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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간은 마법의 시간 (사도행전 21장 27-30절)

by 【고동엽】 2022. 7. 13.

새벽시간은 마법의 시간 (사도행전 21장 27-30절)          

 

<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라 >

 

 바울이 야고보의 권면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7일간의 결례 의식을 행했다. 그 의식을 마칠 무렵에 아시아에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알아보고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붙들었다(27절). 당시에 이방인이 성전의 안뜰로 들어가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는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더럽혔다고 선동했다. 그때 선동된 군중들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함께 시내에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여기고 바울을 즉시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29-30절).

 

 사람이 군중심리에 휩쓸리면 3가지를 보지 못한다. 첫째,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바울은 율법을 부정하고 복음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는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신약성경만큼 구약성경도 중시한다.

 

 둘째,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시에 바울은 유대인 서원자들을 성전에 데리고 간 것이지 헬라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 안뜰(유대인의 뜰)로 데리고 들어왔다고 추측했다. 그 추측을 사실로 단정하고 정말 그런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셋째,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재의 힘과 능력과 외형을 추종한다. 초승달은 계속 초승달로만 있지 않고 보름달은 계속 보름달로만 있지 않다. 초승달은 곧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은 곧 초승달이 된다. 결국 어떤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지 못하고 군중심리에 휩쓸리면 참된 진리와 축복을 놓친다.

 

< 새벽시간은 마법의 시간 >

 

 예수님은 기적을 종종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진리는 그만큼 멀어질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바쁜 중에도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스스로를 절제하고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새벽기도는 군중심리를 극복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 중 하나다.

 

 나아가는 삶과 물러서는 삶을 겸비하며 살라. 채움과 비움이 다 필요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나를 잘 살리려면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 자신을 돌아볼 틈을 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집착의 구렁으로 떨어지기 쉽다. 성경은 영혼의 깊은 잠인 집착에서 깨어나라고 도전한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이 소중하다. 새벽에 기도하면 현안 문제도 해결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하나님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인생은 진보한다.

 

 새벽 시간에 두 손을 모으기만 해도 하나님은 내 속에서 뭔가를 이뤄내신다. 그것이 큰 축복이다. 기도해서 건강과 평안을 찾고 사업이 잘되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새벽에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느끼고 내 삶의 방향을 되짚어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복을 받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는 좋은데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신문이나 TV는 잘 본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면 몸이 힘들다고 하지만 전날에 일찍 자면 된다.

 

 새벽에 기도하면 세상살이에 지쳐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는 좁아진 마음이 넓어진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면 그 시간이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된다. 새벽 시간의 성공은 하루의 성공은 물론 인생 성공도 좌우한다. 새벽을 깨우고 새벽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라. 가장 소음이 적은 그때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라. 새벽 시간은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군중심리에 매몰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마법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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