:5절에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奇蹟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數를 셀 수도 없나이다" )
금년 한 해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 이 한가지만이라도 우리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육신적인 병마로 말미암아 나오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습 니다. 지금 병원의 중환자실을 한번 가보십시오, 감사가 나오나 안나오나.....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고(살전 5:18) 감사의 조건이 너무도 많지만 우리는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였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도 마치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 배은망덕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하지 말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발전하면 '그러나'의 감사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바로 '그러나'의 감사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진짜 감사라고 볼 수 있고요, 복음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자기의 조국 유대 나라가 바벨론에 의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라는 폐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니 이 얼마나 귀하고 순수한 감사입니까? I.M.F의 여파로 금년도 어렵게 살았고 내년에도 더 어렵게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참된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조건부 감사"는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조건부 감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서 어떻게 '그러나'의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의 감사나 욥의 감사는 바로 무조건적인 감사요 환난이 불어닥쳤는 데도 그것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환난이 엄습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감사의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통쾌한 승리와 축복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 아닌가? 금년에도 아무리 어렵게 살았다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무에서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 17절에서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고 하 였는데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세 종류의 나무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쓸모있고 가치있 는 과실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신6:11;호2:12;학2:19)

따라서 이러한 것에 소출이 없다는 것은 그 땅이 황폐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즉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로 변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먹을 양식마저도 없고 이제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하여 가축들을 잡아 먹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 모든 것들이 없다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 한 분만 계시 면 두렵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서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십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언젠가는 채워주실 줄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들의 감사는 어떻습니까?
금년에는 유독 I.M.F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어떤 성도들은 하박국 선지자의 표현대로 '빈털털이 신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 겠습니다. 그래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위를 (하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일시적인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구별할 줄 아는 믿음과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신앙은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적고 하나도 없다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정말 성숙한 믿음인 것 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회복될 수 있 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천하를 잃었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잃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 없이 살 수 없음을 인하여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환경을 초월하여 드리는 감사요, 전천후적인 감사입니다.

III.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환난과 아무 것도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을 향한 구원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보면 너무도 어둡고 답답했지만 그에게는 자기 백성 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은 정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 어떠한 환난과 핍박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신 다는 사실을 믿고 평안함을 소유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우리가 처한 환경까 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유다의 7대 왕인 여호사밧 왕에 대한 사적이 나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을 향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몬, 모압, 세일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유다의 군대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습니다. 유다가 극도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불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과거에 도와주신 것을 감사하고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 나이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 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역대하 20:6,12)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십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줄을 맞추어 질서 있게 선 뒤에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께서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찬양대를 조직하고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 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적군들이 자기들끼리 살육하고 싸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성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I.M.F가 언제 끝날 것이냐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우리의 삶이 위축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슴처럼 힘있게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 승리자의 영광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도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는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우리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겠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하는도다"(이사야 1:3)고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되 고 맙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감사의 내용들을 허락하십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감사충만한 삶을 살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김홍근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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