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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키라 (잠4:20-27)

by 【고동엽】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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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키라  (잠4:20-27)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 있고,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지키는가가 중요합니다.
피터 모펫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물을 청소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라. 그대의 양떼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그대의 집을 방어하기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를 더욱 힘쓰라. 그대의 돈을 지키기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에 더욱 힘쓰라"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우물은 청소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청소하는 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쓰지만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별로 애쓰지 않습니다.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면서도 마음을 지키는 데는 소홀함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상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비극의 출발입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의 마음과 계획은 항상 악했습니가.
그 결과 세상은 죄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렘 17:9)
인간의 마음처럼 부패하고 거짓된 것은 없습니다.
온갖 악한 것이 마음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한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더러운 것이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창조의 아름다운 마음이 상실되고 인간의 마음이 악해집니다. 더러워집니다. 타락합니다.

한용운 선생은 일제 때 나라를 잃고 민족이 암울할 때 철저하게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로서 호적까지 없애고 살았던 분입니다.
한번은 한용운 선생에게 설법을 해달라는 요청했답니다.
전국의 스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지팡이를 들고 강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더러운 것은 몸에서 나가는 배설물이니라”
이 말을 한 후 조금 있다가 “그보다 더 더러운 것은 사람의 시체가 썩는 냄새니라” 또 조금 있다가 지팡이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그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중놈의 마음이니라”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행을 하고,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더럽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악하고, 거짓되고, 헛된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마음이 상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상한 마음(broken heart), 즉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기에서 ‘마음’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전한 성품,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일까요?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기에 우리들이 청결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잘 만든 그릇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는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럽고, 부패해 있으면 하나님이 좌정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청결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기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요즘은 죄에 대해서 너무 둔감합니다.
죄를 짓고도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철저한 경각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말씀하십니다.(히12:4)
즉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며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죄를 짓고도 회개하면 되지 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못을 박고 나면 뽑아도 흔적이 남듯이 우리들이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가 남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까지 죽게 하는 간음과 살인죄를 저지릅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이 바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다윗이 회개한 시입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 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9-10)
그는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고의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간음의 결과 밧세바로 부터 낳은 아들이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아들 압살롬에게 노년에 쫓겨 다니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 39:9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고, 허탄한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는 하나의 마음, 단순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둘로 갈라지면 능력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마음이 네 개로 갈라지면 다시 1/4로 약화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10개로 갈라지면, 1/10. 30개면 1/30로…
마음이 갈라지는 것, 그것이 바로 염려와 불안, 걱정의 시작입니다.
염려(merimnazo)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마음이 나눠진다’ 뜻입니다.
마음이 갈라지고 나누어져서 결국 마음의 모든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정신 분열증이라고 부릅니다.
깨끗한 마음은 하나의 마음이요,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내 욕심과 내 의지가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와서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잡초와 같은 쓸모없는 것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내 마음이 두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이 불 때 어떻습니까?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용준 씨를 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갑니다.
일본에서 싸인회를 한다고 하면 몇 일 전부터 호텔 앞에서 날을 세웁니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영화  촬영을 하는 강원도 산골까지 찾아갑니다.
그렇다고 배용준 씨하고 손을 한번 잡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친필 싸인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배용준 씨가 자기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줍니까?
혼자 좋아하는 것이지 자기의 성도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열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대방이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먼발치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주님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8-11).
다윗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이요 만족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영적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영적으로는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걸어온 인생 길 길목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발 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시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 하셨네 ♬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교를 들어도 성경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마음이 죄로 더럽혀지고, 거짓과 불의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두 마음을 품고 세상과 교회를 줄타기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순수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날마다 뵈옵는 은혜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와 같게 되고 그의 계신 그대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일3:2-3).
사도 바울도 그 때에는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이 직접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3:12).
주님을 향해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앞으로 주님을 직접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만 해도 우리의 가슴은 기쁨으로 설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몸을 매력 있고 균형 있게 가꾸며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사는 것도 중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말합니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우리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남자 분들이 매일 아침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마음 밭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청교도인 요한 훼블(John Favel)은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생명을 바르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출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지요?
날마다 청결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우리 다같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옵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안에 주소서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죄악 가운데서 주님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속에 정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창조하시옵소서!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하시고, 삶 속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맛보게 하옵소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뵙게 될 영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며 순결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을 지켜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양인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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